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크리스마스 합작
+) NOTICE
모델 뉴트랑 연구원 토마스가 크리스마스 보내는 이야기
크리스마스 합작에 글로 참가했습니다.
12월 신간인 MAZE INTHE TRAP 과 같은 설정 및 시간대를 공유합니다. 나오는 책에도 들어가 있어요 :)
원고 하면서 들었던 BGM은 H.O.T. 'Wedding X-mas 입니다
합작 주소 바로가기 : http://everynewtmas.er.ro/
write. 환월
✔ Merry Christmas , Please marry me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 것을 기억하기엔 서로 만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라만 봐도 좋은 시기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둘이 만났고, 서로 어깨를 맞댄 채 앉아있었다. 막 피기 시작한 감정은 이해하기엔 아직 어색했다. 조용한 공간에 두 가지 숨소리가 얽힐 때면 이유 없이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따끈하게 달아오른 어깨에 기대고 있던 뉴트가 반쯤 흘러내린 담요를 다시 끌어올려 덮었다. 두툼한 담요가 부드럽게 주름졌다.
“추워?”
“…아니.”
눈을 반쯤 감고 있던 토마스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입술이 뉴트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뉴트가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푸슬푸슬 사방에 흩어지는 애정이 온몸에 내려앉았다.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담요 속에서 가볍게 잡고 있던 손이 점점 더 얽혀갔다. 꼼질 거리는 토마스의 손을 내리누른 채 웃었다. 장난과 애정이 반씩 섞인 행동은 아주 조금씩 짙어져 갔다. 어깨에 목 안으로 웃는 웃음이 느껴지자 토마스도 따라 웃었다. 깨끗한 웃음이었다.
“이러고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
“나도.”
“뉴트가…….”
“응?”
“뉴트가 여기 있어서 다행이야.”
“…….”
가만가만 내뱉는 말은 여전히 묵직했다. 때로는 너무 무거워 받아주기 힘들 정도였지만, 뉴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천천히 서로의 생활에 흡수되는 것처럼 그렇게 앉아있었다. 처음 만남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 둘도 없는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 그저 서로 맞춰주면서 비슷하게 닮아갈 뿐이었다.
탁자에 놓인 케이크는 이미 초가 반쯤 녹아내린 채 방치되어 있었다. 토마스가 연구실에 불려간 사이 뉴트가 밖으로 나가서 직접 골라온 케이크였다. 이런 걸 챙기는 것은 아직 어색했지만, 익숙해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별다른 장식 없이 생크림으로만 깔끔하게 마감되고 가운데 딸기 몇 개 올린 케이크를 받아든 토마스가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었다. 그리고 딱 하나 가져온 초를 켜둔 채 내내 바라보기만 했다. 길게 타오르는 촛불이 눈에서 붉게 일렁일 때마다 둘을 가볍게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저거…먹으려고 사온 거였는데.”
“먹을까?”
“글쎄.”
“…아까워서.”
뒷말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뉴트는 아직도 토마스가 왜 그렇게 자신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으려니 했다. 담요 안에서 서로 마주 잡은 손에서 후끈하게 열이 올라왔다.
“내년에도 이럴 수 있을까?”
“물론이지.”
“그때는 꼭 네가 케이크 사와.”
짧은 약속이 목 안쪽으로 꿀꺽 넘어갔다. 기분 내려고 사온 술의 달짝지근한 맛이 입술 가득 묻었다가 꿀꺽 사라졌다. 바짝 긴장한 몸을 뒤척이자 담요가 바닥으로 스르르 흘러내렸다. 하지만 다시 주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토마스의 힘에 밀려 그대로 소파에 반쯤 걸치게 누운 뉴트가 킬킬 웃으면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빼서, 목에 두른 채 다시 웃었다. 색깔이 다른 웃음이 한데 섞여 바닥에 깔렸다. 그 와중에 토마스의 그림자가 자신을 먹어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입술부터 녹아내리는 감각에 뉴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달짝지근한 맛 뒤엔 언제나 쌉쌀한 것이 따라붙었다.
✗ ✓ ✗
이번이 세 번째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뉴트는 적당한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했고,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토마스는 그런 뉴트에게 호기심이 생겨서 따라다니고 싶어 했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데뷔 화보 컨셉이 그다지 점잖은 축은 아니었기에, 뉴트는 날로 화려해졌다. 어느 날은 아무런 말도 없이 머리를 잔뜩 탈색하고 온 적도 있었다.
