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YOU & I : please, call my name 004 [선공개분 完]
+) NOTICE
평범한 세상 연예인 AU 입니다. 플레어는 발병하지 않았고,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세계.
토마스가 한명인데 3인분을 하고, 뉴트가 그 토마스를 잡으러 뛰어다닙니다.
+) 지금에서야 생각났는데 뉴트가 토마스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민호>뉴트>토마스 순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선연재분이 끝났습니다!
이 이후 작업물은 5월 코믹에 회지로 만들어집니다 봐주셔서 감사해요!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이 글은 썰 같이 풀어주신 촐님(@go00chol) 에게!
write. 환월
004
집에 돌아왔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냉큼 안으로 뛰어들어간 토마스는 소파에 웅크린 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예의 쿠션을 꽉 끌어안은 채 입술을 푹 파묻었다. 불룩하게 부어오른 볼을 바라보던 뉴트는 내내 한숨만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은데, 정작 당사자는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소파 한구석에 바짝 붙은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파 가죽이 구겨지는 소리에 토마스가 반쯤 튀어 올랐다. 슬금슬금 곁눈질로 옆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입은 꾹 다물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 뭐가 불편하면, 불편하다. 말을 하라니까?”
“…….”
“저기, 여기 좀 보세요. 그쪽이 날 고용한 거 맞지? 그러면 당당하게 요구를 하던가.”
“…….”
“정말 답답하네.”
“…어차피 말해도 안 믿을 거 다 아니까 말 안 할래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토마스가 눈을 깜박였다. 긴 속눈썹 안에 갇힌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들 안 믿었으니까, 형도 굳이 알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 이런 바보 같은 상황을 그대로 지속하자고? 날 못 본 척하고 멋대로 움직이는 것도 내버려두고?”
“그건…아니지만.”
“…….”
들을수록 답답했다. 도대체 얼마나 큰일이기에, 다들 못 믿는다는 걸까. 사실 뉴트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심각하게 운을 띄운 사람 치고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고작해야……. 깊게 생각을 하려다 고정 관념을 만들지 말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항상 나쁜 쪽으로 생각하곤 했다.
“…….”
뉴트가 동요하지 않을수록 토마스는 점점 더 초조해 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예전 매니저들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적당히 넘어가 주곤 했다. 물론 그렇게 축적된 일이 한 번에 터져서 매니저가 쉽게 바뀌긴 했지만. 어쨌거나 한순간의 고비는 넘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한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뭐라고 말해도 놀라지 않을 거니까. 말해봐.”
“분명 놀랄 텐데.”
“안 놀란다니까.”
“놀라는 것도 모자라서 날 미친놈으로 볼 게 분명하니까.”
“…안 그런다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했어요. 하나같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토마스가 문득 자신의 손가락쯤에 닿아있는 까맣고 단단한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뉴트는 그런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줬다. 잔뜩 부풀려진 불안감을 구겨 넣은 눈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짙은 샴페인 같기도 하고, 다시 보면 호박 같기도 한 눈이었다.
“…….”
“말해봐.”
“…….”
“적어도 매니저와 연예인 사이엔 숨기는 일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
“…….”
“날 믿는다면, 말해봐.”
“…….”
낯은 목소리가 조근 조근 토마스의 귀에 스며들었다. 특유의 그 독특한 발음이. 그리고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할 때마다 생긴 불협화음이 토마스의 귀를 통해 심장에 닿았다. 계속 말해보라고 했다. 몇 번이나 말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뉴트는 전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쯤이면 예전 매니저들과 뭔가 다른 성격이라고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웃지 않을 거죠?”
“안 웃어.”
“…….”
“말해보라니까?”
“형한테 못 말하겠어요.”
“…….”
도대체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결국, 속으로만 우물거리다 포기한 녀석은 잔뜩 주눅이 든 채 뉴트 눈치를 봤다. 결국 뉴트가 먼저 항복했다. 성격 같아선 잠도 재우지 않고 끝까지 추궁해야 마땅했지만, 당장 내일도 촬영이 있었다. 이러다 혹시 촬영에 지장이라도 가면 큰일이었다. 영 찝찝했지만 이 정도로 그만두기로 했다.
뉴트가 한걸음 물러서자 소파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몸이 조금씩 펴졌다. 여전히 뉴트의 눈치를 살피던 녀석이 조용히 일어났다. 일부러 시선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주고 나서야 거실을 벗어나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방문이 조용히 닫혔다.
그리곤 다시 열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 한참 서 있던 뉴트는 그제야 포기했다. 거실 불을 끄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침대를 바라보다가 대충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곤 푹신한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그것도 잠시 괜히 토마스가 신경이 쓰여서 뒤척거리기만 했다.
