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그대를 못잊어 헤매는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있었던 일을 망상 날조중입니다
윈터솔져 와 이어지는 내용이 있습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처럼 루마니아에서 지내는 버키와 럼로우 관계 날조중
저번 전력과 이어집니다
벜른 전력60분 :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 담요 : http://dchwanwol.tistory.com/257
럼로우가 집을 나가버린 이후 그곳은 온전히 버키의 차지게 되었다. 둘이 살기엔 조금 좁은 듯하지만 나쁘지 않았던 집은 고작 한 사람이 빠져버렸을 뿐인데, 갑자기 넓어져 도통 따뜻함이 채워지지 않았다. 버키는 늘 그랬던 것처럼 매트리스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젠 담배 냄새도 다 빠져버린 담요를 덮고, 몇 개 남지 않은 마른 음식을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사실 럼로우가 장만해두고 간 식량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늦어도 돌아올 테고, 그러면 다시 이곳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런 희망이 점차 절망으로 바뀔 때쯤 에셋은 괜히 방안을 빙빙 돌았다. 꼭 뭐에 홀린 사람처럼 하염없이 방을 돌라 어지러우면 아무 데나 앉아서 쉬었다. 밤이 오고 새벽 해가 돋을 때까지 이런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매트리스 위였다. 남자 두 사람의 체중을 견디기 힘들었던 건지 약간 아래로 꺼져있었다.
사실 루마니아에 와서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시를 헤매던 에셋은 생각이란 걸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던 몸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고, 혹시 다시 끌려갈까 봐 쉽게 움직이지도 못했다. 굶는 것은 익숙했지만, 그렇다고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눈앞에 럼로우가 나타났다.
물론 그 남자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간신히 살이 올라온 얼굴엔 아직도 진물이 드문드문 맺혀있었다. 붕대를 감은 손은 생각보다 심한 화상이 덕지덕지 올라앉았다. 그런 녀석을 덥석 따라간 건 아마 그 당시에 많이 혼란스러웠던 뇌 덕분이라 생각했다.
“…럼로우.”
백치는 이제 이곳에 없는 사람을 자꾸 찾았다. 혹시 신문에 이름이라도 올라오지 않을까 싶어서 자꾸 신문을 샀다. 잘 돌아가지 않는 뇌로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하지만 럼로우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도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백치는 늘 후회했다. 하긴 그 남자가 신문에 이름이 날 정도로 큰일은 치고 다닐 것 같진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는 신문을 사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또 사고 만다. 떠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개는 늘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살았다.
“…럼로우. 지금 뭐하는 거야. 왜 연락도 안 해.”
괜히 투정도 부린다 럼로우가 있다면 이럴 때 조용히 하라고 단 것을 물려준다. 백치는 그 손길이 좋았다. 사실 늘 잘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몇 번 잘해주다가도 어느 날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곤 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 손을 올리지 않은 것은 남자의 마지막 약속이었다.
“…저번에 공책 괜히 버린 거 같아.”
에셋의 고개가 한쪽으로 축 기울어졌다. 참 이렇게 사람이 간사하다. 이젠 생각하지 않을 거라며 단호하게 끊어내는가 싶더니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떠나간 사람의 흔적을 찾는다. 내일이면 올까. 아니면 다음이면 올까. 백치는 잘해준 기억만 들고 산다.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다음에 몇 번 잘해주면 덥석 믿어버린다. 몇 번이나 뇌를 갈고 기억을 지우면서 생긴 일종의 장애였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나 믿고 살아도 평범한 인간보다 강하니 목숨을 잃을 위험은 없었다. 어차피 되는대로 굴리는 몸인데, 그깟 거 다치는 건 상관없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고 떠날 거였으면, 왜 그렇게 날 챙겨준 거지.”
답이 없다.
“응. 럼로우? 나 한테 왜 그런 거야?”
“하이드라의 개새끼가 비 맞고 있어서 데려왔지. 새끼야.”
“…….”
“그러니까 제발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냥 살아.”
“말해줘.”
“정말? 나한테 실망할 텐데?”
“실망 같은 거 안해.”
“웃기고 있네. 수 쓰지 마라. 백치야.”
“…….”
이젠 헛소리까지 들린다. 허상 속 럼로우는 백치를 보고 껄껄 웃는다. 그러더니 담배를 하나 피워문 채 신문지를 발라둔 창문을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가 입에 물고 있는 담배가 타들어 간다. 떨어질 리 없는 담뱃재가 떨어진다. 가만히 에셋을 바라보던 남자는 그대로 녹아내려 그늘이 되었다. 그러면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난 정말 모르겠어.”
널 모르겠어. 럼로우. 몸은 알고 있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이제 럼로우가 없다고 생각하면 다신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에셋은 백치가 된 이후 감상적인 말은 잘 꾸며내지 못했다. 평범한 말도 오래 대화하면 그대로 혀가 꼬이는 녀석한테 미사여구는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늘 날것의 단어로 럼로우에게 말을 걸었다. 중년의 남자는 그런 백치가 귀엽다는 듯 오냐오냐 받아준다. 하이드라에서 느껴보지 못한 관심에 에셋은 날로 순해졌다. 그리고 그 편안함은 잊지 못하고 이리 떠돌고 있었다. 집도 있고 먹을 것도 있는데 정착을 하지 못하고 헤매고 돈다.
“럼로우.”
이미 떠난 사람은 답이 없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몇 번이나 불러봤다. 그러다 대답이 들리지 않으면 주인을 찾아 헤매는 개처럼 주변을 맴돈다. 언젠가는 주인이 돌아오겠지.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에셋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건 의외의 사건 때문이었다. 방에 먼지가 쌓이든 벌레가 기어들어 오든 별로 상관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럼로우가…돌아오면 화내겠네.”
