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YOU & I : please, call my name 002
+) NOTICE
평범한 세상 연예인 AU 입니다. 플레어는 발병하지 않았고,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세계.
토마스가 한명인데 3인분을 하고, 뉴트가 그 토마스를 잡으러 뛰어다닙니다.
+) 지금에서야 생각났는데 뉴트가 토마스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민호>뉴트>토마스 순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이 글은 썰 같이 풀어주신 촐님(@go00chol) 에게!
write. 환월
002
당장 집에 들어가서 읽어봐야 할 것도 많았고, 집도 문제였다. 일단 그대로 놔둔 채 몸만 들어가기로 정하긴 했지만,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은 금방 먼지가 쌓이기 마련이었다. 며칠에 한 번이라도 돌아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녀석의 촬영 일정이나 집과 집의 거리를 생각하면 일주일에 한 번 다녀오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먼지 타는 건 어쩌지. 아예 다 덮어놓고 당장 이사를 하는 집처럼 해두고 갈까.”
옷이랑 필요한 기기는 가져간다고 쳐도 남아있는 짐이 문제였다. 민호에게 부탁할까 했지만, 그 녀석은 자기 집 간수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 놈이었다. 이러나저러나 깨끗하게 정리해두고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자잘한 공과금 같은 것도 한 번에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뉴트가 생각하는 것보다 할 일이 훨씬 많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늘 들리던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캔맥주를 두세 개 골랐다. 익숙하게 카드를 내밀고 맥주를 가방에 대충 던져 넣었다. 이번 계약 건만 아니라면 편하게 누워서 채널이나 돌리고 있을 텐데. 아무래도 예전에 친구란 놈들이 넌 일을 만들어서 하는 타입이니 평생 그럴 거라고 했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친구라는 놈들이 악담을. 뉴트가 편의점 문을 열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가볍게 인사를 하곤 거리로 나섰다. 가볍게 흔들리던 문이 뚝 멎었다.
***
“역시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뉴트가 푹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면서 소파에 주저앉았다. 탁자엔 오늘 받아온 계약서와 프로필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계약서야 다시 읽어봐도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었다. 뉴트는 손끝으로 다음 주부터 담당할 녀석의 프로필을 집어 들었다. 어릴 때 데뷔한 녀석은 그 기간만큼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빼곡하게 차있는 글자를 읽던 뉴트는 순간 현기증이 왈칵 밀려들었다. 아역 배우부터 시작했다고 했던가. 길고 긴 경력 서술 페이지는 끝날 줄을 몰랐다.
“…토마스.”
뉴트가 가늘게 눈을 찌푸렸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활동을 쉰 적이 없다고 소문이 난 배우였다. 소속사인 위키드의 간판이자, 자랑거리. 아역 배우에서 청소년을 거쳐 무사히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사람. 이것저것 따라붙는 수식어를 다 합하면 종이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연예인 생활을 했지만, 여성 편력이나, 스캔들 같은 꿉꿉한 소문 하나 붙지 않았던 것까지 합하면 대단한 인간이긴 했다.
“…….”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녀석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 있기에, 입주 매니저를 고집하는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매니저를 못살게 굴면 다들 한 달도 못 채우는 걸까. 게다가 이렇게 돈을 많이 주는 계약을 무르고 도망을 갈 정도라면. 물론 그 내용을 다 듣고 나서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은 뉴트 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듯한 이유를 집어내지 못했다.
‘집에 사람이 없으면 잠을 못 자는 타입이라던가. ’
보통 이런 상황이면 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면, 아마 여자도 남자도 줄을 설 텐데. 물론 그런 생활이 옳다거나 혹은 잘못됐다거나 하는 것은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모두 빼더라도 굳이 집에 머무는 사람을 매니저 하나로 한정 짓는 것은 이상했다.
‘몽유병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병이 있으면서도 계속 활동을 할 수 있나.’
하다못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해서 주변에서 붙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면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물론 이렇게 생각을 한다 해도, 그런 놈을 아직까지 혼자 살게 내버려 둔 소속사가 이상했다. 최대한 안 좋은 상상을 해보면서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지만, 그럴 시간마저 없었다. 곧장 바꿔 들어갈 수 있도록 이후 일정도 이미 넘어온 상태였다.
“참,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그러던 도중 문득 화보 사진에 눈길이 갔다. 세 장의 사진을 각각 다른 컨셉을 가지고 찍었는데, 묘하게 모두 다른 사람 같았다. 분명 같은 사람이 찍은 사진인데 눈빛이 각각 달랐다.
