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로우버키/럼벜] SomeDay 2 005 [샘플完]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있었던 일을 망상 날조중입니다
윈터솔져 와 이어지는 내용이 있습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디마온에 나왔던 SOME DAY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책이 나와도 올린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결국, 럼로우가 졌다. 남자는 백치를 반쯤 무시하면서 윽박지르긴 하지만, 특정한 표정에 약해도 너무 약했다. 젠장. 젠장. 몇 번이나 욕을 씹어 삼킨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허락은 해버렸고, 저 멍청한 백치는 고양이 버리고 오란 소리를 못알아들을 것이 분명했다.
‘왜?’
‘…….’
‘왜 그래야 해. 럼로우?’
‘…….’
‘허락했잖아.’
한 백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화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인생은 낙장불입이라는데, 남자 체면이 안된다고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럼로우는 괜히 맘에 안 차는 고양이를 생각하면서 길가에 널린 돌을 군홧발로 퍽퍽 차버렸다. 딱딱한 신발에 채여 저 앞으로 튕겨 나간 돌은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몇 번이나 발길질해도 좀처럼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다.
“…….”
“…….”
백치는 그런 럼로우의 모습에서 뭔가 불안함을 읽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이럴 땐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곤 했다. 한쪽 팔로 고양이를 꾹 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걷고 있었다. 럼로우가 자신에게서 다섯 걸음 이상 떨어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슬렀다간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예쁜아.”
“…….”
“예쁜이. 거기 있냐?”
“…….”
“없으면 버리고 간다.”
대답하라는 에셋 대신 눈치 없는 고양이가 울어댔다. 귀가 째지는 기분에 럼로우는 절로 표정을 찡그리고 말았다. 지금 듣고 싶은 것은 백치의 목소리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셋은 여전히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분명 겁을 냅다 집어먹은 것이 분명했다. 루마니아로 건너온 이후 단 한 번도 럼로우가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물론 집안에서는 밥 안 먹겠다. 씻기 싫다. 하면서 매일 전쟁을 치르면서 살았지만, 적어도 밖에 나와선 얌전한 강아지처럼 행동했다. 그런 백치는 보는 남자는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턱밑을 긁어주곤 했다.
‘역시 군견이라 똑똑하네.’
‘…….’
‘백치야. 이제 가자.’
‘…….’
산책의 끝은 언제나 남자의 말이었고, 시작도 같았다. 몇 년 동안 반항이라곤 모르고 살던 녀석은 자신이 사고를 쳤으면서도. 내내 눈치를 봤다. 그리고 쏟아질 폭력을 상상하며 벌벌 떨었다. 메탈 암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쯤은 가볍게 제압하고 죽일 수 있지만, 백치는 그러지 못했다. 꼭 코끼리 같았다. 코끼리는 어릴 때부터 묶여있던 사슬을 다 커서도 끊지 못한다. 이 녀석도 꼭 그 짝이었다. 럼로우가 윽박지르던 것이 희미하게 기억이 남아 도통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이미 익숙해진 것 일지도 몰랐다. 럼로우는 이래저래 눈만 뜨면 잔소리를 하고 구박도 하지만, 그만큼 백치를 잘 돌봐줬다. 배앓이를 하면 하는 대로 쓰다듬어주고, 연결부위가 아프다고 발작하는 것도 잘 받아줬다. 메탈 암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남자의 몸에 화려한 멍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딱 그대 욕을 먹은 것 빼곤 다른 일은 없었다. 백치는 은연중에 럼로우를 믿고 있었다.
“백치야. 내가 말하잖아.”
“…….”
“에셋. 진짜 죽고 싶어?”
럼로우의 살기등등한 목소리에 에셋은 덜컥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앞서 걸어가면서 쳐다보지도 않는데 온몸에 시선이 꽂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더 버티면 끝이 안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치는 괜히 우물쭈물 고양이를 한 번 더 끌어안았다.
“여기…따라가고 있어.”
“지금까지 입이 붙었나 봐?”
“…….”
“요즘 자꾸 말을 안 듣는다. 그렇지? 세상 살기가 재미가 없어?”
“…….”
