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뉴트+토마스/민늍+톰] 전력60분 : 크로스오버
+) NOTICE
마비노기 영웅전 au입니다. 마침 적어둔 플롯이 있어서 한 번 도전해봤는데,
플롯 자체가 길어서 애매한 분량으로 끊었습니다.
민늍 기반으로 토마스가 주인공인 플롯이었는데, 여긴 그냥 셋이 친구 같네요 하하 . _.)
딱히 마영전 스포일러는 없습니다만, 게임을 해보신 분이라면 누구와 누구를 대입했는지 아실거 같아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오타 검수를 포기하고 분량을 늘였습니다 하하orz
바람이 많이 부는 마을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을엔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었다. 도시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마을은 때때로 마족의 침입이 있을 뿐 큰 소란이 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을 자랐다. 민호나 뉴트도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사실 어렸을 때 기억이라고 해봐야, 그리 많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올라가다보면 항상 무언가에 끊긴 것처럼 벽이 다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둘은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면서 웃곤 했다.
가장 어렸을 때 기억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었다. 마을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았다. 그러나 지루해지면 마을 밖에 있는 신전으로 달려갔다. 물론 신전에 기도를 드리러 가는 것은 아니었다. 신전을 지나 곧게 뻗은 길을 따라가면 커다란 성과 도시가 있었다. 그 길목에 있는 몇 백년 묵은 나무에 올라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났다. 누구나 그러던 것처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검을 쥐고, 검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마을에 있는 어른들에게 배우는 검술은 기사들이 배우는 것과는 사뭇 달랐지만 모두 열심이었다. 그 나이 대 아이들은 언제나 기사가 된다는 꿈을 키우면서 살았다.
“난 나중에 기사가 될 거야.”
“누가 먼저 되는지 내기 할까?”
“…좋아.”
민호와 뉴트가 사는 곳은 기사단이 주둔하는 마을이 아니었다. 대신 스스로 모인 용병단이 마을을 지켰다. 그러다보니 정식 기사들이 받는 대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민호는 검술에 소질이 있었고, 뉴트도 마찬가지였다. 날로 자라는 아이를 보며 흐뭇해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때 아닌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위키드.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거역할 수 없었다.
“민호. 뉴트.”“네? 왜 그러세요?”
“단장님이 부르신다.”
“네?”
“용병단으로 오너라.”
짧은 용건을 전달한 용병단원이 굳은 얼굴로 휙 돌아섰다. 새카맣게 흙먼지가 묻은 얼굴을 소매로 숙 닦아낸 민호가 이상한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더워. 낡은 칼을 어깨에 둘러맨 뉴트가 가까이 걸어왔다. 민호의 어깨에 턱을 댄 채 입을 열었다.
“왜?”
“우리 둘이 용병단으로 좀 오라는데?”
“신기한 일이네. 우리가 무슨 필요가 있다고.”
“모르지.”
“…….”
뭔가 이유모를 불안감이 느껴져 민호는 눈을 찌푸렸다. 심장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던 뉴트가 민호의 등을 퍽퍽 쳤다. 사내 녀석이 뭐가 무섭다고. 안 무서워 했어! 주거니 받거니 다투던 녀석들이 용병단으로 들어왔을 대 분위기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단장부터 일반 대원들까지 한 번에 모여 있는 광경은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쭈그러든 둘이 손을 서로 마주 잡았다.
‘우리가 뭐 잘못 한 것이 있었나?’
둘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뾰족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미묘한 긴장감이 잔뜩 용병단을 휘감았다. 그런 분위기를 상쇄하려는 듯 단장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곤 두 아이를 가까이 불렀다. 쭈뼛쭈뼛 다가간 아이 손에 하얀 편지를 쥐어주었다.
“읽어 보거라.”
“이게…무슨.”
“읽어보면 알게 될 거다.”
“…위키드.”
