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엔 목적지에 도착했을 것 같군요. 신비한 동물 사전 쓰는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잘 되고 있길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서 뉴욕은 바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프랭크가 도와준 덕분이에요. 노마지들은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요. 복구하는 것을 보고 떠났지만, 그래도 이젠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뉴트가 걱정할 것 같았으니까요. MACUSA도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쪽 일을 어디까지 알려야 할지 몰라서 자꾸 말을 줄이게 되네요.
그리고 제이콥이 하는 빵집은 굉장히 잘 되고 있는데, 뉴트가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퀴니가 당신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합니다. 할 수 있다면 제이콥이 만든 빵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뉴트는 그저 뉴욕에 들렀다가 떠난 여행자인데, 왜 이렇게 빈 곳이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많은 일을 겪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가방 안에 있는 동물들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니플러는 여전히 반짝거리는 것을 좋아하나요? 부디 이번 여행에선 큰 사고를 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러 사무국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이젠 괜찮아요. 물론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온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이 이상 큰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바쁘지만, 몸 건강히 여행을 끝마치길 빌고 있습니다.
티나 골드스틴
*
“…으음.”
“왜 그래?”
“이렇게 쓰면 되는 걸까.”
티나는 편지 마지막에 서명을 적어 넣은 후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 편지를 쓰는 것은 이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편지에 짧지만 빼곡하게 적힌 글자는 다시 보기 힘들 정도로 민망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사실 이 편지 한 장을 쓰는데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고쳐야만 했다. 퀴니는 가만히 웃고 있다가 때때로 한마디씩 거들었고, 그럴 때마다 종이가 바삭 구겨졌다.
“국장님에 관한 건 이야기하면 안 되겠지?”
“…으음.”
“난 간신히 오러로 복귀했는데 다시 강등당하고 싶지 않아.”
“그런 고민이 있으면 애초에 편지를 쓰지 않았을 거야.”
“…….”
“그렇지?”
퀴니는 티나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았다. 괜히 입술만 잘근잘근 씹던 티나가 손끝으로 편지지를 다시 집어왔다. 한 줄만 더 쓸까. 아니면 밑에 국장님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해야 할까. 그린델왈드가 오러 국장으로 변해 마쿠자에 숨어들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퍼져있었다.
물론 뉴트의 도움으로 그린델왈드를 붙잡긴 했지만, 그렇다고 끝난 일은 아니었다. 티나가 이렇게 편지를 쓰기 바로 직전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섞인 사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기 힘들 정도였다.
“으음. 역시 안 하는 쪽이 좋겠어.”
“…….”
“부엉아. 어서 이걸 뉴트 스캐맨더 씨한테 전해주렴.”
“퀴니!”
이미 창문을 열고 부엉이를 불러들인 동생은 생글생글 웃었다. 눈 깜빡 할 새에 편지를 보내버린 티나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물론 고민을 끊어준 것은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 시들시들해진 언니를 바라보던 퀴니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웃음꽃이 피었다. 물론 이 상황이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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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델왈드에게 납치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퍼시발 그레이브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많은 마법사가 그린델왈드에게 국장의 거취를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미 거릴낄 것이 없다는 태도로 불손하게 일관하자 더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발로 뛰는 것이 가장 빨랐다. 그린델왈드가 언제부터 마법안보부 국장 행세를 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걸 알아내는 것보단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국장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폴리 주스의 재료로는 변하려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고 하지만, 그렌델왈드의 잔혹성을 생각할 때 그것조차 안심할 수 없었다.
‘설마.’
옷자락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찾아 헤매던 마법사들은 슬슬 마음속에 불안함이 감돌았다. 물론 납치해서 죽이면 더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 목숨은 붙어있겠지만, 그것뿐이라면 심각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상상력이란 것은 위험해서 안 좋은 생각을 가장 먼저 파고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가락이 하나씩 없어지는 상상이 들었다. 애써 그런 일 없을 거라 말은 하지만 모두 쉽게 입 밖으로 희망찬 말 한마디조차 꺼낼 수 없었다.
“뭐?”
“발견했습니다.”
“…잠시만 다시 한번 보고해라.”
“국장님 자택입니다. 이 곳에 그린델왈드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마법 공간이 있습니다.”
“…….”
“다시 한번 보고합니다…….”
“…….”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된 국장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였다. 자택을 몇 번이나 수색했지만, 이곳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마 국장이 직접 만든 것이기 때문이리라. 다들 암묵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그린덴왈드가 체포되고 큰일이 일단락된 마당에 더는 들쑤실 필요가 없었다. 다행히 국장님 손가락은 무사하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들렸다.
“당장 마법 치료를 해야 합니다.”
“허가할 수 없습니다.”
“…네?”
“허가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티나 골드스틴.”
“…….”
뜻밖의 말에 몰려온 오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중엔 티나 골드스틴도 있었다. 안 그래도 당장 눈앞에 쇠약해진 마법보안국 국장이 있는데, 마법 치료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마법 의회는 단호했다. 오러들은 한마디 반박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퍼시발 그레이브스. 마법 안보부 국장.”
“…….”
“우리…그러니까 마법의회에게 국장은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린델왈드가 어디까지 마수를 뻗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의혹이 풀릴 때까지 마법 치료는 불허 노마지의 방법으로 자택에서 치료하는 것만 허가합니다.”
“…….”
“또한, 맨손 마법과 무언 마법에 능숙한 만큼 이 시간 이후로 마법 국장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마법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자택에 기거하는 집 요정 등 생활에 필요한 부분까진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
“이 모든 사항은 현재 의식이 없는 국장을 대신해 이번 사건과 관련 있는 인물인 티나 골드스틴을 대리로 세우겠습니다.”
