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뉴트/민늍] 신부이야기 008
+) NOTICE
신부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앙아시아+무언가 동양 판타지 aU입니다
민호는 도적단 두목 / 뉴트는 팔려가던 중
기본적인 의상에 대한 묘사는 촐님(@go00chol)의 그림을 보고 연성했습니다
촐님(@go00chol), 로케님(@goroke11)과 같이 풀던 썰을 기반으로 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궁금함이나 문의는 댓글 방명록 트위터 등 편한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_<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정부분 연재 후 1월 민늍온에 신간으로 나옵니다 샘플은 지우지 않아요
“얼마나 더 가야 해?”
“해가 머리 위로 올라올 때까지.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빨리 달리는데, 어차피 일찍 가봤자 벤이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꽤 머네.”
“아마 가서도 한참 기다려야 할 거야.”
그런 말을 하면서도 민호는 고삐를 당겼다. 천천히 가자고 하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말과는 다르게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하나둘 뒤처지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두목을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뉴트도 쫓아가기 버거웠다. 누르가 꽤 괜찮은 말이긴 하지만, 몇 년 내내 달리던 말을 따라잡긴 조금 힘이 부치는 것 같았다.
“두목!”
“…… .”
“두목! 천천히 좀 갑시다. 두목!”
“…… .”
“아, 진짜!”
냅다 짜증을 내던 녀석 중 하나가 부지런히 말을 어르며 간신히 민호를 따라잡았다. 두목! 아, 두목! 두목! 민호! 결국 빽 소리를 지르자 민호의 고개가 옆으로 확 돌아갔다.
“무슨 일이야.”
“좀… 천천히 가자고요. 저기 애들 다 뒤처진 거 안 보여요?”
“…… .”
“아니…진짜 이렇게 빠르게 갈 거면 먼저 가시던가. 우린 천천히 오라 하던가. 나갈 때마다 서로 이게 뭡니까.”
“아… 미안.”
“미안한 거 알면 천천히 좀 갑시다. 예?”
민호가 고삐를 당기며 멈춰 섰다. 뒤에서 달려온 녀석들은 잔뜩 숨을 몰아쉬는 말을 다독이며 옆에 옹기종기 붙었다. 얼마나 빠르게 뛰었는지 말의 목에서 펄떡펄떡 심장 뛰는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민호가 멈춘 사이 이때다 싶었는지, 하나둘 물주머니를 꺼내 목을 축였다. 그런 모습에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내내 투덜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뉴트가 옆에 붙어있는 것을 빌미로 한마디씩 던지는 것이 분명했다.
옆에서 달라붙는 볼멘소리에 으르렁거리려던 민호는 뒤따라온 뉴트를 곁눈질로 슬쩍 보더니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꼭 이러면 대장 무서운 걸 모르는 녀석들이 기세등등해진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민호는 괜히 고삐만 만지작거렸다. 당장에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모습에 눈치를 보던 녀석들이 슬쩍 길을 막고 섰다.
“두목. 나갈 때마다 이렇게 쫓아가기 힘들게 할 거요?”
“너희 모두 조용히 해라. 예전엔 이것보다 더 빨리 움직였는데, 벌써부터 앓는 소리를 해.”
“하지만…….”
“…그런데 말이야.”
뉴트가 민호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왜? 민호는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하지만 쉽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야?”
“아니…그냥.”
“너…오늘 이상하다.”
“…….”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야?”
뉴트는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열었다. 여전히 잔뜩 미묘한 표정을 가득 담은 채 아래위로 민호를 훑어봤다.
“너 그 옷 그대로 입고 들어가도 괜찮아?”
“왜?”
“왜라니.”
