[토마스민호/토민호] Here I am 001
+) NOTICE
영화 1편을 기반으로 원작 네타(메이즈러너 파일분량)를 맛내기로 섞었습니다.
토민호인데 토마스랑 민호 한참동안 안만남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Since, 225
토마스는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이젠 수술실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그런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다. 토마스는 위키드의 중요한 연구원이기도 했지만, 실험체기도 했다. 수술실에 가기 싫다며 뒤로 물러서는 토마스는 벽에 등이 닿고 나서야 멈춰 섰다.
“…….”
“토마스. 착하지. 이리 온,”
“…….”
“토마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속을 썩이는 거냐.”
겨우 고개를 저으면서 의사 표현을 했다. 하지만 손을 내민 남자는 단호하기만 했다. 한 걸음 다가서자 토마스가 작은 몸을 좀 더 웅크렸다. 통통한 볼에 두껍고 단단한 손가락이 닿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볼을 쓸어주면서 아이를 진정시키려 했다. 잔뜩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같던 아이는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안 순간 그대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다. 작은 몸을 가볍게 안아 든 연구원들이 토마스의 등을 토닥이며 수술실로 걸어갔다. 아직 한참 자랄 일이 남은 어린아이는 어른들을 이길 수 없었다. 단단하고 거친 남자의 팔에 안겨서 칭얼거리는 토마스를 받아 안은 여성 연구원은 어쩐지 익숙한 모습이었다. 엄마에게 하던 것처럼 어깨에 푹 얼굴을 묻은 토마스가 웅얼웅얼 반쯤 먹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니. 토마스.”
“…….”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을까?”
“아파서 더는 수술실에 가는 거 싫어요.”
“토마스, 넌 우리의 희망이란다.”
“희망은 왜 항상 아파야 하는 거죠?”
“…쉽게 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난 이렇게 아픈데. 만약 내가 진짜 희망이라면, 난 누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주나요. 네?”
“…….”
“너무 불공평해요.”
“…….”
아이답지 않게 똑똑한 말을 내뱉는 토마스의 질문에 연구원들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이는 그다지 대답을 바라는 것 같지 않았다. 불공평하다는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얌전히 안겨있었다. 등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은 부드럽기만 했다. 어쩐지 졸음이 오는 것 같았다. 잔뜩 들러붙기 시작하는 졸음을 흩어내기 위해 손등으로 눈꺼풀을 쓱쓱 비볐다. 하지만 좀처럼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다.
‘항상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엔 이렇게 졸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완전히 기절한 것처럼 축 늘어진 토마스가 별다른 저항 없이 수술대 위에 눕혀졌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손과 발을 고정하고 마취 가스를 흘려 넣기 시작했다. 손꼽히는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사람의 뇌를 직접 만진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 부담을 안고 임하는 수술이었다.
작게 벌려진 입술 사이로 깊고 고른 숨이 뿜어져 나왔다. 완전히 마취된 것을 확인하자 수술 팀이 바쁘게 움직였다. 순간 토마스의 눈꺼풀이 살짝 흔들인 것 같았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묵직한 수술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 ✓ ✗
위키드에서 토마스에게 행하는 수술은 일종의 감정배제 실험의 연장선이었다. 플레어를 연구하기 위한 엘리트들을 뽑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 오랫동안 계속될 실험에 해가 될 수 있는 감정을 최대한 눌러 죽이고, 가장 이상적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아무나 붙잡고 뇌수술을 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원으로 들어온 아이 중에서도 가장 최상위에 있는 엘리트들만 고르고 다시 골라서 후보로 내세웠다. 그중 단연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아이가 토마스였다.
“토마스. 할 수 있겠니?”
“해야만 하는 거죠?”
“그렇단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아이를 바라보던 에바 페이지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착하구나. 토마스.”
“…….”
“정말 착한 아이야.”
그렇게 시작된 실험은 길기만 했다. 몇 번이나 수술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이후로는 숫자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토마스의 머릿속에 단단하게 심어진 칩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면서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토마스가 생각하는 모든 감정과 사고할 때 나타나는 뇌파는 모두 위키드 연구실로 보고되었다.