“…네?”
“국장이 눈을 뜨면 이 결정이 담긴 문서를 전달하고, 차후 정기적으로 국장의 몸 상태에 대해 보고하길 바랍니다.”
“저…….”
“…….”
날카로운 표정을 보던 티나는 침만 꿀꺽 삼켰다. 여기서 한마디 보탰다간 없던 욕도 들어먹을 기세였다. 어쩔 수 없었다. 티나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요. 믿고 있겠습니다.”
“…….”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도록 하세요.”
“…….”
차라리 티나가 옆에 있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레이브스 국장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예 모르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누군가 보지 않게 약한 한숨을 쉰 티나는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럼…….”
짧은 손짓이 보인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사건 처리는 매우 빨랐다. 수척해진 국장을 침대로 옮긴다. 티나는 그곳에 끼지 못했다. 괜히 옷자락을 쥐었다가 다시 놓길 반복했다. 그레이브스가 마법에 매우 능숙한 가문인 만큼 한두 명이 달라붙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끝나자마자 티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게…도대체.”
“…….”
“정말 미치겠어.”
“…….”
넓은 집에 단둘이 남게 되었다. 물론 국장은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뭐부터 해야 하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퀴니를 불러냈다. 당장 달려온 동생은 눈만 동그랗게 떴다. 티나는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다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출혈이 심하거나 크게 베인 상처는 없었다. 물론 다리를 다치진 했지만, 그래도 쉬면 잘 나을 것 같았다. 마법으로 치료하면 금방일 텐데, 왜 이렇게 고통을 늘이는지 알 수 없었다.
“큰일이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리도 치료를 안 해주겠다고 하는 거야? 너무해.”
“뭐…그런가 봐. 국장님을 못 믿겠다는 거지.”
“…….”
“그나마 우리가 옆에 있어서 다행일지 몰라. 집요정도 남아있고.”
“하지만…….”
퀴니는 정이 많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남자가 그 무서운 국장이라 해도 그 성품이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당당하던 국장님의 수척한 모습이 못내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커다란 침대에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사람은 다음날이면 또 사라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24시간 이곳에 상주할 순 없었다. 티나는 집요정을 붙잡고 몇 번이나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다.
“집주인이 저런 상황에 우리가 여기 머무르긴 좀 그렇지?”
“…그렇지.”
“아침 일찍 들리는 거로 해야겠다.”
“국장님 큰일이네.”
“걱정하지 마. 금방 좋아지겠지. 그리고 의혹이 모두 풀리면 금방 치료도 가능할 거야.”
“그래야 할 텐데.”
둘은 한참 말이 없었다. 물론 사람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좋아할 수도 없었다. 괜히 침실을 한 번 더 넘겨보았다. 의식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했으니, 지금 여기서 발을 동동 굴러봤자 남는 것이 없었다. 뜻하지 않은 일을 떠맡은 티나는 고민이 깊었다.
“무서워?”
“…뭐가?”
“국장님이.”
“…….”
“안 무섭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마법 의회의 결정엔 한마디 보태려 했지만, 솔직히 나라도 그렇게 결정했을 거야.”
“…….”
“그래서 더 무서워.”
“나도.”
조용한 목소리가 섞였다. 언제나처럼 누군가를 데려오지 않았냐고 말하는 집주인을 피해 얼른 방으로 올라갔다. 단단히 닫힌 문을 열자 알아서 집안일을 하는 집기가 눈에 들어왔다. 적당히 따뜻한 공기와 달그락거리는 식기까지. 마법사들에겐 늘 익숙한 모습이었다. 옷을 입은 것부터 음식을 만드는 것까지. 마법사는 늘 마법과 함께 생활한다. 그런 생각이 들자 또 걱정이 내려앉았다.
“…….”
“너무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잘 될 거야.”
“그렇겠지?”
“물론. 국장님이 정신만 차리신다면 상처야 금방 낫겠지.”
“그래야 할 텐데.”
티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은 제법 많았지만 왜 이렇게 불안한지 알 수 없었다. 날씨가 시시때때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뉴트한테 빨리 답장이 오길 빌었다.
이미 사람에게 많이 속은 녀석은 쉽게 혹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벽에 붙어선 채 없는 눈을 굴려 뉴트를 쫓아갔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간다. 뉴트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고, 크레덴스라고 불리던 녀석은 여전히 납작하게 붙어있었다.
“…….”
“…….”
크레덴스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뉴트는 기다림에 도가 튼 녀석이라는 것이었다. 신비한 동물들을 만나기 위해선 하루를 꼬박 바깥에서 기다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런 남자 앞에 나타난 작지만, 위험한 생명체는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
“저기…….”
답지 않게 뉴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얼굴 구분도 없는 것이 또 펄쩍 뛰었다. 수상한 생물을 눈앞에 둔 뉴트는 오히려 침착했다. 물론 저 작은 것이 뉴욕을 반파시킬 뻔한 무서운 놈의 숙주라는 사실을 잊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위험할 것 같지 않았다.
“내가…아침을 못 먹어서.”
“…….”
“같이 가지 않을래?”
“…….”
“싫어?”
어쩐지 싫어하는 것 같았다. 뉴트는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몇 번이 구슬려보았지만, 저 녀석도 제법 고집이 센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다 보니 뉴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되었다. 일단 뭔가를 먹으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런 위험한 녀석을 두고 방을 비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데리고 나가자니 저 녀석은 그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어쩔 수 없지.”