촬영 준비를 하러 나가는 뒷모습을 먼저 배웅하는 토마스는 마음 한구석에 돌이 올려진 것 같았다. 뉴트는 아직 완전히 졸업한 것은 아니지만, 따로 찾아가 출석 일수에 대해 상담이라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사실 일을 시작하면 학교를 제대로 나올 수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학교에 나오긴 했지만, 점점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다. 촬영 때문에 하루 종일 촬영장에 있기도 했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
“미안 오늘도 못 들어갈 거 같은데.”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야? 응? 뭘 그렇게 밤새서 촬영을 해. 내가 갈까?”
“촬영은 적당히 끝났는데, 감독님이 다른 사람들이랑 얼굴이라도 좀 익히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씀하셔서. 아마 끝나면 새벽 일 텐데, 여기서 자고 일어나서, 마저 찍고 들어갈게.”
“…….”
“…미안.”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하고. 응. 나도 수업 들어가야 해. 응”
“…….”
짧은 통화가 끝났다. 토마스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눈만 깜박거리던 토마스는 힘없이 걸어서 수업을 들어갔다.
뉴트가 돌아오지 않는 이틀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서로 할 일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첫걸음, 첫 사랑. 온갖 달콤한 어휘로 장식된 그 기분에 한껏 취한 채 하염없이 기다렸다.
날짜는 착실하게 흘러갔고, 크리스마스가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둘이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때, 뉴트는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엔 꼭 같이 있자고 말했었다. 추운 건 싫지만, 펑펑 내리는 눈은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이 뭐라도 되는지 몰라도 지난 크리스마스엔 눈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따뜻해서 둘은 크리스마스인 줄도 모르고 반쯤 지나쳤고, 저녁이 되어서야 알아차렸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눈이 오려나.’
펜을 입에 물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토마스의 시선은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뉴트가 돌아오려면 하루도 넘게 남았다. 짧다던 겨울 해는 왜 이렇게 긴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연구실에서 내내 정신을 놓고 있던 토마스는 조금 늦게 연구소를 나섰다.
“어, 늦게 왔네.”
“뉴트? 어…언제 왔어.”
“좀 됐는데. 하루 더 있다 가라는 거 내가 빨리 가봐야 한다고 하고 그냥 올라왔지.”
“전화라도 하지.”
“그러면 네 녀석이 알아채잖아. 바보야. 나 화장도 대충 지우고 달려온 거야.”
촬영용 옷만 갈아입고 달려온 뉴트를 바라보던 토마스가 눈만 깜박였다. 분명 눈앞에 있는 사람은 뉴트인데 너무 낯설었다.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컨셉에 맞추려고 밝게 탈색한 머리부터, 반쯤 지워지다가 만 화장까지 모두 예전엔 모르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뉴트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늘 하던 대로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날렵한 목선에 코를 묻으면 진한 화장품 향기 아래에서 뉴트가 느껴졌다. 차게 얼어있던 입술이 어깨에 닿았다. 그러자 가늘게 그 위를 덮는 향수 냄새도 함께 느껴졌다. 그렇게 외로웠냐면서 토마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줬다. 아무리 바빴다 해도 제대로 연락도 못 했으니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며칠이나 못 봤다고 이래.”
“…….”
“나도 일찍 오고 싶었는데, 데뷔 화보는 내 맘대로 조절할 수가 없더라고.”
“뉴트.”
“우는 거 아니지? 나 그래도 최대한 일찍 오려고 했어.”
“응. 알아.”
“다녀왔어. 토마스.”
점점 두 팔에 힘이 들어갔다. 단단하게 잡힌 허리를 몇 번 비틀어보던 뉴트가 또 웃었다. 바짝 마른 웃음이 토마스의 등에 우수수 떨어졌다. 물론 토마스가 자신을 따라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벌써 가십거리를 만드는 것은 좋지 않았다. 둘이 가는 길이 너무 달라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틀어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좀 더 경력이 쌓이면 편해질 거 같아.”
“…….”
“어휴.”
