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YOU & I : please, call my name 003
+) NOTICE
평범한 세상 연예인 AU 입니다. 플레어는 발병하지 않았고,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세계.
토마스가 한명인데 3인분을 하고, 뉴트가 그 토마스를 잡으러 뛰어다닙니다.
+) 지금에서야 생각났는데 뉴트가 토마스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민호>뉴트>토마스 순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이 글은 썰 같이 풀어주신 촐님(@go00chol) 에게!
write. 환월
003
“…….”
처음 출근한 날은 너무 당황스러웠다.
물론 전날에 미리 집에 도착했으면 더없이 좋았을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게다가 오후에 일정이 잡혀있어서 아무런 근심 없이 깊은 잠을 자고 있던 탓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침부터 문을 두드린 것이 문제일까. 뉴트는 초인종을 두 번 정도 누르고 팔짱을 꼈다. 안 쪽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긴 하는데 좀처럼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침이니까. 애써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침착하게 기다리던 뉴트의 눈가에도 점차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뭐야.”
“뭐긴요. 오늘부터 같이 일할 매니저입니다만.”
“…….”
생전 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토마스를 마주 봤다. 딱 몸이 절반 정도 보일 만큼 열어둔 문은 그 이상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삐뚜름하게 고개를 꺾은 채 잔뜩 짜증이 난 표정은 좀처럼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의미 없는 기 싸움을 끊어야 할 것 같았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오후 일정이 있어서”
“…….”
“저기…저번에 저 보시지 않았습니까? 낯선 사람이 아닌데요.”
“…….”
일단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던 녀석은 간데없고, 눈앞에는 동장군도 울고 갈 만큼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이 있었다. 얼굴은 똑같은데 눈매가 베일 것처럼 날카로웠다. 아무리 아침잠을 방해받아서 짜증이 났다고 해도, 이렇게 분위기가 다른 것은 처음이었다.
눈을 깜박거리며 뉴트를 바라보던 녀석이 천천히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약간 부드러워진 눈이 뉴트를 슥 훑어 내렸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뉴트의 미간이 구겨졌다. 토마스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오세요.”
“네. 뭐.”
분명 이삿짐이나 개인적인 연락처까지 모두 전달했는데, 왜 이렇게 대하는지. 뉴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좀 인기 있는 놈들이란. 자기가 필요한 것 외엔 기억하지 않는 녀석을 데리고 다닐 생각을 하니 앞길이 캄캄했다. 한 번 와본 곳이라 그렇게 낯설진 않았다. 익숙하게 따라오는 뉴트를 대충 소파에 던져둔 토마스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처음 본 사람이면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자신의 구역에 들이는 것은 또 신기했다.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뉴트는 아침부터 예상외의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서 생각이 복잡했다.
‘…자다가 일어났나 보네.’
금방 사라지는 뒷모습을 잠깐 봤을 뿐인데도 까치집처럼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침실은 어지럽게 이불이 구겨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뭘 하는지 자꾸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곤 민소매 티를 위에 대충 후드티를 걸쳐 입은 녀석이 다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크게 하품을 하면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녀석이 눈만 깜박거렸다.
“자다 깼어요?”
“…응.”
“나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낯설어하지? 말 놔도 괜찮죠? 내가 더 나이가 많은데.”
“…….”
“싫으면 말고?”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음?”
“…….”
자꾸 혼자서 딴생각을 하는 녀석은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았다. 뉴트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쪽 손으로 턱을 받쳤다. 언제까지 저러고 있나 한참을 지켜보고 있을 때, 초점이 한순간 단단하게 잡혔다. 얼씨구. 눈을 깜박거리던 녀석이 인기척이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뉴트씨!”
“응? 어, 그래.”
“언제 오셨어요. 제가 먼저 기다렸어야 했는데.”
“언제…오긴. 아까 네가 문 열어줘서 들어왔지.”
“아.”
눈을 깜박이던 토마스는 뭔가 자신이 잘못 말한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애써 말을 돌렸다.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뉴트는 전에 없는 부산스러움을 한껏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가 조금 더 빨랐다.
“음…형이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뉴트 형? 짐만 도착하고 안 오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
“…헤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볼을 긁적이며 웃었다. 갑자기 수다스러워진 토마스의 행동을 좀처럼 따라갈 수 없는 뉴트는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살갑게 치대는 것도 처음부터 해야 익숙할 텐데. 처음 보는 사람처럼 찬바람 흩날리며 자신을 쳐다보던 눈빛은 아직도 서늘하게 목을 죄어왔다.