“…….”
“널 여기에 두고 갈 순 없어.”
“…….”
“물론 마법으로 구속할 순 있겠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뉴트틑 말끝을 흐렸다. 이 아이를 만났을 때 뭐라고 했더라.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니면 말이야.”
“…….”
“내가 그쪽으로 가도 될까?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아.”
“…….”
“널 해치지 않아.”
“…….”
“정말이야.”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렇게 서로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뉴트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손을 편 채 손바닥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걸음 옮겨갔다.
“…….”
다행히 도망가지 않았다. 뉴트는 침을 꿀꺽 삼킨다. 조심스럽게 긴 다리를 끌고 와서 조금 더 앞으로 움직였다. 한걸음. 다시 반걸음. 반걸음. 한 발자국. 깨작깨작 거리가 줄어든다. 계속 이렇게 얌전하면 좋을 텐데, 저 녀석은 언제 폭발할지 몰랐다.
“괜찮지?”
“…….”
“가까이 가도 괜찮아?”
“…….”
“널 도와주고 싶어.”
뉴트는 진심이었다. 어떻게든 이 아이를 잘 달래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물론 뉴욕 시내를 뒤집어 놓은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테지만, 크레덴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뉴트 뿐이었다.
‘…….’
퀴니가 옆에 있었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면서 한마디 거들 것이 뻔했다. 뉴트는 늘 자신보다 동물이 먼저였다. 물론 눈앞에 있는 검은 물체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따져야 할 것 같았지만, 그런 것쯤은 별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넘어가기로 했다.
“…….”
작은 것은 내려다보며 쭈그려 앉은 뉴트는 무릎에 코를 묻은 채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런 사소한 움직임에서부터 동물을 많이 다뤄본 태가 났다. 말로 설명하기보단 몸으로 이해시키려 한다. 뱃속에서 울리는 소리는 애써 모르는 척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
“혹시…얼굴 보여줄 수 있어?”
“…….”
“널 위험한 곳에 보내지 않아.”
“…….”
구물구물 움직이는 것은 방금처럼 불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뉴트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뉴트는 쪼그려 앉은 채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단단한 손끝이 다가온다. 검은 것은 또 망설인다. 아이의 성격이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
“그래. 잠깐만 가방에 들어가 있자.”
“…….”
“당장 친구들은 만날 수 없지만, 안전한 곳을 마련해 줄게.”
손끝에 살짝 옮아붙었던 녀석은 뉴트의 손목과 셔츠 사이에 생긴 좁은 어둠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제야 한숨을 내쉰 뉴트가 천천히 일어섰다.
“아…다리 저려.”
찌르르 울리는 다리를 통통 두들겼다. 약간 비틀거리면서 아슬아슬하게 가방 안으로 내려간 뉴트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여러 동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 녀석 하나가 끼어들었다. 여전히 뉴트 옷소매가 만든 그늘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녀석은 움직임조차 없었다.
“아직 여긴 있을 수 없고.”
“…….”
“두걸. 잘 있었어?”
“…….”
동그란 눈이 깜박거린다. 소매를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녀석을 부드럽게 제지했다. 갑자기 관심을 받으면 아이가 놀랄 수 있었다. 두걸에게 천천히 설명한다. 상냥한 녀석은 뉴트의 말을 곧잘 알아들었다.
“아직은 안 돼.”
“…….”
“이곳은 처음이라…좀 낯설어 할 거야.”
“…….”
“시간이 지나면 모두에게 인사할 수 있게 도와줄게.”
“…….”
데미가이즈는 알아듣고 물러선다. 그러더니 오캐미가 있는 둥지로 돌아간다. 데미가이즈는 새끼를 보살피는 것에 능했다. 그런 상황을 행복하게 바라보던 뉴트는 아차 싶어 소매를 살짝 쓰다듬었다.
“이제 괜찮아.”
“…….”
대답도 하지 않는 녀석한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사람에게 이렇게 붙임성 있게 굴면 정말 좋을 텐데, 아쉽게도 뉴트는 그런 것엔 약했다. 동물에게 계속 말을 걸다 보면 어느 순간 맑은 눈동자를 마주 볼 수 있었다. 뉴트는 그런 방법으로 지금까지 신비한 동물들과 살았고,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여기 있자.”
“…….”
“음…그러니까 여긴 내가 연구실로 쓰는 곳이야.”
“…….”
“주변이 좀 더럽긴 한데…넌 작으니까. 괜찮을 거야.”
“…….”
“아무래도 다들 널 궁금해해서 밖에 있으면 귀찮아질 테니까. 아 가두겠다는 소리는 아니야. 응?”
“…….”
뉴트가 둥글고 입구가 넓은 그릇을 찾았다. 어디서 저런 걸 주워왔는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에 밖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어두운 천을 뒤집어씌운다. 푹신한 깃털을 넣는다. 이리저리 짐을 뒤지면서 할 것이 왜 그렇게 많은지 부산스러웠다.
“자, 됐다.”
“…….”
소매를 톡톡 치던 손가락이 저쪽으로 사라졌다. 소매 끝에서 빼꼼 모습을 보인 녀석은 손가락을 따라간다. 땀에 푹 절은 뉴트는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작품을 보여줬다.
“아직 인간으로 돌아오긴 힘든 모양이니까.”
“…….”
“여기 있자.”
“…….”
