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뉴트/민늍] 신부이야기 002
+) NOTICE
신부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앙아시아+무언가 동양 판타지 aU입니다
민호는 도적단 두목 / 뉴트는 팔려가던 중
기본적인 의상에 대한 묘사는 촐님(@go00chol)의 그림을 보고 연성했습니다
촐님(@go00chol), 로케님(@goroke11)과 같이 풀던 썰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어집니다...아마도? 투비 컨티뉴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신부이야기 002
“…….”
꽤 멀리 이동하는 동안 뉴트는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말에서 떨어질 것 같은 모습에 짧게 혀를 찬 남자가 팔로 단단히 몸을 고정했다. 이 정도면 정신을 차릴 법도 한 것 같은데, 좀처럼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눈앞에서 어지럽게 펄럭이는 옷을 적당히 정리하고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두 사람의 무게를 짊어지고 걷는 말은 거센 숨을 토했다. 그 순간 뉴트가 휘청거리며 굴러떨어질 뻔 했다. 그러자 말 주인이 급히 말을 세웠다. 그리곤 잔뜩 눈을 찌푸린 채 의식이 없는 몸을 바로 세웠다.
“…이런.”
“…….”
“이 생각을 못 하고 그냥 데려왔네.”
“…….”
“귀찮게.”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늘 빠르게 달려서 돌아가는 곳이라 이렇게 귀찮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의식 없이 늘어진 사람을 간수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축축 늘어지는 몸에 감긴 긴 옷과 머리쓰개가 정신없이 휘날렸다. 작은 장식 구슬이 햇빛을 받을 때마다 요란하게 눈이 부셨다. 몇 겹이나 되는 옷이 싸고 있는 허리를 턱 잡았다. 별 저항 없이 휙 넘어오는 몸을 말 등에 기대듯 눕혔다. 그리고 허리를 양팔로 단단히 고정했다.
“뭐, 적당히 버틸 수 있을 때까진 데리고 가야지.”
대장이 멈춰선 덕분에 부하들도 우르르 발걸음을 멈추고 대기하고 있었다. 넓은 등과 팔이 움직일 때마다 언뜻언뜻 화려한 천이 눈에 띄었다. 다들 제멋대로 수군거리기도 하면서 대장의 명령만 기다렸다.
“가자.”
“네, 대장.”
그 이후로 먼 길을 가는 동안 몇 번이나 멈춰 서야 했다. 그렇게 난리가 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녀석은 말이 움직이는 대로 어디론가 실려 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 귀찮다고 패물만 벗기고 길에 버리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까. 아니면 차라리 버려주는 편이 나았을까. 정작 당사자는 아직도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일어날 법도 한데, 아무래도 긴장이 확 풀어진 것 같았다.
게다가 저 사람에게 대장이 호기심을 보이는 동안엔 부하들도 뭐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평소에 약탈할 물건 외엔 관심도 없는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며 서로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말은 바삐 움직였고, 해가 어둑하게 지기 시작해서야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미 모닥불을 피우며 저녁 준비를 하던 녀석들이 달려 나왔다. 가장 앞장서 있던 말이 걸음을 멈추더니, 검은 인영이 훌쩍 뛰어내렸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경비대나 다른 수상한 녀석들이 다녀가진 않았느냐?”
“물론이죠. 여기까지 들어오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뒤쪽에 얼마 되진 않지만 물건이 있으니 창고로 옮겨두도록 해.”
“네, 그런데 저건…….”
“아, 전리품이다.”
말 위에 반쯤 걸쳐져 있는 뉴트의 몸을 끌어내려서 덥석 안아 든 사람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땅에 끌릴 것 같이 길게 늘어진 천이 바람이 불 때마다 어지럽게 휘날렸다.
“저건 뭐래?”
“대장이 마음에 드시나 보더라. 하긴 우리 두목님도 이제 여자 하나 곁에 두실 때도 되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 물론 지금까지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는 건 빼고.”
“…….”
“여하튼 신기한 일이네. 얼굴이 예뻤나.”
“우리도 못 봤어. 머리쓰개를 푹 뒤집어쓰고 죽은 듯 앉아 있더라고, 행색이나 가진 물건을 보아하니 팔려가는 처지였나 보던데.”
“이러나저러나 험한 팔자네.”
쑥덕거리기 시작한 사람들은 뒤따라온 부대장에서 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사방에 풀어진 말을 정리하고 약탈한 패물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닥불은 사람들이 돌아온 만큼 조금 더 밝게 피어올랐고, 완전히 해가 넘어간 밤하늘엔 하나둘 별이 돋기 시작했다.
“…….”
