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I'm Fine Thank You 001
+) NOTICE
데스큐어 원작 내용을 일부분 차용했습니다.
영화 1편 결말을 기본으로 데스큐어 이후 내용을 날조 했습니다.
데스큐어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또한 스토리 진행 중 취향 타는 소재가 나올 수 있습니다.
행복한 내용과 결말은 아닙니다.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아마도 5월 서코 신간
write. 환월
sequela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수술이 중단되었다.
얼마나 약을 퍼부었는지 제대로 사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뇌가 느리게 움직였다. 마취약에 완전히 절여져 있던 뇌를 간신히 움직이며 억지로 눈을 떴다. 흐릿하게 보이는 벽을 보고 나서야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뇌를 꺼내도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아니고, 그저 수술이 중단되었을 뿐이었다. 토마스는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눈앞은 누군가 뭉그러뜨린 것처럼 푹 퍼져있을 뿐이었다. 눈을 한번 감았다 뜨는 행위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머리…….’
몇 번 눈을 깜박거리고 나서야 조금씩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얀 천장에 서로 맞붙어있는 타일과 타일의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이 아프고 속이 뒤집혔다. 토마스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서 헛구역질했다. 먹은 것 하나 없는 위장에선 묽은 위액만 왈칵 올라왔다. 침대에 늘어진 토마스가 더듬거리며 시트를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민호…뉴트.”
토마스는 더 이상 정신을 놓고 늘어져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지만, 몸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몇 번이나 꺾이고 나서야 조금씩 힘이 돌아왔다. 속은 여전히 메슥거리고 뒤집힐 것 같았지만,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다시 자신의 뇌를 탐하러 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
정신을 차린 토마스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돌아봤다. 아무도 없는 회복실은 낯설기만 했다. 아까 반쯤 의식이 돌아왔을 때 누군가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서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널 믿는다. 토마스. 넌 착한 아이야. 부드럽고 권위 있는 목소리가 갑자기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지만, 쉽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누구였지.”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는데. 토마스는 욱신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끙끙댔다. 억지로 주삿바늘을 밀어 넣은 팔뚝은 온통 새카맣게 멍이 들어있었다. 얼마나 급하게 혈관을 찔러댔는지 아직도 힘을 줄 때마다 핏줄이 툭툭 끊어지는 것 같았다. 덕지덕지 멍이 올라앉은 팔을 가만히 쳐다보던 토마스는 곧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건…….”
침대 옆 탁자에 놓여있는 편지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적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토마스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꼼꼼하게 밀봉되어있었다. 한참 알 수 없는 경계심을 품고 있던 토마스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손끝으로 집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물품은 안심할 수 없는 것 천지였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만 있을 순 없었다. 단단하게 밀봉된 편지를 뜯었다. 안쪽엔 단정한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편지와 이리저리 복잡하게 그려진 지도가 몇 장 들어있었다.
“…….”
동봉되어있는 지도는 아무리 봐도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토마스는 지도 세 장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고 접혀있는 편지를 펼쳤다. 그리곤 빼곡하게 적혀있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토마스에게.
시련 과정은 이만하면 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린 이미 충분한 데이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와 내 동료들의 생각이 다르므로 간신히 수술을 중지시킬 수 있었다. 이미 확보한 데이터로 치료제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너와 다른 실험자들은 더는 이 일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
이제 너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려 한다. 총장이 된 후로 난 이 위키드 건물에 후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는 정비실에 후문을 만들어뒀다. 친구들과 동료를 찾아서, 그리고 우리가 모아놓은 면역인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거라.
동봉한 지도엔 길 세 개가 표시되어 있다. 첫 번째는 건물을 빠져나가는 터널, 두 번째는 남아있는 면역 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 그리고 세 번째는 앞에서 말한 후문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따로 만들어둔 문을 통하면 새로운 공간으로 갈 수 있다.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모두 떠나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부디 무사히 떠나길 빌겠다.
