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네 꿈을 꾸고 나면 오한이 난다
+) NOTICE
사실 혈청 실험 대상자였던 럼로우와 그 혈청 제공자 윈터솔져 이야기
전력이라 시간이 부족해 보고싶은 부분만 쓰느라 굉장히 불친절 하지만, 언제나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윈터솔져 기반 럼로우와 버키 이야기 입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언제나 꿈의 끝은 비슷했다.
태양이 떴다가 녹아서 산으로 흐르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다 어둠에 묻히는 것처럼. 하루의 끝은 늘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차라리 꿈을 꾸지 않는 캄캄한 어둠을 원했었다. 눈을 감으면 자꾸 과거가 떠올라서 단 한숨도 깊이 잘 수 없었다.
“…….”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갈비뼈가 답답하게 폐와 심장을 우그러뜨리면서 온몸이 굳어갔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갑갑한 상황이 계속되면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꿈은 점점 제 색을 잃고 두 가지 색깔만 남게 되었다.
“…….”
눈을 뜨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었다. 간신히 입술을 움직이다 급하게 숨을 들이쉬면 폐까지 얼려버릴 공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폐가 얼고 심장이 언다. 이 꿈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이것을 피할 방법조차 없었다.
간신히 살아있음을 알리던 신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부글거리는 숨소리가 그대로 둥그렇게 얼어붙었다. 냉기가 성성하게 맺힌 표면을 쓸어보면 금방 물기가 묻어나왔다. 손가락을 몇 번 문지르면 금방 없어지는 물기는 눈앞에 있는 무기만큼 덧없었다. 그 쓸쓸한 모습을 보는 사람을 정해져 있었고,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늘 있던 일이라 언젠가는 익숙해지지 않을까 했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건 언제 깨우는 거요?”
“모르지. 다음 명령이 내려와야 하니까.”
“…….”
“무기는 소중히 다뤄야 해. 이렇게 얼렸다가 녹이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비슷한 힘과 능력을 구현했다고 하나…그게 쉬운 일이 아니야.”
“…….”
“그런 의미에서 아껴 써야지. 어느 순간 픽 죽어버리면 우리에게도 큰 손실이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물론이지.”
“나가보겠습니다. 직장 두 개 다니는 일이 보통이 아니더랍니다.”
“복에 겨웠어.”
“일복이 터져나갑니다. 이러다 죽으면 꼭 하이드라 기지 한쪽에 묻어주십시오.”
“농담도.”
“…….”
농담이 아니라고 한마디 붙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돌아버린 놈끼리 농담을 해봤자 무슨 재밌는 일이 생길까 싶었다. 그냥 그곳을 나와 버렸다. 몇 겹이나 걸친 보안 시설을 나오면 회색빛 하늘이 보인다. 늘 눈이 내리는 곳은 단 한 번도 따뜻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
한숨을 내쉬면 긴 숨 꼬리가 달라붙었다. 길게 늘어지는 흰 숨은 그대로 공중에 녹아들었다.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으니 담배만 늘어갔다. 아이고. 한숨을 쉬면서 주머니를 뒤지니 딱 한 개비 들어있는 담뱃갑이 나온다. 담배를 꺼내고 곧바로 구겨버린다. 이런 곳에 쓰레기 좀 버렸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아주 조금만 지나도 거센 눈발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그래서 편했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정말 기분 나쁜 곳이야.”
물론 그런 곳에서 밥 벌어먹는 놈이 할 말은 아니었다. 좋든 싫든 하이드라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멍청한 무기가 왜 그렇게 눈에 밟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생기면 몸이 굼떠진다.
“이러다 실수해서 뒈지고 말지.”
럼로우는 자신의 분수를 안다. 물론 비굴하단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하이드라와 쉴드에서 각각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느는 것은 눈치고 속이 삼키는 것에 능숙해진다. 표정은 덤으로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번에 들어왔으니 한 한 달은 부르지 않을거야. 양심이 있으면 그래야 해.”
돌아가련다. 멍청한 무기야. 제발 이번엔 얌전하게 있어. 럼로우는 요새 혼잣말이 늘었다. 이 넓은 하이드라 기지에 무기를 제어할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니. 정말 웃을 일이다. 바깥에선 이런 소식을 알고 있나 싶었다. 그러다 보니 럼로우는 시시때때로 이곳에 끌려왔다. 쉴드에 침투한 하이드라가 자연스럽게 럼로우응 빼줬지만, 캡틴의 눈은 늘 날카로웠다.
몇 번이나 들킬 뻔했지만, 다행이 목이 날아가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캡틴 아메리카는 럼로우와 스트라이크 팀을 데면데면하게 대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많은 정보를 넘겨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별로 슬픈 티는 내지 않았다. 어차피 다른 곳으로 항상 정보는 차고 넘칠 만큼 도착했다. 캡틴 아메리카가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지만 아직 들킨 적은 없었다.