뉴트가 민호의 손에 들린 편지를 휙 뺏었다. 그리곤 봉투 안에서 편지를 꺼냈다. 중얼거리며 편지를 읽던 뉴트의 목소리가 뚝 끊기자, 아무런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간간히 들리던 헛기침마저 멎어버린 공간은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그래서…우리보고 위키드로 오라구요?”
“그렇다.”
“밀도 안 돼. 기사 수업을 받던 것도 아니잖아요. 어째서…….”
“우리도 모른다 편지는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
“…….”
“우린 위키드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
“…….”
교황청 직속기관인 위키드. 그 곳은 교황청의 권력을 등에 없고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곳이었다. 이런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감히 거부할 수 조차 없는 곳이었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 뉴트가 민호의 손을 잡았다. 민호도 갑자기 자기들을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물론 뉴트랑 나무에 올라가서 같이 기사가 되자며 손가락을 걸곤 했지만, 이런 식으로 마을을 떠나긴 싫었다.
“기사…를 만들어준다는 건가요.”
“써있긴 그렇다만, 귀족도 많이 들어간다는데 그리 높은 자리까지 내주겠느냐.”
“적어도 기사의 이름을 달 수 있는 거군요.”
“그렇겠지. 난 사관학교로 너희들을 보내고 싶지 않다.”
“…….”
단장의 말에선 걱정이 잔뜩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기 싫어하는 것은 민호와 뉴트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신들의 부모님이 누군지 어째서 같이 살지 않고 이 곳에 맡겨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소중한 곳이었다.
“…따로 가지고 올 것은 없다. 몸만 오도록 해라. 라고 써 있는데.”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모르겠어. 우린 과연 괜찮을 걸까.”
“설마 죽이겠어.”
“…….”
“우리 누가 먼저 사관 생도 졸업을 하나 내기할까?”
“뭐? 민호 어린애 같아.”
“농담 아니야. 그리고 둘다 기사 작위를 얻으면 여기로 돌아와서 같이 마을을 지키자.”
“…….”
“알았지?”
“…응.”
두 아이는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일어나서 항상 머물던 여관방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언제나 손에서 떼지 않았던 낡은 검만 하나씩 나눠 들고 항상 바라만 보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민호와 뉴트가 떠난 자리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처음으로 편지가 도착했을 땐 용병단이 들썩일 정도로 난리가 났었다. 그 다음 달에도 한 묶음도 넘는 편지가 마을에 도착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편지를 쓰던 둘이지만, 점점 훈련이 바빠지고 어려워지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방에만 돌아오면 그대로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고. 자연스럽게 편지를 쓸 시간도 사라졌다. 한 달에 한 묶음씩 오던 편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번. 그러다 짧은 편지라도 오면 다행일 정도로 뜸해졌다. 내심 섭섭했지만, 기사 수업이 힘든가 싶어 짠한 표정으로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을 때, 갑작스럽게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겉에 적힌 글씨를 보아하니 민호가 보낸 것이었는데, 얼마나 급하게 썼는지 이름을 적은 잉크가 조금 번져있었고, 안에 들어있는 편지지도 채 마르지 않은 잉크가 묻어있었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봉투에 넣어 급하게 보낸 것이 틀림 ㅇ없었다. 고작해야 편지 한 통일뿐인데 왜 이렇게 불안했을까.
“…….”
단장이 조심스럽게 편지를 읽었다. 불안한 기분은 적중했다. 몇 줄 적혀있지도 않은 편지의 내용은 간결하고 충격적이었다. 뉴트가 사고를 당해 심하게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왜 다쳤는지, 치료는 했는지.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 쪽에서 아무리 발을 굴러도 사관 학교로 편지를 보낼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그날 이후로 다른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갑작스럽게 용병단 한가운데 내려앉은 걱정거리에 마을은 몇날며칠 한숨을 쉬며 걱정을 했다. 옆에서 일을 돕던 갤리가 그런 걱정을 듣고 왈칵 짜증을 냈지만, 걱정하는 것은 다 똑같았다. 언제나 다시 편지가 올까. 다음번 편지가 도착한다면 부상이 완치가 되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올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또 편지가 뚝 끊겼다.
