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뉴트/민늍] 신부이야기 001
+) NOTICE
신부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앙아시아+무언가 동양 판타지 aU입니다
민호는 도적단 두목 / 뉴트는 팔려가던 중
기본적인 의상에 대한 묘사는 촐님(@go00chol)의 그림을 보고 연성했습니다
촐님(@go00chol), 로케님(@goroke11)과 같이 풀던 썰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어집니다...아마도? 투비 컨티뉴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신부이야기 001
굳이 말하자면 말이다.
그날은 한마디로 운이 나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반쯤 열린 창문 밖을 내다보던 사람이 작게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는 좁은 집이었다. 답답할 정도로 두껍게 만들어진 벽은 정장 몇 명이 와서 부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문 앞에 버티고 선 사람들을 밀치고 달아날 수 없었다.
“…….”
이미 집에 있던 이동수단은 다 팔려나간 뒤라 설사 도망을 친다고 해도 금방 잡혀 올 것이 뻔했다. 물론 사막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홀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은 답답하게 목을 짓눌렀다.
“출발해야 한다.”
“…….”
“뉴트!”
“알았어요!”
날카롭게 소리를 친 뉴트가 짜증스럽게 문을 쾅 닫았다. 창문으로 넘겨다보는 시선조차 보기 싫었다. 한 뼘만큼 열린 창문까지 닫고 나서야 그대로 벽에 주르르 주저앉았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부모님이 갑자기 아팠을 뿐이고, 그래서 양을 하나둘 판 것이 죄였을까. 당장 돈이 필요했고, 부모님과 함께 돌보던 양은 수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열 마리를 내다 팔았다.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약값은 더 비쌌다. 그렇게 일주일쯤 살고 삼일을 더 버텼다. 한 줌 남은 식량이 떨어지자 뉴트는 다시 양을 팔러 갔다. 시장은 언제나 시끄러웠고 복잡했다. 간신히 저번에 양을 팔았던 곳을 찾았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에서 꼬르르 소리가 났다. 하지만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며칠 버틸 식량과 약을 샀다. 의사는 너무 비싸서 부르지 못했다. 그렇게 양을 모두 내다 팔 때까지 부모님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양의 목에 줄을 걸던 뉴트는 미래가 보이지 않은 절망감에 한숨만 푹푹 쉬었다. 지금은 어떻게라도 약을 살 수 있었지만, 양조차 없어지면 뭘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결국 양을 모두 팔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장에 물건을 팔러온 이웃 마을 부자의 눈에 띄었다. 비싼 과일을 잔뜩 싣고 온 영감은 수심 깊은 뉴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곤 옆에 있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불렀다. 뭐라고 작게 소곤거리자 이내 알겠다는 듯 하인이 바삐 시장통으로 사라졌다.
뉴트에 대한 이야기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양을 팔아주던 남자를 데리고 와서 술과 고기를 사주며 슬슬 긁어내자 기다렸다는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만족할 만큼 정보를 얻자 하인은 상인에게 돈을 찔러주며 입단속을 시켰다.
“제가요? 왜요?”
“왜긴. 널 마음에 드신다는 분이 있다. 그러면 네 부모님이 의사 진료도 받고 약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야.”
“…….”
“계집아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런 자리가 얼마나 귀한 줄 모르는구나.”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팔려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이는 많이 낳아야 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뉴트는 형제자매가 없었다. 몇몇은 어릴 때 죽었고, 딱 하나 있던 동생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 일찌감치 시집을 가서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부모님은 병이 깊고, 뉴트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유일하게 하던 양을 키우는 것도 이젠 불가능했다. 그런 뉴트의 얼굴을 본 상인이 다시 슬슬 구슬리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 또다시 집에 먹을 것이 떨어졌다. 부모님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제 발로 상인을 찾아왔다. 제법 깐깐하게 조건을 제시하는 남자아이를 바라보던 상인은 천천히 이야기하자며 찻집으로 안내했다. 따뜻한 차와 과자가 나왔다. 몇 달 만에 보는 간식거리에 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지만 뉴트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이걸 먹는다면 두 배 이상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을 보살펴 주시는 조건이에요.”
“물론이지. 그분은 정이 아주 많으신 분이니까.”
“저 혼자 떠나진 않겠어요.”
“그렇게 전하마.”
“…….”
“또 원하는 것이 있느냐. 어르신이 뭐든 말하라고 하셨다. 옷이라던가. 장신구라던가.”
