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른 합작/톰늍]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온다고 했다
+) NOTICE
스코치와 데스큐어 사이 망상과 날조
뉴트른 합작에 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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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온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그런 일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늘 비슷한 삶이 계속된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을 알아야 할 나이가 아니었다. 살아온 날에 비교하면 까마득할 만큼 살아갈 날이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플레어 바이러스가 많은 것을 앗아간 이후 몸이 채 자라기 전에 철이 드는 아이가 많아졌다. 강제로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은 위키드 연구소 내에서 자랐고, 천천히 필요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발대를 먼저 올려보내도록 하죠.”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세상이…급박하게 변하고 있어요.”
“…….”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저 아이들이 희망이라면 빨리 치료 방법을 찾아야겠죠.”
“…알겠습니다.”
“선발대는 상위권과 하위권을 적절히 섞어서 올려보내도록 하세요.”
“…….”
“한번에 많은 인력을 잃는 것은 우리도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네.”
위키드 연구원 중 몇몇은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절로 손사래를 치곤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곳을 나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희생으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누굴까. 위키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그 날부터 계시처럼 받아들인 말이었다.
지금 살아있는 어른에겐 없는 희망이었다. 어느 순간 나타난 면역인 이라는 존재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몇 세대를 거치는 동안 만들어진 유전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것으로 치료제를 만들 순 없었다. 플레어 바이러스가 지구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해서 이렇게 손을 놓고 주저앉아서 멸망할 순 없었다. 그래서 미래를 조금 끌어와 사용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플레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아이들을 면역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
“그 아이들의 피와 몸. 근육. 모든 곳에서 그 면역체의 답을 찾을 생각입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 하는 편이 맞겠죠.”
“……:”
“작은 희생으로 큰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면…우린 그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전 총장 대신 새롭게 올라온 에바 페이지는 자기 생각을 꺾지 않는다. 전 총장도 플레어 바이러스에 걸려서 죽었다. 자신의 손가락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며 점차 미쳐가는 모습은 지옥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저 아이들의 우리 희망입니다.”
“…….”
“그 희망이 어디서 나오는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면역체를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정제할 수 있을지. 하나하나 알아봐야 합니다.”
“…….”
“이 모든 것을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네. 알겠습니다.”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면역인 이라는 이름하에 아이들이 위키드로 들어왔다. 물론 비면역인이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많이 들어왔다. 애초에 면역과 비면역의 차이를 알아내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특정 세대 이후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그런 면역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야 했다.
“토마스?”
“네.”
“오늘부터 여기가 네 집이란다.”
“…….”
“너희는 위키드의 일원으로 희망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네. 총장님.”
“우린 면역인인 너희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길 기대하고 있단다.”
“…….”
“잘 부탁한다.”
채 자라지도 않은 작은 아이의 어깨에 지우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부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를 잃었고, 좋으나 싫으나 위키드의 보살핌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다. 바깥은 크랭크가 가득했다. 어디로 가나 목숨을 내놓고 다닐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토마스?”
“…….”
“거기서 뭐 해. 오늘부터 같이 연구실에 들어가기로 했잖아.”
“…….”
“어휴. 정말.”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아이가 대장 노릇을 한다. 토마스는 성장이 더뎠고, 유난히 키가 크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늘 마음에 걸린 모양인지 트리사는 토마스를 매일매일 보러왔다. 매일 머리가 아프고, 앓아눕는 아이는 늘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진단을 받지 못했다. 그저 스트레스라고.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넘기곤 했다. 아이의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 없으니 그저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오늘 또 한 그룹이 들어왔대.”
“또?”
“응.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나 봐.”
“…그렇구나.”
“너 자꾸 그렇게 굴면 괜히 혼난다.”
“…….”
“일어나. 오늘 할 일만 하고 빨리 들어가서 자자.”
“으응.”
토마스는 괜히 뭉개고 앉아서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꾸 머리가 아프고 속이 좋지 않다는 아이를 어쩔 수 없이 끌고 나가야 했다. 토마스는 누구보다 영특하고 똑똑했다. 그리고 늘 누군가에겐 특별한 존재라는 말을 들었다. 아직 어린아이에겐 알 수 없는 소리였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니 그러려니 한다. 토마스는 결국 오만상을 찌푸리고 일어섰다.