생각보다 훨씬 간단한 대답이 들렸다. 뉴트는 대번에 눈을 찌푸렸다. 되는대로 이것저것 겹쳐 입은 옷은 누가 봐도 일반적인 사람이 입는 옷 모양새는 아니었다. 물론 모피나 다른 옷감 자체가 좋고 귀한 것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민호가 몇 번이나 말했던 것처럼 상해버린 옷감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옷을 만들어 써버리곤 했다. 하지만 그런 의장용 옷을 짓는 천들은 쉽게 닳아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거칠게 움직이는 몸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쉽게 찢어지지 않는 모피만 남기고 되는대로 튼튼한 천을 골라 쓰게 되었다.
‘…하지만.’
뉴트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들만 우글우글한 곳에 살면서 깔끔하게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떨어지면 대충 기우고, 소맷자락이 불편하면 가죽끈으로 대충 이리저리 묶어서 입은 티가 줄줄 나는 옷을 보며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게다가 여기에 더해 모피를 대충 기워서 만든 조끼 비슷한 의상은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 옷을 입고 가면…들어가기도 전에 끌려갈 거 같아서 그래.”
“…아.”
“최소한 그…털은 좀 벗어야 하는 것 아닐까?”
“…….”
“그렇지 않아? 아침부터 나한텐 옷을 이것저것 입고 나오라고 하더니…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그건…그러니까.”
민호가 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점점 커지는 것 같더니 저들끼리 이리저리 뭉쳐서 슬쩍 뒤로 빠져버렸다. 두목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그 앞에 단단히 버티고 선 사람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있어.”
“…뭐?”
“옷 있다고. 불편해서 들어가기 전에 갈아입으려고 한 건데.”
“그럼 그렇다고 말하면 되는데, 뭘 그렇게 빙빙 돌려?”
“그야…그…….”
“너 오늘 좀 이상해.”
“아냐. 그럴 리가.”
“…….”
“가자. 옷이야 가면서 대충 갈아입어도 괜찮아.”
민호가 고삐를 바짝 당겼다. 자연스럽게 돌아서는 녀석의 넓은 등을 바라보던 뉴트는 괜히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인제 그만 출발하자.”
“두목, 벌써 갑니까. 조금만 더 쉬다 갑시다.”
“하여튼 조금만 풀어주면…빨리 움직여! 이러다가 우리가 더 늦게 도착하면 어쩌려고 그래!”
“쳇. 알았수다.”
다들 달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툴툴거리는 녀석들을 모르는 척하던 민호는 슬그머니 뉴트가 타고 있는 말의 목덜미를 두드려주었다. 그런 손길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누르가 고개를 털면서 낮게 울었다. 뉴트의 그리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척 앞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뉴트는 그런 모습을 분명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을까진 아직 꽤 먼 거리가 남아있었다. 중간중간 숨만 돌리며 달려온 사람들은 저 멀리 마을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자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낡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 봐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온갖 천 조각이 치렁거리고 험악해 보이는 옷을 벗고 제법 말쑥해 보이는 차림을 한 민호가 눈에 들어왔다. 뉴트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이상해?”
꼭 이럴 땐 눈치가 너무 빨랐다. 그런 표정을 보자마자 이상하냐며 물어보는 녀석 때문에 뉴트는 땀을 뻘뻘 흘렸다. 아니. 괜찮아. 안 이상해. 몇 번이나 말하고 나서야 민호는 입고 있던 옷을 주섬주섬 천위에 쌓았다. 괜히 보여서 좋을 것이 없는 옷이었다. 그대로 둘둘 말아서 마치 봇짐처럼 보이게 만들곤 말 뒤에 얹었다. 도적 무리가 한순간에 평범한 사람들로 바뀌었다. 게다가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말이다.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평범한 삶을 알았던 순간이 분명 있겠지. 뉴트는 손끝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애써 그런 생각을 꾹꾹 눌러 삼켰다.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서로 호칭을 조심하면서 평범한 사람인 척 그 속에 섞여들었다.
***
오래간만에 사람 사는 곳에 오니 어지러울 정도로 시끄러웠다. 이것저것 사고파는 사람부터, 조금이라도 가격을 깎으려 흥정하는 사람이 한 번에 뒤섞인 곳에서 뉴트는 어쩐지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저렇게 살고 있었는데. 괜히 옛날 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 생각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텐데, 현실은 문득 심장에 스며들면서 감정을 쥐고 흔들곤 했다.
