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민호/토민호] Here I am 003
+) NOTICE
영화 1편을 기반으로 원작 네타(메이즈러너 파일분량)를 맛내기로 섞었습니다.
토민호인데 토마스랑 민호 한참동안 안만남 주의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Since, 226
토마스가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한지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났다. 뭔가 궁금한 것이 많은 것 같았지만, 흔한 태블릿 PC조차 만질 수 없었다. 게다가 실험실에 갔었던 기억이 싹둑 잘려나간 상태라 트리샤가 아무리 토마스가 원하는 것을 설명해줘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거기서 민호를…보고 있었어?”
“그렇다니까. 사실 나도 본건 아니지만. 그때 토마스 쓰러지고 나서 난리 났던 거 진짜 기억 못 해?”
“…응.”
“그럴 수도 있지. 지금은 머리가 아픈 건 아니고?”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슬슬 병실 생활이 지겨워질 무렵이라 몰래몰래 책이라도 부탁해보려 했지만, 번번이 어른들의 눈에 들켜서 실패하곤 했다. 진료 시간마다 들어오는 어른들을 붙잡고 이제 아프지 않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조금만 무리하면 쪼개질 것 같던 머리는 이제 더는 아프지 않았다. 머릿속에 차있던 답답한 것이 한순간 씻겨나간 것 같았다. 조금 진정 된 상태로 찬찬히 기억나지 않는 감정을 더듬어 보았다.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민호가 보고 싶었다.
“토마스.”
“응? 아. 잠깐 딴 생각했어.”
“아직도 많이 아픈 거 같아서 걱정이야. 또 수술받아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럴 리가.”
“그리고 내가 봤는데…….”
아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리곤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토마스의 귓가에 무엇인가 소근거렸다.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던 아이가 슬쩍 웃으며 눈을 곱게 접었다.
“…그 날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돌아갔대. 나도 그 이후론 못 들었는데, 이제 그런 실험은 그만할 거 같아.”
“실험을…그만해?”
“응.”
“…다 끝난 건가. 희망을 찾은 걸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트리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어려운 대화의 끝은 침묵이었다. 내일부터는 진료가 끝나면 밖으로 나와도 괜찮다고 했어. 잘 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저기…트리샤!”
“응?”
“고마워.”
“나도 네가 아프지 않은 거 같아서 고마워.”
방문을 열던 아이가 생글생글 웃었다. 트리샤가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가자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얌전히 침대에 누운 토마스가 손끝으로 문지르면서 눈을 깜박였다.
‘민호를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입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덮어쓴 이불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침대 생활은 너무 길었고 힘들었다. 게다가 토마스가 움직이는 모든 곳에 한층 더 감시가 심해질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조금 초조해졌다. 직접 얼굴을 보고 확인해야 마음이 놓을 것 같았지만, 어른들의 눈을 피해 그곳까지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 ✓ ✗
토마스가 어느 정도 움직이는 것이 허락되자 연구실은 천천히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곧 총장의 권한으로 위키드 연구원 전체를 불러 모은 회의가 열렸다. 물론 엘리트 그룹으로 분류된 아이들도 모두 참여해야 했다. 오래간만에 회의실에 모습을 보인 토마스에게 순간 이목이 쏠렸다. 이젠 괜찮다고 말했지만, 다들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토마스가 실험에 참가한 이래로 이렇게 심한 발작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아이를 붙잡고 아무리 정밀 검사를 해도 확실한 이유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토마스는 어쩐지 자신이 쓰러진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총장님이 들어오십니다.”
위키드를 이끌고 있는 총장과 에바 페이지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넓고 회의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가장 앞쪽에 앉아있는 토마스와 트리샤를 잠시 쳐다보던 총장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시선을 받아내던 토마스는 그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가끔 눈을 깜박이긴 했지만, 무서워하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어른들의 세계는 언제나 너무 어려웠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쳐다보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눈치껏 알아들었다고 생각하면 순간 또 저만큼 멀어져 있었다.
“오늘부터 토마스와 트리샤도 함께 연구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네?”
“아직 저번 발작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찾지 못했는데,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아뇨. 지금쯤이면 충분합니다.”
