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걷다
+) NOTICE
윈솔 기반 럼로우와 버키 이야기
뭔가 진행하다 끊어진 이유는 원고로 하려던 플롯을 급하게 떼서 쓴거라..
시간이 되면 이것도 원고로 하고 싶네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이건.”
“자네는 의문 가질 것 없네.”
“…….”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거야.”
“그야 물론입니다.”
“그럼 어서 가보게.”
“…….”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애초에 의문이란 것을 가져서는 안 될 곳이긴 하다. 늘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남자의 머리는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있었다. 뭐라고 할까. 기묘하고 비틀린 곳. 하이드라의 내부는 딱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뭔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무슨 생각하지?”
“예? 아닙니다. 오늘 잠을 못 자서요.”
능글능글하게 대화를 넘겨버린다. 남자는 적당히 꼬리 말고 살아가는 법을 익혔고, 송곳니는 감추는 쪽이 좋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그런 남자를 영 못 미더운 표정으로 살피는 상사는 딱히 잡을 트집이 없는지 곧 시선을 돌려버렸다.
‘큰일 날 뻔 했군.’
럼로우는 조용히 마른 침을 삼켰다. 매번 이렇게 한 번씩 의심을 받으면서도 자꾸 시선이 다른 쪽을 향하곤 한다. 물론 왜 그런 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근본 없이 전쟁터에서 굴러먹고 살아왔던 남자지만, 요새 하이드라 내부에서 보는 일은 그것보다 더 끔찍했다. 잔인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곤 한다. 물론 남자는 먹고 살기 위해 하이드라를 선택했느니 양심의 가책은 가지지 않았다.
“무기를 준비시킬 테니 데리고 이동하게.”
“절 너무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
“뭐?”
“그 녀석을 다룰 사람이 그렇게 없으신가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나마 네가 쓸 만하지.”
“보모 질에 소질이 있다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자네는 참 웃긴 사람이군.”
“감사합니다.”
짧은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물론 럼로우는 이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귀한 무기를 꺼내지 않는다. 어쩐지 꽤 길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갑자기 몇 년 동안 쓰지도 않던 윈터솔져를 꺼냈다. 물론 무기는 녹이 슬기 전에 한 번씩 손질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 무기는 아니었다. 해동하는 그 순간부터 괴로워하곤 한다. 오히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 쪽이 더 나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하이드라는 그런 녀석의 상태를 고려해줄 만한 집단이 아니었다.
“…….”
“맛이 갔군.”
“…….”
“어서 준비해.”
제대로 해동이 되지 않은 몸에선 버석버석 녹다가 만 얼음이 뚝뚝 떨어진다. 식도부터 장기까지 안쪽은 아직도 얼어붙어서 말을 하지 못한다. 딱딱한 관절로 걷는 덴 무리가 있으므로 덩치 좋은 남자 둘이 그 무기를 어깨에 들쳐 메고 질질 끌어서 옮기곤 했다. 그런 다음 맛이 가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녀석을 의자에 앉혀서 전기로 잘 튀겨서 억지로 움직이게 하였다. 턱이 덜덜 떨리면서 말도 못하고, 눈은 자꾸 풀어지는 녀석은 의지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망가진 인형 같았다.
“솔져?”
“…….”
“됐어. 이 정도면 이동하는 새에 정신이 들겠지.”
“…….”
“다들 준비하고, 둘은 이 녀석 옮겨다 싫어. 럼로우는 따로 좀 오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참 직장생활이 어려웠다.
*
“아, 젠장. 이 새끼는 또 왜 이래?”
“아직 제정신이 안 든 것 같습니다.”
“무거워 죽겠는데, 이 녀석을 어떻게 끌고 저기까지 올라가란 말이야.”
“…….”
“팔을 떼서 따로 옮겨주던가. 이 덩치에 이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라고 하는 건지.”
“…….”
“어쩔까요?”
“뭘 어쩌겠어. 옮겨야지.”
“…하지만.”