“뉴트?”
“…응?”
“아니.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별거 아니야. 오래간만에 사람 많은 곳에 오니까…조금 시끄러워서.”
옆에 바짝 붙은 민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뉴트를 바라보았다. 뉴트는 괜히 머리쓰개를 꾹 눌러 덮으면서 말을 아꼈다. 아까까지만 해도 들떠있던 녀석이 푹 죽어있으면 누구라도 걱정을 할 만 했다. 민호는 답지 않게 계속 채근을 하더니, 결국 뉴트한테 거하게 한마디를 듣고 나서야 뒤로 물러섰다. 까만 눈에 더 깊어진 뉴트는 한숨을 쉬며 내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이고 싶지만, 개인행동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이렇게 넓은 공간과 자유로운 사람들이 가득한데 뉴트에게 허락된 건은 겨우 발을 붙이고 설만큼의 땅뿐이었다.
“…….”
민호는 민호 나름대로 굉장히 마음을 쓰고 있었다. 데리고 나오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낯빛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말 타는 것이 힘든가 싶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아까 간단하게나마 요기를 했느니 밥때는 아직 멀었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다. 민호는 좀처럼 뉴트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조금만 있어 봐.”
“…응?”
“애들 찾으러 간 녀석이 돌아오면 바로 방 잡고 들어가서 쉬자”
“무슨 소리야. 나 괜찮아.”
“아니…그러니까.”
“괜찮아. 별거 아니야.”
민호의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계속 괜찮다 괜찮다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결국, 생각이 흘러 흘러 괜히 데리고 나왔나 까지 왔을 때, 벤의 행방을 알아보러 간 녀석이 돌아왔다. 민호는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기 위해 괜히 다그치며 물었다.
“도착했다더냐?”
“아뇨. 아직 그런 사람은 이쪽에 온 적이 없다고 하는데요. 늘 머물던 곳에 없는 걸 봐서 조금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일단 그쪽으로 가서 짐을 풀고 기다리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요. 대장. 아니 민호. 계속 이렇게 무리 지어서 서 있으면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한다고요.”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괜히 시선을 더 끌기 전에 움직이자며 말을 잡아끌었다. 몇몇 사람에게 말 고삐를 주며, 마구간에 묶어놓으라고 시킨 민호가 모른 척 뉴트의 손목을 잡았다. 응?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민호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민호. 아무리 내가 남자라고 해도 이런 곳에서 여자 옷을 입고 있는데…너무 튀는 거 아냐.”
“…아.”
“다들 이상하게 보잖아. 빨리 걸어가 뒤 따라갈 테니까.”
잔뜩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리던 뉴트가 다른 손으로 민호의 등을 확 밀었다. 잠시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오던 민호는 괜히 헛기침했다. 그러니까 이런 옷 입고 나오지 말자 했는데. 뉴트는 내내 불만이었다. 따라 나온 김에 옷을 사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민호가 그렇게 해줄 것 같지 않았다. 아이고.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안 그래도 치렁치렁 바리에 휘감기는 옷이 걷는 것을 너무나 불편하게 했다. 한 손으론 머리쓰개를 잡고 다른 손으로 치마를 잡아도 걷기가 시원치 않았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멀리 앞서가는 민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소리쳐 부를 수도 없어서 그저 그 발걸음을 따라잡으려 부지런히 걸을 뿐이었다.
“걸음…진짜 빠르네.”
뉴트가 헉헉거리며 찻집에 도착했을 때, 민호는 이미 흥정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은 녀석들은 빨리 앉아서 쉴만한 방을 내놓으라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민호! 빨리.”
“좀 기다려 봐.”
“배도 고프다. 빨리 방 잡고 밥이라도 먹자.”
“뉴트. 왔어? 좀 앉아.”