“앓다 죽지.”
죽고 싶으면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만 죽기엔 세상은 너무 크고 넓었다. 몇 명씩 죽어가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개죽음이란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곤 했다. 럼로우도 그런 사람이었다. 길게 빼물었던 담배가 어느 순간 짧아졌다. 필터 가까이 불꽃이 다가온 것을 보자 곧 눈밭에 툭 떨어뜨렸다. 군화로 몇 번 문지르면 시꺼먼 재가 보인다. 마지막 담배를 길게 뿜어낸 남자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위에서 처리하긴 했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늘 의심을 품고 있었기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남자가 떠난 곳은 또다시 조용히 눈보라에 묻혀버렸다. 이젠 세상이 허옇게 변할 정도로 거세진 눈발이 비밀스러운 장소를 가려주었다.
***
“…….”
“왜 그렇게 보시나요. 캡틴?”
“자네를 보는 게 아니야. 상처를 보는 거지.”
“조금만 더 가까이 맞았으면 다리가 날아갈 뻔했답니다.”
“…….”
“왜요? 죽길 바라셨습니까?”
“아니. 그럴 리가. 그저 자네 같은 베테랑이 이렇게 어이없는 사고를 당할 줄은 몰라서 말이지.”
“사고야 집 안에서도 늘 일어나는 거 아닙니까. 아이고. 욱신거려라.”
“…….”
“거…진통제 좀 더 놔주쇼.”
“그럼. 가보겠네. 푹 쉬고 다 나으면 쉴드에서 보지.”
“유급휴가로 알고 푹 쉬겠습니다. 캡틴.”
럼로우는 손을 올려서 인사를 한다. 캡틴은 그 순간에도 럼로우의 표정을 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 어이없는 사고여서 아직도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하이드라의 거점을 발견했다는 소식에 스트라이커 팀을 이끌고 찾아갔다.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작업이라 잔당을 적당히 처리한 후 자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죽은 줄 알았던 하이드라 잔당이 하필 눈앞에 캡틴 아메리카도 아니고 뒤에 있던 럼로우를 맞춘 것이었다.
“…….”
눈앞에 있는 캡틴 아메리카도 아니고 굳이…럼로우를. 이런 의문이 찝찝하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은근슬쩍 떠봤지만 그런 것에 넘어갈 남자가 아니었다. 대외적으론 이미 중상을 입은 잔당이 흐린 눈으로 조준을 하다 생긴 사고라고 했다. 게다가 그곳에 있는 놈들은 모두 죽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생포하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상했다.
“정말 이상하군.”
찝찝한 표정을 한 캡틴 아메리카가 돌아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럼로우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리가 날아갈 뻔했다던 남자는 멀쩡한 표정으로 술을 찾았다.
“차라리 다리를 잘라버릴 걸 그랬어.”
“그러면 재생이 안 되거나 느려서 안 된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의심하잖아.”
“하라 그러죠? 어차피 눈앞에서 다리가 터져나갔는데 말입니다.”
“…….”
“그건 그렇고. 도대체 왜 또 나를 불러요. 이런 미친 짓까지 해가면서.”
“명령이다.”
“나 참.”
캡틴 아메리카가 가져간 자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이드라의 예산. 옛날에 이미 발각된 위치. 그리고 소령의 새로운 정보. 예를 들면 윈터솔져의 과거 행적의 일부분. 의심을 받지 않을 만큼. 그렇다고 중요한 정보는 넘겨주지 않는 전략이었다. 그곳에 있던 놈들은 약에 취한 희생양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멋지게 다쳐 병원으로 실려 온 사람은 럼로우였다. 이 계획을 전달받았을 때 럼로우는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무기가 일어났어.”
“뭐요? 아주 막 써서 그냥 폐기할 생각이네.”
“급한 일이야.”
“퍽이나.”
“몸에 이상 신호가 생겨서 깨운 거니까 잔말 말고 오늘 이동해.”
“캡틴이 의심할걸요.”
“걱정 마. 오늘부터 다른 지역에 급한 미션을 수행하러 가고, 대역은 준비해 뒀으니까.”
“아주…멋지네.”
“…….”
“들키면 알아서 처리해 주쇼. 난 정말 모르는 일인 거로 하고.”
“그랬을 땐 네놈 뒤통수를 으깬다음 창고에 던져놓을 예정이야.”
“아이고 무서워라.”