그런 소란스러움을 뒤로한 채, 대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잠자코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움직이느라 이부자리도 치우지 못하고 나간 곳은 영 엉망이었다. 그리고 안고 들어온 녀석을 조심스럽게 이불 위에 내려놓았다. 어둠이 내린 천막 안에선 얼굴을 제대로 뜯어볼 수 없었다. 램프에 불을 붙이고 문을 닫았다.
“…….”
그제야 천에 가려 보지 못했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흐트러진 밝은 머리카락은 그렇다 치더라도 얼굴선이 영 여자 같진 않았다. 입고 있는 곳은 틀림없이 여자 옷인데. 슬슬 머리가 아팠다. 아무거나 편할 대로 주워 입고 다니는 도적이라 해도 남자 옷과 여자 옷을 구별할 줄은 알았다. 여자들이 외출할 때 쓰는 머리쓰개까지 하는 걸 봐선 취미로 입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차림이었다.
“네 녀석의 주인 될 사람이 꽤나 취미가 요란했던 모양이구나. 옷을 보아하니 대충 견적이 나온다.”
“…….”
“네 팔자도 물론 알만하고 말이다.”
“…….”
듣지도 못하는 녀석을 앞에 두고, 혼잣말하며 웃었다. 사내 녀석이 이런 꼴을 하고 말을 타고 가고 있다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근방 부자가 어떻게든 마음에 든 사람을 구워삶아서 집으로 들이려는 거였겠지. 보통 그런 사람들의 미래는 거의 비슷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그리곤 눈꺼풀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정리를 해줬다. 그러자 날카로운 눈썹이 보이고, 그 아래 자리 잡은 단단한 눈매가 드러났다. 예쁜 곡선을 그리는 목은 몇 겹씩 껴입은 옷 덕분에 간신히 한마디 정도 보일 뿐이었다. 어쩐지 자기 목이 다 답답해지는 기분에 바라보다가 자기 옷깃을 풀었다.
“답답하진 않은가. 잘도 자네.”
“…….”
“뭐 어차피 너도 팔자가 꼬일 대로 꼬인 거, 오늘 하루 잠이라도 푹 자고 일어나라.”
“…….”
좋을 대로 이야기를 툭툭 던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목이 천막을 걷고 나오자 부하들이 냉큼 달려왔다.
“그래. 내 천만 안에 사람이 하나 있으니 도망가지 못하게 입구를 잘 지키고 있어라.”
“그냥 저쪽으로 같이 보내시지.”
“내가 좀 알아볼 것이 있다.”
“알겠습니다.”
언제 부드럽게 말을 걸었냐는 듯 무뚝뚝하고 단단하게 명령을 하기 시작했다. 부하들은 그런 명령을 거스르지 않았다. 갑자기 두목이 저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캐물을 수도 없었다. 괜한 호기심이 돋은 몇몇 녀석들이 천막을 둥글게 에워싸고 지키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지키고 있는 내내 뉴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은 항상 밤이 일찍 찾아왔다. 어둠을 태울 것처럼 높이 솟아오르던 모닥불도 어느덧 잦아들었다. 드문드문 나무가 타는 소리와 함께 불꽃 부스러기가 훅 날아올랐다. 몇 번 장작을 뒤집어준 불침번들이 하나둘 주변을 경계하는 것처럼 걸어 다녔다.
“흠.”
“두목, 아직 안 일어났는데요.”
“…….”
“다른 곳으로 옮길까요? 불편하실 텐데.”
“괜찮아. 그냥 놔둬.”
“알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부르십쇼.”
꾸벅 고개를 숙인 녀석들이 천막에서 조금 떨어졌다. 하긴 흉악한 놈도 아니고 제대로 밥도 못 먹은 것 같이 생긴 녀석 하나 누워있다고, 무슨 큰일이 생길까 싶었다. 게다가 대장이 제압을 못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다 눈이라도 맞으면 좋은 거고. 온갖 생각이 부하들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그런 녀석들의 생각이 빤히 보이는지 냅다 엉덩이를 걷어차서 돌려보낸 남자는 잠자코 입구에 걸쳐진 천을 걷어 올렸다.
“…….”
혹시나 심지가 다 닳아서 큰일이 날까 싶어 치워두었는데, 그동안 깨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불 하나 켜지 않아 어두운 천막에 하얀 달빛이 스며들었다. 천을 걷어 올린 모양 따라 길게 늘어진 빛을 따라가던 시선이 화려한 천에 턱 걸렸다.
“…….”
분명 자리에 똑바로 눕혀놨었는데, 한쪽으로 돌아누워서 웅크린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겁이 없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직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는 건지. 한참 들여다봐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쯤 얼굴을 가린 채 구겨져 있던 머리쓰개가 이불처럼 넓게 펴져 있었다. 살짝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리나 싶더니 가는 숨소리가 들렸다.