끙끙거리는 커다란 녀석을 한참 바라보던 뉴트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토마스를 품에서 떼어냈다. 잔뜩 쳐진 눈매를 보고 있자니 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하루가 지나는 것이 아깝게 붙어있어도 모자랄 것 같은데, 서로 바쁘다 보니 점점 겹치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비어버린 공간은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뻥 뚫리고 만다. 토마스의 세계에 새로 생긴 공간은 주인이었던 뉴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간신히 밝히고 있던 불이 꺼진 채 몇 날 며칠 텅 비어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뉴트는 뉴트 대로, 토마스는 토마스 대로 정신이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는 날씨는 금방이라도 눈을 쏟을 것 같이 시시각각 변했다. 뉴트는 언제나처럼 또 촬영을 나갔고 토마스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연구실로 달려가곤 했다. 둘 다 바빴던 터라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둘은 간신히 통화 몇 번 하고, 메시지 두어 번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통화하는 내내 미안함이 가득 배어 나오는 뉴트 목소리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런 뉴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래도 내일은 올 수 있냐는 질문에 아마도- 라는 애매한 대답만 남았다. 앞을 알 수 없는 대화를 하는 둘은 잔뜩 지쳐있었다.
어디까지나 뉴트는 이번 프로젝트에 고용된 사람이었고, 계약서에 써진 대로 이행할 의무가 있었다. 시무룩해진 토마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뭐라고 한마디 더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저 멀리서 뉴트를 부르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통화하자면서 먼저 전화를 끊었고, 순식간에 멍하니 서 있는 토마스만 남았다.
“…….”
자신이 모르는 세계로 걸어가고 있는 뉴트를 알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질투가 났다. 질투, 걱정, 부러움 온갖 복잡한 감정을 끌어안고 앓던 토마스는 반쯤 뜬눈으로 밤을 새고 말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캄캄한 밤이 조금씩 물러나고 희뿌연 햇빛이 보일 때쯤 간신히 잠이 들었다. 새벽이 서서히 밝아오자 안 그래도 뿌옇던 하늘에 점점 더 구름이 가득 찼다.
“…눈.”
희미하게 흘러들어온 햇빛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약하기만 했다. 커튼을 활짝 젖혀보았지만, 아직 눈은 오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졌다. 뉴트가 없으면 딱히 할 일이 없는 집안에서 토마스는 주섬주섬 담요를 끌어안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시간은 더디게 갔고, 집에 찾아올만한 사람도 없었다. 의욕 없이 앉아있던 토마스는 잠깐 잠이 들었다.
“…트리라도 꾸밀까.”
이번 겨울엔 꼭 같이 만들자고 사놓은 것이 생각났다. 물론 겨우 나무만 옮겨둔 채 뉴트가 바쁘게 사라졌다. 아무런 장식하나 얹지 못한 채 구석에 서 있던 트리를 보고 있자니 시간을 보낼 소일거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잔뜩 죽어있던 토마스의 눈에 조금 화색이 돌았다.
잔뜩 사놨던 장식이 담긴 상자를 들고 왔다. 제법 무거운 상자를 낑낑거리면서 내려놓았다. 트리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하나둘 필요한 것을 주섬주섬 늘어놓는가 싶었다. 그러더니 한참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딴 짓을 했다.
전구까지 둘둘 두르고 나니 그럴듯한 트리가 만들어졌다. 뭔가 아쉬워서 괜히 노란색 별 장식을 하나 더 달아봤다가 역시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다른 곳에 옮기길 반복했다. 커다란 리스를 방문 앞에 걸었다. 붉은 장식이 달린 초록색 리스를 내내 바라보던 토마스가 턱을 만지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 바라보았다. 이제 이 집에 뉴트만 있으면 완벽할 것 같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
멍하니 시계를 바라보던 토마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급히 옷을 갈아입으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목도리까지 둘둘 감고 나온 토마스가 핸드폰을 들어서 메모를 확인했다. 몇 년 전에 뉴트가 스치듯 말했던 것이 가득 적혀있었다. 물론 이렇게 해두지 않아도 충분히 기억할 수 있지만, 기록해둔다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처음 만났을 땐 뉴트가, 두 번째는 너무 바빠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세 번째는 토마스의 차례였다. 뉴트는 오늘 올지 내일 올 지 모른다고 했지만, 준비를 해두는 것이 뭐가 나쁠까 싶었다. 목도리 끝을 만지작거리던 토마스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가볍게 밖으로 나왔다.