에바 페이지
편지를 다 읽고 나서도 위키드를 믿을 수 없었다.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이것까지 시련에 포함된 것이라면, 토마스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일 뿐이었다. 하지만 편지가 제시하는 탈출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생각나는 것도 아니었다. 에바 페이지. 천천히 기억이 돌아왔다. 아니 원래부터 알고 있던 이름이었다.
“분명 미로에서 내내 꾼 꿈에서 계속 들었던 목소리였어. 하지만 총장은 애초부터 우리를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그리고 그때 패널로 죽는 모습을 봤고…….”
토마스는 혼자서 계속 중얼거리면서 이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에바 페이지는 분명 미로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사람들 앞에서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가. 물론 평범하게 의심할 만한 주제이기도 했다. 게다가 총장을 완전히 신뢰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약이 깨기 시작하자 조금 더 두통이 몰려왔다.
일단 아직 남아있는 친구를 찾아야 했다.
적어도 한 명 정도. 이 일에 대해 말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다보면 그 생각에 잡아먹힐 수 있다. 토마스가 몇 번이나 들었던 소리였다. 혼자서 파고 들어가는 생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갉아먹으면서 새로운 방향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곤 했다.
“…….”
누구라도 찾아야지. 토마스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중요한 지도가 담긴 편지를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아직 완전히 약이 가시지 않았는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머리가 또다시 핑글 돌았다. 어지러움이 왈칵 몰려와 간신히 벽을 짚고 버텼다.
멀리서 뭔가 터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희미한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멀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토마스는 문이 열려있기만을 빌었다. 손끝을 조금 떨며 손잡이를 잡았다.
철컥.
다행히도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하지만 토마스는 쉽게 문을 열지 않았다. 이 문을 열면 당장 총을 든 사람들이 지키고 서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런 무기가 없는 만큼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조용히 문에 귀를 댄 채 눈을 감았다. 모든 신경을 귀로 집중시킨 채 복도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이상하리만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없는 건가.”
한 가지도 제대로 확신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더이상 지체할 수도 없었다. 하아. 토마스는 몇 번이나 마른 입술을 쓸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보았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토마스만 데려다 놓고 다들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다.
“빨리 움직여!”
“네!”
“어서!”
저 멀리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토마스는 문을 닫고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토마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분명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더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자 토마스는 재빠르게 회복실을 떠났다. 몇 번이나 복도를 돌고 돌아 사람이 없는 곳까지 뛰어갔다. 조심스럽게 구석에 몸을 숨긴 채 편지를 다시 꺼냈다. 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터널이 표시된 지형을 보고 현재 위치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멀지 않은 것 같은데.”
하지만 같은 공간에 움직이지 않고 계속 머무는 것은 위험했다. 다시 한 번 통로로 향하는 길을 눈으로 익힌 토마스는 바쁘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남은 두 가지 지도를 바르게 눈으로 훑었다. 일단 친구들을 찾고 나면 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토마스가 깜짝 놀라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다시 달려갔다. 결국, 몇 미터 가지 못하고 멈춘 토마스가 손 안에 쥐고 있던 지도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이럴 수가.”
토마스는 자신이 아무래도 눈을 다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몇 번이나 다시 봐도 지도에 그려진 장소는 토마스가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곳이었다. 지도를 잡고 있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토마스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가는 신음을 내뱉었다.
위키드가 살아남은 면역 인들을 데려다 놓은 곳은 자신들이 죽어서라도 탈출하고 싶었던 미로 안이었다.
***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알 수 없었다. 토마스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었다. 잠깐 긴장을 풀었던 그 순간 뒤에서 토마스의 목을 낚아챈 잰슨이 토마스를 그대로 땅바닥에 넘어뜨렸다. 한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바짝 목덜미에 댄 채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무래도 토마스가 회복실에서 도망치는 것은 잰슨의 계획엔 없는 일이었던 것 같았다.
“네 녀석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
“잘 들어라. 토마스. 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널 다시 수술실로 끌고 갈 거다. 네 뇌가 있어야 완벽한 치료제를 만들 수 있어.”
“…….”
“좋아. 착하지. 착한 아이야.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한다면 이 칼이 어디를 끊어낼지 몰라.”
“…….”