“혹시 말이야.”
“…네? 응?”
“아침에 잠이 많아? 누가 깨우는 거 싫어해?”
“어…네. 조금요. 워낙 늦게 자기도 하고 그래서. 보통은 아침에 사람이 막 벨 누르고 그러지 않거든요. 매니저 형들도 다 같이 살고 그러니까 딱히 올 사람도 없고.”
“그랬구나.”
좀 졸려서 그런 거겠지. 뉴트는 애써 아까 본 이상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머릿속으로 정리를 끝낸 뉴트가 괜히 토마스를 보며 씩 웃었다. 오후 촬영이라 해도 거의 오후가 다 되어서 시작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둘은 한없이 느긋했다. 달리거나 바깥으로 나가는 예능 촬영도 아니었다. 처음 시작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
“왜?”
“아침 안 먹었죠?”
토마스가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제저녁에 사 들고 왔다는 샌드위치를 들고 왔다. 큼지막한 샌드위치가 네 개 들어있는 포장지를 풀어서 가만히 쳐다보았다. 안 봐도 뻔하다. 아마 제일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있을 테고. 하나를 집어 든 토마스가 봉투를 뉴트에게 건넸다.
잠자코 다시 소파에 앉은 둘은 사이좋게 샌드위치를 나눠 먹었다. 우물. 우물. 빵과 야채 씹는 소리만 들렸다. 뒤늦게 가져온 우유도 한 잔씩 마신 다음 소파에 함께 늘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 접점을 찾았다. 이러나저러나 같이 움직여야 할 사람이니 친해지는 편이 나았다.
‘역시 아까 잠이 덜 깨서 예민했던 거 같네.’
얌전히 앉은 채 남은 샌드위치를 뒤적거리던 토마스가 뉴트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깜박거리면서 돌아봤다. 음? 마치 자기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는 눈빛에 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도대체 자기 집에서 왜 남의 눈치를 보는 건지. 피식 웃으면서 우유 잔을 내려놓았다. 먹이 먹는 햄스터처럼 볼을 잔뜩 부풀리고 남은 샌드위치를 다 긁어먹은 녀석이 입에 묻은 빵부스러기를 털었다.
“다 먹었어?”
끄덕끄덕. 그리곤 다시 소파에 묻힐 것처럼 몸을 기댔다. 비율 좋게 길쭉한 몸은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았다. 긴 다리를 접어서 소파에 올리곤 더듬더듬 커다란 쿠션을 찾았다. 그리고 손에 잡혀 나온 쿠션은 여자애들이나 쓸법한 푹신하고 커다랗고, 분홍색이었다. 다 큰 남자한테 어울리지 않는 분홍색 하트 쿠션을 보던 뉴트가 애매하게 굳어버린 시선을 돌렸다. 저걸 취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선물을 살뜰하게 쓰고 있는 연예인의 본보기라고 해야 할지. 경악하는 뉴트의 시선을 느꼈는지 쿠션을 껴안은 토마스가 뭔가 말을 하려 했다.
“아…이거 선물이었어요.”
“…….”
“정말인데. 딱 봐도 굉장히 편해 보이잖아요. 크고 푹신하고. 형도 나중에 안아 봐요.”
“아냐…됐어.”
“진짜 좋은데.”
정말 어디로 튈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토마스는 가끔 스쳐 지나가면서 곁눈질로 본 것이 다였다. 몇 번 만나진 않았지만, 분명 촬영장이나 행사장에선 이렇게까지 당황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
‘뭐, 이럴 수도 있지.’
그래도 성격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좀 예민한 점은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대충 걸쳐 입은 후드 티 끈을 만지작거리던 토마스가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늘 몇 시부터 촬영이에요?”
“네 시? 슬슬 준비해야지.”
“안 그래도 전 매니저 형도 나가고, 형도 안 와서 어제 혼자 자느라 되게 쓸쓸했는데.”
“…….”
“오늘부턴 안 그럴 거 같아서 다행이에요. 촬영도 일찍 끝나면 좋겠다. 일찍 와서 쉬게.”
“그건 네 능력에 달린 거고.”
“전 항상 잘하는 걸요.”
“그래. 자신감 있고 좋네.”