도무지 납득 할 수 없는 실험이었지만, 플레어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토마스와 트리샤를 포함한 연구소 내 모든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가질 수 없었다. 사실을 부인하는 순간 위키드와 연구소는 그대로 지옥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헛된 꿈이지만, 깨고 싶지 않았다. 토마스는 의식 건너편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움을 느끼면서 그대로 뚝 떨어졌다. 새카만 어둠이 먹힌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토마스…괜찮아?”
“…….”
“토마스.”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는 좀처럼 눈을 뜨지 못했다. 조금만 몸을 움직이려고 하면 속이 뒤집히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속에서 왈칵 올라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모두 게워냈다. 하지만 내내 먹은 것이 없으니 제대로 된 것이 나올 리 없었다. 이불을 붙잡고 하염없이 위액만 토해내던 아이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식은땀으로 푹 젖은 얼굴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정리해주던 여자아이가 한숨을 폭 쉬었다. 너무 아프다고 말할 힘도 없는지 토마스는 혼자서 내내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촘촘하게 난 속눈썹이 눈물이 푹 젖어서 마를 줄을 몰랐다.
“토마스. 토미. 괜찮아?”
“…….”
“다음에 다시 올까?”
“…….”
말이 없었다. 여자아이는 토마스의 목까지 이불을 잘 덮어주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은 것처럼 기절한 채 이틀을 잤다. 그리고 간신히 다시 일어났을 땐 현기증이 너무 심해서 침대에서 내려올 수도 없었다. 연구원들이 토마스를 안아서 옮겼다.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팠다. 차라리 죽는 쪽이 덜 아프지 않을까. 몇 번이나 생각했다.
칭칭 머리에 감고 있는 붕대가 답답했지만 불평할만한 힘도 없었다. 짐짝이 옮겨지듯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간신히 눈을 떠서 천장을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어지러워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니 또 잠이 왔다.
“…….”
얇은 팔목에 수북하게 쌓인 바늘 자국이 하나둘 더 얹어질 때면 아이는 바짝바짝 말라만 갔다.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일 수도 없었고, 현기증이 심하니 조금만 먹을 것이 들어가도 곧장 토할 만큼 예민해져 있었다. 안 그래도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아이는 영양 수액으로 최소한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해 다시 한 번 정밀 검사를 했지만 특별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 심어둔 칩의 위치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은 끝날 줄 모르고 토마스를 괴롭혔다. 보통 삼일 정도면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체력이 돌아오곤 했는데 이번엔 유난히 힘들어했다.
트리샤는 매일매일 토마스를 보러왔다. 토마스와 함께 엘리트 그룹으로 분리된 여자아이는 남자면서 자기만큼 작은 아이를 항상 걱정했다. 같은 수술실로 들어가는 일이 잦았지만, 토마스만큼 아프진 않았다. 자신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짝이 항상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둘 다 어린아이였으니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토마스.”
“…….”
“왜 일어나지 않는 거야?”
자신보다 토마스가 두 세배쯤 아파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아프지 않게 조금이라도 빨리 잠들 수 있기를 기도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았다. 한번은 더는 수술실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토마스를 모른 척 벽장에 숨겨주기도 했다. 물론 정확히 십 분 만에 들켜서 두 명 모두 엄하게 꾸중을 들었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커다란 장벽 앞에 아이들은 쉽게 무력해져만 갔다.
“샘. 샘.”
“왜 그러니?”
“토마스는 언제쯤이면 아프지 않을까요?”
“…글쎄다.”
“매일매일 울고 있는 걸 보니 좀 가슴이 아파서요. 토마스가 희망이잖아요. 희망이 우는 건 다른 사람들도 원하지 않을 텐데.”
“트리샤.”
“네?”
“토마스는 괜찮을 거야.”
“그럴까요?”
“…….”