뉴트는 손끝을 어두운 그릇 안에 대고 어서 들어가 보라고 재촉한다. 자꾸 소매 안으로 들어가던 것은 결국 성화에 못 이겨 밖으로 나왔다.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뉴트를 바라보았다. 세상 해맑은 표정인 뉴트를 보고 있자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며칠만 여기 있어.”
“…….”
“그래도 다행이야. 길이 엇갈렸으면 큰일이 났을 수도 있으니까.”
“…….”
“여긴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니까 괜찮아.”
“…….”
“나 믿지?”
“…….”
뭐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쁘진 않나 봐. 하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다. 뉴트는 다행히 책상에 처박아둔 비스킷을 찾았다. 물론 저걸 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말려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다시 만나서.”
“…….”
“음…그러니까.”
“…….”
아깐 그렇게 재잘재잘 말을 걸던 주제에 막상 마주 보고 있자니 할 말이 떨어졌다. 묵묵히 말라비틀어진 비스킷을 씹던 뉴트는 괜한 입맛만 다신다. 퍽퍽한 음식물이 간신히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먹을 것이 들어갔다고 아까보다 배고픔은 조금 가신 것 같았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보자.”
이미 사고를 쳐놓고 수습할 생각을 하는 뉴트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녀석은 조그만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
“뉴트한테 편지 보내도 괜찮을까?”
“왜?”
“그래도…이번 일에 중요한 관계자인데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흐음.”
금발 머리가 눈앞에서 가늘게 흔들렸다. 나긋나긋하게 티나를 스쳐 지나간 여성을 가벼운 손짓으로 티포트를 움직였다. 달그락. 달그락. 맑고 가벼운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일단 마시면서 생각할까?”
“확신이 안 서네.”
“아직도 같은 소리를 반복하네.”
“…….”
“이거 제이콥 가게에서 사 온 거야.”
“…….”
“흐음.”
퀴니가 눈썹을 축 늘어뜨린다. 눈앞에 허공에 숟가락을 젓고 있는 티나가 보인다. 얼마나 고민을 하는 건지. 퀴니는 그 손을 살짝 잡고 코코아 잔에 숟가락을 넣어주었다.
“그냥 가볍게 보내도 괜찮잖아.”
“…….”
“잘 도착했냐. 여긴 어떻다. 이런 식으로?”
“…….”
“티-나.”
“마…마음 읽지 마. 퀴니.”
“그렇게 말하려면 나한테도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예쁜 입술이 비죽거린다. 티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반쪽이 날 뻔했던 뉴욕은 다행히 뉴트의 도움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천둥새가 날아오름과 동시에 빠르게 복구되는 도시를 보면서 한숨 돌린 것이 얼마 전 일이었다. 하지만 도시를 정리한다고 해서 끝날 일은 아니었다.
“역시 국장님 때문인 거지.”
“응.”
“…일단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건 아닌가.”
“…….”
티나가 한숨을 푹푹 쉬고 있자니 퀴니도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걱정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서로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이미 코코아는 반쯤 식어버렸고, 뾰족한 해결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먼저 물어보게 하면 어떨까?”
“…응?”
“잘 도착했냐고 편지를 보내면 뉴트가 답장을 보내주지 않을까? 그러면 국장님에 관해서 물어볼 수도 있고.”
“괜찮은 생각이야.”
“그렇지?”
퀴니가 생글생글 웃었다. 평범하고 좋은 해결책이었다. 물론 이 편지를 받을 마법사가 그들의 생각보다 엉뚱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편지 행간에 섞인 이야기를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코코아잔과 쿠키 접시를 치우자마자 식탁엔 종이와 펜이 준비되었다.
“…….”
티나 골드스틴은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중이었다. 최대한 무겁지 않게. 하지만 정중하고 예의를 갖춘 말투로. 정보 전달과 안부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야 했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머리와 달리 단정한 글씨가 종이에 빼곡하게 옮겨갔다. 퍼시발 그레이브스. 오러 국장. 그린덴왈드. 익히 알고 있던 이름이 보였다. 티나는 종종 펜은 내려놓고 고민을 하곤 했다.
‘흐응.’
가볍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식기 정리를 하던 퀴니 골드스틴은 속으로 내내 웃었다. 편지란 것은 누구라도 쉽게 쓸 수 있지만, 한번 고민하기 시작하던 무엇보다 끝맺기 어려운 것이었다.
많이 피곤한 모양인지 주변에서 소곤거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아이처럼 약간 웅크린 채 이불을 끌어당긴다. 이불에 돌돌 말린 애벌레 같은 모습으로 잠든 뉴트 곁으로 작은 어둠이 기어왔다.
“!”
피켓을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하지만 어둠을 쫓아낼 힘이 없었다. 뉴트한테 아무리 매달려 봐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어둠의 목적은 피켓이 아니었다. 천천히 그림자를 따라 옮아간 것은 뉴트 곁을 빙빙 맴돌았다. 곤히 잠든 뉴트는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
피켓의 부산한 움직임이 잦아들 무렵 작고 검은 것은 좀 더 대담하게 움직였다. 이불과 닿아있는 그림자를 통해 숨어들어 뉴트의 옷깃에 옮아붙었다. 그럴 때마다 재가 공기 중으로 흩날렸다. 목덜미와 옷깃이 닿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저것에 눈이 있다면 그저 깜박일 뿐 숨조차 크게 내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뉴트는 그것도 알지 못했다. 으응. 약하게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불을 끌어당기며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그 소리에 피켓이 간신히 이불 끝을 잡고 매달렸다.
“!”