우중충한 구름이 잔뜩 깔린 거리엔 여러 가지 색깔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했다. 사람들도 많았고, 다른 손마다 무엇인가 잔뜩 들고 있었다. 거리에 잔뜩 깔린 인파를 헤치면서 하염없이 걷던 토마스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숨을 쉬자 긴 숨이 하얗게 얼었다. 가게마다 크리스마스 용 케이크가 가득했지만, 정작 토마스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한참 구경을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섯 번째 케이크 집을 지나쳤을 때,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멍하니 돌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급하게 방금 지나쳐온 가게로 들어갔다.
“…….”
가게 안은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진열장 앞에서 케이크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키만 훌쩍 큰 토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케이크들을 내려다보았다. 막연하게 뉴트에게 받았던 케이크와 비슷한 것을 생각했는데, 이미 다 팔린 것인지 남아있는 것이 몇 개 없었다. 점원이 다가와서 친절하게 찾고 있는 것을 물었을 때 토마스는 짧게 케이크라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한참 멍하니 설명을 듣고 있던 토마스가 진열장 가장 가운데 있는 케이크를 짚으며 물었다.
“그 케이크는 한정판인데 다 나가고 하나 남았어요. 크리스마스라면 부쉬드노엘이 제일 잘 나가거든요.”
“그런가요.”
“네. 한정판으로 몇 개만 나오는 거라 아침에 들어온 물량이 일찍 빠졌어요.”
“…좋아할까요?”
“네?”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저걸 주면 좋아할까요?”
“그럼요.”
생긋 웃는 직원의 말에 토마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확신이 필요했다. 케이크를 포장해달라고 말하고선 또 밖을 쳐다보았다.
아직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뉴트가 없는 거리는 사람이 아무리 북적여도 쓸쓸하기만 했다. 한정판이라는 케이크는 예뻤지만, 당장 보고 좋아할 사람도 없었다. 케이크가 포장되는 내내 위에 올려진 별의 개수를 눈으로 세고 또 셌다. 가늘게 잘린 화이트 초콜릿이 가득 뿌려진 케이크가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포장 다 되었습니다. 손님.”
“아, 네.”
또 멍하니 정신을 팔았다. 직원을 따라가 계산을 하고 예쁘게 포장된 케이크를 손에 들었다. 리본으로 정성껏 묶어서 토마스에게 건넨 점원이 눈을 깜박거리다 작은 쿠키를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곤 밝게 인사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손님.”
“네.”
“안녕히 가세요.”
유리문을 열자 가장자리에 매달린 작은 방울이 딸랑거리며 토마스를 배웅했다.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몇 번이나 멈춰 서서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이렇다 할 메시지 한 통 없었다.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또 잡았다. 토마스의 등 뒤로 길게 늘어진 화려한 불빛들이 유난히 반짝였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따라오던 불빛이 점차 사라졌다.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탁자 위에 케이크 상자를 놔두고 털썩 주저앉았다. 목도리를 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한참 앉아있었다. 여전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짧은 시계 바늘이 또다시 한 칸 움직였다. 그제야 목이 답답하다가는 느낌을 받았다. 대충 목도리를 풀어 소파 위에 던졌다. 여전히 집은 조용했다.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만 내내 시끄러웠다. 짧은 바늘이 다시 한 칸 옆으로 움직였다. 뻑뻑하게 말라가는 눈만 깜박이다 이내 마른세수를 했다. 못 올 수도 있다고 분명 말했는데, 멋대로 기대한 쪽이 잘못이긴 했다. 하지만 묘한 감정이 뒤섞인 마음은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했다.
“…뉴트.”
슬슬 화가 날 거 같아 진정하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뉴트는 잘못이 없었다.
“어?”
언제부터 눈이 내렸는지 알 수 없었다. 시계는 이미 한참 돌고 돌아 밤에 가까웠다. 캄캄하게 어둠이 내린 창밖에선 커다란 눈송이가 펑펑 쏟아졌다. 눈을 보고 있으니 두 배로 우울해졌다. 마른 손바닥을 비비던 토마스가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눈이…너무 많이 오는 거 아냐?”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부르기엔 심할 정도로 눈이 내렸다. 거리에 가득 내린 눈은 녹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쌓여갔다. 거리에 북적이던 사람들은 언제 사라졌는지 드문드문 몇 명만 보였다. 잔뜩 달아둔 크리스마스 장식들만 반짝였다. 캄캄한 밤을 밝히려는 듯 내리는 하얀 눈송이가 창문을 때리고 스쳐 지나갔다.
