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MAZE IN THE TRAP vol.2 001
+) NOTICE
둘이 멀쩡하게 연애하는게 보고싶어서 시작한 평범한 세계에 대학교 AU 입니다.
플레어는 발병하지 않았고,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세계.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1권에서 이어지는 같은 커플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첫 시작은 너무 낯설었다. 당차게 같이 살자고 한 것은 아주 좋았다. 그 냉랭한 뉴트가 무엇에 홀린 것처럼 토마스의 청혼을 받아들였을 때 주변에선 난리가 났었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토마스가 좋다고 매달리긴 했지만, 뉴트가 적극적으로 반지를 받아든 것은 처음이었다. 토마스가 그날 엉엉 울었다느니, 뉴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느니 엄청나게 떠들어대는 통에 결국 당사자가 왈칵 화를 냈다. 엉덩이를 그대로 걷어차일 뻔한 친구들이 낄낄거리면서 슬금슬금 다시 몰려들었다.
“축하한다?”
“몰라. 인마.”
“언제는 평생 혼자 산다면서. 무슨 생각이야.”
“…뭐가?”
“난 정말 네가 그럴 거라 생각 못 했는데.”
“그냥.”
뉴트는 언제나 말을 아꼈다. 세 번 정도 생각하고 간신히 한마디 대답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과는 다르게 주변 친구들이 뉴트를 가만두지 않았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호기심에 결국 손을 들었다. 이 녀석들을 당해낼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나 좋다는 놈한테 코 좀 꿰면 어때? 그렇게 생각 안 해?”
“뭐?”
“내가 좋다고 하잖아.”
“얘가 오래 학과 생활을 안 하더니 좀 미친 거 같아.”
“맞아. 내가 아는 뉴트가 아닌데?”
“아, 이 새끼들이!”
“축하한다고 하는 소리야.”
“표정들 봐라. 축하는 무슨.”
소파에 그대로 몸을 기댄 채 팔짱을 꼈다. 시선이 얽히면서 간질간질하게 뭔가 올라올 것 같았는데, 저 망나니 같은 녀석들이 들이닥치니 뭘 제대로 느낄 새도 없었다. 토마스는 이미 갤리한테 뒷덜미를 잡혀서 질질 끌려갔고, 민호는 알비랑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질문 세례는 보통 물어본 것을 또 물어보곤 했다. 첫 키스 이야기가 나오자 뉴트가 눈을 치켜떴다.
“이거 받아주면 계속 물어볼 거지?”
“응? 아냐.”
“거짓말은 참 잘해. 우리 친구들이.”
“아냐. 아냐. 토마스한테 물어보지 뭐!”
“야!!!”
잠시나마 저 녀석들을 생각해주던 마음을 후회했다. 호기심을 채울 생각밖에 없는 놈들이었다. 이제 좀 꺼지라고 엉덩이를 걷어차고 나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이건 월권행위야!”
“그래 오늘 월권이 뭔지 보여주마!”
“아악. 알비!!!”
친구라는 이름의 악마들을 학생회 실 밖으로 몰아냈다. 그리고 문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닫았다. 성문을 열어주길 바라는 부랑자들처럼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나자 밖에선 거센 항의가 들려왔다. 어차피 학생회 실은 밖에선 열고 들어올 수 없으니 곧 다들 흩어지리라 생각했다.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한구석에 서 있는 알비과 민호가 눈에 들어왔다. 뉴트의 눈썹이 눈에 띄게 움직였다.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는 표시와도 같았다.
“너흰 왜 안 나갔냐?”
“토마스 챙겨왔는데 싫어?”
“…….”
“하여튼 요란하게도 한다.”
“알비!”
보통 때는 진중하던 알비마저 한마디 농담을 거들었다. 옆에 있던 민호의 입가에 웃음이 슬쩍 스치는 것까지 본 뉴트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둘도 이 상황이 재밌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배신감에 가득 찬 눈으로 두 명의 친구를 쳐다보았다.
“네가 조금은 밝아진 거 같아서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권력을 휘둘러도 되는 건가?”
“넌 학생회실 안에 있으니 괜찮잖아. 총학생회장이신 알비의 명령이었다고 해두지 뭐.”
“뭐?”
“재밌는 구경 했으면, 적당한 값을 치러야지.”
가늘게 눈을 뜨면서 알비와 민호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귓가에 다글다글 붙어있는 호기심이 서로 뭉쳐서 뚝뚝 떨어졌다. 아마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또 같은 질문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석 달 열흘을 받아줘야겠지. 뉴트는 머리가 아팠다.