두리번거리며 서 있는 뉴트를 덥석 잡아 앉힌 녀석들은 계속 시끄럽게 떠들었다. 물론 여기서 두목이니 대장이니 부를 수 없는 건 아주 잘 아는 녀석들은 그걸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민호. 민호. 아주 난리가 났다. 민호는 뒤를 돌아보며 한껏 눈을 찌푸리더니 다시 흥정을 시작했다. 나름 익숙한 얼굴인 듯 찻집 주인장과 몇 마디 인사를 나눈 민호는 손가락으로 사람 수를 세고 있었다. 결국, 늘 묵던 방보다 조금 큰 곳을 잡은 뒤 주름이 가득한 손바닥에 그만큼의 돈을 올려놓았다.
“저 안쪽으로 들어가시오.”
“혹시 나를 찾는 사람이 오면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해요.”
“알았수다.”
사람 좋게 웃던 노인은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리곤 돈을 주섬주섬 집어넣으며 주인을 찾는 다른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런 시장통에 있는 객잔의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었다. 적당한 돈만 내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들어가지.”
“오늘따라 무슨 흥정을 그렇게 해요. 대장.”
“여기 왔을 땐 대장이라고 부르지 말라 했지.”
“아, 맞다. 민호.”
“큰 방은 어지간하면 안 내 준다기에 이야기를 좀 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얼만데.”
“정말요?”
“…그래.”
“뭐, 그렇다고 해두죠. 다들 들어가자. 짐 좀 풀고 있다 보면 벤도 도착하겠지. 배고파서 죽겠네.”
잠시 민호의 얼굴을 보며 다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던 놈들은 한마디 말을 더 듣기 전에 왁자지껄 떠들며 순식간에 흩어졌다. 오래 알고 지낸 녀석들은 이게 안 좋았다. 민호가 뭐라 한마디 할라치면, 잽싸게 눈치를 채고 도망치는 데 도가 튼 놈들이었다. 민호는 그런 무리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뭐해?”
“어, 들어가야지.”
“가자.”
넓은 평상에 간신히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있는 뉴트를 불렀다. 하지만 멀뚱히 앉아있는 녀석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 들리나? 민호는 두말없이 걸어가 뉴트를 잡아 일으켰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녀석이 흘러내리는 머리쓰개를 잡으며 일어섰다.
“방으로 들어가자.”
“…알았어.”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오랜만에 북적거리는 곳에 와서 그런가. 영 정신이 없네. 그리고 옷도 좀 불편하고.”
“…….”
“들어가자며.”
“어, 그래.”
영양가 없는 대화가 뚝 끊겼다. 뉴트를 앞세운 채 안쪽으로 들어가던 민호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늑대를 닮은 매서운 눈빛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아직 별다른 일은 없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늘 불안했다. 뉴트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이 주변엔 아직 도적들이 사람을 끌고 갔다는 소문이 남아있었다. 혹시라도 얼굴을 아는 사람을 만날까, 아니면 경비대가 알아볼까. 민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끙끙 앓고 있었다.
민호가 마지막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이미 방은 멋대로 누워버린 녀석들로 가득했다. 보통 때라면 많이 데리고 올 필요가 없었지만, 이번엔 짐이 너무 많았다.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놈들은 배가 고프다며 시위를 했다. 그런 꼴을 보고 있던 두목은 역시 애들을 잘못 데리고 나왔다며 혀를 찼다.
“대장. 배고파요.”
“맞아. 배고파요. 대장. 밥 좀 먹으면서 기다립시다.”
“…….”
“오면서 대충 빵이랑 육포 좀 먹은 게 다잖습니까. 밥 먹어요. 밥.”
“…일을 시키려고 데려왔더니.”
“사람도 먹어야 힘을 쓰지 않겠습니까.”