한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바짝 당겨진 정신이 몰려오는 피곤을 밀어냈다. 불을 끄고 나서도 한참 어둠 속에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점점 더 또렷하게 돌아오는 정신은 지금 당장 바로 앞의 방문을 열어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토마스가 뉴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만큼, 뉴트도 토마스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했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잠을 자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내내 뒤척거리던 뉴트가 설핏 잠이 들었다. 잠이 다 깬 줄 알았는데, 일단 눈을 감으니 한 번에 몰려왔다. 방금까지 졸리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갑자기 몰아치는 잠을 이기지 못한 뉴트가 이불을 더듬더듬 잡아서 좀 더 끌어당겼다.
“…….”
얼마나 잠을 잤을까.
뉴트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한 뼘 정도 열린 문은 잠시 머뭇거리며 멈춰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조심스럽게 여는지 경첩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희미한 취침 등이 가득한 방 안엔 가늘고 낮게 흐르는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가끔 뒤척일 때면 이불이 구겨지면서 사박사박 소리를 냈다.
완전히 문이 열리자 길쭉한 몸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품 안에 커다란 베개를 안은 채 한참 침대 앞에 서 있던 녀석이 조심스럽게 뉴트를 내려다보았다. 완전히 잠든 뉴트는 어느 정도 소음이 들려도 깨지 않았다. 그대로 주저앉아서 침대에 턱을 올려놓았다.
“…….”
으음. 뉴트가 이불을 좀 더 당겨 덮으며 돌아눕자 한사람이 누울만한 공간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이불을 만지작거리던 녀석이 조용히 일어서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꽉 끌어안은 베개를 좋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긴장이 희미한 불빛을 타고 흘러내렸다. 뉴트가 잠에서 깨지 않는 것을 확인한 토마스가 조심스럽게 빈자리에 몸을 뉘었다. 푹신하게 뺨에 닿는 시트를 느끼면서 눈을 반쯤 감았다.
토마스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생각보다 뉴트의 잠귀가 밝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자 잠에 잔뜩 젖은 눈을 반쯤 떴다. 그리곤 느리게 깜박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꿈속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눈을 뜬 뉴트는 잠이 싹 달아난 표정이었다. 깜박. 깜박. 깜박. 잔뜩 긴장한 눈이 빠르게 깜박거렸다. 뭔가 등 뒤에서 묵직한 것이 느껴지긴 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었다.
“…….”
얌전히 있는 것을 보자면 해를 끼치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구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색하게 계속 자는 척을 하는 어깨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잔뜩 긴장한 입술에서 살짝 흐트러진 숨이 흘러나와 침대에 흩어졌다. 다행히 등 뒤에 있는 것은 뉴트가 일어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슬쩍 떠보려고 이불을 끌어당기는 척 부스럭거렸지만, 큰 움직임은 없었다.
‘…뭐지.’
그 순간 뒤에서 커다란 손이 뉴트의 허리를 콱 붙잡았다.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손으로 틀어막은 뉴트가 눈만 깜박거렸다. 허리를 붙잡은 손에 이어 누군가 뒤에서 뉴트를 껴안고 있었다. 도대체 뭐야. 이게. 정신이 없었다. 도둑이 들었다면 물건이나 훔치고 나가지, 이렇게 느긋하게 희롱을 하지 않겠지. 물론 강도라면 말이 다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토마스가 사는 집이 그렇게 허술하진 않을 것 같았다. 어깨에 닿는 숨결이 느껴지자 뉴트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돌아왔을 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뭐야?”
뉴트의 허리에서 툭 떨어진 손을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팔을 쭉 따라가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자기 방에 들어가서 자고 있던 녀석이 왜 자신의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품에 들고 온 베개는 무엇인지. 어른을 찾는 아이처럼잔뜩 웅크린 몸이 이불 위에 누워있었다. 뉴트의 허리에서 떨어진 손을 갈 곳을 잃은 것 같았다. 그러다 베개를 꽉 쥔 채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을 찡그렸다.
“도대체 뭐야. 이놈.”
“…….”
“토마스?”
“…….”
뉴트는 토마스가 몽유병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잘 자던 방에서 굳이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세웠던 가설 중 하나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매일 밤 이렇게 아무 곳이나 헤매고 다니다 잠이 들면, 다음날 감기에 걸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다 큰 사람을 침대에 묶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토마스를 깨워서 자초지종을 들으려 했다. 하지만 얼마나 깊게 잠이 들었는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뉴트는 아주 잠깐 그대로 여기서 재울까 싶었다. 잘 자는 녀석을 굳이 깨울 이유가 없긴 했다. 사실 침대는 둘이 누워도 남을 만큼 넓었고, 이불도 모자라지 않았다. 물론 토마스가 이불 위에서 그대로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 조금 문제이긴 했다. 정 안되면 토마스 방에 있는 이불이라도 들고 올 생각이었다.
“…으응.”
“깼네.”
“…….”