“…이를 어쩐다.”
잘 자고 있는 것을 억지로 깨우기도 좀 그랬다. 계속 바깥에 서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딱히 여자를 가까이하는 편은 아니어서 천막 안엔 한사람 몫의 생활 도구만 있었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맨바닥에서 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옷을 입은 채 자면 감기 걸릴 텐데.”
멋대로 납치해서 데려온 주제에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벌써 천막 안은 제법 쌀쌀한 공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램프를 찾았다. 심지에 불을 붙이자 붉은 불꽃이 은은하게 천막 안을 감싸 안았다. 일렁이는 불 아래서 다시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입술에 살짝 발랐던 것은 이미 한쪽으로 쭉 번진 채 거의 날아갔다. 긴 속눈썹에 걸려있는 불꽃조각이 일렁이며 타올랐다. 그대로 계속 바라만 보았다. 불꽃은 온몸에 걸려있는 패물들에 옮겨붙으며 반짝거렸다. 어쩐지 낮에 느꼈던 눈부심이 그대로 살아 오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벌써 한밤중이었다. 여전히 자리를 차지한 불청객은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앞에 팔짱을 낀 채 앉아있는 사람은 잠도 오지 않는지 계속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어날 때가 됐는데. 이 정도 기다렸으면, 엄청난 인내심에 살짝 금이 갈 시간이었다.
이미 달이 하늘 중앙을 차지한 채 어둠을 가로지르는 빛을 뿜고 있었다. 반도 넘게 타들어 간 램프의 심지를 바라보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막 문을 걷으니 추운 바람이 훅 밀어닥쳤다. 나무 하나 없는 곳에 설치한 천막은 바람을 막아줄 만한 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벌써 자정이 넘은 건가.’
저 멀리 야생 동물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날카롭고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램프 불빛에 따뜻한 기운이 돌던 천막 안이 단박에 추워졌다. 아 춥다. 저도 모르게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날카롭게 뒤를 돌아보자 어둠 속에 반쯤 몸을 숨긴 녀석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날쌔게 천막 문을 닫고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성큼 앞으로 다가서자 까만 시선이 날카롭게 노려보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뭐라고 말을 붙이기도 전에 손에 들린 심상치 않은 물건이 눈에 띄었다. 서늘한 날붙이를 보자 자연스럽게 손목을 낚아챘다. 이 정도면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텐데, 아득바득 칼을 놓지 않았다.
“그걸로 어쩌려고?”
“…….”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고 그러는 거야?”
“…….”
“얌전히 있는 쪽이 하루라도 더 살 방법일 텐데.”
손목을 한 번 더 비틀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잡고 있던 칼이 이불 위로 툭 떨어졌다. 그 순간 단단한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잽싸게 날붙이를 저 멀리 밀어버리고 다시 시선을 마주쳤다.
“잘 자는 것 같아서 얌전히 놔뒀더니.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내 뒤를 노리는 건가?”
“그쪽도…….”
잔뜩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약간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는 생각보다 서늘했다.
“그쪽도?”
“…….”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싶었다.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짜증이 났는지 잡힌 손목을 빼려고 발버둥을 쳤다. 아까도 그랬지. 생각보다 형편없는 공격에 약간 시들한 표정으로 두 손목을 잡아 눌렀다. 단단한 손에 체중을 실어 누르자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봐.”
“그쪽도 날 팔아버리려고 데려온 거 아닌가?”
“…….”
“그럼 내가 도망쳐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있는 거 아닐까?”
“도망이라.”
날카로운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런 밤중에 이동수단도 없이 저런 조잡한 단도 한 자루를 들고 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아는 걸까. 채 십 리도 가지 못하고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을 것이 뻔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웃음이 나왔다.
“여기서 무사히 도망을 가봤자 가장 가까운 마을은 말로 꼬박 한나절을 달려야 한다.”
“…….”
“그런 거리를 이 밤중에 홀로 걸어서 가겠다?”
“누르는…….”
“네 말 이름인가? 하지만 그 녀석을 무사히 마구간에서 끌어내지도 못할 거면서…….”
“…….”
“가만히 있었으면 아침까진 얌전히 재워줄 수 있었는데.”
“필요 없어.”
그 소리에 뉴트가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그런 도움 따윈 필요 없어. 차라리 죽는 쪽이 나아.”
“죽는 쪽이 낫다고?”
“그래. 이런 꼴을 하고 여기저기 영감들한테 팔려 다니느니 그냥 죽는 쪽이 백배 낫겠어.”
“…….”