어른들은 언제나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희미하게 웃음을 띤 채 한껏 빙글빙글 돌려 말하곤 했다. 더 캐묻고 싶어도, 절대 말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쉽게 힘이 빠졌다. 트리샤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연구원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곤 몸을 홱 돌려서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토마스가 빨리 일어나면 둘이 손을 잡고 건물 가장 높은 곳으로 가기로 정했다. 이곳에 들어온 후부터 계속 들어온 희망이라는 단어는 이젠 지겨운 말 중 하나가 되었다. 어른도 아닌 토마스가 혼자 내내 울어서 만들어내는 희망 따윈 아무도 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흘이 지나자 토마스가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까칠하게 마른 얼굴은 살이 더 빠졌는지 푸르게 보일 정도로 피부가 창백했다. 소식을 들은 트리샤가 가벼운 실험이 끝나자마자 방으로 뛰어왔다.
“토마스!! 일어났구나!”
왈칵 문을 열어젖히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싸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느끼지 못할 만한 작은 것이었다. 하지만 트리샤도 여러 번 수술을 받아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차가운 겨울바람 같은 이상한 분위기에 잡았던 방문을 좀처럼 놓지 못했다.
“저…토마스?”
“응?”
“토마스 맞아?”
“응. 맞아. 트리샤. 오랜만이야.”
“…….”
“왜 그래? 아 맞아. 내가 이번엔 좀 오래 잤다고 하더라. 수술이 어려운 거였나 봐. 혹시 걱정 많이 했어?”
“…….”
트리샤가 눈을 깜박였다. 입술을 달싹이며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좀처럼 목 안에 걸린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두 손으로 이불을 꼭 쥔 채 페어를 바라보는 토마스의 눈이 어쩐지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느슨하게 둘려있던 붕대는 손끝으로 몇 번 만지작거리자마자 스르르 풀어졌다. 항상 웃고 있던 입매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트리샤를 보면 환하게 웃던 얼굴을 더는 보여주지 않았다.
“…….”
“왜 그래? ”
“아냐. 토마스. 일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당연하지.”
“…….”
“바빠?”
“응? 아냐.”
“그럼 이리와. 아까부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서 심심했어.”
보일 듯 말 듯 입술 끝에 걸린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작은 의자를 끌어다 놓고 토마스 곁에 앉았다. 어른들이 분명 토마스의 증상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준 것이 있는데,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좀 낯설게 대하는 것은 금방 일어나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 애써 믿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웃지도, 울지도 않는 토마스를 보는 트리샤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뒤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지나버렸다.
“토마스.”
“응?”
“넌 정말 우리의 희망일까?”
“그럴 거야. 그래야 하는데.”
“…….”
혼자 있을 땐 누구보다 아파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애써 웃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자 트리샤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잔뜩 상처받은 눈은 쩍쩍 갈라진 채 그대로 단단하게 굳어갔다. 페어라고 했지만 트리샤는 도무지 토마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없었다. 얇고 단단한 막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간신히 몸을 회복했나 싶었는데, 갑자기 민호가 보고 싶다고 연구원들을 붙잡고 늘어졌다. 밝은색으로 빛나는 눈 안에는 뜻 모를 수식과 계산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계속 민호를 찾았다. 대단한 고집에 연구원들을 쩔쩔매면서 토마스를 달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거 아니냐는 수근거림이 들리기도 했다.
아이는 점점 영악해졌다. 굳이 울거나 웃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토마스의 고집이 꺾일 것 같지 않자 연구원이 먼저 손을 들었다.
“그럼 다음번 실험 날짜에 견학 허락을 받아 오너라.”
“…….”
“실험체에게 가까이 가면 안 된다.”
“하지만…….”
토마스가 원한 것은 구경이 아닌 접촉이었다. 민호를 보고 싶었고 만지고 싶었다. 괜찮았냐고, 너도 혹시 수술실로 끌려가지 않았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를 대자 토마스는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호는 위험하지 않았다. 비록 한번 만났을 때 자신을 보면서 으르렁거리긴 했지만, 그건 자신이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게 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왜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실험군에 속한 아이들을 경계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토마스의 눈에는 모두 자신과 같은 또래 아이들이자 친구였다.
