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뉴트/민늍] 신부이야기 010
+) NOTICE
신부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앙아시아+무언가 동양 판타지 aU입니다
민호는 도적단 두목 / 뉴트는 팔려가던 중
기본적인 의상에 대한 묘사는 촐님(@go00chol)의 그림을 보고 연성했습니다
촐님(@go00chol), 로케님(@goroke11)과 같이 풀던 썰을 기반으로 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궁금함이나 문의는 댓글 방명록 트위터 등 편한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_<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정부분 연재 후 1월 민늍온에 신간으로 나옵니다 샘플은 지우지 않아요
새벽부터 일어난 뉴트는 혼자 바빴다. 일단 본거지까지 끌고 갈 양의 상태를 살펴본 다음, 진흙으로 엉망이 된 옷도 정리해야 했다. 양이야 별다른 일이 없으면 천천히 끌고 돌아가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옷이었다. 지나치게 치렁거리는 옷은 조금만 질척한 곳에 가면 진흙이 덕지덕지 묻었다. 신발부터 옷 밑단까지 엉망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던 뉴트는 픽 웃고 말았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했지만, 이런 모습으로 하루도 넘게 걸어 다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럼…이 옷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가만히 내려다봐도 딱히 좋은 생각은 나지 않았다. 민호가 그렇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벗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귀찮은 상태로 입고 다니기도 좀 그랬다. 죄 없는 치맛자락만 쥐었다 놨다 하던 뉴트는 퍼뜩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조용히 누군가를 찾았다.
잠시 뒤 뭔가 손에 가득 들고 온 뉴트는 속바지만 입은 채 치마를 벗었다. 그나마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이라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쉬운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무겁고 큰 가위를 든 뉴트가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치마 밑단을 잘라냈다. 한 뼘도 넘게 잘라낸 다음 허리에 대보면서 길이를 가늠했다. 살짝 긴가. 영 애매했다. 조금 더 갈라내고 나니 진흙으로 엉망이 된 부분이 죄다 잘려나갔다.
“이 정도면 되겠지.”
가위를 내려놓은 뉴트는 색실이 가득 담겨있는 바구니를 손끝으로 끌었다. 색색 실을 치맛단에 대보며 가장 어울리는 색을 찾던 뉴트는 약간 붉은빛이 나는 실을 꺼내 들었다. 사실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살아야 했다. 정말 필요할 때 아니면 바느질은 손도 안대로 사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 아 귀찮아. 자기가 시작한 주제에 입으론 끊임없이 툴툴거렸다. 대충 얼기설기 잘라낸 치맛단을 말아서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새 손이 굳었는지 바늘은 반대쪽 손가락을 열심히도 찔러댔다. 한번 찔릴 때마다 미간에 주름이 쫙쫙 가기 시작하더니, 이젠 누구 하나 잡아 죽일것 같은 표정으로 바늘을 움직였다.
“…뭐해?”
“악!!”
결국, 민호가 일을 쳤다. 아침부터 거지 마루 끝에 걸터앉아있는 뉴트를 보고 어깨를 툭 쳤을 뿐인데, 죽는소리가 흘러나왔다. 민호는 그대로 굳었고 뉴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뉴트? 뭐해?”
“바느질하잖아. 그리고 대차게 찔렸고.”
피가 송송 올라오는 엄지손가락을 보던 뉴트는 당장 이 치마를 내던지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건데. 근데 정작 그 당사자는 팔자 좋게 사람이나 놀라게 해서 이렇게 피를 보게 한다. 씩씩거리는 뉴트의 얼굴과 피가 방울방울 맺힌 손가락을 번갈아 바라보던 민호는 뜨악한 표정으로 허둥댔다. 맨발로 바닥에 내려와서 뉴트의 손을 잡고 찬찬히 살폈다.
“…왜 이래?”
“네가 놀라게 해서 바늘에 찔렸다. 치마가 너무 치렁거려서 도저히 다닐 수가 없다고.”
“…….”
“됐으니까 하던 일이나 계속해. 조금만 더 하면 끝이니까.”
뉴트는 한쪽 다리를 다시 꼬며 몸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민호가 냅다 낚아챘다. 아. 놀랄 새도 없이 민호가 엄지손가락을 혀로 슥 핥았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눈만 깜박였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따뜻한 혀가 손가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뭐하는 거야.”