토마스는 잰슨을 똑바로 올려다볼 뿐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않았다. 잰슨은 그런 모습이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목에서 칼이 떨어지는 짧은 순간 토마스가 번개같이 잰슨의 복부를 걷어찼다. 엄청난 힘에 뒤로 밀려난 남자가 다시 정신을 찾기 전에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잡힌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진 뻔했다. 그대로 끌려가서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하게 마취제와 정맥주사를 잔뜩 맞은 후 뇌가 해부 될 것이 뻔했다. 토마스는 이마에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아무렇게나 닦았다. 뒤에서 나는 소란스러움에 결국 살짝 돌아보았다.
“이런…….”
잰슨은 플레어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잔뜩 화가 난 채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모습을 본 토마스는 눈을 감고 계속 달리기만 했다. 더는 플레어에 감염된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계속 달리고 또 달렸다. 토마스는 자신에게 러너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
몇 번이나 눈으로 보고 외운 길을 찾았다. 간신히 밖으로 나와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뒤에선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목이 찢어져라 악쓰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뒷목을 낚아챌 것 같았다. 하지만 절대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친구들을 찾아야 해.’
이젠 그 편지가 진짜인지 함정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진짜라면 좋겠지만. 만약 이 편지가 함정이라고 한다 해도 따르는 편이 나았다. 간신히 빠져나온 저 지옥 같은 곳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토마스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옮기기 시작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위험했다.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무사한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편지가 지정하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민호.”
뉴트. 토마스는 마음속으로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살아있으면 만나겠지. 살아있겠지. 몇 번이나 애써 불안한 마음을 내리눌렀다. 아직 갈 길은 멀었고, 모두 무사히 탈출하려면 좀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더는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민호를 만난 곳은 일종의 방공호 안이었다.
위키드 본부를 습격하는 사람들은 잠깐 토마스를 쳐다볼 뿐 이렇다 할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을 허무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로 어렵지 않게 숨어든 토마스가 이리저리 헤매면서 친구들을 찾았다. 소리라도 질러서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귀가 먹먹해진 정도로 시끄러운 곳에선 토마스의 목소리를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았다.
“저기.”
“…뭐냐.”
“애들을 어디 있어요. 토마스예요. 아군입니다.”
“네가 왜 여기 있지?”
“적당히 빠져나왔습니다.”
“애들은 뒤쪽에 있다. 네 녀석이 오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해서 일단 그러라고 했다만…….”
“감사합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이들의 소재를 파악하자마자 토마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길을 찾지 못하고 빙 돌아야 했다. 간신히 도착한 방공호 안엔 그렇게 보고 싶던 얼굴이 있었다.
“야, 어디 갔다 이제 와.”
“…민호.”
“바보 같은 놈이…어디 다친 곳은?”
“난 멀쩡해. 다친 곳도 많지 않고. 다만 뇌를 뺏길 뻔했는데…뭐 그것도 미수에 그쳤고 말이야.”
“…뇌를?”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물어봤지. 민호, 네가 좀 도와줘야 할 거 같아.”
“뭘?”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온 녀석이 하는 뜬금없는 제안에 민호는 눈을 크게 떴다. 아무래도 뭔가 고문이라도 겪어서 정신이 돌아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내내 진지했다. 결국, 민호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토마스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토마스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민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살아남은 면역 인들이 있어. 난 그들을 구할 방법을 알고 있어.”
“…….”
“민호.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하길래 이렇게 뜸을 들여.”
“…….”
토마스는 눈만 데록 데록 굴렸다. 좀처럼 입을 떼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던 민호는 답답한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토마스의 멱살을 잡았다. 답지 않게 주저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답답하게 왜 이래? 말해보라니까?”
“…미로로 돌아가자. 민호.”
“무슨 개소리야.”
“위키드가 살아남은 사람들을 미로에 모아놨어. 아마 다른 친구들도 모두 거기에 있을 거야.”
“…….”
