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뉴트/민늍] 신부이야기 005
+) NOTICE
신부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앙아시아+무언가 동양 판타지 aU입니다
민호는 도적단 두목 / 뉴트는 팔려가던 중
기본적인 의상에 대한 묘사는 촐님(@go00chol)의 그림을 보고 연성했습니다
촐님(@go00chol), 로케님(@goroke11)과 같이 풀던 썰을 기반으로 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궁금함이나 문의는 댓글 방명록 트위터 등 편한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_<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도적 무리와 함께 사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뉴트 뒤에 대장인 민호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것도 어떻게 보자면 뉴트가 얻은 행운이었다.
“…….”
하지만 그런 행운을 손에 쥐었음에도, 뉴트의 표정은 언제나 찝찝함이 가득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사람을 납치해왔으면 재빠르게 팔아버리던가,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기도 했다. 그나마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잘했던 노동 종류라도 말해야 하는 걸까. 이곳에 양이라도 있으면 그쪽을 돌보면 될 텐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일이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
차라리 끌고 나가서 말 먹이라도 주라고 떠미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았다. 뭔가 할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 단장해 팔아버릴 것 같지도 않았다. 두목이라는 놈은 하루에 세 번 밥을 가지고 들어와서 네 말은 잘 있다는 둥 헛소리나 해댔다. 아, 물론 누르가 무사하다는 소리는 굉장히 기뻤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하긴 뭐 좋다고 얼굴 맞대고 대화하면서 밥을 먹겠어.’
여전히 몸에 주렁주렁 감긴 천을 정리하던 뉴트는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밥도 잘 챙겨주고, 험한 일도 시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 천막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잠자리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호화로웠다. 도적단 두목의 천막을 차지한 녀석은 뻔뻔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을 만큼 황송한 대접을 받았다.
사실 불편해서 죽을 것 같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서 자라면 잘 수밖에 없었다. 민호가 사용하던 이불과 잠자리는 어느새 뉴트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물론 천막 주인은 일주일 째 밖에서 밤을 새우다 한 소리를 들었는지 죽을상을 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
“내가 나갈까?”
“아니야.”
사실 밖에서 자도 상관없는데, 뭐 그리 큰일 날 소리를 들은 건지 무뚝뚝하게 대화를 확 끊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천막 가장자리가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이불 하나 방석 하나 나눠가며 잠을 자기 시작한 것이 벌써 일주일도 넘었다.
민호는 민호대로 맨바닥에 누워있으니 온몸이 결리고, 뉴트는 뉴트대로 이 상황이 너무 불편해서 잠을 설쳤다. 그래도 불편하단 소리를 입 밖에 낼 수 없어 꾹꾹 참으며 삼일을 같이 지냈다. 하지만 몸이 결리고 불편한 것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거기서 자지 마.”
“…응? 불편해? 나갈까?”
“…….”
“미리 이야기하지.”
“아니…내 말은 그게 아니고!”
벌떡 일어서는 민호를 다시 잡아 앉혔다. 도대체 이런 눈치로 대장 자리는 어떻게 꿰어찬 건지. 뉴트는 직접 말하기도 부끄러운 소리를 하나하나 밖으로 풀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민호는 머리를 긁으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긍정도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는 얼굴을 바라보던 뉴트는 괜한 말을 했다면서 돌아앉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같은 이불을 쓰기로 한 날부터 둘의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뭐 주변을 맴도는 부하 녀석들은 좋은 소식이라도 있을까 싶은 모양이었지만, 둘은 당장 이 어색한 공기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 만 가득했다. 자고 일어나서 서로 마주 보는 상황은 며칠 겪다 보니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 도저히 그 아래로는 시선을 내릴 수 없었다. 천막에선 옷을 입는 쪽이 감기에 쉽게 걸린다. 이 이야기가 그렇게 억울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 안 그래도 작은 이불 끝과 끝에 자리 잡은 둘은 금방이라도 구를 것 같았다.
“…….”
물론 해가 뜨기 한참 전부터 둘은 눈을 뜬 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먼저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자는 척 고른 숨만 내쉴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바깥에서 해가 떠올랐다. 이 정도 시간이 흐르면 더는 버틸 수 없었다.
“…….”