“이거…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고 화이트 블리자드인데.”
왈칵 뉴트 걱정이 들었다. 괜히 오라고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계속 갈 뿐 받지 않았다. 다시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
토마스는 점점 초조해졌다. 크리스마스고 뭐고 이렇게 눈이 오는데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촬영장이라면 다행이지만, 오다가 이런 눈을 만났다면 큰일이었다. 뉴트가 무슨 옷을 입고 나갔는지 생각했다.
“…추울 텐데.”
목도리라도 하나 더 챙겨서 보내야 했다고 후회했다. 둘이서 행복하게 보낼만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원했을 뿐이지, 이렇게 재해에 가까운 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단축 번호를 눌렀다. 길게 이어지는 신호음은 결국 뚝 끊어졌다. 토마스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거실을 돌아다녔다. 연락을 받아야 데리러 가든지 찾아가든지 할 텐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론 마중을 갈 수 없었다. 뉴트를 기다릴 때는 그렇게 늦게 가던 시간이 갑자기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
하지만 이렇게 있을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은 걱정을 잡아먹고 점점 더 크게 자랐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소파에 멋대로 던져둔 목도리를 다시 집어 들었다. 집 밖에서 기다리기라도 할 작정이었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등잔만 하게 커진 눈으로 문 쪽을 바라보니 눈투성이가 된 채 꽁꽁 얼어서 들어오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꽤 오래 밖에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뉴트!”
눈이 잔뜩 쌓인 모자를 벗자마자 새빨갛게 얼어있는 두 볼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푹 젖은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는 뉴트를 보자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폭풍처럼 흩날리는 눈에 이미 제 역할을 못 할 정도로 축축해진 목도리를 벗어서 대충 던져버렸다.
“…뉴트?”
“그래 나다. 아직 열두 시 안 지났지?”
“이게 무슨.”
“조금이라도 일찍 오려고 택시를 탔는데 날씨 꼴이 이 모양이잖아. 진짜 내가 출발할 땐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
“그래서 걸어서 오는 쪽이 빠를 거 같아서 택시에서 내렸지.”
“…….”
“그런데 생각보다 내린 곳에서 집이 좀 멀더라고.”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걸어와!”
꽁꽁 얼어있는 몸은 덥석 끌어안았다. 손끝에 얼음 같은 한기가 스며들었다. 잔뜩 얼어서 새빨간 볼에 천천히 온기가 돌았다. 너무 차가운데 놓을 수 없었다. 바지고 신발이고 멀쩡한 곳이 없었다. 앞뒤로 휘몰아치는 눈이 잔뜩 달라붙었던 옷엔 아직 눈송이가 잔뜩 붙어있었다. 따끈하게 데워진 집으로 들어오자 그제야 녹은 눈들이 투툭투툭 반쯤 물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늦게 와서 미안해.”
“…….”
“나 그래도 진짜 노력한 거야. 끝나자마자 달려왔다고.”
뉴트가 눈이 뚝뚝 떨어지는 팔로 토마스의 등을 두드려줬다. 입속에서 찬 겨울바람이 흘러나왔다. 한참 뉴트를 안고 있었지만, 차가운 기운이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간신히 혈색이 돌기 시작하는 볼을 만져 봐도 차갑기만 했다.
“그런데…아직 열두 시 안 지났지? 눈이 너무 와서 핸드폰을 꺼낼 수도 없었어.”
“…….”
“일부러 연락 안 한 건 아니야. 알지? 여기 앞에 와서 간신히 눈을 피한 다음 확인했어.”
“…….”
“일단 옷 좀 벗자.”
뉴트가 잔뜩 껴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축축한 옷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직도 한기가 남아있어서 추운지 가늘게 몸을 떨면서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토마스가 아차 싶었는지 급하게 거실로 달려갔다.
“뭐해?”
“추운 거 같아서.”
토마스가 소파에 놓여 있던 담요를 둘둘 말아서 가져왔다. 그리곤 담요를 들어서 뉴트 머리부터 푹 덮어씌웠다. 그리고 와락 끌어안았다. 차갑게 언 손은 아무리 만져주고 주물러줘도 좀처럼 체온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뉴트를 소파에 앉혀놓고 물을 끓였다. 따뜻하게 달아오른 머그 컵을 내밀자 가늘게 기침을 하던 뉴트가 받아들었다. 두 손에 찌르르 전기가 오를 정도로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조금 괜찮아졌는지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겨울바람에 얼어있던 목 안으로 넘어가는 따뜻한 커피의 느낌이 생생했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랬어.”