좋아하는 뉴트 옆에 무서운 것이 붙어있지만 도와줄 수 없었다. 가방 자물쇠를 열어서 동물들에게 도움을 청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다가 또다시 동물들이 사라지면 뉴트가 무척 슬퍼할 것 같았다. 작은 녀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
“…으응.”
“…….”
뉴트의 부드럽고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에 폭 파묻힌 녀석은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 같았다. 뉴트가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면서 몸뚱이가 덥석 덥석 뜯겨나갔다. 하지만 몸이 사라지는 것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인지 좀 더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저 녀석이 왜 저렇게 뉴트에게 집착하는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으. 티나. 그만.”
“…….”
“코코아는 이제 됐어요…….”
“…….”
“이제 괜찮아…….”
말끝이 늘어지는 잠꼬대를 하던 뉴트가 미간을 찌푸린다. 분명 꿈속에서 마시멜로가 잔뜩 든 코코아로 고문을 당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잠결에 손까지 휘적거리던 뉴트는 이제 숨을 내쉬면서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금방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뉴트에게 옮아붙은 검은 것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티나 골드스틴. 그 이름을 듣자마자 불안하게 움직이더니 뉴트 곁에서 멀찍하게 떨어졌다. 그리곤 없는 눈을 굴리는 것처럼 이리저리 돌아본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다시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간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피켓은 뉴트에게서 검고 무서운 것이 떨어지자마자 이불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곤 늘 그랬던 것처럼 적당한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불안한 기분을 느꼈는지 가방이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단단하게 묶어둔 것이 풀리지 않아 아무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모두가 잠을 못 이루는 곳에서 뉴트만 꿀 같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보통은 이렇게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동물을 데리고 다닐 땐 늘 선잠을 자고, 작은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약간 달아오른 얼굴로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기어들어 갔다.
“…….”
고른 숨소리가 침대에 사분사분 내려앉았다. 무슨 꿈을 꾸는 건지. 뉴트는 새벽이 뿌옇게 밝아올 때까지 눈 한번 뜨지 않았다.
✡
“!”
“…….”
“!”
“…….”
“!”
“으…알았어. 조금만…더.”
“…….”
“오 분…마안.”
아침부터 피켓이 보채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제대로 닫지 못한 창에서 햇살이 흘러들었다. 햇빛이 침대를 타고 넘어왔다. 그리곤 밝고 보들보들한 속눈썹에 주렁주렁 걸렸다. 절로 눈을 찌푸린 남자는 자꾸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이젠 거의 다리가 배에 닿을 정도로 몸을 만 채 끙끙거리며 빛을 피하기 시작했다.
한숨도 못 잔 동물들과 달리 밤새 편히 잤으면서도 이랬다. 뉴트는 잠을 얼마나 청하던 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동물을 보살피려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동물을 보살피고 적당히 잠을 청한 다음 배가 고프면 일어나서 동물부터 챙기곤 했다. 그러다 보니 늦게 자는 일이 점점 잦아졌고, 자연스럽게 아침을 침대 안에서 보내게 되었다.
“…….”
그새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 뉴트는 간신히 머리카락 한 줌만 밖으로 내놓았다.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며 최대한 버텨보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졸음이 잔뜩 붙은 얼굴로 일어나 앉았다. 누가 보면 한숨도 못 잔 것 같은 표정으로 하품하던 남자는 실눈을 떴다. 그리고 허벅지에 올라앉은 피켓을 보는 순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심심했어?”
“…….”
“왜 이렇게 보채는 거야. 배가 고픈 걸까?”
“…….”
“이상하네.”
“…….”
“난 많이…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물론 하룻밤 푹 잤다고 풀릴만한 피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피켓은 뉴트가 걱정이 되는지 찰싹 달라붙었다. 그런 녀석의 몸을 간질거리던 뉴트는 이제야 정신이 든 표정이었다. 약한 신음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나 냉큼 가방 앞으로 달려갔다. 조심스럽게 묶어둔 끈을 풀고 가방을 열자마자 니플러가 튀어나왔다.
“안돼!”
“…….”
“여기서 도망치면 나 정말 화낼 거야.”
“…….”
끼잉 끼잉. 최대한 불쌍하게 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뉴트는 엄한 표정으로 니플러를 잡은 채 놔주지 않았다. 이런 표정의 뉴트는 아무도 이길 수 없으므로 니플러는 순순히 품에 안길 수밖에 없었다. 뉴트는 곧장 가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한번 가방이 열리고, 방은 비었다.
“…….”
죽은 듯 침대 밑에 숨어있던 녀석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해가 가득 찬 방 안은 그림자가 별로 없어서 움직임이 여의치 않았다. 물론 밝은 곳을 다닐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쪽이 편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싫었다. 조심스럽게 침대 밑에 숨어있던 녀석은 뉴트가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살금살금 가방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신비한 울음소리가 섞여서 흘러나왔다.
가방 모퉁이에 찰싹 붙은 채 한동안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인간 세계보단 저곳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적어도 가방 안에 숨어있다면 모두 자신을 손가락질하거나 괴롭히지 않을 것이란 알 수 없는 희망이 생겼다. 검은 것이 가방을 타고 넘으려는 그 순간 아래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펄쩍 뛸 듯 솟아오른 것은 재빠르게 침대 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제 몸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는지 손톱만 한 검은 재를 가방 곁에 남기고 말았다.
“아, 세상에. 니플러!”
“…….”
“니플러! 거기 안 서?”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훌쩍 가방을 타고 넘은 동물이 창문을 통해 도망가기 직전 뉴트가 간신히 발을 잡았다. 어떻게든 버티려는 녀석을 단호하게 창틀에서 떼어낸 뉴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창가에 주저앉았다.
