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I'm Fine Thank You 002
+) NOTICE
데스큐어 원작 내용을 일부분 차용했습니다.
영화 1편 결말을 기본으로 데스큐어 이후 내용을 날조 했습니다.
데스큐어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또한 스토리 진행 중 취향 타는 소재가 나올 수 있습니다.
행복한 내용과 결말은 아닙니다.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아마도 5월 서코 신간
write. 환월
claustrophobia
미로로 돌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분명 꽤 멀리 떠나온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지만, 민호도 토마스도 굳이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한마디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미래가 불안함을 잔뜩 품은 채 달려올 것 같았다.
“…….”
“거의 다 왔어.”
“…결국, 다시 돌아왔네.”
“그러게.”
“어째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미로가 있었던 걸까. 분명 꽤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위키드가…무슨 장치를 해놨을 수도 있겠지.”
“…….”
일리 있는 말이었다. 위키드라면 당연히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 모래바람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엄청난 높이의 미로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모래바람 사이로 보였다 사라지는 무채색의 시멘트벽은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혀왔다.
“…….”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이 거부했다. 속부터 찌릿하게 올라오는 공포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하지만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이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나왔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이미 위키드 연구소는 파괴되었고, 그 장치가 다시 작동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게다가. 둘 다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굳이 입 밖으로 낼만한 사항이 아니었다. 오스스 돋는 소름이 느껴졌다. 미로 외벽에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의심이 번져가기만 했다.
“토마스. 들어가는 문이 있을까?”
“…있어야지.”
“…….”
“있을 거야.”
“그래. 믿어야지.”
민호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믿으면 된다. 믿어야 한다. 미로에 갇혀있는 몇 년 동안 목숨을 내놓고 뛰어다니면서 항상 외웠던 말이었다. 스스로 믿지 않으면 출구가 없을 것이란 생각만 했던 지난날이 스쳐 지나갔다. 민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민호. 이쪽이야.”
지도를 살펴보던 토마스가 앞서가던 민호를 불러 세웠다. 아무래도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일종의 비상구인지, 슬쩍 보고 지나가면 티도 안 날 정도로 숨겨져 있었다. 민호가 다시 뛰어오는 동안 토마스는 조심스럽게 벽을 더듬었다.
“…이쯤에…분명.”
럭키. 안쪽으로 숨겨져 있는 패드를 찾아냈다. 민호가 가까이 다가왔다. 한순간 모래바람이 둘을 휩쓸고 지나갔다. 읏. 눈을 찌푸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둘은 다시 벽에 바짝 붙었다. 익숙하게 패드를 만지자 붉은빛이 들어오며, 장치가 활성화되었다.
“민호…비밀번호.”
“응?”
“우리가 빠져나왔던 그때랑 같은 장치인 것 같아. 미로가 열리는 순서가 비밀번호 일 거야.”
“그건…….”
잊을 수 없는 숫자였다. 71526483. 몇 년 동안 머릿속에 품고 다녔던 순서였다. 민호가 패드 숫자를 누르자 푸른빛으로 바뀐 전구가 비밀번호가 맞다 고 알려왔다. 비밀번호가 풀리자 몇 겹씩 겹쳐서 설치되어 있던 벽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예전과 꼭 반대된 상황이었다.
“…열렸다.”
“들어가자. 민호.”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좁은 통로에 몸을 한껏 굽히고 걷기 시작하자, 두꺼운 벽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빛 하나 없는 공간에서 둘은 그저 앞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앞이 막혀있진 않아야 할 텐데. 괜한 걱정에 토마스가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안 좋은 생각은 어둠을 타고 온몸을 좀먹어갔다.
“…….”
얼마나 깊은 통로인지 몇 번을 꺾고 나서야 희미한 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둘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다른 걱정이 온몸을 덮쳐왔다.
“혹시 아직 그리버가 있으면 어쩌지.”
“…….”
“둘이선 무리야.”
“설마. 면역 인들이 살고 있다는데, 무식하게 그리버를 풀어놓진 않았을 거야. 미로도 닫혀있을지도 몰라.”
“그렇겠지.”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친구들을 잃은 아픈 과거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입술을 깨물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점점 밝게 다가오는 빛을 이기지 못했다. 눈을 잔뜩 찡그리고 밖으로 나온 둘은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
생각보다 조용한 미로 안엔 바람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소리만 가득했다. 민호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곤 익숙하게 위치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자꾸 툭툭 튀어나오는 불안감을 누를 수 없었다.
“이쪽이야. 움직이자. 토마스.”
“응? 응.”
“다들 살아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거야.”
“그래.”