“…….”
“그렇지 토마스?”
“그렇겠죠?”
사실 토마스는 언제든 상관없었다. 차라리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는 편이 더 나았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침대에 누워있으면 답답했다. 게다가 얻을 수 있는 정보에도 한계가 있었다. 왕진을 오는 의사나 연구원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피하기 일쑤였다. 이제 아프지 않다고 하는 말도 들어주지 않으니 빨리 괜찮다는 확답을 받은 후 직접 연구에 참여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토마스가 누군가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좋아. 그럼 오늘 새로운 실험 계획을 발표하도록 하겠어요. 극비로 진행되던 계획입니다.”
“네?”
“지금까지는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그룹을 나눈 것에 불과합니다. 이 이후로 시작되는 실험은 굉장히 길고 어려울 것입니다.”
“…….”
“모두 위키드의 설립 목적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플레어에 면역이 있는 개체들을 골라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남은 개체 중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물론 섞여 있죠. 우리는 이 두 가지 타입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에바 페이지가 잠시 숨을 고르면서 화면에 한가지 계획서를 크게 띄웠다. 조잡하게 그려진 그림부터 제법 그럴듯한 설계도까지 다양한 형태의 계획서가 나타났다. 중앙에 설치된 태블릿 화면을 보고 있던 연구원들은 하나둘 개인용 패널로 계획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
“토마스 왜 그래?”
트리샤가 옆에서 속삭였다. 개인용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호박색 눈이 떨리고 있었다. 트리샤는 무서운 것이라도 보았나 싶어서 토마스의 화면을 슬쩍 넘겨다보았지만, 그다지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저번처럼 또 아픈가 싶어 덜컥 걱정이 들었다.
“또 아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러면 왜 그러는 건데?”
“…….”
토마스 말이 없었다.
대답도 해주지 않고 꾹 다문 입술을 한참 쳐다보던 트리샤가 살짝 한숨을 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괴었다. 반쯤 흥미가 떨어진 눈으로 이리저리 계획서를 넘겨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빼곡하게 적혀있는 글은 조금 어렵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못 알아들은 정도의 내용도 아니었다. 낯선 공간에 대한 설명이 있는 걸 보아하니 연구소 내에서 하는 실험은 아닌 것 같았다. 연구진은 물론이고 엘리트 그룹도 처음 보는 계획이었다. 지나가는 말로도 들어보지 못했다.
“다들 계획서 읽어보셨나요? 그럼 킬 존 테스트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말하기로 하죠.”
“킬 존 테스트?”
“아마 여기 모인 대다수의 연구원은 처음 듣는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계획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었죠. 이 테스트는 약 이년 전부터 시작되어서 오늘 거의 마무리 되었습니다.”
“질문있습니다. 왜 지금까지 알리지 않으셨던 겁니까. 지금까지 하던 실험과 관계있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면역체계를 가진 무리 중에 가장 뛰어난 아이들을 솎아낼 것입니다. 그들의 뇌가 플레어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의 비밀을 알려주겠죠.”
“…….”
“단지 이 테스트는 매우 길고 힘들어서 몇 명이나 통과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대비하고 있죠. 낙오될 것이 뻔한 아이들을 최대한 참가시키진 않을 생각입니다. 물론 면역 군과 비 면역 군도 섞여서 투입됩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엄청난 생각을 했습니까? 이런 괴물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질문을 계속하던 연구원이 한 장의 도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수상한 살덩이가 덕지덕지 뭉친 것 같은 몸체에 기계로 만든 다리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꼬리는 단단하게 맞물린 금속으로 견고하게 짜여 있었다. 사람 하나 정도는 쉽게 잡아 올릴 수 있는 갈고리와 위협적일 정도로 두꺼운 침까지 세상에서 본 적 없는 형태였다. 시뮬레이션으로 구현된 결과물이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더미 데이터를 날쌔게 낚아채는 영상까지 보던 사람이 다시 한 번 대답을 독촉했다. 에바 페이지는 너그러운 웃음을 띠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다.
“토마스.”
“네?”