“나…아침도 안 먹었어.”
“…….”
“그리고 방금 일어났고.”
“…….”
“니플러…나 어지러워. 응?”
“…….”
흐늘흐늘 주저앉은 뉴트는 그 와중에도 니플러를 꾹 껴안았다.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바깥세상에 반짝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녀석은 틈만 나면 이러곤 했다. 물론 니플러 만큼 뉴트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지금은 빈속에 달리기까지 했더니 온몸이 뒤집힌 것 같았다. 겨우겨우 니플러를 반짝이는 것이 가득한 둥지로 돌려보냈다. 이제 뭐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뱃속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은 뉴트는 곧 가방을 닫고 조심스럽게 자물쇠를 걸었다.
“아…오늘도 힘들었어.”
한숨이 푹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방을 들려고 손을 뻗은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낯선 것이 눈에 들어왔다. 생경하고, 새까만 것은 머글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순간 뉴트는 낯설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빤히 지켜보았다. 어디서 봤지. 이건 분명.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햇빛에 약한 것인지, 아니면 습기가 부족한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무언가의 흔적은 확실한데, 그 이상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생명 반응도 없고, 녹아내린 흔적이 남지도 않았다. 그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천천히 공기 중으로 스며들었다.
“…설마.”
뉴트가 올리브색 눈을 깜박거리며. 몇 번이나 반복한 행동 때문에 속눈썹에 길게 걸려있던 해가 가루가 되어 풀풀 날렸다. 그러더니 손을 불안하게 움직이면서 입술 가를 쓸었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슬쩍 물었다. 좀처럼 진정하지 못한 뉴트는 연신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가방을 한 곳으로 치워놓고 방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침대였다. 베개며 이불까지 탈탈 털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오래된 이불에서 올라오는 약한 먼지 외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
창문 틈부터 갈라진 벽까지 모두 찾아본 뉴트는 결국 잘 보이지 않는 침대 밑을 보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이미 아침 식사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난 지 오래였다. 이제야 어젯밤 피켓이 소란스러웠는지 이해가 갔다. 알 수 없는 것이 주변에 있으니 당연히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뉴트는 약하게 앓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이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안 보이는데.”
아무리 눈을 가늘게 떠도 깊숙한 어둠에 파묻힌 침대 밑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뉴트는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꺼냈다. 그 순간 침대가 덜컥덜컥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안하게 요동치는 침대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
뉴트는 지팡이를 든 채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팡이를 꺼내자마자 이런 일이 생겼으니 거두는 것이 맞는데 쉽사리 그럴 수 없었다. 침대 밑에 들어앉은 것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자신과 신비한 동물을 지킬 수 있는 것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가 들썩거렸다. 다행히 부서지진 않은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소란을 피운다면 머글에게 들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지.’
뉴트는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집어넣었다. 그리곤 동물을 다룰 때처럼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손바닥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했다. 눈을 마주치지 말고, 천천히 침착하게. 동물을 다루는 쪽이 익숙한 뉴트는 차라리 이쪽이 나았다. 언제부터 근처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침대 밑을 차지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한참 들썩거리던 것을 멈추고 또 조용히 숨을 죽였다.
“나…아무것도 안 들고 있어요.”
“…….”
“해치지 않아. 응?”
“…….”
“지팡이에 놀랐으면…내가 사과할게. 나도 놀라서 그랬어.”
“…….”
“왜 여기에 왔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
“…말은 못하겠구나.”
뉴트는 민망한지 괜히 웃음을 흘렸다. 조금이라도 진정하면 좋을 텐데, 녀석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끈기 있게 기다려주던 뉴트는 결국 지팡이를 찔러 넣은 코트까지 벗고 말았다. 그리고 저 멀리 던진 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물론 이런 상황을 누군가 봤으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크게 잔소리를 했을 것이 분명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 목숨을 지켜줄 방패를 내버리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뉴트는 그런 것보다 당장 침대 밑에 있는 녀석이 더 급했다. 뉴트에게서 지팡이가 멀어지자 녀석은 눈에 띄게 얌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난 널 해칠만한 힘이 없어. 알 수 있지?”
“…….”
“우리 조금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데…….”
“…….”
“응?”
“…….”
이렇게까지 했는데 움직이지 않으면 별다를 수가 없었다. 그대로 뉴트가 먼저 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아니면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머글에게 들키지 않고 조심조심 처리하고 싶었는데,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사고를 칠 위기였다.
그 순간 침대 밑에서 작고 검은 물체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 순간 뉴트는 비슷한 상황은 본 기억이 났다. 이건. 이목구비라곤 없는 녀석과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
“…….”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뉴트는 이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었지만, 이미 몸이 한계를 넘어선 기분이었다. 결국, 솔직한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내리고 검은 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크레덴스?”
“…….”
“맞지?”
“…….”
또 한 번 불안한 듯 웅웅 울기 시작하는 녀석에게 두 손을 뻗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그러니까. 당황하면 말이 꼬이고 혀가 굳었다. 온몸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뉴트를 가만히 보던 녀석이 조금씩 다가왔다. 뉴트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 얌전해진 녀석을 바라보았다.
“…맞구나.”
“…….”
“어떻게 날 찾아왔어.”
“…….”
“응? 나한테 말해줄 수 없는 일이야?”