***
연락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아무리 걱정을 해도 닿지 않자 하나둘 마음을 잡기 시작했다. 뉴트가 다쳤다는 짧은 편지 이후로 더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뉴트나 민호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적어도 둘이 정식 기사라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 수소문이라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까짓 시골출신 견습 생도를 기억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걱정과는 별개로 마을 일도 매우 바빠졌다. 짐승의 모습을 하고 두발로 걷는 몬스터들이 때때로 마을에 쳐들어오곤 했기에 이들은 막아내기도 벅차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간간히 도시를 떠나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듣는 소식으로는 시골 출신 남자아이가 사령관을 보좌하는 부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 민호일 것이다. 민호는 어렸을 때부터 검술에 소질을 보였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생각했다.
“아쉽네.”
“뭐가?”
“부관으로 올라갔으면 한 번 정도 연락을 줄 수도 있잖아.”
“바쁜가보지.”
“…아니면 우리를 잊었던가.”
갤리가 툭 끼어들었다.
“갤리!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당연한 거 아냐. 그정도로 출세 했으면, 과연 돌아올까?”
갤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잠깐 동요하는 사람이 생기자 갤리는 내내 부관씩이나 됐는데 우리 같은 걸 기억이나 하겠냐고 비아냥댔다. 평민새끼가 그 정도 출세하면 없던 마음도 생기겠다. 민호의 얼굴을 생각하며 씹어 먹을 듯 말했다.
그러다 단장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는 편지 한통을 받았다. 앞에 보내는 사람이 뉴트라고 써 있을 뿐 봉투 안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빈 종이만 세 번 접힌 채 들어가 있었다. 잘못 보낸 편지인가. 단장은 그 편지를 그대로 책상에 두고 곧 잊어버렸다.
그리고 뉴트가 연락도 없이 불쑥 돌아왔다. 돌아오긴 했는데 기사의 몸은 아니었다. 하얗고 하늘거리는 옷은 입은 채 가만히 서서 땅만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그 옷이 무슨 옷인지 알고 있었다. 가끔 신전을 정돈하러 오는 신관이나 무녀들이나 입는 옷이었다. 뉴트는 조금 절뚝거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떠났을 때보다 살도 별로 찌지도 않았고 키만 훌쩍 큰 녀석이 고개를 들어 마을을 바라봤을 때,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묘하게 분위기가 바뀐 것도 바뀐 것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남아있었다. 도대체 기사가 되겠다고 떠난 녀석이 어째서 신관이 되어 여기 서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돌아왔어요.”
“…….”
“안 반겨주는 거야? 이제 어디 안가고 여기서 생활할 건데.”
“…….”
“예전에 쓰던 방 다시 써도 괜찮아요?”
“물론이지.”
단장이 뉴트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마음이 풀렸는지 뉴트가 가늘게 웃었다.
“다행이다. 다들 날 잊은 줄 알았는데.”
“그런 자각은 있었느냐?”
“…편지를 잘 못 보내게 해서.”
“…….”
“좀 사정이 있었어요.”
뉴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짐을 들고 최대한 멀쩡하게 걷기 시작했지만, 절뚝거리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런 발걸음을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기억에 묻어둔 사고 소식이 확 살아올라왔다.
“돌아올 거면 말이라도 하고 오지.”
“편지 보냈는데.”
“혹시…백지로 보낸 거 말이냐? 그것만 보면 우리가 어떻게 네가 돌아온다는 걸 알 수 있겠느냐.”
“딱히 쓸 말이 없었어요.”
“알았다. 잘 돌아왔어.”