“정말 새로운 그룹이 온 거야?”
“그렇다니까. 걔들은 조금 있다가 올라간대.”
“…….”
“저번처럼 너무 정 주지 말고. 응?”
“내가 언제.”
“넌 언제나 그랬잖아.”
트리사는 토마스를 잘 안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같이 지냈으니 모를 수 없었다. 호기심도 많고 똑똑한 아이는 늘 정에 굶주렸다. 어른들도 곧잘 예뻐하고, 같이 지내는 또래들과도 그리 큰 불협화음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녀석을 말릴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는 눈 같은 거 안 오나.”
“눈은 무슨.”
“…왜?”
“그렇게 흩날리는 건 다 먼지 같은 거야. 세상이 활활 타는데 눈이 내릴 거 같아?”
“그럼 겨울은 영영 오지 않는 걸까?”
“갑자기 또 뜬금없는 소리를 하네.”
“궁금하잖아.”
“전 정말 궁금할 것도 많다.”
저러고 있을 땐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나았다. 연구실에 같이 들어가기로 했지만, 뭐 정신 차리면 따라오겠지. 아무리 엉뚱한 녀석이라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른 척할 성격은 아니었다. 트리사가 연구실로 가버리고 혼자 남은 토마스는 내내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다 아무도 없는 틈에 슬쩍 밖으로 나간다. 똑똑한 녀석은 자신이 이런 식으로 엉뚱한 말을 하면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
약간의 시간을 두고 방을 빠져나온다.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어간다. 혹시 다른 연구원을 만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모두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은 목숨을 붙이고 살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가기 바빴다. 연구원과 실험체는 대우부터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런 예민한 부분을 알아채지 못할 아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토마스는 내내 우르르 들어온 아이들 주변을 맴돌았다.
“쟤 또 왔네.”
“…뉴트!”
“…….”
“뉴트 나 좀 봐봐. 응?”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민호는 대번에 눈을 찌푸린다. 주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런 뜻 없는 친절은 늘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목을 물려서 어디론가 끌려가고 만다. 몇 번이나 곁에 있던 친구를 잃은 녀석들에게 토마스는 영 탐탁지 않은 가시와도 같았다.
“쟨 뭔데 자꾸 너한테 저래?”
“내가 어떻게 알아.”
“어울려 주지 마. 네가 자꾸 받아주니까 저러는 거 아냐.”
“뭐라도 알아낼 수 있으면 좋지. 뭐.”
아마 유리 벽을 사이에 둔 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뭐 유리 벽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녀석한테는 들리지 않으니 그러려니 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귀찮게 하는 걸까. 혹시 이것도 실험 일부가 아닐까. 뉴트는 약간 비틀린 시선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뉴트!”
“…….”
어차피 대화도 제대로 못 할 처지인데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목소리를 한번 들어왔나. 아니면 두 번째던가. 실험실과 실험실을 옮겨가는 그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간 적은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은 늘 겨울처럼 추웠고, 그 속에서 다른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자꾸 귀찮게 하는 위키드의 일원은 고운 눈으로 보일 리 없었다. 뭔가 이야기를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니 금방 시무룩해진다.
그렇게 몇 번 얼굴을 마주치다 남은 것은 별로 없었다. 애초에 어린애들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위키드에 들어왔으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모두 하나씩 기억을 잃게 된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늘 함께 있던 친구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알비. 민호. 뉴트. 갤리. 척. 간신히 이름을 외웠던 수많은 아이가 공터로 올라가고 나서도 토마스는 한참 동안 위키드에 머물렀다. 갈 곳 없는 아이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토마스.”
“…….”
“토마스. 토미. 뭐해. 일어나 봐.”
“…깜박 잤어.”
“깜박은 무슨. 세상이 무너져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자더니만.”
“…….”
위키드에 관한 꿈은 꾸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처음 공터에 올라왔을 때 겨우 자신의 이름만 기억하던 신입은 이제 없었다. 토마스는 뉴트를 빤히 바라본다. 일렁이는 불빛에 슬쩍 보이는 얼굴은 언제나 단정했다. 이렇게 힘든데 뉴트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분명 밤늦게까지 같이 회의를 했다. 그런데 뉴트는 늘 피곤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토마스 앞에선 내색하지 않았다.