“토마스가 처음 계획했고, 그 계획서를 받은 후 좀 더 말끔하게 다듬어서 만들었습니다.”
“…….”
뜻하지 않은 이름을 들은 연구원들이 술렁이며 동요했다. 토마스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장 앞에 앉은 아이는 오늘따라 유난히 더 작아 보였다. 주변 연구원들이 한마디씩 던지면서 물어봤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에바 페이지가 자연스럽게 토마스를 향한 시선을 툭툭 끊어냈다.
‘내가 그때 그렸던 것이 이렇게 쓰이는 거였어?’
토마스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오랜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처음 그렸던 그림을 찾았다. 일곱 살 어린이가 그려봤자 얼마나 자세히 그렸을까 싶었다. 물론 그런 허술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구현한 위키드의 기술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런 엄청난 기술력에 대한 동경과 자부심이 있었지만, 그 기술로 하여금 민호를 사지에 몰아넣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놀이라고 했었는데.’
그제야 자신이 너무 멍청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드가 자신에게 기대한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다. 어른들은 어린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공포를 원했다. 그 공포와 맞서 싸우면서 기록되는 뇌파가 치료제로 가는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멍청했어. 그걸 그대로 믿었다니.’
작은 손이 주먹을 주니 채 부들부들 떨렸다. 에바 페이지가 토마스의 어깨를 감싸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손길은 분명 토마스를 연구실의 핵심 멤버로 올리는 것과 동시에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의도가 가득 깔린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반증이라도 하듯 회의실에 있는 누구도 쉽사리 토마스를 추궁하지 못했다.
“네가 만들어 둔 것을 토대로 구축하기 시작한 킬 존 테스트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이제 거의 다 완성이 되었지.”
“…….”
“정말 엄청난 것을 생각해 냈더구나. 역시 엘리트 그룹다워.”
“이건…아니에요. 전 그저…….”
“실험 군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토마스.”
“…….”
다정하지만 무거운 그 한마디에 토마스는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다. 토마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에바 페이지를 거스를 수 없었다.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면서 어떻게 해야 그나마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선택지에 최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택해야 했다. 킬 존 테스트를 중지시킬 힘이 없다면 적어도 핵심 멤버로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 ✓ ✗
킬 존 테스트는 토마스가 막 연구소에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토마스가 들어옴과 동시에 계획됐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상상력 놀이라면서 몇 장씩 그림을 그려보라고 놀아주던 사람들은 모두 에바 페이지가 내려보낸 직속 연구원이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므로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혹시라도 말이 새어나갈 것에 대비해서, 이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에바 페이지를 포함해 열 명이 넘지 않았다. 총장의 직권으로 모든 것을 총괄한 에바 페이지는 대외적으로는 실험군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테스트하면서, 최종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토마스가 그려낸 그림은 킬 존 테스트의 초안이 되었다. 아이가 아무런 제한 없이 만들어낸 상상력으로 가득 찬 공간은 소름 끼칠 정도로 순수한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마다 바뀌는 구조물. 일정한 시간이 되면 닫히는 문. 게다가 문을 통해 안전한 공간을 벗어나면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길을 한 번 잘못 들면 다시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미로 속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괴물이 살고 있었다.
‘이건 그리버라고 부르기로 할래요.’
토마스가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의 이름을 그리버라고 지었을 때, 에바 페이지가 드물게 직접 칭찬을 하러 내려왔었다. 아이가 그린 조립 과정과 해부도는 조악했다. 똑똑한 아이는 자신이 그림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따로 종이를 덧대 빼곡한 설명을 적어놓았다.
물론 상상으로 만들어낸 개체를 실제로 구현해서 움직일 수 있게 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프로토 타입의 그리버를 만들던 연구원은 토마스의 설계도를 보며 감탄했다. 가끔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절대 설계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곧 결과물이 나오고 시험 삼아 몇 번 움직였다. 가장 중요한 동력 부분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곧 업그레이드를 위해 개발실로 옮겨졌다.
“그리버 구현이 완료되었습니다.”
“실제 사이즈는 이것보다 약 열 배 정도 크게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실내 실험실에서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고, 조만간 시범적으로 투입해 볼 예정입니다.”