“토마스나 좀 챙겨라.”
“응?”
“내가 그래도 더 털리기 전에 끌어내 왔으니까. 서로 비슷하게 주고받았다 치자.”
“…….”
“아니었으면 갤리한테 끌려가서 또 술독에 빠지게 됐을걸.”
“…아 그건.”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어지간하게 마시는 거 알지?”
민호가 옆에 서 있는 사람의 등을 팡팡 쳤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질문에 잔뜩 시달린 토마스는 이미 반쯤 넋이 나가 있는 것 같았다. 그 꼴을 보니 또 딱하긴 했다. 어쩌다 이렇게 짓궂은 애들한테 걸려서 거 고생을 하나 싶었다. 물론 자기가 좋다고 시작한 거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했다.
“토마스?”
“…….”
“토마스?”
“…….”
“…토마스!!!”
“응? 응?”
“완전 넋이 나갔네. 괜찮아?”
“응? 어. 괜찮아.”
“벌써 이렇게 정신을 놓으면 어떻게 버틸래?”
“…….”
“내가 힘들 거라고 경고했지?”
“하지만…난…뉴트가…….”
여전히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눈동자로 뉴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갑자기 만들어진 간질간질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알비랑 민호가 손사래를 쳤다. 뉴트도 그렇지만, 토마스 저 녀석은 더 심했다. 어떻게 저런 생물이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대학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토마스란 놈은 남을 잘 믿고, 쉽게 좋아한다. 하지만 그 좋아함의 끝은 매우 깊어서 보통 사람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물론 남들과 확연하게 다른 곳에서 생활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곳에서 자란 모든 사람이 저렇게 무해한 애정을 뿜어내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애정이란 것을 처음 깨우진 아이와도 같았다. 그 애정이 한 사람을 향해 모두 집중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뉴트였다.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이라고 말할 때마다 뉴트는 부끄러워했지만, 토마스는 한없이 진지했다. 때로는 진지한 것이 독이 될 때도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좋을 때다. 누군가 둘을 향해 웃음 섞인 한마디를 툭 던졌다. 코끝이 닿을 듯 말듯 가까워진 둘 사이엔 바람만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의 틈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회 실에서 애정 행위는 금지인데.”
“…….”
“뉴트.”
“아…아냐! 이거. 그러니까.”
뉴트가 토마스를 휙 밀어냈다. 휘청하고 뒤로 밀린 토마스의 눈매가 또 한없이 아래를 향해 축 처졌다. 휘말려버린 것도 모른 채 계속 끌려갈 뻔했다. 가끔 아무리 정신을 잡으려 해도 토마스에게 휙 끌려갈 때가 있었다. 오늘은 바로 지금인 것 같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뉴트의 얼굴을 보면서 눈이 휘어지게 웃던 민호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알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둘이서 하던 거 계속하라고 자리 비켜줄게.”
“야, 민호!”
“천천히 다 끝내고 나와?”
“너 진짜!”
완전히 망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변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뉴트를 지켜보던 토마스가 주춤주춤 곁으로 다가왔다. 꼭 눈치 살피는 강아지처럼 빙글빙글 돌던 녀석이 가까이 왔을 때, 뉴트가 주먹으로 토마스의 무릎을 냅다 쳤다. 비명을 삼키며 주저앉은 토마스가 억울한 표정으로 뉴트를 바라봤다. 그 얼굴을 보니 머릿속에 가득 찬 잡생각이 사라지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토마스만 봐도 정신을 놓는 것 보니,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것이 확실했다.
“진짜 난 망했어.”
“안 망했어.”
“망했어. 이제 애들이 미친 듯 놀릴 텐데.”
“더 놀리지 않을 때까지 같이 있으면 되는 거지.”
“…….”
“…왜?”
눈앞에 뿌연 얼굴이 쑥 다가왔다. 뺨에 콕콕 박힌 점이 어른거리다 다시 푹 퍼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냐. 그냥 넌 좀 생각하는 게 특이하다 싶어서.”
“뉴트랑 같이 있어서 그래.”
“…….”