“…이건 좀 신기한데?”
세 장의 사진을 모두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모두 다른 사람 같았다. 금방이라도 눈빛에 베일 것 같은 사진은 보정과 메이크업의 힘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이글거리는 눈빛을 바라보던 뉴트가 사진을 내려놓았다. 음, 도대체 뭐가 문제지. 아무리 역할에 몰입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원래 모습이 남아있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사소한 눈매부터, 웃고 있는 입꼬리까지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걸.”
사진만 보고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어서, 뉴트도 스스로 당황했다.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하얀 니트를 입고 웃고 있는 사진은 아까 보고 있던 수트 차림 사진의 날카로운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서글서글함 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보정을 부드럽게 해서 그런가. 뉴트는 애써 논리적으로 이 상황을 정리해보려 했다. 좋은 말로 하자면 캐릭터가 풍부하다는 뜻이니, 천생 배우나 모델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흠.”
마지막 사진은 꼭 아이 같았다. 옷 스타일이나 머리 스타일링은 전혀 어린아이 같지 않은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이 같았다. 그것도 어른이 아이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 정말 일곱 살쯤 먹은 아이의 표정이 보였다. 이쯤 되니 토마스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셋 중에 둘은 연기라고 치면 그 하나가 궁금했다.
“진짜 뭐지. 예상보다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머릿속에 물음표와 호기심만 피어올랐다. 며칠 익숙해질 시간도 없이 바로 인수인계를 받아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 애매하긴 했지만, 뭐 큰 일이 생길까 싶었다. 토마스를 만나기 직전까지 이것저것 정보를 뒤지던 뉴트는 더는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침대에 늘어졌다. 대외적으로 나온 인터뷰나 따로 받아온 스케줄 표는 외울 만큼 읽었다.
인터뷰만 보면 지극히 정상인처럼 보이는데, 어디서 나사가 빠졌을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물론 많은 사람 앞에 서야 하는 직업은 어느 정도 자신만의 울타리를 가지고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뉴트가 지금까지 봐왔단 수많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말하는 4차원일까.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보던 뉴트는 곧 생각을 그만두었다. 아직 얼굴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사람에 대해 멋대로 선입견을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참자. 뉴트. 물론 호기심이 계속 솟는 것은 누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슬쩍 토마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쯤에서 누구에게라도 말을 했었어야 했다.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혹시나 일주일 만에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다는 마음 한 구석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괜히 계약했다 파기했다고 다시 말하느니 애초에 말을 하지 않고 지켜보는 쪽이 나았다. 덕분에 끙끙 앓던 뉴트는 답답함에 못 이겨 몇 번이나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일주일만 참아보고 진짜 아니면 때려치워야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은 착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현재 일하고 있는 매니저의 백업을 하면서 천천히 길을 익히기 시작할 때까지 뉴트는 단 한 번도 토마스를 보지 못했다. 어디서 뭘 하는지,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번에 그만두는 매니저와 가끔 커피라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굳이 말을 아끼는 것을 보아 이 일이 만만치 않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뭐 특별히 제가 더 신경 써야 할 일이라도 있나요?”
“아…뭐 별건 아니고.”
“도대체 뭐 얼마나 까다로운 인간이기에, 이렇게 말을 아끼시나.”
“그런 건 아니고. 워낙 바쁘잖아요. 게다가 같이 들어가서 살아야하니까 은근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이래저래 하다가 체력이 다들 못 버텨서 그만두는 거죠.”
“흐음.”
“뉴트 씨야 경력도 많고 하시니까 저보단 낫지 않을까요?”
“아, 애초에 좀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잡는 것이 편한 사람인가.”
“막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요. ”
“그렇게 말씀하시니…더 궁금해지는데.”
뉴트가 가늘게 웃자, 뭔가 찔리는지 시선을 피하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분명 자기만 모르는 일을 다들 숨기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이렇게까지 물어봤는데 말을 안 하는 것을 보면, 직접 몸으로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종류인 것 같았다. 뭔가 더 물어보려는 찰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졸음이 잔뜩 붙은 멀대같은 녀석이 척척 걸어와서 비어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형, 이제 집에 가요.”
“아, 토마스 왔어?”
“생각보다 촬영이 너무 늦게 끝나서. 나 지금 진짜 피곤한 데 집에 오면 깨워줘요? 음?”
“…….”
“그쪽은 누구?”
“아, 저분은…….”