“그냥 두면 치마에 피 묻잖아.”
“아니…그러니까. 내가 해도. 아니, 그게.”
“…….”
“…그러니까.”
뉴트의 얼굴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민호의 손에 단단히 잡힌 손가락들이 간신히 꼼실거렸다. 냅다 뿌리칠 수도 없었다. 눈만 깜박이며 민호를 쳐다보니, 그쪽 상황도 비슷했다. 괜스레 손을 한 번 더 만져보고 쓸어보던 민호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약 없으면, 저기 주인한테 가서 좀 달라고 해.”
“그 정도는 아냐.”
“그러면 다행이지만.”
“…그. 아니야.”
뉴트는 눈에 띄게 허둥지둥 움직였다. 이젠 왜 손가락에 피가 났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났다. 온몸의 신경이 다 손끝에 몰린 것 같았다. 민호는 금방 갈 것 같으면서도 계속 기웃거렸다. 뉴트의 얼굴이 점점 더 잘 익은 토마토처럼 빨갛게 변했다. 생각해보니 속바지만 입고 있던 것 같지만, 차라리 이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모른 척 반쯤 돌아앉아 바느질을 시작하는 뉴트의 손가 살살 떨렸다. 민호가 조금만 더 바라보면 다시 손가락을 대차게 찌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행히 민호는 말을 점검하러 사라졌다. 시야에서 녀석이 사라지자마자 뉴트는 한숨을 푹 쉬며 치마를 내려놓았다. 풀썩. 치마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왜 이렇게 심장이 말을 듣지 않는지. 손은 왜 이 모양이고, 얼굴은 터질 듯 붉어져서 가라앉지 않는지. 아침부터 심란했다.
“뉴트. 치마가 짧아졌네?”
“움직이기 귀찮아서 아침에 수선을 좀 했지.”
“…바느질 배웠어?”
“바느질은 무슨.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해야겠다 싶어서 기본만 하는 거야.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다닐 순 없잖아.”
“그건 그렇지.”
뭐가 그렇게 웃긴 대답인지 와르르 웃는다. 뉴트는 작게 자른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다 눈썹을 찡그렸다. 도대체 이놈들이 웃는 포인트를 당최 잡아낼 수 없었다. 이쯤 되면 익숙해지는 쪽이 나을 것 같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었다. 말투가 웃긴 것도 아니고, 소재가 특이한 것도 아닌데 웃음이 참 많았다.
“그래도 편하겠다.”
“이걸 벗으면 더 편하겠지.”
“민호가 좋아하잖아.”
“…그만해라.”
“뭘 그 정도만 해요 대장.”
또 살살 긁어대는 통에 뉴트는 가운데 껴서 땀만 뻘뻘 흘렸다. 물론 진짜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잘 알기에 한마디 하고 말았지만, 민호가 그럴 때마다 얼굴이나 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걸 보는 것도 나름 재밌었다. 시끌시끌하던 식사가 끝나면 몇몇은 방바닥에 늘어지고, 나머진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 일이라며 조금이라도 더 놀고 온다고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을 치곤 했다. 하긴 맞는 말이었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보다 훨씬 더 사고 위험이 많으니까. 민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쯧쯧 혀를 차더니 물주머니를 채우러 사라졌다. 그 옆에서 짐을 나눠 들은 벤은 자꾸 옆구리를 찌르며 낄낄 웃었다.
***
민호가 물주머니를 방안에 내려놓는 것을 시작으로, 다들 분주히 짐을 챙겼다. 어차피 들고온 짐은 별로 없었다. 무거운 곡식은 나눠 싣고, 무기가 될만한 날카로운 것은 모두 민호가 가져갔다. 한없이 풀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절대 어기면 안 되는 규칙이 있었다. 뉴트는 물가에서 쉴 때 헤어지기로 했다. 양들도 목을 축여야 하기에 시간이 좀 걸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척은 걱정 말라고 가슴을 탕탕 쳤지만 어째 다들 미덥지 못한 듯했다. 누르에게 안장을 얹고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양쪽에 매달았다. 물주머니와 약간의 음식.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칼과 활까지. 물론 활은 밤 마실을 다녀온 민호가 대뜸 뉴트 품에 안겨준 것이긴 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두 번이나 받은 뉴트는 더는 거절할 수 없어서 활통을 단단히 맸다.