“내가 그렇게 까지 약하진 않아. 눈이 이렇게 많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
“몸이 재산인데 아프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런가.”
“그리고…….”
“그리고?”
토마스가 바짝 마른 입술을 슥 핥았다. 좀처럼 운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던 뉴트가 묘한 호기심이 돌았다. 입꼬리를 올리며 빙긋 웃곤, 은근히 압박하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대화에 한 번 말려 들어가면 정신을 못 차렸다. 그리고? 왜? 몇 번이나 되물어보자 토마스가 손바닥을 비비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프면 걱정…되니까. 뉴트가 아픈 거 싫어.”
“…….”
“오늘 같은 날은 조금 늦었다고 뭐라고 하지…않았을 거야.”
“…….”
“난 이런 날보다 뉴트가 훨씬 소중해.”
“…….”
깜박. 깜박. 뉴트의 눈이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면서 할 말을 찾았다. 이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았는지 귀부터 빨갛게 달아올랐다.
“…….”
“정말이야.”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오늘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뉴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엇박자로 뛰고, 눈앞이 부옇게 변했다. 얼굴에 불꽃이 닿은 것처럼 홧홧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머그컵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푹 감쌌다.
“…뉴트?”
“너 정말 부끄러운 소리 아무렇지 않게 해.”
“…….”
“알고 있어?”
“…모르겠어.”
아까까지만 해도 어깨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는데, 어느새 온몸에서 불꽃이 흐르는 거 같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줄 자신이 없어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토마스는 뉴트가 아픈 줄 알고 가까이 다가왔다. 역시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억지로 손을 뜯어냈다. 그리고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 잠시 말이 없었다. 토마스도 뭔가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확 붉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수줍어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두 손으로 잡고 있는 손만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트리…같이 못 꾸미고 갔는데.”
“내가 했어. 적당히.”
“내년엔 꼭 같이 꾸미자.”
“정말? 뉴트가 많이 바쁠 거 같아서 못 믿겠는걸.”
토마스는 조금이지만 농담이 늘었다.
“그때쯤엔 우리도 조금 여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 둘 다 일주일쯤 휴가 내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거야.”
“난 좋아.”
“그럼 꼭 그렇게 하자.”
트리를 따라 반짝거리는 전구 불빛을 바라보던 뉴트가 가만가만 내년 계획을 말했다. 밤은 점점 깊어서 투명한 창문에 비치는 전구 불빛은 어지럽게 반짝였다. 찬찬히 트리를 살펴보던 별 두 개가 나란히 걸려있는 것을 발견한 뉴트가 저거 나랑 토마스냐고 물었고, 당사자는 잔뜩 얼굴이 붉어져서 대답을 피했다. 조금 짓궂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물었을 때 간신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내 머리카락 색은 없어서.”
“…응?”
“뉴트는 노란색이면 되는데…난.”
“하…하하하.”
뉴트가 크게 웃었다. 정말 녀석다운 대답이었다. 내년엔 물감이라도 가져다가 별을 칠해보라는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 ✓ ✗
크리스마스가 지나기 십 분 전 토마스가 사온 케이크를 간신히 꺼내 볼 수 있었다. 둘이 먹기엔 지나치게 커 보이는 케이크를 꺼내던 뉴트가 속으로 큭큭 거리면서 웃었다. 아마도 제일 좋아 보이는 것을 골라왔을 게 분명했다.
“…아 근데 좀 추운 거 같아.”
케이크를 꺼내고 자리에 앉은 뉴트가 코를 훌쩍이며 담요를 찾았다. 얼마나 걸어왔는지도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지독한 눈보라였다. 몸은 따끈하게 달아올라도 여전히 추웠다.
토마스가 어깨에 따뜻하게 데운 담요를 걸쳐줬다. 보송보송한 새 담요의 감촉에 한껏 취해있던 뉴트가 케이크에 초를 꽂기 위해 일어섰다. 그 뒤로 담요가 뒤로 길에 늘어졌다. 케이크에 초를 세 개 꽂는 것을 보자마자 뒤에서 두 팔로 뉴트를 와락 안아서 당겼다. 안기는 것처럼 뒤로 넘어간 뉴트가 고개를 확 젖히고 한참 동안 토마스를 올려다보았다. 푸슬푸슬한 머리카락이 토마스의 눈을 어지럽혔다.
