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뉴트/민늍] 신부이야기 012 [선공개 분량 完]
+) NOTICE
신부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앙아시아+무언가 동양 판타지 aU입니다
민호는 도적단 두목 / 뉴트는 팔려가던 중
기본적인 의상에 대한 묘사는 촐님(@go00chol)의 그림을 보고 연성했습니다
촐님(@go00chol), 로케님(@goroke11)과 같이 풀던 썰을 기반으로 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궁금함이나 문의는 댓글 방명록 트위터 등 편한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_<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연재분이 끝났습니다!
이 이후 작업물은 민늍온에 신간으로 나옵니다 봐주셔서 감사해요!
예약폼은 빠른 시간내에 준비하겠습니다!
민호의 상처는 다행히 덧나지 않고 잘 아무는 것 같았다. 워낙 회복이 좋아서 그런 건지, 천만다행으로 감염이 되지 않은 건지. 뉴트는 매일매일 붕대를 감아주면서 내내 잔소리를 한마디씩 얹었다. 미간을 푹 찌푸린 채 붕대를 바라보던 민호는 뭐라 하려다가 입만 꾹 다물었다. 아무리 뭐라고 변명을 하고 싶어도 다친 사람은 이쪽이었다. 아직도 붕대를 매고 다니는 처지에 한마디 해봤자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신기하게 덧나지도 않고 잘 낫고 있네.”
“이 정도야.”
“흉터는 좀 남을 것 같은데.”
“그게 뭐 어때서.”
“…….”
“어차피 이렇게 살다 보면 상처 하나 없는 놈 없을 텐데.”
“…….”
“왜 그래?”
뉴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민호는 아차 싶었다. 또 별생각 없이 말실수라도 했나 싶었다. 다시 물어보려 하기도 전 붕대를 꽉 동여매 버린 뉴트가 벌떡 일어섰다. 아 왜. 민호는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뉴트의 옷자락을 잡았다. 우뚝 멈춰선 뉴트가 가볍게 눈을 흘겼다.
“왜 그러는데?”
“이제 좀 살아난 것 같아서 별로 걱정이 안 되네.”
“…그게 전부야?”
“그래.”
슬쩍 웃음이 번지는 걸 보니 분명 속에 숨기고 있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절대 말해줄 사람이 아니었다. 민호가 머리를 벅벅 긁는 동안 뉴트는 재빨리 천막을 빠져나왔다.
‘잘 됐을려나.’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하고 직접 벗겨서 정리한 가죽이었다. 물론 뉴트도 그렇게 가죽을 잘 만지는 편은 아니지만 남한테 시키긴 싫었다. 약간 실수가 있긴 했지만, 열심히 가죽을 벗겼다. 물론 남은 여우 고기는 어떻게 해보기라도 하라며 음식 담당하는 프라이에게 넘겼다. 다들 신기한 고기라며 어떻게 한입씩 맛은 본 모양이었다. 딱히 이렇다 한 감상이 없는 걸 봐선 영 맛이 없나 싶기도 했다.
‘… 바느질 안 하려 했는데.’
바짝 말려둔 가죽을 들던 뉴트는 내내 눈을 찌푸렸다. 일단 재료는 준비됐는데, 바느질 솜씨가 조금 부족했다. 하긴 아무리 예쁘게 만들어줘도 저렇게 쏘다니고 다쳐오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튼튼하게. 이걸 목표로 시작했는데, 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가서 해야겠다.”
너덜너덜해진 수상한 물체를 바라보던 뉴트는 괜한 화풀이를 한다. 민호가 빼앗아온 물건을 정리하고 이것저것 분류하러 다니던 동안 뉴트는 양을 몰고 나갈 준비를 했다. 늘 싣고 다니던 짐 속에 슬쩍 가죽과 바느질 도구를 집어넣었다. 늘 하던 일인 척 자연스럽게 민호 곁은 스쳐 지나갔다. 민호는 또 저렇게 훌쩍 나가서 안 들어올까 내내 걱정을 늘어놓았다. 같이 산지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 왜 저렇게 불안해하는지. 다들 민호가 점점 더 이상해진다며 고개를 저었다. 뭐 이런 것도 사랑이겠거니. 아니면 조금 늦게 온 사춘기려니. 다들 대충 이런 식으로 넘어갔다.