“아침에 제대로 이야기하려 했는데…굳이 이렇게 오밤중에 사람을 놀라게 해야 했니.”
“…….”
“얘가 또 왜 이래.”
간신히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뜬 녀석이 잔뜩 겁을 집어먹을 얼굴로 뉴트를 바라보았다. 마치 낯선 어른을 본 어린아이처럼 허겁지겁 베개에 얼굴을 숨겼다. 뉴트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민망해서 저러는 것인가 싶었는데, 토마스는 진심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이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또 모르는 사람을 보는 시선을 받자 뉴트가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한 번 뒤집었다.
“토마스.”
“…누구세요?”
“…….”
“밀레드 형…어디 갔어요?”
“…….”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어젯밤에 듣던 것보다 어려진 것 같았다. 뉴트는 그런 생각을 치우기 위해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무래도 저놈의 술수에 그대로 말려든 것이 분명했다. 뉴트가 침대에서 내려와 전등을 켰다. 그러자 갑자기 밝은 빛을 본 토마스가 눈을 잔뜩 찌푸리며 버둥거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웃긴 상황이었다.
“이제 말해봐. 왜 이러는 거야.”
“…….”
“토마스.”
“나…그러니까…….”
“내 눈을 보고 제대로 말해.”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꼬리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소리도 나지 않는 눈물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뉴트였다. 심하게 다그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마디 했을 뿐인데.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어색하게 손을 내민 뉴트가 울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침대 위에서 엉엉 울고 있는 다 큰 어른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한참을 울던 녀석이 코를 훌쩍이며 간신히 진정했다. 진이 쪽 빠진 뉴트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오늘도 오후 촬영인 것을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야간 촬영이면 더 좋을 텐데. 점점 잦아들어 가는 울음소리를 끝까지 들어주던 뉴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 끝에 토마스가 걸려있었다. 토마스는 그 반질반질한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몸을 조금 웅크렸다. 도대체 어떤 것에 저리도 겁을 집어먹었는지 알 수 없었다.
“토마스.”
“…….”
“토마스? 응? 나 좀 봐봐.”
“…….”
“응?”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토마스를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뉴트를 아는 사람이 본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부드러움이었다. 마치 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뉴트는 자꾸 목에서 올라오는 당황스러움을 꾹꾹 참으면서 토마스를 차분하게 설득했다. 단순한 것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인지. 토마스는 뉴트가 부드럽게 대해주기 시작하자 금방 경계를 풀었다. 조금씩 가까이 오는 녀석은 어느새 뉴트한테 바짝 붙어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속으로 한숨을 쉰 뉴트가 토마스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속눈썹이 푹 젖을 정도로 맺혀있던 물기가 사라졌다.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녀석을 받아주는 것은 조금 버거웠다. 하지만 이 정도로 진정이 된다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응?”
“형이…….”
“숨기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 나 화 안 낼 테니까.”
“…….”
“토마스?”
순간 또 시선이 저 멀리 흩어졌다. 세 갈래로 쪼개졌던 눈빛이 다시 한 곳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흔들리던 것이 점점 가라앉았다. 뉴트는 잠자코 그 눈빛의 끝을 따라갔다. 아까보다 많이 진정된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문득 옆에 앉아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뉴트?”
“그래. 왜?”
“…….”
“다들 내가 이래서 하루 만에 도망가기도 하는데…….”
“…….”
“그래서 굳이 말 안 하려고 했거든요. 길게 말해봤자 다들 안 들으려고 하니까.”
뉴트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말을 아꼈는지 알 수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복잡하게 얽힌 머릿속을 정리하고 나서 토마스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살짝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가 보였다. 여러 번 상처받은 모습을 뉴트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진작 좀 말해주지. 드디어 방어적으로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긴. 남들보다 좀 침착하다고 생각하던 자신도 그렇게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싶었다.
“…….”
“밀레드 형이 되게 잘해줬거든요. 처음 이럴 때도 막 소리 지르지도 않고.”
“…….”
“뉴트 형도 그랬던 것처럼. 근데 워낙 제가 바쁘기도 하고, 다들 못 버텨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만 툭툭 튕기고 있는 것을 보니 조금 짠해졌다. 쉽게 말 못할 일인 것은 확실했고, 그것을 모두 이해해 주리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마디 잘못 새어나간 것이 큰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슬슬 매니저를 왜 그렇게 꼼꼼하게 골랐는지도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아이고. 뉴트가 살짝 미간을 구기면서 토마스의 손을 덥석 잡았다. 깜짝 놀라서 펄쩍 뛰어오른 녀석이 침대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토마스.”
“…….”
“난 절대 네 매니저 그만두지 않을 거니까. 말해 봐. 그래야 나도 널 도와줄 수 있어.”
“…….”