누구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꼭 아이를 어르는 것처럼, 갓 태어난 동물을 보듬는 것처럼 뉴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 뉴트의 태도에 불안하게 떨리던 녀석이 점점 얌전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기서 옵스큐러스가 날뛴다면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뉴트는 색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뱃머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뱃바람은 생각보다 차고 강했다. 몸을 약간 웅크린 채 신발코만 바라보았다. 배는 아무리 넓어도 사람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뉴트의 신경은 모두 가방으로 향해 있었다. 다음 정착지에 닿을 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당장 끌려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유난히 추워 보이는 청년은 그렇게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그런 청년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생각이 깊어지면 앞뒤를 보지 못한다. 연신 불안하게 움직이는 눈동자가 깜박거림을 따라가지 못하고 눈물이 고였다. 아무래도 바람이 부는 곳에 오랫동안 서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축축해진 속눈썹을 손가락 끝으로 닦아낸다. 추위가 가시자 피곤함이 밀려왔다. 뉴트가 천천히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으…….”
적당히 자리를 잡은 뉴트가 끙끙 앓았다. 뉴욕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저 잠깐 이곳에 들려 필요한 물품만 사고 떠나려 했다. 하지만 도시는 뉴트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옵스큐러스의 숙주가 된 아이를 만났다. 옵스큐러스의 숙주가 된 아이는 오래 살지 못한다. 그것이 알려진 정설이었다. 하지만 뉴욕에 나타난 아이는 뉴트의 예상보다 훨씬 컸다.
“그랬었지.”
뉴트의 혼잣말을 들은 동물들이 가방 안에서 덜그럭덜그럭 말을 걸어왔다. 친절한 손길로 가방을 두드린다. 살짝 풀렸던 표정이 순간 다시 굳어졌다. 몸집이야 컸지만, 뉴트는 그 안에 들어있는 작은 아이를 분명히 보았다. 마치 갓 태어난 동물 같은 녀석은 사람을 무서워하면서도, 애정을 갈구했다. 한없이 두려운 눈을 한 녀석은 자신을 잡아먹은 것조차 마음대로 다루지 못했다.
“…….”
그런 아이에 대한 걱정은 어느새 길어 이어졌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묘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눈길이 갔던 걸까. 사실 확실하지 않았다. 뉴트가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늘 위로 다 타고 남은 재가 휘날리듯 한 줌 생명력을 가진 채 사라지는 아이는 분명 죽지 않았다. 간신히 무너진 돌을 타고 넘는 생명의 움직임을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거기서 소리쳐 부를 수도 있었지만, 뉴트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이곳에서 신경 써야 할 것은 아이 하나만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그레이브스가 그린델왈드로 변하는 것을 봤다. 뉴트는 순간 참았던 현기증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왜 몰라 봤지.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빼곡하게 자라났다. 하지만 그레이브스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린델왈드 뿐이었다. 그 남자는 비열하게 웃으면서 끌려갔고, 뉴트가 뉴욕을 떠날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레이브스. 퍼시발 그레이브스. 뉴트는 익숙한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뉴트?’
‘으응? 왜 그래요?’
‘아니 뭔가 걱정이 있는 것 같아서…….’
‘아, 그게…….’
뉴트는 우물우물 말을 삼킨다.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무리 사회생활에 어색한 뉴트라해도 이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좀 많은 일이 있어서 그랬어요.’
‘그랬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요. 티나.’
‘알았어요.’
‘동물 사전 완성하면…꼭 선물하러 올게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뉴트.’
티나가 웃는 얼굴을 보고 나서야 뉴트는 허겁지겁 배에 올랐다. 그 배가 지금 있는 장소였고, 뉴욕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좀처럼 걱정이 사그라들진 않았다. 오히려 저 멀리 묻어두었던 옛날 생각이 났다. 그 순간 뉴트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서렸다. 하지만 잠시 간질간질한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에 덜그럭거리는 가방을 끌어안아야 했다.
“니플러. 가만히 있어.”
“…….”
“여기서 문제 일으키면 우리 큰일 나.”
“…….”
“조금만 더 참아줘. 응?”
“…….”
버둥거리던 움직임이 조금씩 잦아든다. 니플러는 항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세상엔 반짝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럴 때마다 뉴트가 고생을 한다. 슬쩍 웃던 뉴트는 피곤한지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간신히 떴다.
“피곤해.”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깊게 잠을 잘 수 없었다. 가방을 꽉 끌어안은 길쭉한 청년은 잔뜩 지친 얼굴로 꾸벅꾸벅 졸았다. 아직 도착하려면 시간이 남았고, 배 안에선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당장 인파가 바글바글한 이곳을 떠나 가방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방에 눈이 있으니 멋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뉴트는 한숨에 피곤함을 담았다. 먹을 것은 넉넉하게 챙겨 넣었으니 동물들은 괜찮겠지. 애써 위로를 해보지만, 한번 가슴에 들어앉은 불안함은 날로 커지기만 했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이럴 땐 마법도 소용없다 보니 절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뉴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적지는 멀기만 했다. 어느 순간 가방에 이마를 댄 뉴트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꿈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 때문에 뉴트는 첫눈에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단단한 골격에 단정한 눈매.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 뉴욕에서 만났던 그레이브스 국장이었다. 왜. 뉴트의 물음은 목에 단단히 걸려서 나오지 못했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남자를 보자 뒤로 물러서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발이 땅에 붙은 것 같았다. 마법인가. 뉴트는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만 이리저리 돌렸다. 성큼성큼 뉴트 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다정한 손짓으로 뉴트를 끌어안았다.
‘…….’