둘이 들어온 곳은 처음 탈출했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구역이었다. 저번처럼 출구로 인도하는 장치는 없었지만, 다시 돌아가는 일은 이미 익숙했다. 민호가 지리를 살피는 동안 토마스는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내내 뒤를 보고 있었다.
“가자. 조금만 달리면 돌아갈 수 있어.”
“응.”
민호가 달리기 시작하고, 토마스는 그 등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빠르게 뛰었다. 낯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달리기 시작하고 주변을 바라보니 어딘가 익숙했다.
‘아…여긴.’
저번에 그리버에게 꺼낸 장치를 들고 찾아온 곳이었다.
순간 그날의 환영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둘이 간신히 긴 통로를 뛰어서 나오자 나무처럼 박혀있던 길고 높은 철판들이 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늘어서서 어지러운 통로를 만들던 것들이 반 바퀴를 돌자 긴 장벽으로 변했다. 그리고 둘을 붙잡으려 했다.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해. 뛰어 토마스!’
‘뭐? 뭐?’
‘잘못하면 여기에 영원히 갇혀버린다고! 두 번이나 이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아?’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민호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민호를 보던 토마스도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떨어지는 사람의 체력과 달리 기계들은 지치지 않았다. 일정하게 닫히면서 길고 좁은 통로 감옥을 만드는 철판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힘겨웠다. 철판이 서로 맞물리기 직전 한 줄을 넘고, 두 번째 줄을 간신히 넘어갔다. 다음 줄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한 박자 늦어버린 토마스가 당황하면서 발을 멈췄다.
‘토마스 멈추지 말고 뛰어!’
민호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철판 사이로 민호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마지막 철문이 닫히기 전 간신히 뛰어든 토마스의 몸을 민호가 받아주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철판 사이에 몸이 낄 수도 있을 위험한 상황이었다.
잘했어. 토마스! 토마스의 몸을 붙잡아서 달릴 방향을 제대로 잡아준 민호가 다시 앞장서서 뛰기 시작했다. 철판의 숲을 지났지만, 그다음은 더 무시무시했다. 땅이 갈라져서 솟아오르고 서로 다른 벽이 움직이면서 출구를 막고 있었다.
‘토마스 이쪽이야. 어서 뛰어!’
‘민호! 민호!’
‘여기 벽 위로 올라와 완전히 닫히기 전에 빠져나가야 해! 어서! 토마스 뭐해!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잔뜩 쌓여있던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쾅쾅 떨어져 내렸다. 그때마다 큰 소리에 놀라서 뒤를 돌아본 토마스는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토마스 뛰어! 뛰라고! 분명 민호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마음처럼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자꾸 토마스가 뒤처지는 것 같아 민호는 연신 소리쳤다. 커다란 건물 아래 크게 뚫려있던 공간에서는 벽이 차오르고 있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민호가 점점 높아지는 벽을 잡고 훌쩍 올라갔다. 뒤이어 토마스가 올라갔을 땐 이미 허리를 굽혀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아져 있었다. 안에 사람이 있든 말든 점점 좁아지는 틈을 필사적으로 기어 나왔다. 간신히 몸이 빠져나오자마자 완전히 맞물려버린 벽은 한 치 틈도 주지 않았다. 조금만 늦게 빠져나왔다면 큰일 날 뻔했다.
“그랬었지.”
토마스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그날의 환영을 지웠다. 둘은 무사히 돌아오긴 했다. 그리고 그 이후가 지옥 같았지만. 자꾸 발걸음을 멈추는 토마스가 신경 쓰이는지 민호가 연신 재촉했다.
돌아오는 내내 미로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기괴한 그리버의 울음소리도, 시시때때로 러너들을 압박하는 움직임도 더는 없었다. 그저 지나가지만 하면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익숙하게 서로 다른 방향을 감시하면서 철골이 만든 숲을 빠져나가기 위해 바삐 뛰어갔다.
빽빽하게 박혀있는 철판은 마지 나무인 것 같았다. 그 사이를 걷던 민호는 영 방향을 잡기 힘든지 자주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로에서 공터로 돌아갔던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항상 주위를 살펴야 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는 촘촘하게 철판이 박혀있었다. 도대체 어디다 쓰는 것인지. 어떤 때 움직이는지조차 몰랐던 그땐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따금 바람이 불면 철골이 기괴하게 울곤 했다. 철골 벽을 넘어가면 그때부턴 익숙한 미로가 눈에 들어왔다.
좁고 길게 난 하늘을 바라보며 뛰던 둘은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저 편지만 믿고 달려왔는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면 그것대로 끔찍한 일이었다.
‘혹시…플레어가 퍼진 거면 어쩌지.’