“필요 없어요, 내가 왜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목소리가 단단하게 굴러 나왔다. 몇 번이나 약속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뉴트의 몸이 유난히 휘청거렸다. 마구간에 묶여있는 말의 고삐를 풀었다. 가자. 누르. 이런 상황에 맞지 않을 정도로 좋은 말이었다. 뉴트는 잠자코 고삐를 쥐었다. 양은 모두 팔았지만, 딱 한 필인 말까진 팔 수 없었다. 동생이 시집갈 때 남편 쪽에서 인심이라도 쓰듯 선물이자 지참금으로 받은 말이었다.
“날짜가 정해지면 알려 주세요.”
“그러마. 오늘 서면을 보내면 이번 주 내로 확답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알겠어요.”
낮게 푸르륵 거리던 말이 고삐를 따라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뉴트는 딱히 이 일을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고, 말할 생각도 없었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뉴트가 날짜를 받은 그 날 부모님이 발작을 일으켰다. 잔뜩 겁에 질린 뉴트가 제대로 옷도 입지 못한 채 말에 안장을 얹었다. 무슨 정신으로 의사를 찾아온 것이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이 가기로 한 집 주인의 이름을 대며 제발 좀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꽤 이름 있는 부자였는지 뉴트의 부탁에도 꿈쩍 않던 의사가 약재를 챙겨 문을 나섰다.
“…….”
“아, 이런…….”
“…….”
의사가 말에서 내리기도 전에 손목을 잡아끌던 뉴트는 집을 휘감고 있는 낯선 기운에 발을 우뚝 멈춰 섰다. 아. 짧은 탄식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설마. 설마. 벌벌 떨리는 손으로 반쯤 열린 문을 밀던 뉴트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의사는 유감을 표했고, 곧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소리와 함께 돌아갔다.
뉴트는 세상에 혼자가 되었다.
소문은 빠르기도 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부모조차 죽어버린 녀석을 더는 기다려줄 이유가 없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저 멀리 사막을 건너야 하는 마을에 사는 영감이 보내준 몇 안 되는 하인들이 궤에 넣은 옷을 들고 왔다. 단단하게 만들어진 궤짝을 열자 뉴트는 실제로 보지도 못했던 천으로 만든 옷과 패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도 여자 옷으로. 그걸 바라보는 뉴트의 미간에 고운 주름이 졌다. 영감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뻔히 알 수 있었다.
“어서 입고 나오너라. 해가 떠 있을 때 출발해야 무사히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알았다고요!”
뉴트는 부쩍 신경질이 늘었다. 이제 이곳을 떠나 영감 밑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의사를 불렀던 돈도 부모님의 장례비용도 모두 그쪽에서 냈다. 이미 엄청난 빚이 있었다. 뉴트는 한숨을 쉬며 허리띠를 풀었다.
수수한 문양이 가득한 옷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여러 겹 겹쳐 입긴 하지만 입는 방법 자체가 어렵지 않은 남성용 옷과 달리 여성용은 복잡한 것투성이라서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꼴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따라온 몸종들도 극구 사양한 뉴트는 가만가만 기억을 더듬었다. 하나뿐인 동생이 시집갈 때 사람을 부를 형편이 되지 않아 어머니와 함께 동생의 혼례복을 입혀준 기억이 있었다.
“난…도대체.”
뉴트는 한숨을 쉬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새 속옷을 입었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있는 순서대로 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몇 겹이나 옷을 겹쳐 입자 어깨가 무거울 지경이었다. 검은색과 붉은색을 기본으로 사용하는 예복엔 단 한 귀퉁이도 빼지 않고 복잡하고 화려한 자수가 한 땀 한 땀 곱게 수놓아져 있었다. 예복에 사용되는 모든 비단에는 금사와 은사를 섞어 넣어서 은은한 빛이 났다. 색실로 꽃과 새 문양을 수놓았다. 그리고 작은 장식 구슬을 끝단에 촘촘히 달아 마무리했다.
“…무거워.”
뭐랄까. 아직 걸칠 것이 몇 가지나 남았는데 벌써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간신히 가장 바깥에 입는 옷을 걸치고 머리에 쓰는 베일을 꺼냈다. 잘랑잘랑 소리가 나는 작은 금판을 달아 만든 화려한 천은 도통 이 집안에 어울리지 않았다. 뉴트는 그대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큰 궤에 들은 옷을 모두 입으면 그다음은 패물이었다. 손가락마다 금으로 만든 반지를 끼고, 팔목엔 몇 가지나 되는 팔찌를 꼈다. 금, 은, 각종 보석으로 만든 팔찌가 수갑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겁게 늘어졌다. 화려한 귀걸이가 몇 종류나 들어있었지만, 뉴트는 귀를 뚫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 남자들은 귀걸이를 하지 않았다. 약간 기분이 나빠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렁주렁 감은 패물의 무게가 더해지자 뉴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영감은 화장까지 하길 원했지만, 뉴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우스운 꼴인데, 남색 가한테 팔려간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요란하게 화장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한숨을 쉬며 입술에 살짝 색을 내는 것을 발랐다.