럼로우의 화법은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잘 따라갈 수 없었다. 부드럽게 말하다가도 어느새 화를 내곤 했다. 백치는 망가진 뇌를 붙잡고 뻘뻘 땀을 흘렸다.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한 번 대답 잘못했다가 이 관계가 완전히 끝나버릴 것이 무서워 좀처럼 입을 뗄 수 없었다.
“응. 예쁜아. 아저씨 말 안 들으면 좋아?”
“…….”
“대답.”
“…아니.”
“근데 아까는 왜 그랬어.”
“그게…….”
“말해 봐.”
남자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잔뜩 움츠러든 채 뒤따라 걷던 녀석은 주춤주춤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걸음을 멈춘 럼로우가 뒤돌아 서 있었고, 에셋은 그대로 얼굴을 갖다 박을 뻔 했다. 화들짝 놀라 고양이를 끌어안은 채 커다란 눈만 열심히 굴려댔다. 모자 아래로 비죽 튀어나온 푸석한 머리카락이 고개를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자꾸…나를 부르는 거 같아서.”
“…….”
“그래서 그랬어.”
“이 짐승 새끼가 널 불렀다?”
“응…….”
“우리 예쁜이가 이젠 아주 디즈니 공주님이 되고 싶은 모양이야. 짐승 말도 알아듣고. 안 그래? 조금 더 있으면 백마 탄 왕자님이 키스라도 해주러 찾아오겠어.”
“…….”
“안 그러냐?”
“아무도…안 와.”
“얼씨구?”
“아마도 그럴 거야.”
“백치야. 불쌍한 척 하지 마. 수 쓰는 거 다 보인다.”
“…….”
“짐승 새끼가 살 팔자면 알아서 살아남겠지. 우리 예쁜이가 밖에 너무 오래 나와 있어서 그래. 뇌가 더 상할라. 어서 들어가자.”
“…응.”
“이렇게 말 잘 들으면 얼마나 좋아.”
가만히 바라보면서 볼을 토닥인다. 시커먼 남자 둘 사이에 낀 고양이가 애처롭게 울었다. 버키는 조금 안심이 된 건지 럼로우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자꾸 흘러내리는 고양이를 주워 담으려 했다. 하지만 한 팔로 살아있는 동물을 간수하는 건 제법 힘든 일이었다. 그런 버키의 품이 여간 불편한지 고양이가 날카롭게 울어댔다. 어이구. 결국, 보다 못한 럼로우가 백치의 팔을 이리저리 고쳐줬다.
“난 그거 절대 안 만진다.”
“…응.”
“하여튼 정이 많으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인데…….”
쯧쯧. 럼로우는 말은 사납게 해도 더는 백치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씩 입씨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얌전히 안겨있던 녀석이 갑자기 버둥거리자 백치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 심성에 다친 녀석을 맘대로 내려놓을 수도 없어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했다. 결국, 주섬주섬 쪼그리고 앉아 팔을 풀어주었다.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내려온 고양이는 푸른 눈으로 백치를 빤히 바라 보았다.
“…고양아.”
백치는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불렀다. 고양이가 자기 이름인 줄 아는 짐승이 한번 소리 높여 울었다. 연한 크림색인지, 아니면 금발을 닮은 볏 짚색인지 모를 털은 먼지로 꼬질꼬질해서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그런 고양이가 이리저리 집안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하자 럼로우는 미칠 것만 같았다. 당장 목덜미 잡아다 내던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 순간 매트리스 옆쪽 남은 구석으로 기어들어간 녀석은 연신 울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쳤는데…….”
“어차피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더럽기도 하고.”
“그럼 네가 잡아서 씻겨봐라.”
“…….”
“난 지금 이 상황이 짜증 나지만, 뭐라고 하진 않을게. 알았지? 그러니까 제발 저 녀석 귀찮게 하지 말고 대충 구석에 처박혀 있으라고 해. 물건 망가지면 가만히 안 둔다.”
“…….”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 너나 씻어.”