“토마스.”
“…….”
“대신 끝까지 보게 해주마.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민호란 아이는 그 날 A조에서 실험을 받고 있을 테니까.”
“알았어요. 고마워요.”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원하는 것을 얻어낸 아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나타났다. 사람을 묘하게 흔드는 그 미소에 연구원은 헛기침하면서 토마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몇 번 앓고 난 아이의 미소는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트리샤는 그런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쪼르르 토마스를 쫓아갔다.
“…무슨 속셈이야?”
“뭐가?”
“네가 그 애들을 만나서 뭘 할 수 있겠어.”
“아무것도 안 해.”
“뭐?”
생각보다 허탈한 대답에 트리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되물었다. 복도를 걸어가던 토마스가 우뚝 멈춰 서서 트리샤를 돌아보았다. 하얀 형광등이 반사되는 호박색 눈엔 이름 모를 감정이 뒤섞여 활활 타고 있었다. 희망의 심장에서 억지로 뽑아낸 감정의 부스러기가 간신히 뭉쳐 있는 것 같았다. 눈이 살짝 휘며 트리샤를 보며 웃었다.
“그냥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정말?”
“정말. 난 아무 것도 못하니까.”
“토마스 어디 가지 마?”
“내가 어딜 가?”
“자꾸 어디 가버릴 거 같아서.”
“트리샤 오늘 이상해.”
“…….”
토마스는 이럴 때마다 항상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하나 함부로 말하면 그대로 눈물이 툭툭 떨어질 것 같은 눈을 보고 있자니 트리샤도 왈칵 울음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눈물을 꾹꾹 참으면서 토마스를 바라보는데, 뜻밖의 물음이 돌아왔다.
“혹시 내가 싫어서 어디 가버리라는 건 아니지?”
“아니야. 바보야.”
트리샤의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처럼 웃는 토마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건 자신이 아니라 저쪽인데,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수술 때문이 아닐 거라고 다섯 번도 넘게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트리샤는 새끼손가락을 서로 걸고 다섯 번 정도 약속까지 하고 나서야 물러섰다. 토마스는 새끼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태양처럼 웃었다.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 ✓ ✗
실험 대상으로 들어온 아이들을 모두 몰아넣고 대규모 실험을 하던 날 토마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워낙 많은 아이가 한 번에 우르르 몰려들었기 때문에 민호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위에서 보고 있으면 다들 비슷비슷했다. 까만 머리를 찾으면 될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숫자가 많았다. 토마스는 이 상황에 약간 질리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아이가 연구소 어디에 다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저기 있다.’
큰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두 번째 그룹에 속해있는 민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뉴트와 바짝 붙어있었다.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면서 계속해서 뒤를 향해 뭔가 말하고 있었다. 그 옆에 바짝 붙은 뉴트는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알차게 모여 있는 아이들은 쉽게 동요하지 않고, 함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마치 일정한 훈련받은 사람들처럼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고작 열 살 난 아이들이라고 보기엔 엄청난 인내심이었다.
“……”
토마스가 조심스럽게 민호의 프로필을 열었다. 지난 실험 성적이 주르륵 같이 딸려 올라왔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아도 될 만큼 놀라운 성적이었다. 이 정도라면 누가 보더라도 실험군 최상위권에 속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 보고서 겸 프로필엔 실험과 신체에 대한 정보만 있을 뿐 다른 것은 전혀 적혀있지 않았다. 특이사항. 이 마지막 문장을 읽는 그 순간 사이렌 소리가 온 연구실을 가득 채웠다. 토마스가 잔뜩 집중하고 있던 화면에서 눈을 뗐다.
“시작했군.”
“오늘은 무슨 실험을 하는 거죠? 저번 실험결과를 읽어봤는데 이렇게 대규모로 하는 것은 좀처럼 없던 일 같은데.”
“상위권과 아닌 아이들을 나누려는 거지.”
“지금까지 실험으로도 충분히 그룹별로 나뉘어 있는 걸요? 너무 갑작스러운데…이것 보세요.”