“시종들이 있는데 뭘 그렇게 꾸물거려.”
“다 했잖아요.”
“그래. 가자.”
뉴트가 머리부터 푹 천을 뒤집어쓰고 문밖으로 나오자, 말을 타고 있던 남자가 혀를 찼다. 보통 남자 체격보다 호리호리한 뉴트는 얼굴까지 가리고 있으니 영 성별을 알 수 없었다. 마차를 준비해준다고 했지만, 극구 사양했다.
“누르. 목적지까지 잘 부탁해.”
오랜만에 보리를 잔뜩 먹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뉴트가 말 위에 올라타자 사람들도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면 뉴트의 머리를 감싼 천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그리고 눈앞에서 부산스레 움직이는 장식이 맑은소리를 냈다.
마음은 착잡해 죽을 것 같은데 날씨는 너무 맑았다. 익숙한 집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서자 뉴트는 영 낯선 눈치였다. 가끔 지나쳐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것 같아 신경 쓰였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고삐를 바투 쥐었다.
“조금만 더 가면 물가가 나오니 거기서 좀 쉬었다 가도록 하자.”
“…….”
“에잉. 도대체 이런 뻣뻣한 녀석이 어디가 좋다고 그러시는지.”
뉴트가 대답을 하지 않자 시종은 혀를 쯧쯧 찼다. 아무리 좋게 봐도 애교라곤 없는 녀석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잠자코 말만 재촉할 뿐이었다.
보통 때라면, 무서울 것 없는 길이었다.
워낙 왕래가 잦은 마을이기도 했고, 그다지 위험한 것도 없었다. 물론 보통 때라면 말이다. 뉴트를 데리고 가던 일행은 물가에 닿기 전 도적을 만났다. 얼마나 빠르고 날쌘지 제대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모두 잡히고 말았다. 사람들을 꿇어앉힌 채 수레와 짐을 뒤지던 거친 녀석들의 손엔 날카로운 칼이 들려있었다. 하지만 부잣집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고, 뉴트를 데리러 온 일행은 많은 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장 아무리 봐도 별거 없는데요!”
“옷차림이 화려해서 좀 기대했는데, 내가 잘못 봤나.”
단단한 근육이 붙은 검은 말을 타고 나타난 도적단 두목이 턱을 쓰다듬으며 혀를 쯧쯧 찼다. 며칠 전부터 부잣집 영감이 이웃 마을로 사람을 보낸다는 소리를 들어 한탕 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단단히 잘못 짚은 것이 틀림없었다.
“…비싼 거라”
“두목 텄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짐이라곤 빈 궤랑 남자 옷 몇 벌이 전부인데요?”
“젠장.”
안 그래도 언제 경비대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남자의 눈에 유난히 반짝이고 귀해 보이는 것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비싼 거라면 여기 있군.”
“…….”
팔자가 사나워도 이렇게 사나울 수 있을까. 단단히 꼬였다며 속으로 투덜대던 뉴트는 도적단 두목이 가까이 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거칠고 단단한 손이 뉴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앗, 하는 사이에 엄청난 힘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왜 짐에 패물이 없나 했더니, 여기에 있군.”
“…….”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지.”
“…….”
뉴트는 눈앞을 푹 가린 천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단단히 잡힌 손목을 빼려고 버둥거리는 것이 영 귀찮았는지 가볍게 뒷목을 쳤다. 아. 눈앞에서 하얗게 별이 튀었다. 뉴트의 몸이 축 늘어지자 그대로 질질 끌어 말에 얹었다.
“돌아가자.”
“두목. 이 말도 괜찮은데 같이 가져갈까요?”
흥분해 이리저리 몸을 흔들던 누르의 고삐를 쥔 부하 녀석이 소리를 질렀다. 가만히 살펴보니 꽤 좋은 말이었다. 그래. 짧은 허락이 떨어졌다. 냉큼 고삐를 당긴 부하가 말을 끌며 자리를 떴다.
“신고하는 건 자유지만, 아마 우리를 찾긴 못할 거다.”
“…….”
“네 주인한테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
아직도 벌벌 떨고 있는 남자에게 가볍게 위협을 가한 후 부하들을 모아 그대로 달려나갔다. 눈 뜬 채 뉴트를 뺏긴 하인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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