토마스가 웃었다. 뉴트는 끝까지 웃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웃음을 터뜨린 뉴트가 학생회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체중이 뒤로 실리자 뉴트의 허리가 살짝 뒤로 기울어졌다. 토마스의 팔이 땅을 짚었다. 밝은 머리카락과 어두운 머리카락이 서로 얽혀들었다. 조심스럽게 닿은 입술에서는 풋풋한 맛이 났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서로 맞춰 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첫 시작이 조금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생각하는 대로만 돌아가지 않았다.
✗ ✓ ✗
마치 물과 기름을 한 번에 부어버린 것처럼 서로 겉돌기만 했다. 얼굴을 맞대고 산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성격도 너무 달랐다. 이 정도만 달라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데, 직업마저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으니 솔직히 어떤 식으로 굴러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큰소리가 나거나 싸우는 일이 많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로 이해 못 하는 일이 조금씩 쌓일 때마다 마음속에 조그만 앙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침전물은 조금씩 단단하게 굳어갔다. 그리고 완전히 굳어지자 심장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보통 땐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숨을 쉴 때마다 덜컥거리며 존재를 알려왔고, 계속 신경 쓰이게 했다. 기분 나쁜 불협화음이었다.
“…….”
“뉴트?”
“으…응.”
“피곤해?”
“응? 응…….”
대충 대답하면서 침대 위로 쓰러진 뉴트를 바라보던 토마스가 한숨을 쉬면서 코트를 벗겨주었다. 이불까지 푹 덮어씌워 주고 나니 뭔가 쓸쓸 했다. 뉴트는 점점 바빠졌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물론 토마스도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연구소에서는 사 년 동안 자리를 비운 연구원이 돌아오자마자 온갖 업무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워낙 연구하는 것을 즐기던 터라 과한 업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 외의 것 때문에 항상 힘들어했다.
뉴트와 토마스가 겨우 얼굴만 마주치고 잠이 든 지 일주일쯤 되는 날이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갑자기 한꺼번에 일이 들이닥쳐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뉴트는 새벽에 자다 말고 갑자기 불려 나갔고, 토마스는 아침도 먹지 못한 채 연구실로 달려가야 했다.
“…….”
“토마스 왜 그래?”
“…카롤.”
“우리 막내가 왜 그럴까?”
“…….”
잔뜩 시무룩한 표정으로 커피 잔만 만지작거리는 폼이 영 안쓰러워 보였는지, 작은 과자를 눈앞으로 밀어주면서 말을 걸었다. 이 연구소의 어지간한 연구원들은 다 그랬겠지만, 카롤은 특히 더 세심한 사람이었다. 토마스가 아주 어린 나이에 연구소에 들어와서 엄마를 찾을 때부터 계속 돌봐준 사람이기도 했다. 언제나 편하게 어리광을 부리던 사람이 보이니 토마스는 눈에 띄게 긴장을 풀었다.
그리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탁자에 이마를 콩 박았다. 물론 연구소 내에서 토마스가 뉴트와 사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롤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어린아이 같던 녀석이 어느새 커서 연애도 하고 대학도 간다면서 동기들끼리 내심 섭섭해 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그런 안쓰럽고 귀여운 생각이 드는 찰나에 끙끙거리는 녀석을 보아하니 분명 연예문제인 것이 확실했다. 모른 척 옆자리 의자를 빼서 앉자 눈치를 보던 연구원들이 하나둘 토마스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연구소 내에서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토마스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모든 관심이 아이에게 쏠리기도 했다. 연구소 평균 연령보다 한참 어린 토마스를 놀리는 것은 나름 재미있는 일이었다. 즐길 거리 없는 곳에서 조금만 쿡쿡 찌르면 반응이 오는 녀석은 좋은 관심거리였다. 모른 척 가까이 모여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태기 시작하자 금세 시끄러워졌다. 그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않는 녀석을 억지로 일으켜 앉혔다.
“왜 그래? 요즘 잘 안 되는 거야?”
“…….”
“그런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에요.”
“맞는 거 같은데. 어서 말해봐.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낫지. 안 그래?”
주변 아저씨들이 그렇다고 한마디씩 보탰다. 저 칙칙한 아저씨들 사이에 끼어서 고민상담을 하다니. 뉴트가 봤으면 공돌이들끼리 무슨 뾰족한 수를 만들어 오겠냐고 한마디 했겠지만, 토마스는 지금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따끈따끈해진 채 입을 열었다. 물론 뉴트에 대한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토마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던 연구원들은 좀 모자란 막내 동생 보는 표정을 서로 교환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냥 서로 과도기인 거네.”
“네?”
“따로 살다가 한집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일 년도 안됐는데, 모든 일이 맞겠지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토마스?”