“너도 늦게 잤잖아.”
“괜찮아.”
“회의 시간에 계속 머리 아프다고 했고.”
“…그래도 얼굴이 좀 나아졌네. 그러면 됐다.”
“응…….”
뉴트는 허허 웃으면서 토마스의 어깨를 툭툭 친다. 머리가 새집이 된 채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은데, 토마스는 기어이 정신이 멀쩡하다고 한마디 얹었다. 이러고 있으면 꼭 옛날 생각이 난다. 식량과 함께 실려 올라온 녀석은 대차게 달려가다 넘어졌고, 공터에서 보내는 첫날 밤은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고 끙끙 앓곤 했다. 공터를 떠난 지 좀 되었지만, 저 녀석은 하나도 변한 것 같지 않았다. 물론 뉴트만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야.”
“…응?”
“뉴트는 언제 일어났어.”
“좀 전에.”
“더 자지.”
“괜찮아. 슬슬 일어나 있어야지.”
“…….”
뉴트는 토마스가 일어난 것을 보고 벽에 기대앉았다. 위키드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는 너무 컸다. 이미 반파된 은신처는 물론이고, 많은 친구가 인질로 끌려갔다. 물론 인질이라고 해서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 중엔 민호도 있었고 아리스도 있었고. 소냐도 있었다.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 끌려간 사람이 몇 명인지. 하나하나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토마스는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뒤척거리곤 했다.
“뉴…트.”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더니. 왜.”
“…….”
“언제쯤이면 어리광이 줄어들까.”
“…….”
“정말.”
낮은 타박이 들린다. 늘 있던 일이라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토마스가 이불이라고 하기도 뭐한 천을 뒤집어쓴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벽에 기댄 채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뉴트가 가까이 다가온다. 너 꼭 강아지 같다. 그런 말을 듣자마자 토마스가 뉴트의 허벅지에 붙어온다.
“강아지 같다고 했지, 그런 행동을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뉴트…….”
“하여튼.”
“…….”
손이 허리를 덥석 감아온다. 토마스는 늘 힘든 일이 있으면 속으로 삭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다 도저히 못 참는 순간이 오면 뉴트를 찾는다. 그리곤 이렇게 붙잡고 늘어진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뭐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방법이겠거니 했다.
“뭐가 또 그렇게 불안해.”
“꿈을 꿨어.”
“…….”
“뉴트가 있고, 민호도 있고. 유리 벽 너머에 내가 있는 꿈.”
“언제적 일을 아직까지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
“그러게…….”
“어차피 그때 기억은 다들 없는데, 혼자서 그렇게 속으로 꾹꾹 밀어 넣어봤자 병만 난다.”
“…….”
“토미. 토마스?”
“…왜.”
“넌 너무 걱정이 많아.”
“뉴트한테 듣고 싶지 않아.”
“…….”
“정말이야.”
신기하게 이렇게 뉴트와 함께 있으면 쿵쿵 뛰던 심장이 침착하게 가라앉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심장이 언제부터 고장이 나 있었는지 알 수 없어서 늘 고통스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뉴트를 찾아간다. 목소리만 들어도 이렇게 좋은데 심장도 마찬가지였다.
토마스는 뉴트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뉴트의 몸에선 버석버석한 사막 냄새가 났다. 활활 타오르는 사막을 건너온 인간은 아직도 그곳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뉴트.”
“왜?”
“눈…본 적 있어?”
“눈?”
“응.”
“글쎄. 기억을 잃기 전이라면 봤을 수도 있겠지. 공터에 올라온 이후로는 못 봤어.”
“…….”
그렇구나. 사실 토마스도 기억이 없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눈을 구경한 적은 없었다. 물론 기억이 사라진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럴 땐 가끔 억울하긴 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억이 사라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응?”
“갑자기 왜 눈 타령이야.”
“아니…그냥. 이 모든 게 끝나면. 구경할 수 있을까 싶어서.”
“…….”
“뉴트랑 같이 구경하면 좋을 거 같으니까.”
“사막에 눈이 내린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는걸.”
“…….”
“이런 곳에 눈이 내려서 뭐해.”
“그런가…….”
“하긴 눈 비슷한 건 본 적 있어.”