“토마스는 정말 대단하군요. 아마 선입견을 심어줬으면 이 정도로 훌륭한 모델이 나오지 못했겠죠.”
“설계도 초안에 있는 것보다 확장된 상태로 커다란 공터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꽤 많은 아이가 살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하니까요. 최소한의 생활하는데 필요한 식수와 숲, 그리고 일정 분량의 평지가 한데 섞여 조성될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너무 좁으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실험을 할 수 없어요. 적어도 스무 명 이상의 아이들이 전력을 다해 사방으로 뛰어다닐 만한 크기가 필요합니다.”
“…….”
“아이들을 올려보내는 것은 토마스에게 맡기기로 하죠.”
에바 페이지가 웃었다. 가장 잔인하고, 지독한 실험을 위한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넓은 공터에 인공적으로 만든 강이 흘렀고 어렵게 구한 나무가 심어졌다. 나무와 강이 단단한 지형으로 자리를 잡는 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 공터가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자 그곳을 빙 둘러 높은 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지는 콘크리트 벽은 사람이 쉽게 올라갈 수 없게 미끈하게 만들어졌다. 사방에 입을 벌린 채 서 있는 벽을 메우는 것은 커다랗고 무거운 문이었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무거운 태엽이 움직이면서 입구를 완전히 닫아 버리는 시스템이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처럼 완전히 격리된 공간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더미 데이터를 넣어 만든 시뮬레이션 영상입니다.”
“메인 화면에 파일을 열어 보세요.”
실제 크기의 공터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는 중요한 자료였다. 당장 완성되지 않은 곳에 아이들을 마구 밀어 넣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플레어 치료제를 만들 비밀의 열쇠는 쥐고 있는 세대. 이전과 다르게 새로운 면역 체계를 만든 아이들. 위키드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을 얻고 있었다.
“실험군을 한 번에 많이 올려보내는 것은 시련에 알맞지 않을 것 같군요, 단체 데이터를 빼고 한 달에 한두 명씩 올라가는 데이터를 적용해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간단한 조작으로 더미 데이터가 다시 덧씌워졌다. 한 달에 한 번 실험 군을 공터로 올려보냈다. 하지만 생존확률이 지극히 낮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공터로 끌려온 더미 데이터는 공포에 떨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굶어 죽었다. 에바 페이지의 미간에 곱게 주름이 갔다. 다시 한 번.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살아남는 확률이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 번에 두 명씩 올려 보내면 너무 쉽게 의지할 곳을 주는 것과 같았다.
“처음엔 한 명만 보내죠. 그리고 그 녀석이 한 달 동안 살아남으면 그다음엔 두 명을 보낼 겁니다.”
“과연 한 달 동안 저 \곳에서 혼자 살아남을 아이가 있을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찾아봐야겠죠? 분명 한 명 정도는 있을 겁니다.”
공터를 둘러싸고 빼곡한 미로가 설계되는 내내 계속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졌다. 하루에 뛸 수 있는 평균 거리. 평균 체력. 모든 것을 조합하고 최대한 갈 수 있는 구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어렵게 미로를 구축했다. 밤이면 스스로 벽이 움직여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곳은 8구역으로 나뉘어있었다. 하루에 한 구역씩 열리고, 또 움직이는 곳에서 길이라도 잃는 날엔 그대로 굶어 죽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오자 토마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고 넓은 공간으로 구현된 공터와 그리버는 순수하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저곳에 민호가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빼곡하게 들어찬 미로 설계도는 보는 내내 토마스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분명 저 미로는 저번에 약식으로 만들어진 실험실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담쟁이넝쿨마저 벽 끝까지 오르지 못하는 곳에서 밖으로 나갈 방법은 미로를 헤매서 길을 찾는 것뿐이었다. 물론 모든 기억을 지우고 들어간다면 그런 사실을 영영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어려운 곳이네요.”
“토마스 덕분에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죠.”
“매일매일 지리가 바뀐다. 이 정도면 몇 년 동안 출구의 존재조차 모를 것 같은데요.”