“…언제나 고마워.”
“나도.”
“그런 말 듣는 거 오랜만인 거 같아.”
“그런가.”
“응.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진짜 뉴트가 왔구나 싶어서 좋다.”
“어린애같이 왜 이래.”
“가끔은…….”
“응?”
“가끔은 뉴트랑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아.”
“…….”
“그런데도 계속 보고 싶어지면 난 어째야 하지?”
“이렇게 보고 있으면 되는 거지. 나 어디 안 간다니까?”
뉴트가 담요에 푹 파묻혀 있던 손을 들어서 토마스의 뺨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눈을 반쯤 감은 채 뉴트의 손바닥에 뺨을 비볐다. 찰싹 달라붙은 따뜻한 체온에 뉴트도 긴장이 풀렸다. 토마스가 좀 더 고개를 돌려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항상 곁에 있어줘.”
“알았어.”
입술을 떼는 것을 못내 아쉬운 듯 다시 달라붙었다. 손바닥에서 손목으로 내려간 입술이 불꽃을 새겼다. 뉴트가 고개를 돌리자 토마스가 눈을 살짝 들어서 쳐다보았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자 부옇게 변했던 세상이 천천히 어그러지는 것처럼 움직였다. 입술에 닿는 익숙한 감촉에 뉴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입술이 닿는 곳마다 열기를 남겼다. 토마스가 조금 재촉하듯 좀 더 다가가자 뉴트가 웃으면서 입술을 조금 벌렸다.
“…으응.”
목 안으로 우는 녀석은 오늘따라 좀 급했다. 뉴트가 숨이 막힐 정도로 밀어붙이는 것을 받아주려니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조금 입술을 떼고 숨이라도 한 번 들이마시려 하면 급하게 또 붙어왔다. 허리를 잡고 있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겨우 떨어진 둘은 눈 밑이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이 맺힌 눈을 몇 번 깜박거리니 속눈썹이 눈물에 푹 젖었다. 둘의 입술색이 섞인 것 같았다. 가늘게 눈을 접으면서 웃다가 문득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금 부끄러워져 손으로 연신 어깨를 꾹꾹 밀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뉴트.”
“…토미?”
“우리가 함께하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야.”
약간 젖은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뉴트는 심장이 뛰었다. 세 번째 듣는 말인데 왜 이렇게 새삼스럽게 두근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따근하게 달아오른 눈 밑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토마스는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았지만,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씩 웃으면서 뭔가 내밀었다. 촬영 가느라 잠시 빼서 반지 상자에 넣어둔 반지였다. 익숙한 모양의 반지에 뉴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응?”
“촬영 때문에 안 끼고 간 것 같아서.”
“정말 가끔 네 생각을 이해할 수 없어 토마스.”
“손 줘봐.”
모르는 척 손을 내주자 토마스가 조심스럽게 반지를 끼워줬다. 토마스는 항상 반지를 끼고 다녔지만, 뉴트는 이것저것 입었다 벗었다 해야 하는 처지라 보통 빼놓고 다니곤 했다. 손가락에 부드럽게 밀려들어 가는 반지를 응시하던 뉴트가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계속 끼고 다니면 좋을 텐데, 협찬물품이랑 섞이면 귀찮겠지?”
“나중에 꼭 끼고 갈게.”
“손에 어울려서 항상 다행이라고 생각해.”
토마스가 손을 덥석 잡아서 조물거렸다. 손끝에 걸리는 얇은 금속 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토마스의 반지를 슬쩍 만져보던 뉴트가 손가락으로 꾹 밀어서 제대로 끼워줬다. 뉴트의 손이 토마스의 볼을 만지작거릴 때, 손가락 위에 반지의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뉴트의 이름을 부르기만 했다.
“언제나 네 곁에 있고 싶어.”
속눈썹이 촘촘한 눈이 뉴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이 너무 곧아서 뉴트가 살짝 빗겨가며 웃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고.”
“나도 그래.”
“내 세계를 넓혀줘서 정말 고마워. 뉴트.”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뉴트의 입술이 토마스의 말을 막았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긴 단어가 목 안으로 꿀꺽 넘어갔다. 어쩐지 입에서 달콤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둘은 그 상태로 조금 취해 있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밤이 점점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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