토마스 입에서 숨 쉬는 것처럼 나오는 자신감이 소파 위에 툭툭 떨어졌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토마스는 한 번도 추락하지 않고 내내 잘나가는 연예인이 맞았고, 단 한 번도 촬영 약속을 어긴 적 없었다. 저 정도 급이라면 차라리 자존심 있고, 당당한 편이 훨씬 보기 좋았다. 뉴트가 칭찬해 주자 금방 기분이 좋아졌는지 좀 더 붙어 앉았다. 허물없이 다가오는 녀석을 딱히 밀어내지 않았다. 잘 지내면 좋은 거지. 뉴트는 어느 정도 세상과 타협할 줄 알았다.
“형은 언제부터 이 일 했어요?”
“삼 년…아니지. 아이돌 쪽만 삼 년 했고, 다른 거 더하면 더 오래됐지.”
“베테랑이구나.”
“넌 네가 직접 골랐다면서 나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
“차차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내가 좀 이래저래 소문 난 게 많아서.”
“아, 그건 알아요.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는데. 뉴트 형 매니저로 붙으면 되게 무섭다고.”
“…….”
“…아닌가?”
토마스가 눈을 깜박거리면서 시선을 피했다. 가늘게 토마스를 쳐다보던 뉴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마 들은 것이 거의 맞을걸.”
“말 잘 들을게요?”
“내가 매니저 일하는 내내 그런 말 하는 녀석치고 내 속 안 썩인 놈들을 만나보질 못했다.”
“에이.”
“내기해도 좋아.”
뉴트는 대놓고 토마스를 살살 놀렸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토마스가 어제 짐을 다 옮겨놨다고 하도 자랑을 해서 방을 보러 갔다. 뉴트가 오늘부터 살 곳은 토마스의 침실 바로 앞에 있는 방이었다. 하얀 가구가 가득 채워진 방에선 새집 냄새가 났다. 침대에도 새 이불을 가져다 놨는지, 먼지 하나 타지 않았다. 딱히 다른 것을 부탁할 일이 없어 큰 침대나 넣어달라고 했는데, 커도 너무 컸다. 방의 절반은 채울 것 같은 무지막지한 사이즈에 뉴트는 기함했다.
“무슨 침대를 이렇게.”
“형이 큰 거 필요하다고 했다면서요.”
“내가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혹시 너희 소속사 자선 사업하니?”
“아뇨? 왜요?”
“그럼 혹시 저기 중동 지역에 소속사 이름으로 석유 시추권이라도 가지고 있어?”
“…아뇨?”
“근데 이렇게 매니저가 바뀔 때마다 가구를 갈아치워 준다고?”
“처음 올 땐 새 가구가 있어야 기분이 좋으니까요.”
“…….”
음. 뉴트는 이 소속사와 토마스의 사고 회로를 이해하길 반 쯤 포기했다. 그저 싱글 사이즈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원했을 뿐인데, 눈앞엔 성인 두 명이 누워도 남을 것 같은 침대가 떡하니 놓여있었다. 하긴 넓으면 편하지. 게다가 새 이불은 유난히 폭신해 보였다. 옷장에 옷을 걸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건 방주인이 해야 하는 것 같다면서 짐 가방을 한쪽에 곱게 정리해 뒀다. 생각보다 세심한 성격인 것은 확실했다. 당장 정리하자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중에 하겠다는 말과 함께 적당히 방 구경을 마쳤다.
집에 들어와서 매니저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뉴트는 마치 처음 매니저 일을 시작했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걱정은 과한 것이었는지, 토마스는 옷을 갈아입고 순순히 뉴트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얌전히 기다리면서 가볍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차에 타고 나선 몇 번 대화하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차라리 얌전히 자는 것이 낫지.’
뉴트가 시동을 걸면서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 그림자가 잔뜩 내려앉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고르게 내쉬는 숨소리가 가만가만 들렸다. 무슨 잠을 저렇게 기절하는 것처럼 자는지 알 수 없었다. 차가 촬영장으로 출발하고 나서도 깊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
“…….”
뉴트는 또 한 번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자기가 데리고 온 녀석이 맞았다. 조금 전까지 생글거리면서 들어갔던 녀석이 저렇게 변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오늘 촬영이 좀 날카롭고 냉정한 이미지라고 듣긴 했지만, 저간 아예 사람을 갈아치운 것 같은 변신이었다. 뉴트를 한 번 쳐다보고 그대로 지나친 녀석은 다른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익숙하게 촬영 감독 옆에 서서 촬영 컨셉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뭐지.”