민호가 일부러 잠이 덜 깬 척하며 끝까지 등을 돌리고 누워있으면, 뉴트가 먼저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이불이 스르르 구겨지는 소리가 들릴 때면 민호의 귀가 또 벌겋게 물들었다. 죽은 듯 누워있으면 뉴트는 손끝으로 더듬어 옷을 끌고 왔다.
“…이걸 또 언제 입지.”
낮은 투덜거림조차 천막 안에선 너무 크게 들리곤 했다. 뉴트는 몇 번이나 한숨을 쉬면서도 제법 빠르게 옷을 챙겨 입었다. 민호는 여전히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며 자는 척했다.
처음엔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서로 일어나 각자 옷을 입긴 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물론 허겁지겁 손을 놀리다 보면 꼭 실수했다. 손이 서로 엉켜서 서로 남의 옷을 들고 가기도 하고, 소매가 서로 엉켜서 끙끙거리며 풀기도 했다. 그러다 알몸 상태로 서로 마주 보고 난 이후로 유난히 내외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뉴트는 입을 옷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끙끙거리며 옷을 입던 녀석은 결국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겉옷을 내팽개쳤다. 절그럭거리는 장신구 소리도 요란했다. 아이 씨.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민호의 귀에 쿡 박혔다. 그런 소리까지 들었는데 계속 자는 척을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 그래.”
“…….”
“뭐가 그렇게 또 짜증이…….”
“너 같으면 안 그러겠어?”
“…….”
민호가 모른 척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물론 진작 민호가 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뉴트는 샐쭉하게 눈을 흘겼다. 반쯤 걸치다가 만 옷을 추스를 생각도 하지 않고 민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속살을 본 것도 아닌데 어쩐지 눈을 둘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차피 나 팔아버릴 거 아니지 않아?”
“응?”
“맞아? 아니야? 대답해 봐.”
“그야……”
민호는 또 말끝을 흐렸다.
자신은 이제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부하들의 생각을 알 수 없었기에 함부로 단언할 수 없었다. 뉴트는 딱히 감정이 보이지 않은 녀석의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뭐…좋아.”
“…….”
“사실 팔아버린다 해도 그 때 되면 알아서 옷을 주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답답하네. 진짜.”
뉴트가 또 미간을 구겼다. 잠깐 같이 있는 동안 민호가 겨우 눈치를 챈 뉴트의 버릇이었다.
“뭐가.”
“그런 눈치로 잘도 이런 무리를 이끌고 있네.”
“…….”
“어차피 팔아먹을 것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가둬만 둘 거라면 옷 좀 바꿔 입으면 안 될까?”
“…뭐?”
“매일매일 이 많은 옷을 껴입어야 하는 내 생각을 좀 해 달라 이거야. 지금 당장 날 팔진 않을 거니까.”
“…….”
민호는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런 녀석을 보는 뉴트는 생각보다 훨씬 필사적이었다. 당장 이 거추장스러운 옷만 벗게 해준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민호는 그 부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입을 꾹 다문 채 뉴트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
“내내 여기 있을 건데 대충 아무거나 입으면 또 뭐 어때서. 어차피 원래 내 것도 아닌 옷이었어.”
“…….”
“뭘 원하는지 정말 모르겠네.”
뚱한 민호 앞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댄 뉴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원래 그리 말이 많은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자기가 입고 지낼 옷은 아니었다. 차라리 이곳에 오는 과정에 어딘가에 걸려 갈기갈기 찢어졌으면 하고 빌 만큼 귀찮은 옷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튼튼하게 만든 옷인지 하나 찢어진 곳 없이 곱게 끌려왔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 매일 아침 몇 겹이나 되는 옷을 껴입고 장신구까지 주렁주렁 달고 앉아있어야 했다. 물론 장신구야 목숨값 정도로 생각하면 들고 있을 수라도 있지, 도무지 이 옷은 한군데 쓸 곳이 없었다. 누군가 일한 만큼 먹으라면서 일을 시킨다 해도 이렇게 치렁치렁한 것을 걸치고선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응? 안되냐고.”
“그냥 그러고 있어.”
“가만히 있으면 누가 공짜로 밥이라도 먹여준대? 나도 어차피 여기 계속 있어야 하겠다. 밥값은 해야 할 거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뭐?”
“그럴 필요 없다고.”
민호는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한 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트는 민호의 옷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한 박자 늦었다.