“그걸 염두에 두고 만든 곳이란다. 토마스. 쉽게 풀어지는 퀴즈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너도 잘 알고 있잖니.”
“…….”
“미로 쪽이 완성되는 대로 모든 연구원은 킬 존 테스트 쪽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위키드 존재 자체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과 배치될 구역은 개인용 패널로 전달하기로 하고 회의가 끝났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회의실을 빠져나갈 때까지 토마스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 토마스를 빤히 바라보던 트리샤는 조용히 먼저 자리를 비켜주었다. 에바 페이지도, 다른 연구원도 모두 사라진 텅 빈 회의실에 작은 아이 혼자 앉아있었다.
“난…어쩌면 좋지.”
토마스가 민호를 지킬 방법은 이 킬 존 테스트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에바 페이지도 그 외의 많은 연구원들도 모두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오히려 환영할 것 같았다. 다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과 토마스가 조금 다를 뿐이었다.
이곳에서 빼내 올 수 없다면 최소한 몸은 다치지 않은 상태로 테스트를 끝마치게 도와주고 싶었다. 연구소 내에서 엘리트 그룹이 꽤 인지도가 있었고 발언에 무게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좀 더 확실한 권력이 필요했다. 어설픈 힘으로 도와주려고 하다간 둘 다 끌려갈 수 있었다. 위키드는 그런 곳이었다.
‘…적어도 몸은 다치지 않게.’
토마스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위키드는 밤낮없이 돌아갔다. 연구와 실험이 진행되는 내내 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몇몇은 심하게 다친 채 의무실로 실려 왔다. 그나마 의무실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쪽은 운이 좋은 부류였다. 위키드가 판단하기에 쓸모가 없어 보인다면 그런 자비조차 내려주지 않았다. 그런 비일상적인 일이 반복되다 보면 감정이 무뎌지기 마련이었다. 사람 하나 죽는다는 것이 그리 슬프지 않다고 느껴질 때면 토마스는 스스로 놀라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어이없게 주변 친구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스스로 모여서 무리를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무리 내에서 발언이 강한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모습에 불복해서 어긋나는 무리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단 간에 생존율의 차이가 확연해지자 슬금슬금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 하나까지 위키드는 모두 수집하고 있었다. 이 성향이 공터에 올라가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는 끊임없는 연구 주제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끌어내 끝없는 시련으로 뇌를 혹사했다. 이유도 모른 채 강제로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을 가만 지켜보던 토마스는 살짝 고개를 숙여 작성하던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이제 알겠다.”
토마스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리했다. 그러자 목표가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었다. 더는 친구가 없다면서 칭얼거리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핵심 멤버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가끔 민호가 보고 싶을 땐 프로필에 올라와 있는 증명사진을 잠시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민호가 공터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킬 존 테스트의 초안을 토마스가 만들었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멀어져 버리면 도와줄 방법에 한계가 오곤 했다.
‘하지만, 꼭 들어가야 한다면.’
경우의 수는 너무 많았고, 그에 비례해 점점 생각이 많아졌다. 몸을 일부러 혹사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토마스를 보던 트리샤가 몇 번이나 만류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계획은 저 멀리 물러섰다. 토마스가 들고 오는 결과물은 모두를 흡족하게 했지만, 트리샤는 항상 쓸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페어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뭐가?”
“슬퍼 보여서.”
“아냐. 슬프다고 느끼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바빠.”
“그리고 아파 보여.”
“내가?”
“응. 매우. 안 그래?”
“아냐. 안 아파. 머리도 지끈거리지 않고 맑은걸. 이제 더는 아프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아.”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러다 한번 대차게 넘어지면 일어서는데 시간이 더 걸릴 거야.”
“넘어지지 않으면 되는 거지.”
“…….”
트리샤는 토마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에 잘 웃고 울던 아이든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가슴이 아려왔다. 물론 토마스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트리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곤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서로 도우면서 함께 연구를 하고 있지만, 다른 목표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토마스’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빗겨가는 것만큼 틀어져 버린 토마스의 연구 목적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알기 싫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트리샤는 잠자코 토마스를 도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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