가끔 이런 곳에선 생각보다 훨씬 넓은 포용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몇몇은 빼고. 처음 뉴트가 이곳에 굴러들어왔을 때부터 눈꼴셔서 가만두질 못하던 녀석들은 계속 겉돌았다. 겉으로는 민호한테 네네 존댓말을 하며 따랐지만,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생각보다 거친 녀석들이 많았다. 물론 절대적인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에게 반기를 들면 끝이 어떻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전 대장이 죽고 민호가 자리를 차지했을 때부터 잡음이 없진 않았다. 그저 이길 수 없으니 숙이고 들어가는 거다. 그런 상황에 툭 끼어들은 뉴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리가 너무 애매했다.
하지만 열심히 할 일을 찾아 하면서 제 밥값을 하는 녀석을 무작정 밀어낼 순 없었다. 그걸 알고 있는 뉴트는 더 바쁘게 움직였다. 시키면 도적질 못 하랴 싶었지만, 적어도 민호는 시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특혜 필요 없는데. 뉴트는 여전히 바빴고 머리가 복잡했다.
천막을 나서려는데 프라이가 말을 걸었다. 민호가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어지간히 바쁜 모양이었다. 다친 녀석이 저렇게 돌아다니는 걸 보니 좀 안타깝긴 한데, 그러려니 했다. 정말 죽을 만큼 아프면 다른 녀석들이 먼저 그만하라고 하겠지. 다들 고집이 대단하니 어차피 좀 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을 녀석이었다.
“민호는?”
“아침부터 물건 정리하려고 나갔지. 그래도 정리를 해놔야 다음에 또 팔 수 있으니까.”
“아파서 못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했는데. 영 듣질 않더라고.”
“언제나 그렇지.”
뉴트가 웃으며 짐 꾸러미를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던 프라이는 두 손을 허리에 얹었다.
“오늘은 양 몰고 나가려고?”
“그래야지. 며칠 쉬었으니까.”
“일찍 일찍 들어와. 시간 맞춰서,”
“알았어.”
“민호는 안 보고 가고?”
“그러다간 오늘 저녁 먹기 전에 못 들어오니까. 민호한테는 걱정하지 말라고 해. 제시간에 돌아온다고.”
“알았다.”
민호가 돌아오면 나갈 시간에 못 맞춰 나간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던 뉴트가 훌쩍 말 위에 올라탔다. 왜 저렇게 서두르는지. 유난히 허둥거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프라이를 혀를 쯧쯧 찼다. 뭐든 이 삭막한 곳에서 뭔가 생기가 도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간질거렸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둘이 잘해보라 열심히 옆구리를 찔러주고 있었지만. 둘의 생각은 여전히 애매한 부분이 어긋나 있는 것이 확실했다.
아무리 머리가 복잡하다 해도, 일단 밖으로 나오면 맑아졌다. 입으로 양을 몰면서 바짝 붙었다. 순한 짐승들은 뉴트가 이끄는 대로 얌전히 움직였다. 배가 찰 때까지 풀을 뜯으라고 들판에 양을 풀어둔 뉴트는 말 등에 얹어뒀던 짐 꾸러미를 들고 왔다. 꽁꽁 싸둔 천을 풀자 반쯤 바느질을 하다 만 여우 가죽이 툭 굴러 나왔다.
나무에 기댄 채 가죽을 천천히 바라보던 뉴트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이마를 찌푸렸다. 분명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 있는데 어쩐지 손을 댈수록 점점 그 모습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하.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바느질한 가죽. 혹은 망가져 가는 여우 가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조잡만 모양에 뉴트는 끙끙 앓았다.
“이런 걸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생각처럼 잘 안 되는지 다시 바늘을 다잡은 뉴트는 가죽을 잡고 연신 끙끙거렸다. 돌아가기 전까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자세를 조금 더 편하게 고쳐 잡았다. 슬슬 집중하기 시작하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양이 배를 채우려면 아직 시간이 꽤 남아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뉴트의 머리가 푸스스 갈래갈래 흩어졌다.
***
“이게 뭐야?”
“…….”
“선물?”
“그래.”
“그러니까 뭘…만든.”
아악. 누군가 민호의 발을 대차게 밟았다. 눈치도 없어. 또 와글와글 모여서 입을 보태는가 싶더니 둘을 마구 밀어 천막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 왜. 왜! 항변 섞인 목소리는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에 묻혀버렸다. 이럴 땐 그냥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편이 나았다. 자꾸 밖으로 나오려는 민호를 꾹꾹 눌러서 집어넣은 녀석들은 주변을 지킨다며 한참 와글와글 모여서 떠들다 하나둘 흩어졌다.