훤칠한 몸에 까만 정장을 입혀놓으니 보는 맛은 있었다. 하지만 뭔가 성격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날카로운 눈매부터 다부지게 다문 입매까지 어딘가 낯설고, 익숙했다. 어디서 봤는데. 뉴트는 촬영장 한구석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내내 생각했다. 분명 익숙한 표정인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적당히 스태프들과 인사하며 안면을 트는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아.’
이제야 생각이 났다. 아침에 자신을 내려다보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처음 본 사람처럼 쌩하게 대하던 일을 잠깐 친하게 대해준다고 그새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뉴트는 최대한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 했다. 촬영에 너무 진지해지면 저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촬영장에 들어간 토마스는 평소에 알고 있던 연예인과 참 비슷했다. 약간 과할 정도로 눈을 강조한 메이크업이 이렇게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꽃 무더기에 푹 싸인 채 사진을 찍는 것을 바라보던 뉴트는 잠시 커피라도 마실까 싶어 밖으로 나왔다.
“…촬영 끝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촬영이 끝나기 전까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은 이미 체크해뒀으니, 나머지는 뉴트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든 상관없었다. 피곤하면 잠깐 끊어 가는 일도 흔했지만, 토마스는 강박적이라고 할 만큼 시간 지키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감독이나 스태프들은 까다롭지 않다고 좋아했지만, 가끔 너무 과할 정도로 시간에 집착했다. 물론 그만큼 완벽하게 촬영을 끝내려고 하니, 딱히 추가 촬영도 많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추가 촬영하는 걸 죽는 것보다 싫다고 했던가.’
여러모로 신기한 인간이었다. 하진 저렇게 최선을 다해 뛰니 지금까지 큰일 없이 인지도를 쌓았겠지. 이해가 되려고 하다가도 낯선 모습이 보이면 절로 어색해졌다. 내내 분주하게 움직이던 스텝들이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아. 넋 놓고 토마스를 구경하는 사이 쉬는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재빨리 옆으로 다가가서 이것저것 쥐여주었다. 또 싸늘하게 바라보는 표정을 마주친 뉴트는 당장 뭐가 마음에 안 드냐며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았다. 첫날부터 큰 소리를 낼 순 없었다. 뉴트를 피하는 건지 임시로 만들어둔 휴게실에 들어가서 콕 처박힌 녀석을 따라갔다.
“…또 자?”
그새 또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는 놈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잠이 저렇게 많은지, 과연 제대로 활동을 할 수는 있는 건지 궁금했다. 옷 다 구겨지겠네. 옷 정리도 하지 않고 그대로 꾸벅꾸벅 잠을 청하고 있었다. 뉴트가 옆에 앉아서 토마스의 어깨를 툭툭 쳤다.
“…….”
“목 아프게 그러지 말고 기대고 주무세요. 토마스 씨”
“…….”
“저기…아까부터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댁 매니저거든요?”
“…응. 알아요. 뉴트 형.”
“그래. 얌전히 대줄 때 기대서 자라.”
“으응.”
“…….”
잔뜩 졸린 목소리로 대답을 한 녀석이 냉큼 뉴트 어깨에 볼을 기댔다. 아. 화장. 뉴트가 얼굴을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완전히 어깨에 기댄 몸을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한 뉴트는 팔걸이에 간신히 걸쳐져 있는 손을 토닥토닥 두르려 주면서 수정 메이크업을 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분위기가 바뀌는 통에 이리저리 맞춰주기가 쉽지 않았다.
“…….”
아무래도 엄청난 녀석을 맡게 된 것이 확실했다. 스태프들이 급하게 들어와서 토마스를 찾을 때까지 뉴트는 잠자코 옆을 지키고 있었다. 잠깐만요. 깨울게요. 그 모습을 보던 스태프들은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토마스를 흔들어 깨웠다. 물론 자기가 잠이 든 것도 몰랐던 녀석을 일어나자마자 허둥지둥 메이크업을 고치러 달려갔다. 뉴트는 어깨에 묻은 화장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없이 연예인이 천직 같다가도, 잠깐 눈을 떼면 강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은 녀석이었다. 화장품 범벅이 된 어깨를 툭툭 털고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촬영이 시작된 직후였다.
“또 표정이 바뀌었네.”