“새로 온 매니저구나. 안녕하세요? 토마스라고 해요. 제가 지금 피곤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리겠네. 이야기는 들었어요. 다음 주부터 같이 다니시는 거 맞죠?”
“네? 네. 뭐. 그렇습니다.”
“잘 부탁해요. 매니저가 자주 바뀌니까 이것도 되게 헷갈리네요.”
“하하.”
“안 그래도 새로 오시는 분 진짜 궁금했거든요. 몇 번 미리 와주셔도 됐었을 텐데.”
“…….”
뭐 그렇게 궁금한 것이 많고, 할 말이 많은지. 뉴트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생글생글 웃으면서 손을 덥석 잡고 악수를 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풋풋한 기운이 남은 녀석은 가까이서 보니 어린 티가 났다.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을 보니 그다지 나쁜 인상도 아니었다. 붙임성도 좋았다. 뉴트의 손을 꽉 붙잡고 좀처럼 놔주지 않았다. 뉴트는 문득 두 번째 봤던 사진을 떠올렸다. 밤하늘에 핀 벚꽃처럼 하얗게 웃는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남자 애한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조금 웃긴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비유로는 토마스의 얼굴을 표현할 수 없었다.
“제가 좀 바쁘기도 하고, 계약 내용도 좀 복잡하죠?”
‘알긴 아는 모양이네.’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알아서 꺼내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사람이 자주 바뀌고, 눈치가 보였으면 이럴까 싶었다. 물론 뉴트는 연예인과 정치인 걱정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내내 말해왔다. 하지만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로만 생각해야지. 뉴트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어디 아파요?”
“응? 아뇨.”
“형도 되게 잘해주셨는데, 제가 워낙 힘들게 해서.”
“…?”
“뉴트? 뉴트 씨라고 부르면 되나요?”
“…네.”
“제가 많이 노력할게요.”
“…….”
들을수록 이상한 말이었다.
스케줄이나 촬영은 토마스가 노력한다고 해서 조절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게다가 뉴트는 일이 많고 바쁜 것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었고, 개인적으로는 느긋한 것보다는 바쁜 것을 선호하기도 했다. 자꾸 뭘 그렇게 노력한다고 하는 건지. 과하게 눈치를 보는 느낌이었다. 지면이나 광고에서 봤던 모습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뉴트는 역시 이런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뭐…이미 들으셨겠지만, 제가 생각보다 잔소리가 심해서.”
“그건 다른 분들한테도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부탁드린 거였는데, 정말 모시고 와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 걸요.”
“하하, 소문이 꽤 지독하게 났나 보네요.”
“…….”
“농담입니다.”
“아…네.”
자기가 했던 일을 하나하나 짚어보던 뉴트가 가볍게 웃었다. 미묘한 시선 교환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매니저가 벌떡 일어나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안 갈 거야? 피곤하다며. 한걸음 떨어져서 들리는 소리에 토마스가 눈을 깜박이며 일어섰다. 그런 둘을 바라보던 뉴트도 슬쩍 가방을 챙겨 일어서려 했다. 그 순간 밝은 목소리가 뉴트의 뒤통수를 쭉 잡아당겼다.
“같이 가실래요?”
“제가요?”
“방을 치우고 있는데, 혹시 원하시는 인테리어나 요구사항이 있으시면 한 번 봐두시는 게.”
“…….”
“그리고 같이 밥 먹을 사람 많으면 좋잖아요. 같이 가죠.”
“…….”
언제부터 봤다고 다짜고짜 친한 척이지. 떨떠름하게 토마스를 바라보던 뉴트가 곧 시선을 돌려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이미 운전석 문을 열고 반쯤 올라타던 몸이 스르르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이 정도면 알아서 거절해주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뭐…같이 가시죠?”
“…….”
벌떡 일어나서 빤히 쳐다보는 녀석이나 시동을 걸고 있는 매니저나 자신을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이 확실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거절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끄응. 낮게 신음을 흘리며 일러서는 뉴트의 팔을 확 잡아챈 토마스가 생글생글 웃었다.
‘…그냥 스스럼없는 건가.’
“안 가실래요? 밥은 다 같이 먹으면 좋은데.”
“…….”
“바쁘시면 뭐할 수 없고…….”