“적당히 끌고 올라가다가 뺨이라도 몇 번 쳐줘. 정신이 들면 움직이겠지.”
안 그래도 뜬금없는 출장에 짜증이 날 대로 난 럼로우는 연신 시커먼 산길을 보며 투덜거렸다. 달이 구름에 숨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무가 빽빽한 숲을 통해 올라가자니 눈앞에 먹물을 푼 것처럼 새카맣기만 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사람 한 무리와 망가진 무기가 걸어 올라간다. 물론 제 발로 걷지 못하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야.”
“…예?”
“그 새끼 잘 잡고 있어 봐.”
“무슨…….”
결국 짜증이 난 럼로우가 냅다 뺨을 쳤다. 휙 돌아간 얼굴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럼로우는 얼얼한 주먹을 몇 번 쥐었다가 다시 폈다. 꼭 얼음을 때리는 것 같았다. 해동 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도 몸이 얼음장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냐오냐 봐주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엿 같았다. 다시 한 번 손을 들자 그새 알아챘는지 무기의 얼굴이 슬슬 움직인다.
“정신 차린 거 알아.”
“…….”
“일어서. 에셋.”
“…….”
“더 맞을래?”
“…….”
사실 럼로우는 그나마 이 불쌍한 무기한테 잘해주는 축에 드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갑자기 이렇게 외진 곳까지 출장을 나와서 본 꼴이 이거니 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적당히 거칠고 사나웠다. 그런 남자의 성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셋은 천천히 자신을 떠받치고 있던 둘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곤 조용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정신이 들어?”
“…….”
“됐네. 가자.”
“…….”
“싫으면 머리채 잡고 끌고 올라갈 줄 알아.”
“…….”
에셋은 그 말을 듣자마자 척척 걸음을 옮겼다. 물론 럼로우가 좀 더 빨랐다. 책임자보다 먼저 가는 무기가 어디 있느냐며 화도 낸다. 그러면서도 때린 곳에 상처가 나지 않았는지 슬쩍 살펴본다. 워낙 튼튼한 녀석이니 평범한 인간이 한두 대 때린다 해서 상처가 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또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잘해주던 기억이 있으니 자꾸 신경이 쓰인다.
녀석이 움직이는 발자국에선 하얗게 성에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럼로우는 그 이후로 에셋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구불구불 어지럽게 얽힌 길을 찾을 뿐이었다. 깊게 들어갈수록 점점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하지만 손전등을 쓸 수도 없었다. 짧게 혀를 차면서 감에 의지해 움직인다. 저벅. 저벅. 발소리는 자꾸 멀어졌다가 다시 줄어든다.
“…뭐야?”
“…….”
“말 좀 하고 다가와라.”
“…….”
어느 순간 럼로우 옆까지 다가온 녀석은 슬쩍 눈만 흘길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저 앞에 목표가 있다는 듯 계속 걸어 올라갈 뿐이었다. 그런 녀석의 뒷목을 콱 잡아챈 럼로우는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한마디를 툭 던졌다.
“어디서 나보다 먼저 올라가려 해.”
“…….”
“여기 책임자는 나야.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알아들어?”
“…….”
“못 알아들어도 어쩔 수 없어.”
“…넌 누구지?”
“내가 누군지 알아도 곧 잊어버릴 새끼가.”
“…….”
“호기심만 많아서.”
남자는 절대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어색하게 대화가 끊긴 채 구불구불 복잡한 산길을 얼마나 올라갔을까. 드디어 은신처가 눈에 들어온다. 누가 보면 그저 버려진 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낡은 집이었다. 젠장. 그 꼴을 본 럼로우는 눈앞에 선명한 상사의 얼굴에 침을 뱉는 상상을 한다. 아무래도 자신을 엿먹이려고 억지로 만들어낸 미션 같았다.
‘하긴 이 녀석 해동 겸해서 운동이라도 시키는 거겠지.’
그냥 그렇게 타협하고 만다. 어차피 누군가의 장기 말로 살아가려면 깊게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냥 여기서 며칠 노닥거리다 가면 되겠지.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했다.
