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반짝 관심은 오래갈 일도 아니었다. 화려하게 결혼식을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사고를 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둘의 직업이 직업인만큼 잠시 화젯거리가 됐을 뿐이었다.
그러나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관심은 둘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토마스야 연구가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히면 꺼내올 사람이 없었다. 딱히 연예계에 발이 넓은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유명하지도 않았다.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논문을 찾아보고 혀를 내두르는 것이 전부였다. 위키드 연구소 총장 페이지의 직접 사사 받는 애제자. 최연소 총장 후보. 기타 등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있었지만, 솔직히 평범한 사람들의 흥미를 움직이기엔 조금 부족했다.
“그러니까 내가 왜요?”
여기서 붙잡힌 쪽은 뉴트였다. 토마스보다 익숙한 얼굴에 적당한 인지도까지. 그런 뉴트를 노리는 기자들이 더덕더덕 달라붙을 때마다 질색하는 표정으로 도망가던 녀석은 결국 뭔가 포기하긴 했는지, 가끔 인터뷰하기도 했다. 조용히 살았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일이 커진 지 모르겠다. 그런 말이 듣는 사람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꽤 요란하게 사귀긴 했는데,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디서 만나셨는지, 조금만 알려주시죠.”
“…그건 다들 아시지 않나요? 그냥 대학에서 만났어요. 선후배로.”
“뉴트 씨가 선배? 선배 맞으시죠?”
“…그렇죠.”
“아하.”
한 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건지. 도시 한복판에서 결혼식이라도 하는 걸 원하는 걸까. 사실 뉴트는 모델일 외에 딱히 자신을 드러내는 타입도 아니었고, 토마스는 그보다 더했다. 어렸을 때부터 질리도록 돌아다닌 것이 너무 지겨워 어느 순간 브라운관에서 사라져버린 놈이었다. 그런 둘이 조용히 집에 틀어박혀 있다 밖에 나왔을 뿐인데, 세상은 관심을 가져도 너무 가졌다.
“어차피 이러다 슬슬 관심이 사라지겠죠.”
“과연 그럴까요? 다들 굉장히 궁금해 하는 것이 많은 걸요.”
“하지만 말입니다. 대다수가 그렇게 궁금해 하는 일은 저희 프라이버시겠죠. 안 그런가요?”
“그렇죠.”
“그래서 밖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다.”
뉴트가 이미지 소비를 많이 하지 않고 계속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것은 어쩌면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철벽을 친 다음 두 번짼 아주 조금 허물어버린다. 다 이야기해줄 것처럼 하다가도 어느 순간 계약이 끝났다면서 몇 달 동안 칩거한 채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 적절한 조련에 사람들은 꼭 미끼를 문 것처럼 이리저리 휘둘렸다. 하긴 이렇게 행동하면서 동시에 토마스를 관리했으니 이 정도에서 그쳤겠지. 아니었으면 이미 스캔들을 만들어도 세 번은 만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나중에 또 한 번.”
“그땐 제가 바쁠 것 같은데요.”
뉴트는 일어서면서 인사를 한다. 도대체 무슨 관심이 이렇게 많은 건지. 너무 많은 질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 정도에서 그만하면 될 것 같은데. 물론 속마음이 그렇다 해서 대충 대답한 것도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온 뉴트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런 뉴트를 기다리던 매니저가 웃으면서 걸어왔다.
“끝났어?”
“적당히.”
“그럼 가자. 오늘 촬영은 없으니까 바로 집으로 가면 될 거야.”
“아무것도 안 하고 눕고 싶다.”
“그러도록 해.”
“그럴까.”
뉴트가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인터뷰가 끝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밖에서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덫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차에 탈 때까지 뉴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여튼 남한테 관심은 많아서.”
“문은 닫고 말해라.”
“당연하지.”
