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로우버키/럼벜] SomeDay 2 004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있었던 일을 망상 날조중입니다
윈터솔져 와 이어지는 내용이 있습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디마온에 나왔던 SOME DAY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책이 나와도 올린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럼로우는 약속대로 에셋을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물론 좋게 나가는 법은 없었다. 입술을 쭉 내민 채 또 뭔가 수상한 것을 보는 눈빛을 하는 백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답답했다. 럼로우는 혀를 쯧쯧 차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백치야 뭐하냐 가자. 백치는 이 손을 뻗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남자는 밤새 잠을 설치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 녀석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걸까. 잠깐의 평화에 취해 멋대로 살아도 되는 인생인가. 물론 결론은 하나였지만, 입맛은 늘 쓰기만 했다.
“백치야, 안 갈 거야? 나만 다녀온다?”
“…….”
“가기 싫으면 그만두던가. 두 번 다시 나가고 싶단 소리 하기만 해봐.”
“그건…아닌데.”
“생각을 오래 하지도 못하는 새끼가 뭔 놈의 머리를 굴리겠다고.”
“…….”
“그냥 이 아저씨 하자는 대로 따라다니면 재밌다니까.”
“…….”
“지금까지 나쁘지 않았잖아.”
“그렇긴 해.”
“우리 팔자에 그럼 된 거지. 뭘 더 바라고 그래.”
“…….”
“가자.”
마지막 권유였다. 남자의 흉터 가득한 손을 빤히 바라보던 백치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더니 남자보다 더 빨리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 새끼. 내가 나가기 전에 뭐하라고 했지?”
“…….”
“또 까먹었어? 너 그러다 끌려가서 뇌 갈린다?”
“…아.”
이렇게 겁을 줘야 알아듣는다. 백치는 까먹지 말아야 하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편이지만, 몸이 아픈 것은 귀신같이 기억한다. 럼로우가 눈을 부릅뜨고 문 앞을 막아섰다. 스스로 생각해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큰 눈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럼로우는 백치가 저럴 때마다 절로 표정이 멍청하게 변한다고 말하곤 했다. 말로는 자립심을 키워준다고 하지만 은근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고양이 앞에 쥐 꼴이 된 백치는 머리가 점점 하얗게 변했다.
“…모자.”
“그렇지. 그다음엔?”
“옷.”
“잘하네. 어서 가져와.”
“…….”
“넌 위에 뭔가 안 걸치고 나가면 안 된다고 했지. 머리도 좀 자르면 좋겠다만.”
“…….”
“안 할 테니까 노려보지 마. 새끼…예민하긴.”
날붙이가 닿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는 녀석은 머리카락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펄쩍 뛰었다. 그리곤 계속 럼로우 눈치를 보면서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가지를 끌고 왔다. 답답할 정도로 옷을 껴입고 모자를 썼다. 약간 비뚤게 쓴 것을 제대로 씌워준 럼로우는 백치의 볼을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이렇게 하면 예쁘고 좋잖아.”
“난 예쁘지 않아.”
“지금까지 실컷 예쁜이 소리 듣다 이제야 반항을 해?”
“난…별로 예쁜 거 아니야.”
“새끼.”
럼로우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좁은 방에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제정신을 찾아가는 건지. 아니면 가끔 얻어걸리는 일인지. 사실 저 새끼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은 별 상관없긴 했다. 하지만 항상 끈 떨어진 인형같이 텅 비어있던 새끼가 조금은 말대답을 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괜히 신경이 쓰였다. 어쩐지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꼭 제가 낳고 키운 마냥 럼로우는 에셋을 싸고 돌았다. 물론 행동은 조금 과격했지만, 애정이 조금은 섞여있었다.
“가자.”
“럼로우.”
“…왜?”
“우리 돌아오는 거지?”
“갑자기 뭔 헛소리야.”
“…….”
백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문을 나서면 또 도망자 신세가 될까봐. 그것을 두려워했다. 간신히 찾은 은신처를 두고 나가는 것을 영 떨떠름하게 여겼다. 예전엔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더니 럼로우가 자신만 두고 집을 비운 이후론 도통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그런 백치의 머릿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럼로우는 눈치가 빨랐고, 어느 정도 사람을 넘겨짚을 줄도 알았다.
“새끼…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냐.”
“…….”
“그런 건 빨리 잊어버리지도 않아. 내가 가르쳐주는 중요한 건 꿀떡꿀떡 잘만 잊어버리면서 말이야. 응? 안 그러냐?”
“…….”
“하여튼 너도 불쌍한 인생이야.”
“…….”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올 거니까 가자.”
“…….”
“단 거 사줄게. 너 좋아하잖아.”