이젠 흔들리지조차 않는 까만 눈동자엔 온갖 감정이 섞여 있었다.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떠는 것이 손을 통해 생생히 느껴졌다. 묘한 호기심이 돌았다. 이미 자존심이라곤 한 줌도 남아있지 않은 차림새를 하고선, 하는 말을 당돌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그럼 어차피 죽을 거…….”
싸늘한 한마디에 뉴트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통성명이나 해봐. 넌 누구지?”
“…뭐?”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
뉴트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곤 조금 떨어진 채 마주 보고 앉았다. 아 참. 익숙하게 램프의 불을 다시 붙였다. 일렁이는 불빛이 확 타오르자 뉴트는 그제야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지 않았다. 아무리 많아 봤자. 뉴트보다 두세 살 정도. 괜히 옷자락을 꽉 쥐는 행동을 바라보던 녀석이 또 씩 웃었다. 묘하게 사람을 진정시키는 웃음이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뭐가 그렇게 두렵지?”
“…….”
“네 이름이 뭐냐?”
“…뉴트.”
“뭐?”
“뉴트.”
“…….”
“내 이름은 뉴트야. 넌?”
당돌하게 도적 두목의 이름을 물었다. 도대체 이 녀석의 머릿속을 알 수 없었다. 물론 살려달라고 울고불고하는 놈들보단 낫다만.
“내 이름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는데.”
“어차피 죽을 거 궁금한 건 다 물어보고 가려고.”
“…….”
“이 꼴로 평생을 사느니 그냥 호기심이나 채우고 죽는 쪽이 나을 거 같단 말이지.”
뉴트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자 온몸에 달린 장식 구슬들이 맑은소리를 냈다. 이미 아까 소동으로 벗겨져 어깨에 간신히 걸쳐져 있는 머리쓰개를 두 손으로 잡았다.
“내 이름은 민호.”
“…….”
“도적단 두목이다.”
“…아하.”
“왜 놀라지 않지?”
“생각보단 평범해서? 난 누가 날 빼돌려서 더한 곳으로 보내려고 다른 사람들을 보낸 건 줄 알았지.”
“…….”
“적어도 물건 취급은 당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재밌는 놈이었다. 민호도 뉴트에게 호기심이 돋았다. 한밤중에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뉴트.”
“…….”
“뉴트라.”
“사람 이름을 그렇게 신기한 듯 부르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많은 것을 물어보진 않았다. 대충 이 녀석 팔자가 왜 이렇게 된 것 인진 알 것 같았다. 부자들이 하는 짓은 언제나 거의 비슷했다.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민호의 눈치를 보던 뉴트는 호시탐탐 저 멀리 밀려나 간 칼을 찾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대로 묶어서 감옥에 처박아 두기 전에 얌전히 있어.”
“내가 얌전히 있다고 해서 얻는 이익이 없잖아.”
“답답한 녀석.”
“넌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럴걸.”
“…….”
더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뉴트는 뉴트 대로 잔뜩 경계하고 있었고, 민호는 이 이상 다가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둘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밤은 계속 깊어갔다. 결국, 민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좀 자는 편이 낫지 않아?”
“여기서?”
“그럼 바깥에서 잘 텐가?”
“…….”
“그리고 천막 안에서 옷 입고 자면 감기 걸린다.”
“뭐라는 거야!”
“네 몸을 생각해주는 거야.”
“…….”
“됐다 거기서 자도록 해. 난 알아서 잘 테니까.”
“…….”
뾰족한 고슴도치 같은 녀석을 더는 구스를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멍청이가 아니면 알아서 자겠지 싶었다. 민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트는 그런 민호가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단단히 닫는 것까지 듣고 나서야 잔뜩 굳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솔직히 감기 걸리는 것은 둘째 치고 이 많은 옷을 벗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벗겨달라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일단 머리쓰개를 벗었다. 그리고 가장 거추장스러운 겉옷부터 하나둘 벗던 뉴트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
민호는 문이 안에서 열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한 뒤에도 계속 천막 앞을 지키고 있었다. 천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이불을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조용해진 것을 듣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
민호는 자기가 갑자기 왜 자리를 비켜준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괜히 불침번들을 독려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결국 모닥불 앞에 주저앉았다. 오늘은 잠을 자긴 틀린 것이 분명했다.
“내가 미쳤군.”
괜히 자신을 스스로 타박하며 모닥불을 헤집던 민호는 결국 땅바닥에 그대로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밤하늘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하얀 별이 우수수 박혀있었다.
“뉴트.”
민호는 아까 들은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러보았다. 모래알이 씹히는 것처럼 버석버석한 느낌이 입 안 가득 느껴졌다.
“뉴트라.”
그렇게 밤이 점점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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