“…뉴트 활을 쏠 줄 알아?”
“어느 정도는? 나중에 그쪽 지리에 익숙해지면, 토끼 사냥이라도 나가볼까 싶어서.”
“신기하네.”
“적당히 먹고 살려고 그러는 거지.”
뉴트가 또 웃었다. 민호를 선두로 먼저 달려나가는 한 무리 남자들을 내내 바라보았다. 어차피 거리가 벌어질 거면 중간에서 만나는 쪽이 나았다. 양들을 뒤에서 몰기 시작한 뉴트는 앞장 선 척한테 뭐라 뭐라 손신호를 보냈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뉴트도 장터를 떠났다. 평생 다시 올 수 없는 곳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허전했다. 아쉬운 듯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던 뉴트는 고삐를 바짝 당기며 양을 몰았다.
“뉴트.”
“왜 그래?”
“어디 안 가고 여기서 살 거야?”
“…난 갈 곳이 없어.”
“그러면 나야 좋지만. 사실 나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거든. 다들 어리다고 잡다한 일을 하는 거 외엔 잘 안 끼워주고.”
통통한 뺨을 바라보던 뉴트가 가늘게 눈을 접었다.
“그야, 어린애들을 위험한 곳에 몰아넣는 건 못 할 짓이라 그렇겠지.”
“…그런가?”
“그래. 딱히 할 일이 없으면 나랑 같이 양이라도 돌보면 되겠네.”
“허락받아 올까?”
“그래.”
민호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린애들은 따돌린다는 느낌이 들면 쉽게 땅을 판다. 물론 도적 무리 내에 척 또래가 없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할 것 같진 않았다. 하긴 무리에 속한지 얼마 안 된 뉴트 눈에도 척은 항상 겉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부엌일을 담당하는 프라이는 불이 있으니 위험하다고 떠밀고, 직접 도적질을 하는 녀석들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양 잘 키우면 프라이한테 치즈도 만들어 달라고 하고.”
“그렇구나.”
“가끔 잔치할 때 한 마리씩 잡을 수도 있고. 그 근방에 먹일만한 풀이 없어서 좀 멀리 나갔다 와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녁 먹기 전엔 항상 돌아올 수 있겠지.”
“잘 키워서…….”
그새 기분이 좋아진 척이 가볍게 걷는 양옆에 바짝 붙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까진 멀지 않았다. 다들 땀도 식히고 목 좀 축이고 있을 무렵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그쯤까진 뉴트도 아는 길이었다. 그 이후로 전혀 몰라서 문제지만. 노숙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길이라도 잃게 되면 어찌하느냐며 민호는 내내 둘을 걱정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녀석을 붙여줄 수도 없었다.
물론 민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친구의 고민거리를 바라보던 벤이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것도 딱히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척의 말엔 그렇게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없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예상외의 짐에 민호는 끙끙 앓았다. 영 못 미더운 표정으로 척한테 몇 번이나 가는 길을 물어봤다. 척은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지도를 그려 보이고 나서야 겨우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은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가에서 목을 축이는 말이 눈에 들어오자 거리가 확 짧아졌다. 물주머니를 내려놓던 민호가 둘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잠깐 만났다 다시 헤어지겠지만, 그 사소한 시간이 중요했다. 뉴트가 가볍게 말에서 내렸다. 수고했다고 목을 두드려주고 갈기를 쓸어주면서 물가로 데려갔다. 양 떼는 한곳에 모여서 시끄럽게 울어댔다. 작은 웅덩이 쪽으로 몰아가서 물을 먹이고 나서야 뻣뻣하게 굳어있던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이제 돌아가서 만나겠네.”
“영 불안한데.”
“이 근방에 나타나는 도적무리가 여기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
뉴트가 손으로 민호의 가슴을 툭 쳤다. 뭐 맞는 말이니 반론을 할 수 없었다.
“길 잃어버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돌아와.”
“…그렇게 걱정돼?”