“어차피 우린 한 배를 탔으니까, 서로 터놓고 가는 쪽이 편하지 않을까? 적어도 오늘처럼 이렇게 갑자기 방으로 걸어 들어온다 해도 놀라진 않을 거 아냐.”
“…….”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긴 저런 말을 믿었다 몇 번이나 낭패를 본 적도 있었다. 애써 묻어두었던 상처가 왈칵 살아 올라왔다. 지금은 도망가지 않았다고 해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결국, 그런 토마스를 바라보고 있던 뉴트가 먼저 두 손을 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추측한 걸 너한테 말해볼게.”
“…….”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만 말해줘. 나도 그럼 더는 물어보지 않고 지낼 테니까.”
“…….”
“알았지?”
“…응.”
겨우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뉴트는 자세를 돌려서 그런 녀석을 바라보았다. 엉겁결에 뉴트를 마주 보게 된 토마스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뉴트는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 지 조심스럽게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내가 아침에 처음 왔었을 때, 지금 토마스 같은 상태는 아니었지?”
“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그 아침에 봤던 녀석은 어제 촬영 때 보였던 표정의 토마스와 같은 녀석 일 거야. 내 추측이 맞아?”
“…응.”
“그래.”
또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처음 운을 떼는 것이 어려웠지, 그다음은 조금 쉬웠다.
“아까 방으로 올 때 울던 애는, 또 다른 녀석이야?”
“…….”
“약간 어린 것 같았는데, 이것도 맞을까?”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뉴트는 참을성 있게 직접 말해주길 기다렸다. 사실 이 정도 말했으면 거의 다 알고 있다고 봐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일은 추궁하듯 따질 수 없었다.
“…그게.”
느릿하게 흘러나온 목소리는 약간 갈라져 있었다.
“처음엔…잘 몰랐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됐어요.”
“…….”
“제일 먼저 안 건 토마스였고, 제일 나중에 안게 톰이거든요. 사실 어렸을 땐 막 그런 기억이…잘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쯤엔 확실하게 인식이 되기 시작했어요.”
“토마스가…그 까칠한 애?”
“…네.”
“톰은? 잠깐 다들 널 토마스라고 부르잖아?”
“대외적으론 다들 그렇게 부르는데…일단 이름은 그렇게 되어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애들은 절 토미라고 부르…….”
또 말을 잘라먹는다. 뉴트는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톰은 일곱 살? 여섯 살? 사실 나이는 잘 모르는데…여하튼 생각보다 많이 어려요.”
“…….”
“그래서 밤도 굉장히 무서워하고, 어려서 혼자서는 잠을 잘 못 자는데…그래서 저희는 자고 있어도 톰은 밤에 자주 깨니까. 가끔 매니저 형들 방으로 찾아가요.”
“…그래서.”
토마스가 말해준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이 길었다. 몇 년 동안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참고 있던 말을 모두 털어놓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도 맞았다. 뉴트는 재촉하지 않았다. 말하다가 목이 막히기도 하고, 목소리가 뒤집어지기도 했다. 드문드문 이어지던 말이 잠시 뚝 끊겼다. 눈가가 붉게 달아오른 토마스가 손바닥으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지금도 다들 깨어 있어?”
“그렇긴 한데 나오고 싶진 않은가 봐요.”
“그래. 어려운 이야기 해줘서 고맙다.”
“형이야말로…미안해요. 나 같은 녀석 아니더라도 편한 연예인들 많을 텐데. 되게 이상하죠?”
“이미 계약서에 도장 다 찍었는데, 인제 와서 그런 말 하는 거야?”
“…….”
“또 그런 표정을. 너를 나무라는 건 아니야. 어차피 나도 내가 결정해서 온 건데. 대신…….”
“…대신?”
“너도 날 조금만 더 믿어주면 좋겠어. 그리고 시간 되면 다른 애들도 소개 좀 해주고.”
“네? 네.”
토마스가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해본 것이 족히 일 년은 됐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화려하게만 보이던 녀석이 조금 짠해졌다. 뭔가 조금 엉킨 실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토마스가 베개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이제 괜찮으니까 돌아가서 자겠다고 일어나는 것을 뉴트가 굳이 잡아서 다시 앉혔다.
“어차피 애가 깨면 또 올 거 아냐. 무서워한다며.”
“…….”
“그냥 여기서 자.”
“하지만…불편할 텐데.”
“이럴 줄 알고 내가 침대 큰 거로 사달라고 했나 보지. 둘이 자도 넉넉한 데 뭐.”
뉴트가 토마스를 밀어서 눕히고 이불을 덮어줬다. 그리곤 침대를 빙 돌아서 자기 자리에 누웠다. 어색하게 등을 보이고 누운 채 짧게 잘 자란 인사를 했다. 토마스는 가끔 이불만 부스럭댈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돌아보지도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을 청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올 때까지 가는 숨소리만 방안 가득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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