자꾸 불길한 생각만 들었다. 사람들이 모두 살아 있을지. 친구들은 무사할지. 알아야 할 일도 알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쉽게 공터로 달려갈 수 없었다. 언제나 입을 열리고 기다리는 미로의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민호…가자.”
“……”
“다들 무사할…거야.”
“그렇겠지. 뉴트는…….”
“뉴트는…….”
“…….”
또 한 번 어색한 바람이 둘 사이를 휩쓸고 지나갔다. 뉴트. 누구라도 입에 올리기 무거운 이름이었다. 뉴트가 친구들을 떠났을 때, 그리고 다시 찾았을 때. 하나하나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 미로에 뉴트가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토마스는 웃지 못했다. 아무런 마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땅만 내려다보았다. 민호는 자신이 괜한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는지, 토마스의 등을 팡팡 쳐주며 씩 웃었다.
“내가 괜한 말을 했다. 가자.”
“…….”
“뭐해. 가자니까?”
“응? 어. 어.”
어색하게 대답한 토마스가 민호의 뒤를 따랐다. 여기서 한 번만 더 돌아가면 공터 입구였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은 민호가 한발 먼저 모퉁이를 돌아갔다.
“…….”
토마스가 잠시 멈칫하고 걸음을 멈췄다. 도저히 눈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이는 사이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인 토마스가 허겁지겁 달려가자, 낯익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프라이!”
“토마스! 살아있었네!”
“다들…무사했구나.”
“너희도…여긴 어떻게 알고 다시 돌아왔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건 위키드 밖에 모를 텐데.”
“그쪽에서 알고 왔어.”
눈앞이 뿌옇게 변하려는 것을 손등으로 쓱쓱 문질렀다. 아마 여기서 눈물을 보였다간 평생에 걸친 놀림감이 될 것이 뻔했다. 프라이가 토마스를 꽉 끌어안았다. 프라이. 숨 막혀. 프라이. 토마스가 장난스럽게 친구의 등을 두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다들 긴장이 풀렸는지 주위로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했다. 낯익은 얼굴도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위키드는 정말 이곳에 사람들을 모아두었다.
공터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 팀장 회의를 하던 본부부터 비료를 푸러 들어가던 숲, 그리고 불에 타서 반쯤 주저앉은 나무로 만든 조악한 건물까지. 그들이 버려두고 나온 그대로였다. 아직도 알싸하게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쩐지 코가 시큰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은걸.”
“…….”
“토마스? 응? 내 말 못 들었어?”
“어? 그래. 그렇긴 하네. 어쩐지…공터가 좁아 보인다 했어. 우리를 다 합쳐도 이 인원의 절반도 안 될 것 같은데…….”
더듬더듬 대답하던 토마스가 다시 한 번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프라이는 둘을 보자마자 할 말이 많은지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않고 연신 말을 쏟아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가두고 음식을 넉넉하게 올려보내지도 않았어. 그리버의 습격이 없다고 했지만, 미로에 먹을 것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 정말 죽을 뻔했다고.”
“넌 여전하구나.”
“사람들의 먹을 것을 책임지려고 했을 뿐이야.”
토마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렇게 만남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사람들을 데리고 탈출해야 했다. 토마스는 민호와 프라이에게 탈출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프라이는 약간의 불안감을 표하긴 했지만, 곧 토마스의 말에 설득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다들 안전하게 도망쳐야 해.”
“그러면 좋을 텐데.”
“일단 우리가 왔던 대로 다시 한 번 미로를 빠져나가서, 그 연구실에서 다시 나갈 길을 찾으면 될 거야.”
“출구가 다시 작동할까?”
“될 거라고 믿어야지. 먼저 정찰을 해보면 좋겠지만, 난 솔직히 여기서 하루라도 더 머무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하긴 그렇지.”
“잰슨이 쫓아올 수도 있고, 이미 그쪽에선 우리의 위치는 알고 있으니까.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 좋을 거야.”
“그래. 그럼 사람들을 모아. 공터에 살았던 친구들을 모아서 사람들을 통제하라고 해.”
“그렇게 하자. 우리가 가장 앞쪽에서 달린다 해도 사람들을 이끌어줄 팀장들이 필요하니까.”
토마스가 결정하고 민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터는 다시금 분주해졌다. 사람들을 모아서 설명하고, 정당히 줄을 세웠다. 꼭 처음 죽어도 미로에서 죽겠다고 떠났던 것처럼. 토마스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언뜻 뉴트의 모습을 보았다.
“뉴…….”
햇살을 받으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밝은 머리카락과 마릇한 목덜미는 분명 뉴트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불타 없어진 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달려가서 안아주고, 괜찮냐 묻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옷 그대로 공터에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야 했다.