낄낄거리던 녀석들이 한마디 하며 와르르 웃어 재낀다. 밥 달란 소리에 그럼 나가서 먹을 걸 사오라고 엉덩이를 차서 내쫓았다. 군것질거리 말고 밥이 될 만한 거로 사와. 민호의 말이 들리는지 마는지 삼삼오오 뭉친 녀석들은 냅다 뛰어서 방 밖으로 사라졌다. 아, 시끄러운 녀석들. 다들 빠져나가고 나서야 자리에 앉은 민호가 어깨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모습은 내내 지켜보고 있던 뉴트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시끄럽지?”
“…뭐가?”
“내가 밖을 잘 안 데리고 다녀서 그래.”
“좀 데리고 다니지 그랬어.”
“괜히 일에 휘말리거나 하면 다들 다쳐. 나야 혼자선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지만, 사람이 많으면…….”
뉴트는 오늘 처음 민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늘 입던 옷이 아닌 걸로 갈아입은 녀석은 생각보다 더 멀끔한 모습이었다. 저 옷도 뺏을 걸까. 아니면 만든 걸까. 뉴트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조금 우스웠다. 길게 늘어지는 겉옷을 손끝으로 휘휘 감던 녀석은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순간 시선이 마주치면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눈만 깜박이던 둘은 결국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생각보다…멀쩡해 보이네.”
“…….”
“그렇게 입으니까.”
“여기보다 더 먼 곳으로 가면 이렇게 입지도 않아.”
“어째서?”
“거긴 내가 도적이라는 걸 모르니까.”
“…아.”
“그냥 좀 특이한 녀석인 줄 알지.”
참 쓸데없는 것을 물었구나 싶었다. 뉴트가 아직도 눌러쓰고 있던 것을 끌어내렸다. 그리곤 가볍게 머리를 털자 마른 볏짚을 닮은 머리카락이 부스스 흔들렸다. 손끝으로 머리를 쓱쓱 쓸어 넘기는 모습을 바라보던 민호는 또 심장에서 열기가 솟았다. 정말 병에 걸린 건지. 아니면 심장이 미친 건지. 뉴트를 바라보고 있으면 때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칠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귀가 달아오르고, 심장 소리가 쿵쿵 울렸다.
“왜? 머리 이상해?”
“아냐. 아무것도,”
“너도 오늘 좀 이상하다.”
“그럴 리가.”
“벤이라는 사람은 언제 오는데. 여기서 며칠이나 있어야 할까?”
“아마 늦어도 달이 뜨면 올 거야. 그리고 내일모레엔 떠나야지. 내가 자리를 너무 많이 비우면 무리가 금방 흔들려.”
“빨리 떠나네.”
“좀 더 있다 갈래?”
“아냐. 뭐 있어 봤자 할 것도 없고…….”
어차피 이곳에 오래 있어 봤자 돌아다니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아쉬운 소리를 한다. 예전에도 장터는 그저 먹을 것을 사러 가는 곳에 불과했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싱숭생숭한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뉴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취미도 없었다. 그냥. 조금.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대화가 끊기면 곧바로 사방이 조용해졌다. 서로 눈을 한 번 마주치고, 민망하면 고개를 돌려서 헛기침이나 했다. 그러더니 둘 다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차라리 누가 돌아오면 조금이라도 편할 텐데.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만에 밖에 나온 녀석들은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 맞다. 민호.”
“응?”
“나 필요한 게 하나 있는데.”
“필요한 거?”
뜻밖에 말을 들은 민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이 녀석을 사막 한가운데서 데리고 온 이후로 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어서 더 그랬다. 민호의 심장이 쿵쾅거리거나 말거나 뉴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을 고르는 중이었다. 그 잠시를 참지 못하고 눈앞으로 쑥 다가온 녀석은 대답을 재촉했다.
“뭐가 필요한 거야?”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큰 건 아니고…….”
“그러니까 뭐냐고 묻고 있잖아.”
“그게…저번에 차서 없앤 칼 있잖아.”
“아…….”
“없으니까 너무 불편해서. 하나 필요하단 이야기를 하고 싶었…….”