“받아.”
“…그러니까 이게.”
“모양은 좀 이상하지만 여우 털이야. 따뜻할 거라고.”
“…….”
뉴트는 얼굴을 돌린 채 손을 쑥 내밀었다. 민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손과 뉴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뭔가 싶었는데 선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뉴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가 싶더니 불쑥 눈앞으로 다가왔다.
“추워 보이니까 두르고 다니라고.”
“…….”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누가 책임져 준대?”
“…그게.”
“여우를 잡은 김에 만든 거야. 나야 멀리 안 나가고 불이 항상 피워진 이곳에 있지만, 넌 아니잖아.”
“일부러 만들었어?”
“그래. 모양은 좀 이상하긴 해도.”
뉴트가 새빨개진 얼굴을 꾹꾹 누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말이 멋대로 나오려고 하는지. 한참 서로 눈만 마주치던 둘은 손은 붙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
“뉴트?”
“둘러봐.”
뉴트가 민호의 목에 목도리를 훅 둘렀다. 보송보송한 여우 털이 목에 푹 감겼다. 민호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가 싶더니 한 손으로 목소리를 만지작거렸다. 겨울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변변한 천하나 감고 다니지 않아서 그랬어. 어물어물 저 멀리 뉴트의 목소리가 넘어갔다. 민호는 아무 말 없이 계속 털만 쓰다듬었다.
“뭘 이런 것까지 만들었어.”
“겨울이 온 지도 모르고 돌아다니는 누구 덕분이지.”
“…근데 이거 목도리 만든 거 맞지?”
“그래. 내가 좀 바느질을 못 한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러니까.”
“도적은 멋진 거 안 두르고 다닌다며. 그럼 그냥 방한용이나 생각하고 써.”
“…….”
“그러다 다 떨어지면 그냥 버리면 되니까.”
쌀쌀맞게 말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입에서 퉁명스러운 단어가 툭툭 튀어나왔다. 물론 예쁘고 곱게 만들어주면 누구나 좋아하겠지만, 손이 따라주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구구절절 변명하는 것은 민망하니 돌려 말하곤 했다.
“잘 쓸게.”
“됐어.”
“따뜻하다.”
“그런 말 안 해도 된다니까.”
한 마디 한 마디가 이렇게 어려운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서로 소맷자락과 목도리를 꾹 잡고 놓지 않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가늘게 웃었다. 어쩐지 선물 받은 걸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영 민망한 표정으로 망설이던 민호는 며칠 지나지 않아, 마치 십 년 쯤 목도리를 사용한 사람처럼 목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은근슬쩍 민호 옆에 자리를 잡고 있던 벤은 못 보던 물건이라며 괜히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럴 때마다 참 재밌는 반응이 터졌다. 뉴트는 시선은 반대로 돌리며 음식을 집었고 민호는 고개를 숙인 채 들 줄 몰랐다.
“어디서 났어?”
“몰라도 된다.”
“흐음.”
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민호가 저렇게 말을 아끼는 것을 보니 척하면 알 수 있었다. 물론 민호를 계속 놀려봤자 좋은 일이 없으니 어느 정도 자제하긴 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을 참기 어려웠다.
“좋은 일이 있나 보지.”
“벤!”
“아, 이런 농담이나 하려고 이 자리를 잡은 게 아닌데.”
벤이 잠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민호.”
“왜 그러지?”
“달이 차오르고 있어.”
“…아.”
“약속한 날이 오고 있는 게 슬슬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긴 하지.”
“근데 네 팔이 문제네. 괜찮겠어?”
“이 정도 쫌이야. 그렇게 큰일은 아니야. 상처가 덧나는 것도 아니고. 좀 힘든 거라면 아직 힘을 제대로 줄 수 없다는 정도인데.”
“그게 매우 큰 문제인 것 같다고 생각해.”
“하지만 날짜를 어길 순 없지.”
“그것도 맞는 말이야.”
또 뉴트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둘의 표정이 진지해지는 걸 보아하니 꽤 중요한 일인 듯싶었다. 뜯던 빵을 다시 내려놓은 뉴트는 조용히 귀를 기울인 채 민호가 대답하길 기다렸다.
“내일 새벽에 떠나야겠네.”