“당연히…….”
토마스가 흘러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를 입속으로 꿀꺽 삼켰다. 눈을 깜박이면서 할 말을 고르고 있었다. 은연중에 묻어난 뉴트의 버릇이었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손으로 연신 마른세수를 했다.
“당연히…괜찮을 줄 알았어요.”
“…….”
“서로 맞춰간다고 해도 이렇게 사소한 거에 질투가 나고, 나쁜 생각이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
“도대체…….”
“토마스.”
카롤이 부드럽게 말꼬리를 잘랐다. 중얼중얼 속에 쌓인 말을 하던 토마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 토마스의 눈엔 여전히 깊은 혼돈이 가득 담겨있었다. 부드러운 손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바짝 긴장한 채 굳어있던 눈꼬리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눈을 반쯤 감으면서 손길을 따라 끙끙거렸다.
“그냥 그건 평범한 일이야.”
“서로 안 맞는 것이 어째서 평범한 일인가요.”
“그건 토마스가 뉴트를 처음 만나서 그런 거겠지.”
“…….”
“연구소에서는 그런 일이 많이 없겠지만, 사람을 사귀고 깊게 서로를 알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큰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전…잘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하는 대로 하면 돼.”
“…….”
토마스는 가만가만 카롤이 말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연구소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했다. 뉴트만큼 자신의 세계에 깊게 들어온 사람이 없었다. 물론 어른들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딱 한 줌만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빛이 밝아진 기분이었다.
‘그런 거였나.’
“서로 섞여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뉴트한테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가서 한 번 안아주면 되지 않을까? 조금 더 확실하게 하자면 맛있는 거라도 사가던가.”
“…….”
“안 그래요? 다들?”
“맞아.”
“자…잠깐만. 언제부터…….”
“한참 됐다. 이 녀석아. 요즘 왜 이렇게 우울하나 했더니 다른 일이 아니고 연애 중에 봄 타는 거였구나. 우리 막내가 벌써 커서 이렇게 사랑에 대해 깊은 고뇌도 하고.”
남자 직원들이 낄낄거리며 토마스를 놀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몇몇은 과장된 몸짓으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그런 사람들을 황망하게 바라보던 토마스는 하얗게 질려갔다. 분명 조용히 상담을 하려 했는데, 왜 이렇게 동네잔치가 된 것이지 알 수 없었다. 제정신을 잡지 못하고 버둥거리다 결국 의자에서 균형을 잃고 와장창 넘어졌다. 와장창 소리가 났다. 긴 다리가 의자 위로 불쑥 솟았다.
“토마스 괜찮은 거냐? 넌 항상 당황하면 정신이 없어지더라. 언제쯤 그 버릇 버릴래?”
“…….”
“어서 집에나 가봐.”
“…….”
“어서.”
멍청한 표정으로 아직 바닥에 넘어져 있는 막내를 일으켜 세운 연구원들이 먼지를 털어주고, 몸에 걸치고 있는 연구원 가운을 벗겼다. 그리고 질질 끌고 걸어갔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내일 천천히 나와. 알았지? 뉴트한테 안부 전해주고. 토마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몸은 센터 밖에 나와 있었다. 어쩐지 깔깔거리며 뒤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토마스의 귀가 또다시 붉어졌다.
“…….”
토마스는 아직 이런 마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게다가 확실하게 설명을 할 수 없으니 상담을 받는 것도 힘들었다. 그나마 연구소에서 오래 보던 어른들은 눈치껏 토마스를 도와주려 했다.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가 한계였다. 겉만 커다랗게 커버린 아이는 항상 설명하지 못하는 애정을 찾아 헤매기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막상 손만 내밀면 두 손 가득 잡히는 실체가 있음에도 끊임없이 불안해했다.
‘…뉴트.’
이름을 부르면 항상 심장이 뻐근하게 아팠다. 기분이 한없이 나른하게 퍼지기도 했고, 바짝 긴장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두근거리는 기분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참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쉬면 가슴 속에 단단하게 굳은 것이 숨결을 따라 굴러다녔다. 쿡. 쿡. 단단하게 굳은 모서리가 심장을 찌르는 기분에 토마스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확실한 것은 없지만,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한 손에 작은 케이크 상자를 든 토마스가 하염없이 긴 그림자를 남기면서 걸어갔다. 주인을 쫓아가는 그림자가 더 따라잡지 못하고 길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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