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YOU & I : please, call my name 001
+) NOTICE
평범한 세상 연예인 AU 입니다. 플레어는 발병하지 않았고,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세계.
토마스가 한명인데 3인분을 하고, 뉴트가 그 토마스를 잡으러 뛰어다닙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이 글은 썰 같이 풀어주신 촐님(@go00chol) 에게!
write. 환월
001
“애초에 돈을 많이 주는 이유가 있었어.”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서 바쁜 사람을 불러낸 쪽이 할 말은 아니었다. 이미 커다란 잔을 하나 비운 뉴트는 눈앞에 보이는 민호가 의자에 앉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잠깐만. 잠깐만. 민호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적당히 주문하고 메뉴판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이며 뉴트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 잠깐에도 엄청난 말이 다다다 쏟아졌다.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하냐?”
“나 방금 왔거든? 숨 좀 돌리자. 갑자기 계약서 쓰러 가더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응. 응.”
민호는 잠자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런 모습을 잠깐 보던 뉴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잘한 안주가 하나둘 나오고, 다시 주문한 맥주는 아직 나오기도 전이었다. 얼마나 할 말이 많은지 좀처럼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민호는 저 녀석이 이렇게 흥분하는 것을 처음 봤다. 탁자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리곤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민호 들어 봐봐. 난 큰 회사라고 돈을 많이 주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돈은 항상 따라오는 이유가 있더라고.…….”
“응? 너 당분간 일 안 하고 쉰다면서.”
“그랬지. 그랬었지.”
“천하의 뉴트가 돈 때문에 자기 계획을 엎었다고?”
“…….”
“너 한 번 안 한다고 결정하면 눈앞에 행성이 떨어져도 계획 바꾸는 일이 없었잖아.”
“저번 주까진 그랬지.”
“…….”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눈앞의 친구를 쳐다보았다. 농담인가 잠시 생각을 해봤지만, 진지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저 고집 센 녀석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쪽에서 얼마나 돈을 많이 준다고 했기에, 쉰다는 것도 때려치우고 계약서를 썼냐?”
“…저번에 받았던 계약금 두 배?”
“뭐?”
민호는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뉴트가 매니저 일 하면서 이래저래 몸값이 꽤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매니저로서의 월급이었다. 그리고 한 성격하는 덕분에 소위 말하는 기센 연예인의 담당이라도 되는 날이면, 하루가 멀다고 싸우는 소리가 민호한테 까지 들렸다. 물론 그런 성격으로 아직까지 매니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만한 능력은 있었다.
“그래서? 널 키워서 연예인으로 데뷔라도 시키겠다고 해?”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너 얼굴 나쁘지 않으니까. 매니저로 계속 있기 아까운가 싶었는데 아니야?”
“…어.”
“그것도 아니면 매니저한테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줘.”
“그렇지? 너도 좀 이상하지?”
“어. 매우.”
“…….”
민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인 것은 맞았다. 누가 그렇게까지 돈을 줘가면서 매니저를 바득바득 데려가려고 할까. 혹시 이상한 일에 연루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대단한 회사가 도대체 어딘데?”
“…….”
“너 이상한 곳에 들어간 건 아니지?”
“아냐. 그런 건 아니고. 나도 좀 얼떨떨해서…….”
“어딘데? 그 정도 재력이 있는 곳이면…….”
“위키드?”
“뭐?”
“…위키드.”
민호가 순간 손을 삐끗해서 탁자를 엎을 뻔했다. 생각보다 더 큰 회사 이름을 말한 뉴트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애초에 계약서 다 쓰고 나왔다는 녀석이 아직도 얼떨떨한 걸 보고 있으니 새삼스러웠다. 아무리 자기가 매니저 쪽에서 유명하고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 해도, 대형 기획사는 이래저래 귀찮다며 죽으라고 거절해 왔던 친구였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위키드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
침착하게 뉴트를 바라보던 민호는 손도 대지 않았던 맥주를 들고 몇 모금이나 벌컥벌컥 마셨다. 오늘 계약서를 쓰고 온 것도 아니고, 저번 주부터 일을 나갔다는데, 인제 와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내심 궁금했다. 차라리 저 녀석이 이제 매니저 일은 그만두고 이제부터 연예인을 한다 말한다면 지금 이 상황보다 훨씬 믿을만할 텐데. 쓸데없는 생각의 연속이었지만, 민호는 반쯤 진심이었다.
“정말?”
“어…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거기서 갑자기 널 왜 불러? 네가 담당하는 연예인 맘에 안 들면 막말하는 것도 다 안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언제!”
“사실이잖아. 널 거쳐 간 애들 중에 욕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이 있나 잘 생각해봐라.”
“…….”
뉴트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눈썹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열심히 과거 일을 생각 중인 것이 분명했다. 잔뜩 찌푸린 얼굴이 펴질 생각을 하지 않자 민호가 슬쩍 웃으면서 한마디 더 했다.
“없지?”
“어.”
“이런 널 돈을 두 배로 주고 쓰겠다는 기획사가 있다고? 걘 어지간한 사람으론 제어가 안 되는 비글이래? 사실은 매니저가 아니고 사육사가 필요하대?”