단단하게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이 스르르 풀렸다. 토마스는 여전히 민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툭. 민호의 손등이 모래 바닥을 쓸었다. 그 곳을 어떻게 헤쳐 나왔는데, 다시 돌아가라니. 이런 미친 소리를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죽은 친구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여기까지 나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리버가 있으면 어쩌려고. 민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리버. 그 괴물이 주는 공포를 아는 토마스는 절로 어깨가 바짝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가야 해.”
“…….”
“다들 거기에 있을 거야.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탈출할 수 있는 곳도 알아왔어. 민호.”
“…….”
“해야 해.”
“뉴트는…….”
민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토마스의 손이 순간 공중에 멈췄다. 당황한 듯 갈 곳을 찾지 못하던 손이 어색하게 편지를 잡았다. 그리고 잠자코 그 편지를 건넸다. 민호는 다행히도 그런 사소한 행동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거.”
“뭔데.”
민호가 편지 안에 동봉되어있던 지도를 펼쳤다. 이런. 잔뜩 찌푸린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누르다 한숨을 푹 쉬었다. 몇 번이나 다시 보더라도 그 지도는 미로가 분명했다. 몇 년 동안 목숨을 걸고 뛰어다녔던 그곳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미로네.”
“응. 우리가 목숨을 걸고 빠져나왔던 곳이야.”
“그 지옥 같은 곳을 굳이 재활용해서 사람들을 모아뒀다고? 왜…그랬지? 이해할 수 없어.”
“플레어가…미치지 않는 곳이라서?”
“일리 있는 말이네.”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 세상에 플레어가 퍼졌음에도 그리버만 조심한다면 안전한 공간이기도 했다. 아니면 오히려 한 번 파훼 되었던 곳이라 다시 고쳐서 사람들을 몰아넣었을 수도 있었다.
“여기서 사람들을 데리고, 세 번째 지도에 그려진 대로 후문을 찾아 빠져나가라고 적혀있어.”
“…….”
“다들 살아있을 거야.”
“그래…그렇겠지.”
“…민호.”
“잠깐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
민호를 설득하는 덴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토마스는 서두르지 않았다. 짧은 기간 러너로 달려본 토마스는 민호에게 미로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친구들과 구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뻔뻔하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하는 자신이 웃기기만 했다. 민호는 바닥에 내내 주저앉은 채 말이 없었다.
“…….”
“민호.”
“뉴트는…거기 있을까?”
“…….”
“위키드가…그 녀석을 챙겨서 가지 않았으면 어쩌지?”
“…….”
“뉴트…살아있을까?”
“그렇게 믿으면…살아있다고 생각해.”
토마스가 가늘게 대답했다. 민호는 그 말을 듣고 결심을 굳힌 듯 일어섰다. 자연스럽게 따라 일어선 토마스가 민호의 눈치를 살폈다. 자연스럽게 가슴 쪽에 손이 올라갔다.
“아…….”
“왜 그래?”
“이제 그 옷이 아니지. 버릇이라서.”
민호가 멋쩍은 듯 웃었다. 그리곤 토마스에게 지도를 받아들었다. 몇 번이나 외우고 또 외운 곳이었다. 아직도 눈만 감으면 미로 안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온몸에 새겨져 있었다.
“가자.”
“…….”
“뭐해. 미로로 가자. 널 믿겠어.”
“고마워.”
토마스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민호가 앞장서서 뛰어가자 토마스는 곧장 그 뒤를 따랐다. 구해야 할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안 그래도 갈 길이 먼데 토마스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자꾸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 해.”
“아냐. 그냥.”
“…싱겁긴. 빨리 움직이자.”
“응.”
토마스는 귓가에 스치는 뉴트의 목소리를 들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묻혀서 무슨 말인지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울리는 목소리가 신경 쓰여 마냥 앞만 보고 달릴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멈출까 했지만, 그때마다 민호가 토마스를 불렀다.
‘…뉴트..’
눈을 꾹 감고 귀를 막은 채 토마스가 달려갔다. 그런 토마스가 지나간 자리엔 노란 꽃잎처럼 흩날리는 목소리만 남았다. 흙먼지 가득한 곳에 홀로 피어난 목소리는 마냥 바람이 흔들리다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토마스는 달리는 내내 제대로 들리지 않던 말에 신경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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