럼로우는 피식 웃는다. 제대로 아물진 않았지만, 하이드라 기지에 도착하면 적당히 걸을 만큼 회복이 될 것 같았다. 럼로우는 조용히 들것에 실려서 이동한다. 수면제까지 달라고 한 다음 술에 타서 마시는 녀석을 보면서 간부는 내내 혀를 찼다. 하지만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을 어느 정도 묵인하는 이유는 늘 확실했다. 이 녀석이 아직 쓸모 있기 때문이었다.
***
“야. 왜 그러냐.”
“…….”
“내가 널 만나려고 무슨 짓까지 한 줄 알아?”
“…….”
“다리에 총을 쐈다고. 두 눈 뜨고 피하지도 않고 내 몸에 총알이 날아오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어.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
“사람 귀찮게.”
“…….”
짐승 새끼만도 못한 무기는 가끔 눈을 뒤집은 채 부들부들 떨곤 했다. 단단히 얼어서 안전하게 보관될 것 같았던 무기는 생명 유지 장치에 붉은빛이 들어오면서 허겁지겁 해동이 되었다. 강제로 심장을 뛰게 하고 뇌를 지진다. 온몸에 달라붙은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질질 끌려가 방에 밀어 넣어졌다. 거기에 짐짝처럼 누운 채 럼로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일어나는 이 발작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완전히 얼어서 아무런 사고도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하던 것과 달리 분명 무슨 일이 저 얼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럼로우는 그런 쪽으로 지식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녀석을 다루는 방법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정말…지긋지긋하다.”
“…….”
“하긴 너 때문에 밥을 벌어먹긴 해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 좀 박봉인 거 같아서 말이야.”
“…….”
“뭐?”
“…브.”
“…….”
“그거…그러니까.”
“뇌가 덜 튀겨졌네.”
럼로우는 어렴풋이 녀석의 발작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나마 럼로우와 같이 있는 시간은 이 녀석이 가장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이드라도 벌벌 떨 만큼 무서운 무기를 맘대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에 럼로우는 약간 취해있었다. 우쭐해진다. 그러다 보니 녀석에게 별거 아닌 정도의 따뜻함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같이 잔다던가.
못 할 짓이지만, 그렇다고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침대에 누운 채 옆을 두드리면 짐승 같은 놈이 슬슬 다가온다. 물론 체온도 회복하지 못한 얼음장이라 감기가 걸릴 것이 뻔했다. 체온을 나눠주면 무기는 좋아한다. 늘 고문과 추위에 익숙한 몸은 온기에 빠르게 반응한다.
“얌전히 자자.”
“…….”
“난 다치는 건 상관없지만 급소를 공격당하면 죽어.”
“…….”
“네가 그런 것처럼.”
얼음장 같은 덩치가 밀고 들어왔다. 어우. 절로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어색하게 팔 한쪽을 상납한 채 럼로우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이곳에서 잠을 자면 꼭 가위에 눌리곤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윈터솔져가 움직일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었고, 하이드라는 이 무기의 힘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몇 겹이나 단단히 둘러싼 장소에 밀어 넣었다.
“…….”
“자라. 움직이지 말고.”
“…….”
“얌전할수록 오래 잘 수 있어. 멍청아.”
“…….”
“그래. 그렇게.”
“…….”
온몸에 오한이 스민다. 이런 체온을 가지고도 죽지 못하는 저놈이 불쌍하기도 했다. 하지만 럼로우는 자신이 누굴 동정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
“럼로우?”
“…왜.”
“…끙끙 앓더라고.”
“내가?”
“으응.”
금방 확신이 서지 않는 얼굴로 멍청이가 물러선다. 좁은 방안에 놓인 매트리스는 두 남자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푹푹 꺼져있었다. 럼로우는 끙끙 소리를 내면서 올라앉았다. 그런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녀석의 얼굴엔 늘 고통의 무게가 가득했다.
“꿈꿨어?”
“뭐?”
“아니…그러니까.”
“네 꿈을 꾸고 나면 오한이 난다.”
“…….”
“거기엔 나도 있어서 말이야.”
“…….”
“지겹고 지겨운 굴레인데 아직도 벗어던지질 못했어.”
“…….”
“넌 어려운 이야기는 몰라도 돼. 가서 씻기나 해. 아침 먹으러 나갈 거니까.”
“…….”
욕 한마디 더 듣기 전에 욕실로 사라진다. 럼로우는 아직도 생생한 꿈을 더듬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꼭 이렇게 한 번씩 과거를 더듬게 된다. 꼭 저 멍청이의 발작이 자신에게 옮은 것 같았다.
'마블 > └ 럼로우버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가을과 겨울 사이,Game start (0) | 2017.09.10 |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우리라고 칭하기까지의 시간이 (0) | 2017.02.26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켜면 (0) | 2017.01.31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너는 늘 나를 기다렸고 나는 늘 너를 잊었다 (0) | 2016.12.18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신호 (0) | 2016.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