“너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 좀 심하다?”
“난 언제나 사실만을 말해.”
“…….”
민호가 낄낄거렸다. 뉴트도 딱히 반박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바짝 조여 가면서 애들 끌고 다녔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것 때문에 트러블도 꽤 많았던 것도 물론 사실이었다. 한참 커가는 녀석들은 그런 뉴트의 빡빡함을 참기 힘들어 했고,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놈들은 귀찮아했다.
뉴트도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하다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젠 지쳤다며 따로 일을 찾지 않은 상태였다. 이력서도 하나 올려두지 않고, 질릴 때까지 편하게 쉬겠다는 녀석을 딱히 말릴 사람도 없었다. 저러다 또 일 욕심이 나면 휙 나가서 계약서를 들고 들어올 것이 뻔했다.
“난 한 이삼 년은 놀 줄 알았는데.”
“나도 그랬다니까.”
“그래서? 누구 담당인데. 이야기 좀 해봐. 천하의 뉴트를 그렇게 모셔갔다면 변변치 않은 놈은 아닐 거 아냐.”
“…….”
“이상한 놈이야? 싸이코?”
“아니…뭐.”
“누군데. 아니 그래서 매니저한테 돈 그만큼 주면서 뭐 더 요구한 건 없어?”
“있지.”
“뭔데? 설마 네가 계약을 이상하게 했을 거라곤 생각하진 않는데 왜 이렇게 불안하냐,”
민호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뉴트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물론 매니저로서 생각하자면 입이 무겁다는 것은 좋은 장점이었지만, 이렇게 사람까지 불러내 놓고 말을 줄이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죄 없는 머리만 헤집던 손이 다시 탁자에 내려앉았다.
“…그러니까.”
“뜸 그만 들이고 말해봐. 그래서?”
“걔 집에 들어와서 살아 달래.”
“…….”
“안 믿기지? 정말이라니까?”
“너 매니저가 아니고 가정부로 취직했냐?”
“아니거든.”
오늘은 참 놀랄 일이 많았다. 저 녀석이 저런 말을 듣고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도 웃기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매니저를 굳이 집에다 같이 살게 하는 그 소속사도 이상했다. 나이가 먹더니 슬슬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 민호는 진심으로 친구를 걱정했다.
이놈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양반이 아니었다. 뉴트가 한 번 계약서 갱신 할 때마다 무슨 난리를 치는지 몇 년 동안 옆에서 지켜봤었다. 그런데 저런 소리에 넘어가서 도장을 찍었다니.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눈앞의 친구가 뉴트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들어와서 산다고 치자. 식비나 그런 건 두 배로 올려준 월급에서 깐대? 그러면 그걸 왜 해?”
“아니. 그냥 회사 카드로 긁으라던데?”
“오, 더 이상해.”
“잠은 원래 있던 매니저가 쓰던 방 치우고 새 가구 싹 다 들여놨으니 옷이랑 필요한 것만 챙겨서 들어오라고 하고. 뭐, 둘이 합의만 되면 개를 키우든 늑대를 키우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던데. 밥은 가정부 따로 오니까 그냥 먹고 싶은 거 말하면 된다고 했어. 차야 그쪽에서 제공해 주는 거고…….”
“…….”
“결론은 뭐 그거야. 입주 매니저를 하라던데? 24시간 붙어있어 달라고.”
“뭐?”
“그렇다고. 눈앞에서 계약서에 내 계약금으로 나갈 돈은 한 푼도 없다고 써줬다니까.”
“…….”
민호는 자기가 들은 말이 사실인지 혼란스러웠다. 저 친구가 정신이 나가지 않았다고 가정 해봐도 도무지 계약했다는 위키드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민호도 트레이닝 강사를 하면서 이상한 손님이나 뜬금없는 계약서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래. 뭐 네가 그렇게 말하니 사기는 아니라고 치자. 도대체 그 24시간 붙어서 돌봐줘야 하는 녀석이 누군데?”
“…….”
“신인은 아닐 거 아냐. 누가 요즘 신인한테 너 같은 경력자를 붙여줘.”
“그런가.”
잠시 고민하는 뉴트를 보던 민호는 더는 기다리기 힘든지 계속 재촉했다.
“토마스.”
“뭐?”
자기가 재촉해서 들은 대답이었지만, 민호는 이름을 듣자마자 또 놀랐다. 위키드라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 설마 했었다. 사실 그 정도 재력에 몸집이 큰 회사에 이상한 놈 하나 없을까 싶었지만, 예상외의 이름이었다. 민호가 먹던 술을 뿜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뉴트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걔라고. 너도 알지? 맥주를 추가 주문하고도 이런저런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
뉴트에게 전화가 온 것은 이른 저녁이었다.
마지막 계약 날짜까지 깨끗하게 정리한 뉴트가 오랜만에 집에서 느긋함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자기 일 그만둔 거 알고 다른 곳에서 전화 오면 귀찮다면서 이력서도 모두 빼버린 터라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도 있었다. 전화 올 구석이 없는데. 아마 친구이겠거니. 그런 생각으로 징징 울리는 핸드폰을 귀에다 댄 채 캔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민호나 알비겠지. 느긋하게 소파에 걸터앉은 채 전화를 받았다.