집안 꼴을 찬찬히 살펴보니 가관도 아니었다. 그나마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부엌에 올려놓은 접시엔 먼지가 쌓였다. 매트리스도 누우면 뽀얀 먼지가 올라오고, 능살 껴안고 있던 담요도 슬슬 때가 타기 시작했다. 그러면 또 겁이 났다. 럼로우는 그렇게 깔끔한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가 기거하는 집이 사람 살 꼴이 아닌 것은 보지 못했다.
“청소라도…해야 하나.”
막상 이렇게 생각해도 백치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메탈 암으로 접시를 다섯 개쯤 깨 먹었을 때 럼로우는 저 새끼한테 설거지를 시킬 의지를 잃어버렸다. 청소라도 할까 싶었는데, 그땐 비가 와서 접합 부분이 아파 우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막상 모든 걸 챙겨주던 남자가 떠나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백치가 남았다.
백치는 어설픈 손놀림으로 살살 먼지를 닦았다. 꼭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메탈암은 주머니에 넣은 채 한 손만 사용했다. 조금이라도 럼로우의 흔적이 남은 물건에 상처를 입히기 싫었다. 청소한 것인지 만 것인지 잘 분간은 안 되지만 나름 뿌듯한 얼굴로 매트리스에 주저앉았다. 럼로우가 돌아오면 자랑도 하고 칭찬도 해달라 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음. 괜히 마른 입술을 잘근거리던 백치의 얼굴에 붉은빛이 나타나다 사라졌다.
“그러니까…….”
뭐라고 했더라. 선불금? 선금?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남자는 늘 백치의 입술을 희롱하면서 되지도 않는 변명을 붙이곤 했다. 왜 그 생각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생각보다 백치의 마음에 깊게 박힌 남자의 존재는 좀처럼 뽑히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을 타고 오르며 더 깊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옛날 기억이 났다. 남자의 손길도 느껴졌다. 백치는 내내 담요를 끌어안고 끙끙거렸다.
“럼로우. 보고 싶어.”
남자가 평생 가도 들을 수 없었던 말이었다. 그렇게 같이 있을 땐 한마디도 안 하던 녀석은 내내 럼로우를 찾았다.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하이드라의 망령이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아무리 담요에 코를 박고 남자를 찾아도 더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담배 메이커라도 알아둘걸. 백치는 밤의 끝자락을 잡은 채 불현듯 서글퍼졌다.
❢
백치는 다음 날 집을 나섰다. 이별 선물인 양 손에 쥐여준 장갑을 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울 것 같은 싸구려 재질이었다. 하지만 아까워서 쓸 수 없어 내내 집 안에만 뒀다. 럼로우가 손에 끼워주던 대로 똑같이 하면 조금 몸놀림이 편해졌다. 긴 팔 아래로 야무지게 장갑을 집어넣은 채 백치는 문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내가 없는 사이에 럼로우가 돌아오면 어쩌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남자는 영영 떠났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는다. 아마 돌아올 생각이었으면 비밀 창고에 있는 무기를 모두 털어서 짊어지고 가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백치는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혹시 모르기 때문에 빨리 돌아보기로 했다. 당찬 계획을 세우고 문을 열었지만,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없었다. 문 앞에 서 있는 럼로우의 환상이 또 백치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이번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백치야. 나가기 전에 아저씨가 뭐 하라고 했지?”
“…….”
“아저씨가 물어보잖아.”
“그게…….”
“옳지.”
“…….”
“잘한다. 여기서 안전하게 도망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생각해. 널 잡으러 오는 놈이면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닐 거야.”
“난 이제 싸우지 않아.”
“하지만 도망은 쳐야지.”
“…….”
“럼로우 가지마.”
“난 이미 가야 할 곳이 있어.”
“…….”
또 사라진다. 널 못 잊어서 이래. 럼로우. 백치의 말은 입술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환상을 따라 손을 뻗는 순간 앞이 쑥 꺼졌다.
“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헛것에 눈이 팔린 백치는 눈앞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어둠도 보지 못했다. 간신히 난간을 잡았다. 메탈 암으로 힘을 주자 철제 난간이 형편없이 우그러진다. 또 겁을 먹고 손을 뗐다. 누군가 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이런 옥탑방까지 올라올 사람은 몇 없었다.
“백치야. 아저씨 힘이 없어서 너 떨어지면 못 잡아 준다.”
“…….”
“조심해. 어둠에 먹히면 도망도 못 친다.”
“…….”
떠난 사람은 간 곳이 없는데 잔소리만 남아 백치를 슬프게 한다. 백치는 내내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럼로우와 갔던 카페. 럼로우와 걸었던 거리. 쉬었던 벤치. 하나도 남김없이 걷고 또 걸으며 사라진 남자를 찾았다. 해가 내리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급하게 몸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갔다.
‘돌아왔다 실망해서 가면 어쩌지.’
백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둠이 내린 방에 돌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도 끙끙거리는 소리가 남자를 못 잊으며 방안을 헤맸다. 꼭 몽유병이 도진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던 백치는 좋을 대로 자리를 잡고 졸았다. 백치가 슬픔에 잠겨 며칠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을 때, 조간신문 한쪽 귀퉁이엔 백치가 그렇게 찾는 남자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
외출했다 늦어서..지각을 했습니다
럼로우 있을 땐 안그러나 내내 외로움 타는 버키가 보고 싶었어요
럼벜 언제나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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