뉴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호가 벌떡 일어섰다. 응? 나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예쁘게 선을 그린 고개가 젖혀지는 그 순간 머리에 뭔가 푹 떨어졌다. 눈앞을 완전히 가려버린 천을 이리저리 헤치는 손목을 덥석 잡은 녀석은 말도 하지 않고 자꾸 끌어당기기만 했다.
“잠, 잠깐만. 민호. 잠깐.”
“가자.”
“뭐?”
“나갔다 오자고.”
“아니. 그니까 필요하다고 했지, 이렇게 당장…….”
“어차피 여기 아니면 구할 곳도 없어. 가자.”
“…….”
“애들 오기 전에.”
허둥지둥 머리쓰개를 눌러 잡은 뉴트가 마지못해 일어섰다. 잔뜩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까만 눈엔 당황스러움이 잔뜩 서려 있었지만, 민호는 모르는 척했다. 가자. 도대체 이게 사람인지. 아니면 앵무새인지.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는 녀석을 이길 수 없었다.
“천천히 구해도 되는데.”
“당장 밥 먹을 때도 불편하잖아.”
“그렇긴 해.”
“별로 안 머니까 나갔다 오자.”
“…….”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민호가 먼저 밖으로 나가고, 뉴트는 잠시 망설였다. 과연 그렇게 튀는 행동을 해도 괜찮을 걸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결국 천천히 걸어 나왔다. 햇빛을 등지고 선 채 자신을 쳐다보는 민호가 눈에 들어왔다. 아. 어쩐지 몸속 저 깊은 곳이 간질거렸다. 왤까. 이유가 뭐지. 몇 번이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지만 알아낼 수 없었던 일이 또 한 번 일어나고 있었다.
뉴트가 움직이면 천에 가득 달린 판형 금속이 잘랑거리며 작은 소리를 내곤 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소용이 없었다. 민호가 뉴트의 팔을 휙 잡아당기자 바짝 마른 몸이 버티지 못하고 끌려갔다. 품에 안길만큼 다가온 녀석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시끄럽게 부딪치는 금속 장식이 햇빛에 반사되면서 반짝거렸다. 아. 잠깐만. 민호. 더듬더듬 말하던 뉴트는 한 손으로 천을 푹 눌러서 얼굴을 감췄다.
“가자.”
“정말?”
“잠시만 나갔다 오는 건데, 뭐 큰일이야 나겠어.”
“하지만…….”
“괜찮아. 가자. 생각도 못 했는데, 일찍 말해줬으면 아마 벤한테 하나 구해다 달라고 했을 거야.”
“아니…그야 말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나 구해 주겠다는 거지.”
민호가 뉴트를 똑바로 보며 씩 웃었다. 계속 망설이던 뉴트는 그 순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푸른 여름을 닮은 웃음이 파랗게 깨지는 것을 봤다. 그래. 가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뉴트의 손목을 단단히 잡은 녀석은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렇게 둘이 방을 비운 사이 먹을 것을 사러 갔던 녀석들이 돌아왔다. 손마다 음식을 들고 돌아왔는데, 방에서 반겨주는 이가 없었다. 일단 음식부터 방에 밀어 넣고 나서 한마디씩 입을 댔다.
“두목이 또 방랑벽이 도졌나 보네.”
“그럴 줄 알았어.”
“우리한테 군것질거리 말고 먹을 거 사오라 하더니. 자기만 다른 음식 먹으러 간 거 아냐?”
“뉴트도 없어졌는데.”
“흐음.”
이 정도 되면 아무리 눈치가 없다 해도 또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튄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두목이 요즘 영 힘을 못 쓰던데. 민호가 옆에 있으면 한마디도 못할 농담을 쏟아내던 녀석들은 하나둘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서로 킬킬거리며 얼굴만 바라보다가 역시 익숙한 일인 듯 방에 자리 잡고 앉아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두목이 그래도 맘에 드나 봐.”