토마스의 작은 손을 따라 반투명한 패널에 다닥다닥 프로필이 나타났다. 상위권에 속한 아이들의 프로필을 쭉 보여주는 아이가 퍽 귀여웠는지 중년 연구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토마스는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일반 연구원들보다는 높은 위치였다. 뾰로통하게 화면을 바라보는 토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웃음을 터뜨린 게 좀 민망했는지, 연구원은 서면으로 따로 전달된 실험 계획서 전부를 쭉 펼쳐서 토마스에게 보여주었다.
“이번에 하는 실험은 판단 능력. 초감각. 인지능력. 그리고 모든 신체능력을 포함해서 결과가 나오게 된단다.”
“어렵네요. 도대체 어떤 식으로…….”
토마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바로 앞에 보이는 벽이 움직여서 길을 막아버렸다. 꽤 무거워 보이는 벽은 여러 장치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눈치를 보면서 뒤로 빠져있던 아이들이 그제야 놀라서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더는 뒤로 물러날 곳도, 앞으로 갈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자 한순간 평정심이 무너지면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미로는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고 어떻게든 높은 미로를 넘어가기 위해 서로서로 밟고 올라서기 시작했다. 공포심은 빠르게 아이들을 좀먹어갔다.
“안타깝네요.”
“먼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저렇게 낙오가 되고 말지.”
“그렇다고 가장 먼저 나서는 것도 딱히 좋지만은 않을 텐데.”
“물론. 그런 의미로 본다면 가장 큰 무리를 보내고 움직인 두 번째 그룹이 가장 현명하다고 판단할 수 있단다. 너무 신중해서 기회를 놓치는 것도 아니고, 가볍게 정하지도 않지.”
‘민호가 있으니까.’
토마스는 속으로 대답했다. 민호가 있는 그룹이 쉽게 탈락할 것 같진 않았다. 희미한 전등 켜져 있던 시작지점이 점멸 소리와 함께 빛이 사라지자 어둠이 밀려왔다. 순식간에 한 치 앞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어두워진 곳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기계가 맞물리는 불규칙한 소리와 아이들의 피맺힌 비명 소리가 섞여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토마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귀를 막았다. 카랑카랑 울리는 목소리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머리 아파.’
잠시 시간이 지나가 눈앞에 떠 있는 프로필 여덟 개가 까맣게 변하더니 위에 붉은 도장이 콱 찍혔다. 토마스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낙오. 실패. 실험 종료. 더는 이 아이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소리와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이번 실험은 큰 그룹을 분리함과 동시에 가장 하위에 속해있는 아이들마저 걸러내는 작업이 분명했다.
“…….”
아이들의 생사는 알 수 없었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상상력이 심장에 닿자 속에서 비릿한 것이 울컥 올라왔다.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천천히 숨을 내쉰 토마스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남아있는 프로필을 살폈다. 하위권에서 다섯 명, 가장 선두에서 세 명.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작하자마자 여덟 명이 희생되었지만, 아직 많은 수가 생존해 있었다.
이 실험이 언제 끝날 진 토마스도 알 수 없었기에, 그저 민호가 제발 가장 먼저 나서지 않기를 남몰래 빌었다. 적어도 이런 대규모 실험에서 자신의 마음에 든 아이가 탈락한다는 것은 믿을 수도 없을뿐더러, 토마스의 안목과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일이었다.
“이젠 저 아이들의 판단 능력과 운이 생사를 결정할 거다.”
“…네?”
기도를 엿듣기라도 한 듯 바로 이어진 냉정한 말에 토마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음번도 이렇게 머리와 꼬리를 잘라낼 거로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아니라면 민호를 도와줄 방법은 없는 것과 같았다.
물론 민호가 이끌고 있는 무리가 쉽사리 탈락할 것 같진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토마스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누군가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토마스는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덜덜덜 떨리는 것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긴장 할 수록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자꾸 한숨이 나오는데, 그것마저 마음대로 내쉬지 못했다. 심장이 왜 이렇게 두근거리고 아픈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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