“나 어린애 아니래도.”
“그럼 똑똑하게 굴어보던가.”
럼로우가 이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었다. 남자는 백치를 데리고 나가기 전 항상 계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시켰다.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새카만 바닥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어이쿠. 너 떨어지면 내가 못 잡아준다. 남자는 농담 반 진담 반 그렇게 말했다.
“백치야, 나중에 할 일 없으면 항상 이렇게 주위를 보면서 도주 경로를 짜둬.”
“…왜?”
“왜긴 왜야. 일단 살아야 하잖아.”
“…….”
“또 그런 표정 짓지.”
“럼로우 뒤를 따라서 가면 될 텐데…내가 어째서. 난 시키는 대로 하면 되잖아.”
“새끼. 또 말대답하지.”
“…….”
“시키는 대로 해. 잊어버리지 마. 알았어?”
“응…….”
“그래. 착하다.”
수염이 거칠거칠한 턱을 긁어준다. 이렇게 대놓고 강아지 취급을 해도 녀석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엽지. 럼로우는 그런 백치의 얼굴을 보고 슬쩍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늘게 콧노래를 부리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깐 계단 가문에 생긴 캄캄한 어둠을 바라보던 백치는 뭔가 무서운 것이라도 본 것처럼 냉큼 럼로우 뒤를 따라갔다.
✦
“…오래간만에 나오니까 좋네.”
“…….”
“백치야, 이쪽으로 와서 걸어. 왜 그렇게 행동해.”
“…….”
“새끼.”
한걸음 떨어진 채 최대한 사람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녀석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썹이 불뚝 올라갔다. 저렇게 눈치 보면서 움직이면 안 된다고 누이 가르쳤는데, 백치는 또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저런 꼴로 다니면 오해를 사지 않을 곳에서도 의심을 받게 된다. 남자는 답답해서 백치의 목에 팔을 툭 둘렀다. 그러면 에셋의 몸이 펄쩍펄쩍 뛴다.
“가만히 있어.”
“…….”
“내가 그렇게 행동하면 의심받기 딱 좋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 왜 자꾸 까먹어.”
“하지만…….”
“답답한 새끼.”
“…….”
“뭘 하나 입에 물려놔야 긴장이 풀어지지.”
“…….”
“안 그러냐?”
에셋은 또 대답이 없다. 럼로우는 익숙하게 초코바를 사서 백치의 입에 물려준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 까서 입에 넣었다. 물론 한입 베어 물자마자 오만상을 쓰긴 했지만 말이다. 에셋은 표정 변화도 없이 우물우물 초코바를 먹는다. 미각이 제대로 살아있질 않으니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면 맛을 느낄 수 없는지, 자꾸 단 것을 찾았다. 아, 물론 열량이 그만큼 필요할 수도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해동된 채 지내는 것도 처음 일 테니, 몸이 자꾸 에너지를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럼로우가 겨우 초코바를 씹어 넘겼을 때, 백치는 벌써 손가락에 묻은 초콜릿을 핥았다. 그리곤 조금 모자란 표정으로 럼로우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럼로우의 손에 들린 초코바였지만 말이다. 그런 시선을 알아차린 럼로우는 겨울 색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초코바를 슬쩍 흔들면 눈동자가 쪼르르 따라온다.
“더 줘?”
“…응.”
“그래. 너 다 먹어라.”
“…….”
냉큼 받아들고 입으로 가져간다. 조금 말랑말랑해진 백치를 옆에 낀 남자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을 뭘 사줄까. 뭘 먹여볼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신혼집 흉내라도 내려면 확실하게 놀아볼까 싶기도 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럼로우는 괜히 민망해서 백치를 꾹 끌어당겼다. 불룩하게 볼에 초코바를 집어넣은 녀석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끌려왔다. 어이구 내가 무슨 생각을. 괜히 머리를 이리저리 흐트러뜨린다. 그러면서 계속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이 훅 줄어들었다. 이 정도 와서야 백치는 마음을 놓는다. 복잡한 시장에선 그렇게 럼로우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금방 품에서 슥 빠져나간다. 럼로우는 그걸 보면서 혼자 웃기만 했다.
“진짜 어디서 동물 같은 습성만 골라서 배워서.”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는 에셋은 바빴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럼로우가 잠깐 눈을 뗀 사이 백치가 훌쩍 사라졌다.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이 새끼 어디 갔어.”
럼로우가 벌떡 일어났다. 사실 몇 번 데리고 나가도 얌전히 뒤에 붙어있어서 조금 긴장을 풀었더니 이 사달이 났다. 윈터 솔져의 악명이 아직 살아있는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작정하고 몸을 숨긴 거라면 럼로우가 찾을 재간이 없었다.