“그런 건가. 어쩐지 오늘 데리고 나올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잘되면 우리도 좋은 일 생기는 건가.”
“도적 팔자에 무슨 좋은 일. 그냥 두목이 방랑벽 안 도지고 딴생각 안 하면서 할 일 열심히 하겠지.”
“그런가.”
“그래. 인마. 일단 밥부터 먹어. 보아하니 두목은 알아서 따로 먹고 들어올 느낌이니까.”
고기를 뜯으며 한마디씩 보태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씹고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방은 내내 북적거렸다.
***
“어디까지 가는 거야.”
“…….”
“민호. 어디까지 가냐니까.”
“…….”
“아…진짜.”
앞만 보고 걷는 녀석을 따라서 하염없이 걷다 보니 걱정이 왈칵왈칵 올라왔다. 분명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이 돌아온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이 녀석은 발길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시. 잠깐만. 뉴트가 몇 번이나 민호를 불러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람이 북적이는 시장통을 빠져나와 한적한 공터에 다다랐다. 민호는 그제야 꽉 잡고 있던 손을 놨다. 그리고 눈을 깜박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잔뜩 복잡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색하게 저쪽에 있는 좌판을 손으로 가리켜봤지만, 뉴트의 표정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바짝 솟은 날렵한 눈썹은 금방이라도 한마디 할 것처럼 서늘했다.
“좀 멀리 있어서.”
“이렇게 멋대로 행동해도 괜찮아?”
“무슨 소리야.”
“너야 이 무리의 대장이라고 해도. 난 아니잖아.”
“…….”
“괜한 오해받는 거 싫어. 나중에도 충분히…….”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뭐?”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어. 처음에 멋대로 데려온 거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아니 그건.”
“그래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은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렇게 풍족하게 사는 편이 아니야. 당장 내일이 불투명하기도 하고. 그런데 처음으로 필요하단 소리를 들으니까.”
“…….”
서로 얼굴이 또 달아올랐다. 민호는 눈을 피하면서 헛기침을 하고 뉴트는 머리에 푹 덮어쓴 천을 끌어당기며 고개를 숙였다. 뭐 이렇게 간질간질한 일인가 싶지만, 적어도 둘 사이엔 굉장한 발전이었다. 한참 서로 마주 본 채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랬어. 애들이야 나중에 내가 따로 말하면 되는 거니까.”
“아냐. 말하지 마.”
“응?”
“말해봤자 뭘 해. 그냥. 오늘은 내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둘이 급하게 나온 거야. 알았어?”
“…….”
“알았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뉴트는 그래도 불안한 지 몇 번이나 민호에게 다짐을 받아냈다. 한참 실랑이를 하고 나서야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영 정신없는 표정으로 걷던 둘은 정작 가게 좌판 앞에 서서도 계속 딴 이야기만 했다. 주인이 뭐가 필요하냔 소리를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단도 있으면 좀 보여주세요.”
“누가 쓸 건 데? 댁이?”
“아뇨. 저는 아니고. 여기 옆에…….”
“이쪽 걸 보면 되겠네.”
곁눈질로 뉴트의 옷을 힐끗 쳐다본 주인은 섬세한 문양이 새겨진 여성용을 손끝으로 짚었다. 뉴트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면 그렇지. 하지만 민호한데 알아서 구해오라고 해도 비슷한 것을 가져왔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라면 뉴트가 지금까지 이런 옷을 입고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뭐라 한마디 보탤까 하다 곧 입을 다물어 버렸다. 민호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여기서 하나하나 설명하기엔 민망했다. 최대한 여성스럽지 않은 것을 찾던 뉴트의 눈에 매를 조각한 단도가 들어왔다.
“이거.”