남자의 목소리가 엄해졌다. 버키는 생각보다 순순히 움직였다. 모자를 벗고 몇 겹씩 걸쳐 입은 옷을 벗었다. 한참 주머니 안에 구겨 넣었던 메탈 암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따라 얌전히 씻는가 싶었더니 또 지랄병이 도진 모양이었다. 럼로우는 욕실에서 들리는 소리에 절로 눈을 찌푸렸다. 저 새끼는 왜 물 받아놓은 것만 보면 저렇게 지랄을 해대는지 영 알 수 없었다. 아니 왜 저러는진 알 것 같았지만, 모르는 척해주기로 했다.
“야옹.”
“…….”
눈치 없는 짐승 새끼는 이 심각한 상황에 기어 나와서 난리였다. 욕실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발치엔 더러운 털 뭉치가 있었다. 한숨이 자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내 팔자가 아주 개보다도 못하지. 럼로우는 애초에 저 녀석을 주워온 것부터 잘못됐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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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한다.”
“아파. 럼로우,”
“아픈 걸 알면서도 왜 그 난리를 쳐.”
“…….”
“이리 줘봐.”
남자는 무뚝뚝하게 손을 잡아챘다. 벽에 얼마나 갖다 박았는지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벌겋다 못해 살이 뭉개질 것 같았다. 가끔 저렇게 난리를 치면 꼭 약을 바르고 붕대로 묶어놔야 한다. 백치는 자기가 자해하고, 또 그걸 보는 것을 무서워한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새끼였다. 럼로우는 얼마남지 않은 약을 싹싹 긁어모아서 백치의 손에 발라줬다.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낡은 붕대를 꽉꽉 둘러 감았다. 백치는 두 손 다 제대로 못 쓰니 영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왜 또 그렇게 입술을 쭉 내밀어.”
“…….”
“싫으면 하지를 말든가.”
쭉 튀어나온 입술을 손으로 잡고 몇 번 흔들어주면, 짜증난 목소리가 줄줄 흘러나왔다. 새끼. 럼로우는 쾅 소리가 날 정도로 구급약 통을 닫았다. 예뻐해 줘봤자 남는 것이 없었다. 이 새끼는 자기 귀여워 해주는 것도 모르고 내내 이렇게 심통만 부려댔다.
와중에 짐승 새끼는 버키 발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끙끙 앓았다. 다리 쪽을 제대로 핥지도 못하는 걸 보면 아프긴 한 모양이었다. 럼로우는 털 뭉치를 만지는 취미가 없었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저 백치가 메탈암으로 짐승을 만지다가는 그대로 목을 비틀어버릴 것 같았다.
“너 붕대 풀기 전까지 저 짐승 새끼 만질 생각 하지 마.”
“…….”
“제대로 제어도 안 되는 걸로 만지다 무슨 난리를 치려고.”
“…….”
“대답해.”
“…알았어.”
“그래. 착하다.”
럼로우의 말끝에 또 짐승 소리가 와서 붙었다. 아이고. 짜증 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뭐라고 할까. 예전에 농담 삼아 던진 말이지만, 신혼집에 있어야 할 것이 하나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이러고 살아버릴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털 뭉치가 썩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백치가 저 짐승 새끼 덕을 봐 얌전해지면 잘 구슬려서 몸 정이나 들어볼까 했다. 럼로우는 크게 인심 쓴다는 표정으로 약통을 다시 꺼내왔다. 사람이 바르는 약을 짐승한테 발라도 될까 싶었지만, 어차피 밖에서 구르면서 살아온 놈인데 그 정도도 못 버틸까 싶었다. 물론 약을 바르는 내내 짐승은 세차게 반항했고, 아무것도 못하고 멍청하게 앉아있는 백치 대신 럼로우는 온 팔뚝에 길고 날카로운 상처를 얻게 되었다.
+)
드디어 럼벜 샘플이 끝났습니다!
럼벜 책은 중철할래요..라고 했는데, 아마 샘플 분량이 중철 책 한권쯤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뒷부분 이야기를 생각해 봤을 때, 최소 80~100p정도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만, 아직 뒷부분 원고를 다 쓴것이 아니라 확실하지 않네요.
쩜오온 인포엔 좀 더 자세한 페이지수를 적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샘플이 뒷부분을 읽고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녀석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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