다시 마을로 돌아온 뉴트는 신관이라 하기엔 다소 불량했다. 처음엔 어색한지 말도 잘 섞지 않더니, 어느 순간 다시 웃기 시작했다. 서먹한 감정은 이미 녹아내렸는지 곧잘 용병단을 들락거렸다. 사실 마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단장의 뒤를 이어 자리를 물려받은 알비와 건축 팀인 갤 리가 이제 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알비는 이제 신분 차가 나는데 신관님이라고 불러야겠다고 했고, 뉴트는 질색팔색하면서 반대했다. 그 소리 저기에서도 미친 듯이 들었는데, 들을 때 마다 두드러기 일어난다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뉴트 뉴트 하며 이름을 부를 순 없었다. 결국 공식적인 자리가 있을 때만 그렇게 부르기로 겨우겨우 합의했다.
큰 마을이나 도시에 있는 신전이 아니라 뉴트도 신관으로서 그리 할일이 많지 않았다. 느릿느릿 신전으로 걸어가서 늘 하던 대로 기도를 올리고, 꽃이나 좀 채워두면 그만이었다. 뉴트는 신관이 이지만 모리안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믿게끔 교육이 되어있었다. 뉴트는 기사와 신관 사이에서 늘 방황했다. 여신 강림이니 에린이니 낙원이니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고 했다. 그냥 이렇게 살다 죽었으면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뉴트가 돌아오고 계절이 바뀌었다. 그해 가을 쯤 민호가 부관에서 기사단장으로 진급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평민에서 기사단장까지 이례적인 진급이었다. 게다가 진급 속도도 어마어마할 정도로 빨랐고, 게다가 드래곤을 탈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급 중 하나였다. 참 오랜만에 마을로 편지가 도착했는데 한번 꼭 만나러가겠다는 짤막한 말과 함께 뉴트도 잘 있냐는 말 한마디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답장을 할 수 있게 해주던가.”
편지를 당장 구겨버릴 것처럼 투덜대던 뉴트가 한 번 더 읽고 나서 책상에 내려놨다.
“어차피 안 올 새끼가 꼴에 진급 했다고 예의 차리기는.”
뉴트는 기사단장이 얼마나 바쁜 위치인지 알고 있었고, 민호가 절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부관일 때도 한 번도 못 왔는데 기사단장님이 이런 촌구석에 올 리가 없지. 몇 번이나 아쉬워하다가도 마음을 다잡았다. 그저 전쟁터에서 안 죽고 살아있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토마스와 만난 날은 조금 특별했다. 유난히 마을이 조용하다 싶었을 때 난데없이 마물들이 쳐들어왔다. 마침 알비가 이끄는 용병단도 자리를 비웠을 때라 마을에 남아있는 용병이 거의 없었다. 너무나 재수 없는 타이밍에 뉴트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왔다. 신관은 피를 내는 무기를 들어선 안된다. 몇 번이나 들어서 뇌리에 박힌 말이 행동을 방해했다. 이 일이 새어나간다면 자격 박탈이 되는 거 아닐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다. 일단 사람들부터 살리고 보자는 생각뿐이었다. 어린아이들부터 안아서 뒤로 피하라고 소리 지르던 뉴트 발치에 낡은 화살이 푹 박혔다. 조금만 옆으로 움직였다면 그대로 발을 관통당할 수도 있었다.
“…아 젠장.”
마물들은 무기뿐만 아니라 조악하지만 화살 부대까지 이끌고 왔다. 이러면 가까이 다가가야하는 칼로는 쉽게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 전에 뉴트의 다리가 더 문제였다. 빠르게 움직일 수도 오래 버틸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뉴트는 마수들에게 칼을 겨눈 채 내내 견제했다. 사람보다 인내심이 떨어지는 마물들은 곧 그런 뉴트를 공격해 왔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괜찮을까. 뉴트는 희미하게 기억나는 기사 수업을 속으로 읊었다.