아. 피곤해. 뉴트는 차에 타자마자 그대로 늘어졌다. 끙끙 앓으면서 팔을 쭉 폈다. 으으으. 절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델을 한다고 했지 연예계 진출한다는 소리를 한 적 없었는데……. 왜 다들 이렇게 궁금해하지.”
“…다들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그런가. 하지만 정말 이런 일은 취향이 아닌 거 같아.”
매니저는 소리 없이 웃었다. 하긴 인터뷰도 일에 관련된 것만 고르고 골라서 응하던 사람이 갑자기 연애 사정을 설명하려니 혀가 꼬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래도 굴러먹은 연차가 있으니 소란을 만들진 않겠지만, 영 적응이 안 된다는 표정을 보는 건 또 재미가 있었다. 온몸으로 싫다 싫다 하면서 또 일정 잡아오면 군말 없이 나간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한참 앓다가 토마스를 소환한다. 매니저도 뉴트와 일한 지 꽤 오래됐지만, 요즘처럼 뉴트의 감정선이 널뛰는 광경은 처음 봤다.
“그래도 이럴 때가 좋은 거다.”
“…별로 안 좋은 거 같은데.”
“배가 불렀지.”
낄낄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주고받던 차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뉴트는 안 그런척해도 꽤 긴장한 것인지 금방 곯아떨어졌다. 매니저는 조용히 차를 세웠다. 그리고 급하게 내렸다. 둘만 있으면 이렇게 불편한 일이 종종 있었다. 문을 열고 옆자리에 구겨둔 담요를 꺼내서 바짝 마른 어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뒤집어 씌웠다.
에이전시 쪽은 이참에 뉴트를 연예계로 밀어 넣고 싶은 모양인데, 정작 당사자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지금도 할 만큼 일하고 은퇴하면 저기 멀리 집이나 사서 틀어박혀야겠다고 말을 하는 녀석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까. 매니저는 생각할수록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할 일이 없는 것보단 나았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도 있고.”
“…….”
“난 그걸 시켜야 하고.”
매니저는 혼자 웃었다. 저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가끔 보면 나이답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아니 토마스한테 옮았다고 봐야 할까. 둘은 물과 기름같이 보이면서 슬쩍 섞이고 있었다. 토마스는 언제쯤 온다고 했던가. 머릿속으로 날짜를 셈하던 매니저는 곧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누가 저 녀석은 그렇게 예민하던 모델이라 생각할까.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사람은 좀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 말 같았다. 사실 따지자면 처음 만났을 때보다 나이를 먹은 것도 있는 데다, 뉴트가 더 철없이 행동하는 토마스를 잡아오느라 상대적으로 같이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결과적으론 좋은 일이었으니까. 주변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섞여 들어갔다.
물론 집에 오자마자 토마스가 귀신같이 전화한다. 차를 타고 이동한 시간이 얼마나 긴데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이 없다가 집에 들어와서 옷 좀 벗으려 하면 꼭 이렇게 통화가 길어진다. 뉴트는 제법 진지하게 토마스한테 질문한다. 물론 둘 다 일이 많아 지친 목소리였지만, 이 시간이 싫진 않은 모양이었다.
“너 나한테 GPS라도 달아놨냐?”
“무슨 소리야?”
“아니면 이렇게 시간 맞춰서 전화하기 힘들 거 같잖아.”
“그런 거 아니고, 내가 지금 끝났어.”
“…정말?”
“응. 정말. 잠깐 커피 마시러 나왔어. 조금 있다가 다시 들어가야지.”
“집엔 언제 올 건데?”
“…그게.”
아차. 요즘 가장 예민한 주제를 생각 없이 꺼내 버렸다 뉴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토마스의 목소리가 질질 늘어졌다. 이쪽도 엄청나게 피곤한 모양이었다. 얼굴 못 본 지 얼마나 됐더라. 일주일? 이주일? 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오래 헤어져 있어도 어지간히 떨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분명 핸드폰에 적어놨을 텐데. 항상 계획은 계획처럼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
“…일주일이면 끝난다고 자신감에 차있던 토마스 씨는 어디로 갔을까.”