“그래도 좀 걱정이 된다. 너도. 이곳도.”
“…그런 이야기는 이런 곳에서 하지 마.”
“그래. 이따 거기서 만나지.”
대화가 뚝 끊겼다. 민호가 저렇게 말한다면 이젠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뉴트는 주변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늘 답답했다. 무슨 일일까. 난 알면 안 되는 걸까. 충분히 물어볼 수 있지만, 그러면 괜한 분란을 일으킨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괜히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밤이 깊도록 민호는 천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벤과 같이 쓰는 천막 쪽에 있으려나 뉴트는 벗어놓은 옷을 하나둘 갰다, 다시 폈다.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주고받는 건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차라리 대놓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마음이라도 후련해질 텐데, 뉴트는 꾹꾹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천막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뉴트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왜 안 자고 있어.”
“그런 넌 내일 일찍 나간다면서.”
“…그렇게 됐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뭘?”
“도대체 넌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물론 대장이라는 자리가 이것저것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계속 그렇게 몇몇이어서 대화하면 불만이 없을 리가.”
“…알고 있어.”
“그럼 왜.”
“알아봐야 피만 부를 뿐이야. 그리고 다들 나처럼 입을 다물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으니까. 차라리 궁금한 채로 모르는 편이 낫지.”
“나는?”
“뭐가?”
“적어도 내일 왜 무슨 이유로 나가는지 알아야겠어.”
“애들이 우리 둘보고 이런저런 장난을 치다 보니까 너도 동조하기로 한 거야? 왜 갑자기.”
“그런 거 아냐. 단지.”
“…단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쪽이 싫어서 그래.”
말을 끊는 뉴트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런 표정을 바라보던 민호가 화들짝 놀랐다.
“그냥 대답만 해주고 가.”
“…….”
“언제 얼마나 지나면 돌아오겠다고.”
“그야.”
민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다들 민호가 뭘 하러 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깊은 이야기는 함부로 나누지 않았다.
“나중에.”
“…나중에?”
“그래. 이곳에 관한 일은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않는다.”
“알았어.”
“응?”
“알았다고.”
뉴트는 생각보다 쉽게 물러섰다.
민호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되묻진 않았다. 미묘하게 쌓인 신뢰가 점점 단단히 굳어가고 있었다. 뉴트가 입고 있던 옷을 한 겹 더 벗었다. 자자. 많은 말은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누운 채 말이 없었다. 한참 잠들지 못한 둘은 괜히 뒤척거리며 이불만 끌어당겼다. 조금만 가까이 붙으면 편할 텐데 조금만 움직이면 이불 밖으로 굴러갈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 순간 민호가 돌아누웠다. 자는 척 눈을 꼭 감고 있던 뉴트의 몸이 슥 끌려갔다.
“민호. 팔.”
“괜찮아.”
“…….”
“…그리고 추워.”
“…….”
“괜찮으면 가까이 와서 자.”
“…….”
뉴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민호는 좀 더 뉴트의 몸을 끌어당겼다. 품안 가득 들어온 마른 몸이 가늘게 떨렸다. 민호는 모르는 척 뉴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마른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돌아눕진 않았지만 뉴트는 그런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어깨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쓴 둘은 조용조용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가 서로에게 들릴까 싶어.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별빛이 천막 위에 사분사분 쌓이는 동안 둘은 그렇게 가만히 안고 안긴 채 누워있었다.
***
새벽안개가 채 가시기도 전에 민호가 조용히 눈을 떴다. 아직도 얌전히 품에 안겨있는 뉴트를 바라보던 민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좀 더 당겨 안은 채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따뜻한 체온이 팔에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거친 붕대를 감은 팔에 뉴트가 깰까 싶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옆으로 웅크린 채 자는 뉴트 위로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나서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아직 해가 안 떴네.”
민호는 사방을 둘러봤다. 불침번을 하던 녀석들도 슬슬 눈을 붙이러 갔는지 사방이 조용했다. 누군가 깰까 봐 발소리를 낮춰 걸었다. 부엌 앞에 걸려있는 주머니를 들어 올리니 뭔가 묵직하게 잔뜩 담겨 있었다. 많이도 넣었네. 보나 마나 프라이의 작품이었다. 먹는 건 잘 먹어야 한다는 신조를 지닌 녀석은 항상 이렇게 도시락을 싸뒀다. 그래 봐야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과 육표, 물이 전부였지만 프라이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도시락과 처분한 금붙이를 말 등에 실었다.