“안쪽은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군.”
“…….”
“들어가. 뭐해.”
“…….”
에셋은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은신처에 들어가 가장 구석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바닥만 묵묵히 바라보았다. 저 눈엔 뭐가 보이는 건지. 럼로우는 문을 짚고 서서 한참 그 꼴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이어 조금 늦게 팀원이 하나둘 도착했다. 이상할 정도로 럼로우가 아는 녀석은 하나도 이번 일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하이드라에서도 처음 쓰는 것 같은 용병이 대부분 이었다. 물론 그게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대장은 럼로우였고, 그들은 하이드라에게 반항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늘 옆에 끼고 다니던 녀석들이 없으니 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명령이 하달되지 않았다.”
“…….”
“일단 여기서 조용히 있으면서 다음번 명령을 기다린다. 알았나?”
“예!”
“좋아. 다들 적당히 쉬도록 해.”
“알겠습니다.”
“다만 소란을 피운다든가. 정해진 공간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면 각오 단단히 하는 편이 좋을 거야.”
“…….”
“난 같은 편이라도 내 눈에 거슬리는 건 그냥 치워버리는 성격이거든.”
“…….”
일부러 기를 꺾으려고 하는 말인 줄 아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러다 진짜 탈주자가 생기면 대가리에 그대로 총알을 박아줄 생각이었다. 대장인 럼로우가 소파를 차지하고 길게 눕자. 나머지 잡졸들은 하나둘 흩어져서 제멋대로 앉아서 쉬었다.
‘이상한데. 왜 아무런 명령이 없는 거지.’
럼로우는 팔베개를 한 채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보통 이렇게 시차로 명령이 하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주 급한 상황도 아닌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에셋은 여전히 맛이 간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뭐 그냥 이렇게 하루 지내면 나는 편하지. 럼로우는 눈을 감으면서도 품 안에 잘 챙겨 든 권총의 무게를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
“…뭐야.”
“…….”
“에셋. 너 미쳤어?”
“…….”
“허.”
럼로우는 찢어지는 비명을 들음과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잠깐 긴장을 풀고 잠이든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위치가 노출된 것 같진 않았다. 비명은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뚝 끊겼다. 럼로우는 주위를 돌아보며 품 안에 넣어둔 권총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에셋. 어딨어.”
“…….”
“에셋?”
“…….”
분명 잠들기 전까지 멍청하게 앉아있던 녀석이 오간 데 없었다. 은신처 안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 녀석은 명령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일만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백치였다. 럼로우가 조심스럽게 하나밖에 없는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뭐야.”
방 안은 처참했다. 누구한테서 흐르는지 모르는 피가 사방 벽에 뿌려져 있었고, 드문드문 새빨간 손자국이 찍혀있었다. 럼로우는 이 사태의 주인공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방 안에 앉아있는 검은 인영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그때 항상 귀에 걸고 있던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무기가 기름을 잘 먹었나?”
“…예?”
“자네가 가끔 움직일만한 연료를 줘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
“식사를 마치는 즉시 창고에 준비된 재료로 은신처 전체가 탈 수 있도록 불을 붙인 후 무기를 데리고 귀환하게.”
“…….”
“증거를 남기지 말아야 하네. 알았나.”
“…알겠습니다.”
“자네를 믿지.”
무전이 뚝 끊겼다.
+) 여전히 고생중인 럼로우가 등장하네요 mm)
뭐 불타고 남은건 피어스 총장이 빽으로 하이드라가 알아서 수습했겠지 싶습니다
루마니아 이야기 말고 새로운 이야기 정말 오랜만에 쓰는 것 같아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블 > └ 럼로우버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신호 (0) | 2016.12.18 |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잡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0) | 2016.12.04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그늘 (0) | 2016.07.31 |
[럼로우버키/럼벜] SomeDay 2 005 [샘플完] (0) | 2016.07.24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그대를 못잊어 헤매는 (0) | 2016.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