붙임성 좋은 연예인인 토마스를 연기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 모습이 진짜인지. 뉴트는 스스로 이 바닥에서 꽤 오래 굴렀다고 생각했는데, 영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토마스가 사는 집에 들어가서 밥까지 같이 먹었다. 뉴트가 낀 김에 뭐라도 사 들고 가자면서 굳이 식사를 준비한다는 사람마저 돌려보낸 토마스였다. 밥이 맛이 있었는지, 뭘 먹었는지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홀짝이면서 매니저가 쓴다는 방은 슬쩍 들여다보았다. 벌써 다 들어냈네. 뉴트가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꿀꺽 삼켰다. 이미 어느 정도 치워진 방은 아예 가구를 새로 들이는 건지 휑하기만 했다.
“아, 이제 거기 쓰시면 되는데. 혹시 필요하신 가구가 있으세요?”
“…네?”
“책상이라든가 아니면 컴퓨터라든가. 다들 한 가지씩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이 있으니까요. 세팅해두라고 하셨던 거로 기억해서요.”
“뭐…딱히 그런 건 없고.”
“…없고?”
“그냥 침대나 좀 넓었으면 좋겠네요. 편하게 자게.”
“알겠어요.”
왜 그렇게 큰 침대가 필요하냐는 질문이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을 보자 정작 큰 침대가 필요하다고 말한 사람이 더 당황했다.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낸 말이니 자연스럽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방은 생각보다 컸고, 뉴트의 짐은 얼마 되지 않았다. 토마스는 내내 싱글벙글하며, 현 매니저와 예비 매니저 사이에 앉아있었다.
“…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고 가셔도 되는데.”
“아직 그럴 수야 없죠.”
“…….”
“어차피 이제 지겹도록 볼 텐데, 안 그런가요?”
“그것도 그렇네요.”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소파에 좀 더 몸을 기댔다. 매니저가 토마스의 손을 잡고 일어나게 하곤 그대로 걸어가서 침실로 밀어 넣었다. 싫다는 소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졸린 것처럼 눈만 깜박거렸다. 한쪽 손목을 잡힌 채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은 굉장히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었지만, 적어도 저 둘 사이에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뉴트는 어쩐지 자신도 며칠 뒤 저렇게 하고 있을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아무리 어리광이 심하다고 해도 다 큰 녀석이 저러는 것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 짧은 시간에 잠이 들었는데, 조용히 토마스의 침실 문을 닫고 나온 매니저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뉴트를 쳐다보았다.
“항상 이렇게 잠을…….”
“예? 예. 뭐…이젠 익숙하니까요.”
“…….”
“뉴트씨도 곧 익숙해지시겠죠.”
“잠버릇이 심한 녀석이네요.”
“그래도 오늘 정도면…….”
“…….”
도대체 얼마나 잠버릇이 나쁜 건지. 하긴 잠버릇이 나쁜 것이 집안에 여자를 끌어들이는 것보단 나았다. 연예인에게 스캔들은 좋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매니저도 그런 뉴트의 말에 쉽게 수긍했다.
당연하죠. 여기서 여자 문제까지 얽히면 아무도 이 일 못 해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뉴트는 토마스가 아직도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은 비밀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졌다. 하지만 조급해한다고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니저와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밤이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피곤한지 목을 주물거렸다.
“너무 오래 있었네요.”
“저희야말로 너무 붙잡아서.”
“아닙니다. 그럼.”
제법 쌀쌀하게 볼을 쓸고 지나가는 밤바람에 뉴트가 가늘게 눈을 찌푸렸다. 후우. 숨을 내쉬자 길고 하얀 숨이 밤하늘에 흩어졌다. 하나 둘 돋기 시작하는 별이 눈에 보였다. 지금 걷기 시작하면, 분명 새벽이 다 되어서야 도착할 것 같았다.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에 가로등이 만들어낸 긴 그림자가 늘어졌다.
물론 그 날 이후로 뉴트가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착실하게 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집 정리가 끝나고, 들고 갈 짐을 한곳에 모았다. 생각보다 꽤 많은 양에 주인도 놀란 눈치였다.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부딪혀 봐야지.”
잔뜩 들어낸 짐을 보던 뉴트는 애써 밝게 생각하려 했다. 집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정리하기로 했고, 나머지는 적당히 처리해 두었다. 생각한 대로만 풀리길. 갑자기 몰아치는 불안감에 손톱을 뚝뚝 깨물던 것을 알아채자, 헛웃음이 나왔다.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긴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지간한 일에 당황하지 않을 정도의 경력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아직 멀었구나. 뉴트.’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뉴트가 마지막 짐 가방을 들어 올려 어깨에 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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