가까이 오는 녀석들만 베어 넘길 뿐,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급소를 노려서 한 번에 한 마리씩 처리하지 않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아까 보낸 아이가 알비와 갤리와 만나서 빨리 마을로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끈적끈적하고 차진 살에 박혀 잘 빠지지 않는 칼을 잡고 끙끙대는 그 순간 앞에 서있던 마물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푹 쓰러졌다.
“이봐, 괜찮아요?”
“…….”
“일단 이 놈들부터 치우고 이야기 해야겠네.”
“…누구.”
눈앞에 쑥 나타난 검은 그림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마물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길고 날카로운 두 자루의 검과 빠른 스피드로 무리 중심을 쓰러뜨린 녀석은 곧장 대장격인 녀석을 노렸다. 절로 눈이 찌푸려지는 소리와 함께 목에 칼이 박힌 마물이 뒤로 쿵 쓰러졌다. 얼굴에 튄 피를 손등으로 슥 닦아낸 사람이 남은 칼을 들고 마수들을 견제했다. 그저 놀이에 불과했는지 대장을 잃은 마물들은 하나둘 물러나기 시작했다.
“저기…괜찮아요?”
“…….”
“괜찮…어?”
그새 잔뜩 베어 넘긴 마물 시체 사이에 서있던 낯선 사람이 순간 비틀거리더니 풀썩 쓰러졌다. 깜짝 놀란 뉴트가 절뚝거리며 그 녀석에게 달려갔다. 앳된 얼굴의 남자는 완전히 기절한 것인지 가는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뉴트는 혼자서 사람을 옮길 수 없었다. 당황하면서 뺨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한발 늦게 돌아온 알비와 갤 리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일단 이 사람 좀.”
“이게 무슨 일이야. 뉴트 괜찮아?”
“…괜찮아. 일단…빨리 나 들키면 큰일이거든.”
“아, 알았어. 갤리. 사람들 불러서 이 녀석 여관 방으로 옮겨. 뉴트는 어서 들어가.”
“부탁할게.”
***
“…으.”
“정신이 들어?”
“여긴.”
“여관?”
“나…어떻게.”
“도와준 건 고맙게 생각해. 용병단에서 너 깨면 데리고 오라고 부르더라.”
“아, 그러니까.”
녀석은 할 말을 고르는지 허둥거렸다. 그런 얼굴을 바라보던 뉴트는 재밌는 녀석이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어리버리하네. 통 성명이나 하자. 이름은?”
“…토마스.”
“토마스라. 아까 일은 고마웠어.”
침대 곁에 둔 의자에 앉아서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있던 뉴트가 약간 퉁명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런 목소리에 잔뜩 긴장한 토마스가 눈만 데룩데룩 굴리는 것을 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토마스도 밖으로 나오길 재촉했다. 불규칙적으로 삐그덕 거리는 바닥 때문에 토마스의 눈길이 자신의 발에 머문다는 걸 알아챈 뉴트가 옷을 정리하는 척 그 시선을 흐트러뜨렸다.
“왜 안 일어나? 어서 용병단으로 가야한다니까. 누가 보면 크게 다친 줄 알겠더라.”
“내가 또 정신을 잃었나?”
“그래. 전쟁터에서 그렇게 잠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그런데 신관…어떻게 검술을…….”
“이런 신관 처음 보니? 하긴 처음 보겠지. 내 사정도 좀 복잡해서 말이야. 일단 용병단으로 가자. 알비가 너 좀 불러오라고 하더라.”
“…….”
“어서? 뭐해?”
토마스가 부스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춤주춤 뒤를 따라오는 녀석을 달고 걷기 시작했다. 뉴트는 내내 복잡한 표정이었다. 토마스의 얼굴에서 왜 민호가 겹치는지 알 수 없었다. 저돌적인 전투부터, 쓰는 검술, 무기까지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데 왜 자꾸 눈이 가는 걸까. 뉴트는 아무래도 자기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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