손으로 단도를 집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꽃이나 나무 열매를 조각해 넣은 것과 달리 매와 말을 타는 사람을 문양으로 만든 단도는 과하지 않은 장식 탓에 오히려 투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민호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었고, 주인은 취향이 특이하다며 한마디 툭 던지더니 옆에서 칼을 보는 다른 손님에게 시선을 옮겨버렸다. 이리저리 돌려보고 살짝 칼집을 벗겨보기까지 한 뉴트는 마음에 드는 표정으로 민호한데 칼을 넘겼다.
“이게 마음에 들어.”
“정말 이거면 괜찮아?”
“난 예쁜 것보단 실용성 있는 쪽을 훨씬 더 좋아해.”
“…….”
“그리고 매도 좋아하고 말도 좋아하니까. 이거면 충분해. 민호.”
또 뭐라 할까 봐 서둘러 단단히 말을 맺었다. 시집간 동생이 쓸 것 같은 화려한 문양은 영 취향이 아니었다. 민호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고집을 부리진 않았다. 뉴트의 손에 칼을 돌려주고 곧장 값을 치렀다. 그 칼은 영 나가지 않아서 몇 달 동안 꺼내만 놨는데 제 주인을 찾아가려고 그랬던 모양이구먼.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 주인은 재빨리 받은 돈을 셌다. 그리곤 동전 몇 개를 돌려주며 한껏 인심을 쓰는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칼날이 무뎌지면 다시 찾아오라는 소리를 뒤로한 채 돌아섰다.
“고마워.”
“…아냐. 당연히 다시 구해줬어야 하는 건데. 마음엔 드는 건가?”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조심스럽게 문양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던 뉴트는 그런 민호의 무뚝뚝한 대답에 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애매하게 지난 식사시간을 가늠하다가 결국 따로 밥을 먹었다. 그 녀석들은 어차피 내가 없으면 기다기리지도 않고 밥을 먹을 위인들이라며 말하던 민호는 뉴트를 자리에 앉혔다.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 들고 와서 늘어놓는 내내 둘은 또 말이 없었다. 그러다 슬쩍 눈이 마주치면 조심스럽게 웃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간질간질한 기분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웃음이 났다.
밥을 먹고 걸어가는 길엔 과일을 잔뜩 쌓아놓은 가게가 줄지어 서 있었다. 커다란 멜론부터 말린 과일에 석류. 배. 눈으로 세기에도 꽤 많은 종류의 과일이 있었다.
그런 좌판을 눈으로 훑던 뉴트의 시선이 문득 석류에 닿았다. 워낙 먹기 귀찮은 과일이라 딱히 자주 먹진 않지만, 동생이 참 좋아했었다. 그래서 가끔 장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손에 들고 오곤 했다. 별것도 아닌 과일에 울컥 흘러나오는 옛날 기억을 더듬던 뉴트가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길 한복판에 멍하니 서 있는 꼴이었다. 아. 뉴트는 이 꼴을 보아하니 이러다 분명 큰일 한 번 칠 거라고 스스로 책망했다.
“뉴트?”
“…….”
“왜? 뭐 먹고 싶어서?”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잠깐 딴생각을 했어. 가자.”
“뭔데?”
“아니라니까.”
허겁지겁 걸음을 걸으려던 녀석을 붙잡은 민호는 집요하게 캐물었다. 도대체 이럴 때만 이렇게 눈치가 빠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뉴트가 보던 것을 알아낸 민호는 품 안 가득 석류를 안겨주었다.
“이걸 다 어떻게 먹으라고.”
“가서 나눠 먹으면 되겠네.”
정말 대책이 없었다. 그렇게 잔뜩 과일을 안고 돌아온 뉴트와 민호를 맞이해준 녀석들은 또 낄낄거리며 난리가 났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방 안으로 들어온 뉴트는 방 한가운데에 과일을 밀어놓고 내내 딴청만 했다. 민호는 할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뜨려다 붙잡혔다.
차라리 벤이 돌아와 있길 바라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영 늦게 도착할 것 같았다. 양옆에서 단단하게 팔을 잡고 농담을 던지는 녀석들을 이리저리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다들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생각을 한 채 오래간만에 맛보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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