“그냥 여기 있으면 돼.”
“…….”
“그렇게 알아둬.”
또 한 번 정적이 찾아왔다. 천막 문이 단단하게 막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뉴트는 다리를 쭉 뻗으며 짜증을 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여기에 갇혀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곱게 자랐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집이었다. 비록 지금 꼴은 이 모양이지만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입에서 쓴맛이 돌았다.
***
“민호 왜 표정이 그래?”
“응?”
“다 죽어가는 표정에 미간엔 그냥 주름이 펴지질 않네.”
프라이가 껄껄 웃으며 손가락으로 민호의 미간을 꾹꾹 눌러 펴줬다. 민호는 한쪽 눈을 찡그리면서 피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프라이는 그런 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국, 민호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나서야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니까?”
“…그게.”
“뉴트 때문에?”
“…….”
이렇게 쉽게 티가 날 것이면서 왜 저렇게 빙빙 돌아가는지. 프라이는 뒤늦게 찾아온 친구의 사춘기를 보며 약간 짠한 마음이 들었다. 뭐라고 해줘야 할지.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할지. 프라이도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나름대로 속이 복잡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두면 저 녀석은 내내 가슴앓이만 할 것이 분명했다. 누구 하나라도 좀 이리 밀고 저리 당겨줘야 하는데, 정작 저 친구는 영 그런 쪽에 재능이 없었다.
“그래도 얼굴 좀 펴고 다녀. 애들이 불안해한다.”
“알고 있어.”
“첫사랑이라도 하는 건지.”
“그런 거 아니다.”
“그래? 그럼 말고.”
“…….”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돌렸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분명 와락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이럴 땐 그만 말해야지. 프라이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 시커멓게 얼굴이 죽어가는 놈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넌 항상 알아서 잘 하잖냐. 뭘 걱정해. 오랜 친구의 말에 민호는 조금 얼굴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뉴트가…….”
“왜?”
몇 번 망설이던 민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제야 말을 해주나 싶어서 프라이는 귀를 쫑긋 세웠다.
“아무래도 여기서 사는 게 불편한 걸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하신 네가 저렇게 귀하게 모셔놓는 사람이 처음이라 다들 놀라긴 했지만…….”
“그런 말이 아니고.”
“그러면?”
“그러니까.”
결국, 이야기를 풀어놓는 민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프라이의 표정은 점점 미묘해졌다.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민호의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정말 그것 때문에?”
“이게 심각하지 않다는 거야?”
“아니 뭐…심각할 순 있겠지만.”
“…….”
“그러면 그냥 옷을 가져다주는 게 낫지 않아? 어차피 여기 애들도 다 아무거나 적당히 걸치고 지내잖아.”
“…….”
“뭐 같이 약탈 일하러 나갈 거 아니면 적당히 옷 입혀서 돌아다니게 하면 되는 거잖아?”
“하지만…….”
민호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잘 어울리니까. 굳이 여기 있다고 똑같이 어울릴 필요도 없고.”
“…….”
“안 그래? 옷이라고 해봤자 이것저것 껴입고 다니는 것이 전부인데. 내가 뭐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뉴트는 그냥 그 일을 안 시킨다는 거에 굉장히 불만이 있고, 불안해하는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 프라이는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도대체 이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저렇게 빙빙 돌려 이야기를 하지만, 결론은 자기가 보기에 예쁘고 좋으니 벗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간신히 내보이는 자기 욕심이 귀엽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 나이다운 것 같기도 했다. 물론 프라이와는 그리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차피 여기 떠나서 갈 곳이 없다는 확답을 받으면 그냥 좀 밖에 돌아다니게 놔둬도 괜찮잖아.”
“그런가.”
“그래. 그러면 적당히 할 일도 생길 거고.”
“하지만…….”
“네가 그렇게 싸고도는데 누가 감히 뉴트를 건드리겠냐.”
“아니라니까.”
“아니긴. 다른 애들은 죄다 네가 그 녀석이 마음에 들어서 천막 안에 들여앉혀 놓고 얼굴도 안 보여주는 거로 생각할 걸.”
“…….”
얼굴이 또 한 번 벌겋게 익었다.
일하러 간다고 나갈 때면 이 세상에 다시없을 남자처럼 굴면서, 이럴 때 보면 천상 소년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이렇게 한마디 해서 뭔가 진전이 있으면 좋겠지. 프라이는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어지간하면 같이 살 건데, 얼굴도 좀 보여주고 그래.”