“당연하지. 이곳에선 사람이 곧 재산이고, 모두 중요하니까.”
“…아하.”
“어지간하면 내가 옆에서 끌고 가고 싶지만, 내가 빠질 순 없는 노릇이라.”
“척이 잘 알고 있는데 무슨 큰일이 있을까.”
“…밖으로 잘 안 데리고 다닌 놈이니까 그러지.”
도적 답지 않게 걱정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민호는 준비가 됐다며 한발 먼저 물러섰다. 뒤를 돌아보면 더 기분이 싱숭생숭할 것 같아 애써 돌아보지 않았다. 땅을 박차는 말발굽 소리가 와르르 지나간 곳은 적막이 흘렀다. 뉴트는 나무에 기댄 채 스르르 주저앉았다. 이제 쉬지 않고 달리려면 사람도 말도 조금 더 쉬어야 했다. 척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주변을 살피다 잽싸게 육포 조각을 하나 들고왔다.
민호는 도착하자마자 내내 뉴트와 척 걱정을 했다. 짐을 옮기는 와중에도 때때로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가보라는 소리에 그런 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벤은 참 속마음을 못 숨긴다고 껄껄댔다. 물론 당장 달려가서 데려오고 싶었지만, 만에 하나 길이 엇갈린다면, 그것대로 문제였다. 민호가 이곳에서 자리를 비우는 것은 도적 일을 하러 나갈 때 뿐이었다. 애초에 두목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민호는 멋대로 빠질 수 없었다. 프라이는 뭘 이렇게 많이 사왔냐며 싱글벙글 웃었다. 늘 부족한 채 요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재료를 사 올 때는 마음껏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소금. 향신료. 밀가루. 쌀. 부탁한 재료가 다 들어왔는지 손가락을 접으며 살펴보던 프라이 눈에 낯선 자루가 눈에 띄었다.
“민호. 이건 뭐야?”
“뭐?”
“내가 부탁한 재료가 아닌데?”
“아, 그거 돈이 남길래 이것저것 더 사 왔어. 풀어봐.”
“과일?”
“가끔 그런 거 먹을 수도 있지.”
단단한 껍질을 가진 과일이 포대 가득 담겨있었다. 물론 평소에 못 먹는 것이니 사다 주면 두말없이 받긴 하지만, 참 별일이다 싶었다. 민호는 칼이며 숫돌이며.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놈들한테 하나하나 나눠주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은데, 뉴트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해가 질 것이 분명한데.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민호야 이곳에서 오래 살았으니,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뉴트와 척은 아니었다. 혹시 다른 곳으로 방향을 잘못 잡았을까. 오다 사고라도 났나. 걱정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저기 오는데요.”
“…….”
“대장! 뉴트랑 척이 돌아옵니다!”
마침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양 몇 마리가 영 말을 듣지 않아 늦었다며 뉴트가 웃었다. 누르의 등에서 짐을 내리던 화려한 옷을 입은 녀석이 갑자기 끌려갔다. 민호가 한 품 가득 뉴트를 안은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뉴트는 어버버 소리만 내며 팔을 휘저었다. 또 얼굴이 확 붉어졌다. 민호는 잘생긴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말이 없었다. 무기를 손질하려고 앞마당을 가로질러가던 벤은 그 꼴을 보고 칼을 떨어뜨렸다. 카랑카랑. 흙바닥에 날카로운 쇠붙이가 쏟아졌다.
“…저, 민호. 민호?”
“걱정했다.”
“아니. 누가 보면 지옥이라도 다녀온 줄 알겠어.”
“…….”
“다들 보고 있잖아. 이것 좀 놔봐.”
“…….”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난 이제 갈 곳이 없어서 어디 안 가. 그러니까 도망 같은 거 안 간다고 했잖아.”
“…….”
“…어휴.”
이럴 때는 고집이 얼마나 센지. 간신히 품에서 벗어난 뉴트는 손바닥으로 볼을 꾹꾹 누르며 시선을 슬슬 피했다. 굉장히 민망한 기분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자. 자. 할 일들 합시다. 프라이랑 벤이 사람들의 등짝을 한 대씩 때리며 쫓아냈다. 늦게 찾아온 사춘기 같은 감정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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