“그땐 그럴 줄 알았지.”
“일 주인은 더 있어야 해?”
“아마도? 근데 일찍 끝나면 바로 나올 수 있고.”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이 주일은 더 못 나올 것 같네.”
“아니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왜? 정말일까 봐?”
“…으응.”
토마스는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쩐지 미래가 될 것 같았다. 토마스가 말하기를 이번은 정말 어렵지 않은 연구인 줄 알았는데, 자꾸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했다. 그러다 보니 계획이 자꾸 늘어졌다. 게다가 초조해 지면 오히려 제대로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것도 한몫했다. 다른 선임들이 토마스한테 어깨 힘 좀 빼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어떻게 사람 맘대로 되는 일인가. 그래서 한참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전화는 할 수 있으니까.”
“…연구실 들어가면 못하잖아.”
“그래서 오늘 다 하고 갈 거야. 뉴트 보고 싶어.”
“나도. 그리고 집에 오기 전에 미리 나한테 이야기하고 와. 미리 시간 빼놓을 테니까.”
“알았어.”
“너 연락 안 하고 오면 내가 집에 없을 수도 있어. 먹을 것도 없으니까 꼭 연락해.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것도 정해놓고.”
“…난 아무거나 상관없는데.”
“고기 먹여야겠네.”
“그것도 좋고. 뉴트랑 같이 있으면 뭐든 좋아.”
“그래. 우리 둘이 같이 시간이 맞아야 할 텐데. 휴가는 한 번에 몰아서 쓰게 해준 데?”
“응? 아마도. 지금 이렇게 끌려들어 가는 것도 중반 넘어가면 좀 낫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빠질 수도 없는 일이고, 다들 바쁜데 나 혼자 나갈 수도 없고.”
“…철이 들었나.”
뉴트가 솔직하게 감탄했다.
예전에 무슨 일만 나면 모든 걸 제쳐놓고 뛰어나오던 녀석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그래도 나이가 먹으면 사람이 변할 수 있나 보다. 어쩐지 아들 하나 다 키운 기분이 들었다. 둘이 사귀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이것도 참 새로운 경험이었다.
“뉴트 보고 싶다.”
“…나도. 토마스.”
“옛날엔 연구소에서 나가는 게 싫었는데, 요즘은 오래 있는 것보다 제시간에 퇴근하고 싶어.”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아직 살만한가 보네.”
“너무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그래도 억울함이 좀 풀어졌는지 목소리가 사근사근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요즘 바빠서 한동안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처지는 변하지 않았다. 자꾸 끊을 듯 말듯 전화기를 붙잡았다. 그리고 엉엉 울면서 집에 가고 싶다는 녀석을 달래던 뉴트는 간신히 통화를 끝낼 수 있었다.
아니 뉴트가 끊은 건 아니었다. 이제 정말 들어가지 않으면 큰일이라 선임들이 토마스를 데리러 온 탓이었다. 통화만 했을 뿐인데 어쩐지 더 피곤했다. 잔뜩 지친 표정으로 침대에 늘어졌다. 으윽. 팔다리를 쭉 펴던 뉴트는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 천장만 바라보았다.
사실 집에 사람이 둘 이상 있던 적이 많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집이 넓어 보이는지.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집에서 이리저리 뒹굴던 뉴트는 이불을 돌돌 감았다. 시간이야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 흘러갈 거고, 그러다 보면 연구실에서 돌아온 토마스도 만나겠지. 그리고 또 서로 일하러 나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뉴트는 괜히 손끝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볼 수도 없겠지만, 꾹꾹 메시지를 적어 넣었다. 일찍 보면 좋고, 늦게 보면 어쩔 수 없고. 한창 불타고 좋을 시기에 이렇게 강제로 떨어져 있는 감각은 딱히 오래 느끼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