“이제 갈까.”
아무도 듣지 않는 혼잣말만 중얼거렸다. 규칙적으로 이렇게 떠나곤 했지만, 가끔 이렇게 가슴이 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디 가는 거야.”
“…어?”
“나한텐 말을 하고 떠나야지.”
“…….”
안 그래도 품에 안겨 반쯤 선잠을 자던 뉴트는 천막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꿈인가 싶어 눈을 연신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큰맘 먹고 뒤로 돌아누웠는데, 자리가 비어있었다. 아까 그 소리가 맞았구나. 벌써 싸늘하게 식어있는 잠자리를 바라보던 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걷고 나왔을 때 저 멀리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
새벽부터 말 등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있는 민호 뒤로 긴 그림자가 늘어졌다. 그리곤 한참 동안 바쁘게 움직이는 뒷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제 딴엔 새벽부터 어딘가 나가려는 민호를 눈치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뉴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이런 민호에 익숙했다. 다들 이렇게 나서서 말려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 고집에 어차피 안 들을 것을 뻔히 안다. 그래서 몇 번 만류하다 다들 포기해버렸다. 몇 년 동안 주기적으로 자리를 비우면 자연스럽게 오래된 녀석들이 빈 곳을 채우곤 했다.
사실 민호가 어디 가서 얻어맞거나 심하게 다쳐서 돌아온 위인도 아니었고, 마구 싸움을 걸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비록 지금 상처를 입은 상태지만, 그걸 드러낼 사람도 아니었다. 조용히 다녀오겠다. 우리 무리에겐 별일 없을 거다. 이런 말만 하면서 꼭 다녀와야 한다고 할 뿐 시원하게 한마디 알려주지 않는 두목을 보던 녀석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두목이야 언제나 그랬다.
“싸우러 가는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말이야.”
“이렇게 조용히 떠나는 이유가 대체 뭔지 알아야겠어.”
“…….”
하지만 뉴트는 좀 달랐다.
이곳에 와서 도적 무리랑 사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시시콜콜한 사연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아직 사이가 서먹하긴 해도, 그렇게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같이 한이불 덮고 자던 민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자 왈칵 호기심이 흘러나왔다. 물론 민호가 보호자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저 녀석 며칠 없다고 신상에 큰일이 나진 않을 것 같았지만, 또 모르는 일이니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민호.”
“…응?”
말 등에 담요 하나를 단단하게 묶은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니 낯설었다. 보통 무리의 대장이라는 사람이 새벽같이 움직인다면 큰일이 있는 것이 아닐까. 뉴트는 대충 풍문으로 들은 생활상을 다시 곱씹었다. 게다가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옷 위에 천 하나만 걸치고 허겁지겁 뛰어나왔는데 꼴이 참 우습게 되었다. 뭐 이런 꼴 안 보고 뒤돌아 서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쌀쌀한 바람이 불자 뉴트는 조금 추운지 어깨에 걸치고 있던 천을 좀 더 당겨서 온몸을 푹 감쌌다.
“어디 가는 거냐고 물었잖아.”
“할 일이 좀 있어.”
“할 일?”
“…응.”
“그러면 언제 올 건데?”
“…삼일쯤? 아냐. 나흘? 일주일…….”
“…….”
점점 기간이 길어졌다. 민호는 마른 입맛만 다시다 결국 휙 돌아서 뉴트를 바라보았다. 찬바람이 둘 사이를 가르며 지나갔다.
“달이 차기 전엔 돌아올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해도 아직 안 뜬 이런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떠나는 거야.”
“항상 하던 일.”
“…일?”
“아니…그러니까.”
민호는 잠시 말이 헛나온 듯 괜히 기침만 했다. 뉴트의 눈이 또 샐쭉하게 길어졌다. 안 그래도 까만 눈을 찌푸리니 길게 속눈썹 그림자가 졌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민호의 표정은 알기 쉬웠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호는 계속 다른 방향을 보며 눈만 연신 감았다가 떴다.
“그러니까?”
“…친구를 만나러 가.”
“친구?”
이건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이런 황량한 곳에 터를 잡은 도적 떼 두목한테 친구가 있다는 소리도 믿기 어려웠지만, 하필 친구를 이런 새벽부터 나가서 만난다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차라리 경비대랑 뒷거래한다고 하는 쪽을 믿겠어. 뉴트는 이제 대놓고 팔짱을 낀 채 민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 친구.”