“아…….”
하지만 뉴트가 아니었다. 토마스가 눈을 깜박이자 뉴트는 마치 바람에 날린 것처럼 사라졌다. 뒷모습만 보여주던 환영은 끝끝내 토마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귀에선 계속 뉴트의 목소리가 맴도는데 왜 보이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인원이 미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리버도, 움직이는 함정도 없는 것은 어서 탈출하라는 듯 조용하기만 했다. 토마스는 자꾸 눈앞에 보이는 뉴트의 환영을 애써 인식하지 않으려 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열심히 앞장서서 뛰던 뉴트가 보였다. 그러다 결국 뒤처지고도 끝까지 친구들을 챙기던 모습까지 기억났다.
금방이라도 고개를 돌려 토마스를 바라볼 것 같은 환영은 아슬아슬하게 머물고 있었다. 뉴트와 시선이라도 한 번 마주친다면 그대로 주저앉아 울 것 같았다. 하지만 점점 멀어지는 녀석을 불러 세울 수도 없었다.
‘뉴트.’
몇 번이나 속으로 부르기만 했다. 그런 토마스를 바라보는 민호도 복잡한 표정이었지만,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지금은 무사히 탈출하는 것이 더 급했다. 뉴트. 뉴트. 민호도 몇 번이나 친구의 이름을 되뇌었다. 생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처음 알았다.
***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말도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모두 무사히 빠져나왔으면 했지만, 그것마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무너지는 외벽을 피하지 못하고 깔린 사람들도 있었고, 겅중겅중 뛰어오는 그리버에게 잡힌 사람도 있었다. 간신히 그리버 한 마리를 처치한 토마스가 급하게 앞으로 달려갔다. 민호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찾았다.”
토마스는 문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수상한 캔버스 천을 발견했다. 당장 달려가서 잡아 뜯을 듯 천을 벗겨내자 희미하게 빛나는 벽과 제어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과연 위키드를 믿을 수 있을까. 토마스는 여기까지 오는 내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
페이지 총장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뒷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누가 위키드에게 이런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했을까. 토마스는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쓸었다. 게다가 아직 한 가지 더 확인할 것이 남아있었다. 과연 이 장치가 어디로 이어진 것인지 알아야 했다.
“좀…찝찝한데.”
토마스는 한숨을 푹푹 쉬며 마음을 다스렸다.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을 잡은 채 조심스럽게 장치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빛이 번쩍이는 것 같더니 죽음과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발이 땅에 닿아 그대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지만, 토마스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아.”
갑자기 따뜻한 햇살이 토마스의 온몸을 덮쳐왔다. 눈을 찌푸리며 그대로 멈춰선 토마스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한걸음 주춤 물러섰다. 천천히 빛에 익숙해진 눈에 예상하지 못한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
토마스는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 안에 서 있었다. 활짝 열린 채 햇살과 바람이 울컥 들어오는 문 너머론 푸른 초목이 펼쳐져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기를 얼마 만에 만난 걸까.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결론은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 이었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모두 피할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았다.
토마스는 다시 벽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착하는 순서대로 안쪽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빠르게 친구들을 찾았다. 민호는 분명 그리버와 대치하고 있었고, 프라이는 작은 여자아이 손을 잡고 뛰어오고 있었다. 토마스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을 붙잡고 사람들을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곧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만큼 후미의 싸움은 더욱 지독해졌다. 잰슨은 이미 반쯤 미친 표정으로 경비병들과 함께 공터 인들을 잡아가려 했다. 물론 그가 꼭 잡아야 하는 인물엔 토마스도 껴있었다. 더는 저 쪽으로 사람들이 못 넘어가게 막으려는지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싸움을 길고 처절했다. 잰슨과 경비병들을 간신히 저지하고 돌아온 민호와 토마스는 마지막까지 뒤로 차례를 미루며 친구들을 들여보냈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데.”
“그런 것 같아. 도대체 얼마나 폭탄을 터뜨려 댄 거야.”
머리 위로 쏟아지는 금속조각과 시멘트 파편, 그리고 발에 밟히는 깨진 유리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려는 듯 큰 소리를 내며 휘청일 때 토마스와 민호는 급하게 벽으로 몸을 날렸다.
***
토마스는 오두막 바닥에 자신의 뺨이 세차게 부딪힌 것까지 느끼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가물가물 멀어지는 의식은 뭉그러지며 섞여들었다. 처음엔 눈앞이 흐릿해지다 점차 보이지 않게 되고, 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풀린 긴장 덕분일까. 더는 생각을 하기 싫을 정도로 피곤했다. 토마스는 그대로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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