조금 전까지 어깨에 화장 뭉개면서 잠을 자던 녀석은 어디 갔나 싶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참 재밌는 녀석인 것은 확실했다. 물론 문제는 지금 뉴트가 담당하고 있는 녀석이라는 것이지만. 하루에 열두 번씩 기분이 널을 뛰는 놈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머리는 복잡해져만 갔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꾸준히 흘러갔다. 촬영이란 것은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고, 그중에서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골라내야 하는지. 조금만 생각해봐도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잠깐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핸드폰을 쳐다보니 시간이 훅 지나갔다.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오늘도 잘했어. 다음 촬영 때도 잘 부탁해.”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깔끔하게 촬영 끝나는 사람이 몇 없단 말이지. 이번에도 같이 사진 고르고 싶으면 언제 한번 오라고.”
“알겠습니다.”
깍듯하게 감독과 스태프에게 인사까지 하고 걸어 나온 토마스는 잔뜩 피곤한 표정이었다. 하긴 몇 시간째 바짝 긴장한 상태로 표정 연기까지 해야 했으니, 피곤할 법도 했다. 완전히 뒤로 넘긴 채 세팅되어있는 머리를 함부로 헤집었다. 부스스해진 머리에 메이크업은 지우지 않은 묘한 모습으로 뉴트한테 뚜벅뚜벅 걸어왔다. 여전히 눈매는 아침에 봤던 것과 비슷했다. 또 아무런 말없이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뉴트가 팔로 토마스를 막아섰다.
“저기…같이 가야지?”
“…….”
“토마스. 왜 이래?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말을 하던가.”
“…누구.”
“촬영하다가 정신도 같이 놓고 왔나. 오늘부터 같이 일하는 매니저잖아. 왜 이렇게 자꾸 모르는 사람 취급이야?”
“…….”
“아…진짜.”
촬영장에는 아직 많은 사람이 남아있었고, 그런 곳에서 큰 소리를 내려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토마스의 손목을 덥석 잡은 뉴트가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잠깐 힘을 주며 버티던 녀석이 짧게 한마디를 중얼거리곤 생각보다 순순히 따라왔다. 뉴트는 토마스를 질질 끌고 걸었다. 주차되어있는 차 앞까지 끌고 와서야 손을 놔줬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피부에 벌겋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반대쪽 손으로 손목을 문지르는 토마스의 표정이 심각했다. 얼굴엔 점점 짜증이 번져갔다.
“뭐야.”
“매니저라니까?”
“…….”
“아까부터 왜 그래?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게 하던가. 아니면 그래도 사람 취급은 하면서 같이 노력을 해보던가. 왜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말도 안 하고 혼자서 다니려고 해?”
“난…….”
“싫으면 그만두자고.”
토마스의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안 그래도 진하게 화장이 올라간 눈 꼬리가 길쭉하게 늘어졌다. 그러더니 잠깐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고개를 숙인 채 끙끙거리던 토마스를 잠자코 바라보던 뉴트는 차에 기댄 채 팔짱을 꼈다. 아무리 매니저라고 해도 사람 취급은 받으면서 일해야 하는 것이었다. 가늘게 신음을 흘리면서 비틀거리던 녀석이 벌떡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눈을 세게 감고 있었는지 눈가에 화장이 번져있었다.
“…뉴트 형! 잠깐만.”
“…….”
“제가 설명 할게요. 잠깐만.”
“뭐, 왜 인제 와서 아는 척이야.”
“그게 아니고…하…진짜.”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직접 말해주면 좋겠어. 토마스 씨. 응? 나도 나 싫다는 녀석이랑은 일 안해.”
“형… 그게 아니고.”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계속 주변 눈치를 보면서 입을 떼지 못했다.
“일단 보는 눈도 있으니까. 집으로 가자.”
“…네.”
“가서 이야기 좀 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이 순순히 차에 올라탔다. 뉴트는 영 찝찝한 기분을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지간히 얼굴이 알려진 녀석을 이렇게 대로변에 놔둔 채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집에 가는 내내 흔한 라디오 하나 틀지 않은 차 안은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처럼 긴장감이 맴돌았다. 토마스는 잔뜩 시트에 웅크린 채 운전석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눈이 깜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 있자니 뉴트는 갑자기 피우지도 않는 담배가 생각났다. 가끔 친구들한테 얻어서 한 모금 빨아봤던 그 냄새가 쌉쌀하게 코끝에 맴돌았다. 내 팔자야. 뉴트는 내내 한숨을 쉬며 핸들을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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