“아니 멀쩡하게 친구도 계신 양반이 여기서 왜 이렇게 살면서 도적질을 하고 계시나 몰라.”
“세상사가 다 뜻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
“…….”
“네가 생각하는 그런 친구 아니야. 나도 그 녀석한테 빚진 게 있고, 그 녀석도 나한테 도움받은 일이 있어서 가끔 찾아가는 거니까.”
“…….”
뉴트의 고개가 한쪽으로 살짝 꺾였다. 그렇게 중요한 친구라. 예상외의 대답이었고, 새로운 모습이었다. 어쩜 그런 일이 있으면서 이렇게 내색도 안 하고 사는지. 참 알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물론 따지고 보면 뉴트는 아직 외부인이고, 굴러들어온 돌이었다. 그래도 정 붙이며 잘 지내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무리 사이에 끼기 힘들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렇게 선을 긋는 민호를 보면 더 그랬다.
“내가 알아선 안 되는 거야?”
“…응?”
“내가 알면 안 되는 이야기냐고.”
“아니…그러니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나도 이제 여기서 같이 사는 사람인데 너무 속이지만 말아줘.”
“그게…….”
뉴트가 이렇게 채근하는 건 처음 봤다. 민호는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뉴트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마저 했다.
“친구가 보석 처분은 도와줘서…….”
“…….”
“그거 하러 가는 거야. 일찍 나가는 이유는 굳이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싫어서고.”
“멀리 가는 거야?”
“조금.”
“알았어. 잘 다녀오고 무사히 돌아오도록 해.”
“…….”
뉴트가 먼저 말을 끊자 민호는 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말주변이 없고, 한마디 하는 것도 진중한 사람이라 답답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인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그럼 계속 천막을 써도 되는 거야?”
“물론…물론이지.”
“내가 바쁜 사람을 너무 잡았나. 다녀와. 난 들어갈게.”
반쯤 녹슨 달을 가리는 것 하나 없는 공간엔 부슬부슬 달빛이 내렸다. 뉴트는 바삭바삭 소리가 날 정도로 곱게 부서지는 달빛을 온몸에 맞으며 서 있었다. 화려한 천 사이로 보이는 옷자락이, 그 옷을 잡고 있는 손에서 이어진 얇은 손목까지 하얗게 빛났다. 뭐랄까. 어둠을 먹고 자라는 꽃 같다고 할까. 아니면 밤에만 피는 달맞이꽃 같다고 해야 할까. 짧은 식견으로 표현할 수 없는 모습에 민호는 순간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뉴트를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웠다.
“…왜 안가?”
“아…냐. 가야지. 다녀온다.”
“상처 터지지 않게 조심해.”
“거의 다 나았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더 크게 다치더라.”
“…….”
검은 말 위로 훌쩍 올라탄 민호는 괜히 또 헛기침했다. 가자. 옆구리를 걷어차며 말을 재촉했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곤 한 번 더 돌아볼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넓은 어깨 바로 위를 넘겨보던 뉴트는 아주 조금 기대를 했다. 민호가 돌아보지 않을까. 한마디라도 더 해주고 떠나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실망한 뉴트 뒤로 긴 그림자가 늘어졌다. 물론 민호가 돌아보지 못한 것은 갑자기 달아오른 얼굴 때문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뉴트만 보면 심장이 뛰고, 술을 마신 것처럼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조금만 가까이 가면 이런 모습을 들킬까 싶어 다가가지 못했다. 애써 바쁜 척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삐를 다부지게 잡은 민호의 손등엔 바짝 힘줄이 서 있었다. 순식간에 근거지를 빠져나간 민호는 금방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야속한 녀석.”
들어주는 이 없는 밤하늘에 서늘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같이 잠 좀 자고, 밥을 먹는다고 이런 짧은 시간에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게도, 작은 욕심을 냈다. 그리고 그 욕심이 점점 자랄수록 기분은 널을 뛰었다. 어제 품에 안겨 잠을 자면서 거부하지 않은 것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오면 뭔가 바뀌어 있을까.”
뉴트의 눈매가 곱게 접혔다.
내일 아침도 할 일을 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려면 조금이라도 더 자야 했다. 민호가 떠난 것은 떠난 것이고, 뉴트가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다녀오면 알겠지.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품은 인영이 아무도 없는 천막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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