“…….”
“진짜 부인으로 들여앉힐 거면 말리진 않겠지만.”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적당히 안면 트고 지내자는 거지. 말은 안 해도 그날 네가 뉴트 안고 들어간 이후로 굉장히 궁금해하는 눈치던데.”
“…….”
“알았어?”
“알긴 뭘 알아. 그리고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민호가 볼을 마구 문지르며 빙글 돌아섰다. 은근히 섞인 성적인 농담에 유난히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오겠다며 말을 끌고 나왔다.
“어디가.”
“아무래도 밖을 한 번 둘러봐야 할 것 같아. 너무 오랫동안 긴장을 풀고 가만히 있었어.”
“…….”
꼭 이렇게 뭔가 할 말이 떨어지면, 휙 사라지곤 했다. 저녁 먹기 전엔 들어와! 프라이가 냅다 지른 소리가 민호의 뒤꽁무니에 철썩 날아가 붙었다. 딱히 경비대가 올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말리진 않기로 했다. 프라이는 민호가 그러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민호는 자기만의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 같았다.
***
‘…어쩌지.’
마구 말을 재촉해서 달리는 와중에도 민호는 복잡한 머리를 도무지 정리할 수 없었다. 몸은 자꾸 고삐를 잡고 말을 다그치는데 머릿속은 딴생각만 가득했다. 아차 싶으면 그대로 낙마를 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지만, 민호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말을 더 오래 탔던 녀석이었다.
“…….”
몇 번이나 고개를 저으면서 좋을 대로 말을 몰았다. 거친 숨을 내뿜으며 달리던 말이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민호가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곧잘 오곤 했던 호수였다.
“…….”
민호는 훌쩍 말에서 뛰어내렸다. 여기에 얌전히 있어. 말 콧잔등을 몇 번 석석 쓸어주고 나서, 천천히 호숫가로 걸어갔다. 주변에 수북하던 풀 더미는 노랗게 죽어가고 있었다.
“벌써 겨울이 오는 건가.”
그러고 보니 바람이 쌀쌀해진 것 같았다. 민호는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을 느끼며 가늘게 눈을 떴다. 아직은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겨울은 빠르게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금방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이 부근은 바짝 말라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 민호는 몇 해나 봤던 풍경이지만, 내내 새로웠다.
“…춥다.”
하얀 숨이 금방이라도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얼어버릴 것 같았다. 도적들이야 양을 많이 키우지 않았다. 하지만 유목 생활은 하는 사람의 재산인 양을 먹이려면 빨리 떠나야 할 시기였다. 하나둘 사람들이 떠나면 이 구역에 남는 것은 민호와 그의 무리뿐이었다.
“너도 마찬가지지.”
민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옆에 다가온 녀석이 주둥이로 주인의 팔을 툭툭 쳤다. 그런 애마를 바라보던 민호는 피식 웃으며 단단한 손으로 목을 두드렸다. 말은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종종 이렇게 생각을 읽는 것 같은 행동을 하곤 했다. 민호는 그래서 동물을 좋아했다.
“좀 더 추워지기 전에 여기에 한 번 더 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좋은 곳인데 좀처럼 모른다. 이 말이지.”
“…….”
“안 그래? 야쿠브.”
민호는 낮게 웃으면서 말에 슬쩍 기댔다. 사람보다 높은 따뜻한 체온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민호는 한껏 늦장을 부리고 있었다. 프라이에겐 저녁 먹을 때까지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이미 해가 저 멀리 기울어지고 있었다.
“너무 늦었나.”
길게 그림자가 늘어지는 걸 눈치를 챈 민호가 말에 얹어진 안장을 다시 조절해줬다. 몇 번 주변을 살피다 발판에 발을 걸고 훌쩍 뛰어올랐다. 그리곤 고삐를 바짝 당겨서 돌아갈 길을 재촉했다.
‘…이런 아무래도 저녁 시간이 끝나서 도착하겠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차 싶었다. 당장 저녁 시간에 꽁꽁 갇혀있어야 할 뉴트를 떠올리니 괜히 미안해졌다. 좀 더 빠르게 부탁해. 야쿠브. 민호가 고삐를 바짝 당기며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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