“젠장.”
어쩐지 기분이 꺼림칙하더니 결국 일을 치고 만다. 연신 욕을 내뱉는 럼로우의 얼굴은 복잡했다.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진 탓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에셋이 걱정되는 건지. 연신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하지만 목청 높여 부를 수도 없는 놈이었다. 여기에 윈터솔져가 있다고 광고를 할 셈이면, 불러도 된다. 하지만 럼로우도 그다지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다. 들키면 둘 다 위험했다.
“어디 간 거야.”
럼로우는 초조하게 한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백치가 제 발로 떠난 것이 아니라면 분명 돌아온다. 그렇게 생각했다.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자는 집 나간 개새끼를 사방팔방 찾아다닐 만큼 할 일이 없지 않았다. 계획이 망가지면 바로 수정을 해야 한다. 머리가 복잡해질수록 욕만 흘러나왔다.
“…….”
“럼로우…….”
“왜…응?”
“…….”
“이 새끼가…….”
럼로우는 걱정보다 손이 먼저 나간다. 결국, 뺨을 얻어맞은 백치는 그대로 고개를 돌린 채 우물쭈물 눈치를 보고 있었다. 금방 벌겋게 부어오르는 볼에선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럼로우는 아직도 씩씩거리며 화를 참지 못했다. 아직 홧김에 이 녀석에게 손찌검을 한 적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일진이 사나웠다.
“내가 주위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지.”
“…….”
“어? 머리가 멍청하면, 얌전하기라도 하던가! 이게 뭐야!”
“그게…….”
“하,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
럼로우가 대놓고 빈정거린다. 남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르는 새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 순간 에셋의 목소리가 아닌 묘한 울음이 들렸다.
“…뭐야.”
“이게…….”
“지금 장난해?”
“…….”
“이거 잡으러 갔던 거야? 내 말은 아주 개 껌만도 못하게 생각하지?”
“그게 아니고…울고 있어서.”
“짐승이니까 울겠지, 사람 말을 하겠냐?”
“…….”
“내가 널 믿은 게 잘못이네. 너 다시는 밖에 나올 생각 하지 마.”
“…….”
“따라와,”
럼로우가 휙 돌아섰다. 한걸음 내디디려는데 버키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래도 메탈암은 주머니에서 빼지 않았다. 잘한다. 잘해. 럼로우의 눈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다쳤어.”
“뭐?”
“고양이가…다쳤어.”
“…….”
“치료해야 해.”
“너 미쳤냐?”
“하지만…….”
새끼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얼씨구. 럼로우는 어디 한 번 꼴깝 떨어보라는 식으로 팔짱을 낀 채 노려보았다. 버키는 한쪽 팔로 어렵게 안은 고양이를 놓지 않았다. 그런 꼴로 벌벌 떨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너도…다친 나를 주워왔잖아.”
“그래서?”
“고양이도 도와줘.”
“내가 널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아주 자기가 귀여움 받는 평범한 애완견인 줄 안다. 그렇지?”
“다쳤어. 다친 건 밖에 있으면 오래 못 산다며.”
“…….”
어디서 또 저 같은 걸 주워왔는지. 꼭 버키처럼 왼쪽 발을 다친 녀석은 꼬리가 빳빳하게 부풀어있었다. 돌아다니다 개한테 물렸거나 철조망에 찢기거나 했겠지. 럼로우는 불쌍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쓰레기통 옆에 구겨져 있던 하이드라의 무기를 주워오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인데, 짐승까지 들여 키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 백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떼를 쓴다.
“…….”
“…럼로우.”
“난 정말 네 녀석을 이해할 수 없다.”
“…….”
“어차피 집에 데려가 봤자 치료할 도구도 없어. 알아?”
“…….”
“그러면 그냥 밖에다 두지 왜 그걸 집에 끌고 들어가려 해.”
“…….”
백치의 눈이 점점 더 둥그렇게 변했다. 럼로우는 백치의 저 표정에 약했다. 울 것 같은 표정이지만,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할 말이 가득한 얼굴로 남자를 빤히 쳐다보곤 했다. 정말 버릇을 잘못 들였어. 럼로우는 계속 후회하고 있었다.
+)
아마 여기까지, 혹은 5편까지가 샘플이 될 것 같습니다
중철로 만들거라 했는데, 이미 중철 사이즈를 넘긴 것 같네요.
원고로 들어가는 뒷부분은 애니멀 테라피 하는 버키와 두 짐승 뒷바라지 하는 럼로우가 나올 것 같습니다!
곧 인포를 올리고 싶습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트위터에도 썼지만 럼벜은 MSG같아서....자꾸 땡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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