꿈에서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얼마 전 죽으라 싸우는 사람이었다. 옅은 올리브색 눈이 등잔만큼 커졌다. 숨이 거칠어지면서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 순간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뉴트의 몸에 내려앉았다.
‘뉴트.’
‘…….’
‘날 기억하지 못하다니, 서운한 걸,’
‘그…….’
이상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레이브스 국장은 한결같은 얼굴로 소중한 물건을 대하듯 뉴트를 끌어안았다. 익숙한 느낌에 뉴트는 눈을 감은 채 얌전히 안겨있었다.
‘정말 내가 기억나지 않나?’
‘…….’
그 뒤론 급격하게 말소리가 흐려졌다. 따뜻하게 안아주던 몸이 점차 사라지는 걸 느끼자 뉴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진 공간엔 뉴트만 있었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흰 공간에서 뉴트는 그저 눈만 깜박일 뿐이었다.
“…….”
눈물에 푹 절인 눈동자가 속눈썹 사이에서 반짝였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것이 민망했던지 뉴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짐을 챙겼다. 꿈은 기억하지 않으면 금방 흩어지고 만다. 분명 가슴이 벅차서 울었던 주제에 뉴트는 빠르게 꿈을 잊고 있었다. 역시 너무 피곤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집에 가면…좀 쉬어야겠어.”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 모양이라며, 뉴트는 여행 동선을 수정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좀 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억지로 움직여서 몸을 상하게 하느니 잠깐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형한테도 할 말이 있고, 정리해야 할 것도 많았다. 집으로 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느긋하게 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집에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는 큰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
그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언제부터 주위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뉴트의 온 신경은 자신의 가방을 향해 있었기에 주변을 살피지 않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 동물들을 살펴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에 푹 잠긴 뉴트는 자신을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
그런 뉴트의 주위에 작은 것이 따라다녔다. 처음엔 저 멀리서 간신히 뉴트를 바라보면서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게 쫓아다녀도 뉴트가 반응을 하지 않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방에 뻗어있는 어둠을 타고 옮겨 다녔다. 뉴트의 머리카락에 옮아붙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간 녀석이 한 번 더 어둠을 타고 넘으려 했다.
“응?”
뉴트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 순간 반쯤 나와 있던 것이 그늘 속으로 녹아들었다. 인파 속에서 멈춰선 뉴트를 기점으로 머글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길거리엔 늘 머글이 많았다. 꼭 물가에 솟은 돌 같았다. 검은 것은 숨도 쉬지 않은 채 그늘 속에 숨어있었다. 여기서 들키면 영영 갈 곳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뉴트의 시선은 검은 것을 향하지 않았다.
“니플러.”
“…….”
“피켓. 너도 가만히 있어.”
“…….”
피켓은 답지 않게 자꾸 기어 나와 주머니를 잡고 늘어진다. 짹짹거리는 소리가 남에게 들릴까 봐 뉴트는 최대한 어깨를 움츠린 채 한 손으로 피캣을 쓰다듬는다. 그리곤 입술을 가까이 댄 채 달랬다. 조금만 더 참자. 응? 쉽게 들을 수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간신히 둘을 달랜 뉴트는 다시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것은 뉴트의 머리통이 사라지기 직전 급하게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거리엔 어둠이 내리곤 했다. 오늘은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서 더 헤맸다간 길거리에서 노숙을 할 판이었다. 뉴트는 적당한 숙소를 잡았다. 사방에 깔린 어둠 덕분에 뉴트 발치까지 다가간 녀석은 숙소엔 들어가지 않고 주위를 빙빙 돌았다. 피켓은 또 소리를 냈고, 뉴트는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갔다.
“왜 그래?”
“…….”
“조용히 하지 않으면 들켜버린단 말이야. 응?”
“…….”
“무슨 일이야. 오늘 왜 이렇게 예민해? 피곤해서 그러는 거야?”
세상 따뜻한 목소리로 동물들을 어른다. 간신히 피켓을 달래고 가방을 열어본다. 니플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저지했다.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많은 일을 할 순 없고 아주 잠깐만 동물들을 보고 오기로 했다. 가방을 열고 잠시 고민하던 뉴트는 냉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분명 옆에 누군가 있으면 문단속도 하지 않고, 다닌다고 한소리 할 만한 상황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순 없지만, 뉴트에게 방을 내어준 주인은 그리 오지랖이 넓지 않았다. 깡마른 청년이 잔뜩 피곤한 표정으로 올라간 것을 보고도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용한 방 안에 가방이 홀로 열려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을 타고 수상한 것이 기어 올라왔다. 그리곤 가방을 빤히 바라보았다. 차마 들어가진 못한 채 작은 먼지 같은 몸을 이끌고 침대 밑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들었다.
“…….”
가방 안에선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충분히 호기심을 당길만한 소리지만 침대 밑에 숨어 들은 것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치 원래 있던 먼지처럼 그렇게 내려앉았다. 한참 만에 뉴트가 가방에서 걸어 나왔다. 피곤하다면서 동물을 돌볼 여력은 있는 모양이었다. 침대에 풀썩 쓰러진 남자는 피켓이 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알았다고 자꾸 쓰다듬기만 했다.
“나 피곤해.”
“…….”
“응. 응. 알았어. 같이 자자.”
“…….”
“응…그래. 괜찮다니까…….”
“…….”
뉴트의 셔츠 깃을 붙잡고 매달리던 피켓을 뭔가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펄쩍 뛴다. 그러다 남자의 품을 파고들었다. 낯선 것 하나와 익숙한 가방이 있는 곳에서 뉴트는 기절한 것처럼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