뉴트는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토마스랑 같이 다니면 비슷해진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뉴트는 그런 말을 단번에 잘라낸다. 비슷해지려고 했으면 한참 전에 그렇게 되었으리라. 그리고 좀 닮으면 어떤가. 뉴트는 요새 생각이 많다.
“공터에서 불을 피우면 재가 눈처럼 내리더라.”
“그게 뭐야.”
“정말이야. 주변에 하얗게 내려앉아서 비슷해 보여. 게다가 그걸 치우는데 고생하는 것도 똑같지.”
“…….”
“저번엔 건물이 무너지면서 비슷한 걸 보기도 했고.”
“…….”
“그것도 아니면…음. 꽃이 떨어지는 걸 봤던가.”
“그런 거 말고. 진짜 눈 보러 가자.”
“언제.”
“민호 구하고. 세계가 제대로 돌아가면.”
“그러던가.”
“꼭 같이 가는 거다?”
“알았어. 같이 가면 좋지. 눈도 보고. 바다도 보고. 좋겠네.”
“…….”
“탁 트여있고 시원할 테고.”
뉴트의 목소리를 꼭 자장가 같았다. 느릿느릿. 천천히 흘러나오는 단어에 집중하다 보면 눈꺼풀이 절로 무거워진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긴 아쉬웠다. 토마스는 뉴트의 목소리를 좋아해서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 한다. 뉴트는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순간 입을 다물어 버린다. 지나치게 빨리 자라버린 아이들은 늘 어른처럼 행동하곤 했다.
“뉴트.”
“왜.”
“이름 불러줘.”
“…….”
“응?”
“토마스. 토미. 신입?”
“뒤에건 빼고.”
“그래. 토미.”
“우리 꼭 눈 보러 가자. 바다도 보러 가고.”
“…….”
“난…기억이 많이 없긴 하지만, 뉴트가 낯설진 않아.”
“이상한 소리를 하네.”
“정말이야. 그래도 내가 뉴트보단 기억이 많을 거 아냐.”
“예전부터 만났을 거라고?”
“내가 뉴트를 찾아갔을 수도 있지.”
“…….”
“정말이야. 응?”
“잠이 덜 깬 거 같은데, 좀 더 자는 건 어때?”
“…….”
뉴트가 이렇게 나오면 토마스는 할 말이 없어진다. 뉴트 가지마. 응? 토마스는 허리를 꾹 끌어당긴다. 결국, 뉴트가 옆으로 넘어지긴 했다. 누군가 깰까 봐 숨죽여서 웃음을 참던 토마스는 뉴트 위로 빙글 돌아 올라간다. 그리곤 팔로 딸을 깊은 채 까만 눈동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뭐하냐. 비켜.”
“뉴트 많이 보고 자려고.”
“…….”
“봄이 왔을 때 뉴트가 항상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봄이라는 계절이 이 지구에 있긴 하고?”
“없어도 만들지 뭐.”
“…….”
토마스가 고개를 숙인다. 코와 코가 닿는다. 조금 더 가까이 가려다 뉴트의 솜에 턱 막혀버린다. 이렇게 엄한 표정을 짓는 건 또 오랜만에 본다. 토마스는 손바닥에 입술을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밀면 금방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자꾸 강아지 같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
“강아지 토미. 응?”
“뉴트가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불러.”
괜히 심술이 나서 입술로 손바닥에 도장을 쿡 찍는다. 어차피 낮엔 너무너무 바빠서 둘이 이렇게 얼굴 마주 볼 시간도 별로 없었다. 밤이 지나고 새벽에서 아침으로 건너가는 짧은 구간. 겨우 그때가 되어서야 둘은 잠시나마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토마스가 자연스럽게 뉴트 옆에 눕는다. 뉴트는 그저 오냐오냐 받아주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잠이 다 깼다고 생각했는데, 또 눈을 감고 있으니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편히 잠을 자도 될까. 둘은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사막에 눈이 내리는 꿈을 꾼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땅에 닿기 전 하얀 꽃잎으로 변했다. 물기 하나 남지 않은 사막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그저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뉴트는 고개를 돌려서 토마스를 찾았다. 토마스도 그러했다. 하지만 꿈속에선 만날 수 없는 모양인지 넓고 조용한 공간엔 그저 눈이 쌓이는 소리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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