“네.”
“뉴트씨. 핸드폰 맞습니까.”
“네? 픕. 아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전화기 속에서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그대로 맥주를 뿜은 뉴트가 허둥지둥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잔뜩 늘어진 목소리는 기침에 섞여서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잠시만요. 전화기를 멀리 떼어놓고 쿨럭쿨럭 기침했다. 간신히 진정한 뒤에 다시 전화를 받았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사람은 다시 한 번 뉴트가 맞느냐고 물었다. 보통 이런 말투와 분위기로 전화하는 사람은 항상 비슷한 용건을 가지고 있었다.
“네?”
“…그래서 저희 쪽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드리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전 구직한다고 이력서를 올린 적이 없는데요.”
뉴트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긴 여자는 계속 웃었다. 뉴트는 슬슬 감이 왔다. 아마 계약이 끝나는 것을 계속 지켜본 사람 중 하나일 것이 뻔했다. 뉴트 성질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건 분명 말도 안 되는 놈을 붙여주려는 의도였다.
“…제가 요즘 좀 힘들어서 몇 년 동안 일을 안 하고 쉬려고 하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합의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흠. 도대체 제가 왜 그렇게 필요하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화로 길게 할 이야긴 아닌 거 같으니 한번 뵐 수 있을까요?”
“네. 그러면 저희 회사 쪽으로…….”
“그러죠. 뭐.”
뉴트가 어깨로 전화기를 받친 채 메모지와 펜을 찾았다. 그리고 주소를 받아 적다가 문득 손이 멎었다.
“위키드요?”
“네. 위키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부디 좋은 계약이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예…예.”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얼떨떨했다. 연예인 스카우트도 아니고 매니저를 굳이 부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뉴트는 머리를 긁적이며 적어놓은 주소를 훑어봤다. 혹시 큰 소속사 이름을 팔아먹는 사기가 아닐까 했지만, 주소는 확실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나 싶었다. 일단 약속을 했으니 아무렇게나 하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옷을 찾아다 놨던가. 한참 너르게 살던 터라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다행히 며칠 전 깨끗하게 세탁되어 돌아온 옷더미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막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던 뉴트가 자신의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 이렇게 입고가면 안 될 텐데. 이것저것 옷을 대보면서 눈을 찌푸렸다. 뭔가 좋은 계약 조건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마음이 불안했다. 계약금을 더 올려주지 않으면 절대 안 할 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맡았던 그 그룹은 진짜 못 해먹을 놈들이었어.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서 그랬지.”
툴툴거리던 뉴트는 적당히 고른 옷을 옆으로 치워놓고 침대에 덜렁 드러누웠다. 아이고. 잠시도 쉬지를 못하게 하네. 괜히 억울한 마음에 이리저리 뒤척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스카우트로 들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래. 경력에 한 줄 더 보태는 거지.’
좋게 생각하자. 그렇게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지만, 바로 직전 악마들을 만나고 왔던 기억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놈들보다 더한 애들을 부탁하려는 거면 어쩌지.”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기 위해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던 뉴트는 설핏 잠이 들었다. 물론 답지 않게 긴장을 했는지 새벽 내내 몇 번이나 깼다.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아침이었다. 급하게 준비를 하고 겉옷을 입었다.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뉴트가 머리를 슥슥 빗어 넘겼다.
“이러고 있으니까…꼭 오디션이라도 보러 가는 것 같네.”
혼자서 실실 웃던 뉴트가 신발을 찾아 신었다. 그리고 천천히 약속장소로 향했다. 매니저는 언제나 계약직이라 한두 번 이렇게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닌데, 괜히 긴장이 풀풀 올라왔다. 마치 처음 계약을 할 때 같았다. 게다가 보통 때라면 민호나 다른 친구들에게 언질이라도 줬을 텐데, 너무 갑자기 잡힌 약속이라 그럴 참이 없었다. 다녀와서 말하지 뭐. 그렇게 생각했었다.
“와우.”
그리고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훨씬 큰 건물이었다. 대형 기획사라는 생각을 안 하고 산 것은 아니었지만, 상상과 실제는 언제나 차이가 나는 법이었다. 약간 주눅이 든 뉴트는 괜히 옷차림을 점검했다.
“…이렇게 큰 소속사랑은 일할 생각이 없었는데.”
역시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문득 시계를 확인하니 약속 시각까진 약간 여유가 있었다.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가는 편이 낫겠네. 위키드 건물을 바라보던 뉴트는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을 혀로 슥 핥았다. 약속 십 분 전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에선 유명한 사람이 맞는 걸까. 다들 회사 안으로 들어온 뉴트를 알아본 눈치였다. 웃으면서 뉴트를 어디론가 안내한 직원은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소리와 함께 방 밖으로 사라졌다. 소파에 편하게 기댄 뉴트가 이리저리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거지.”
좀처럼 인사 담당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뉴트는 시곗바늘이 둥근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때마다 한숨이 짙어져 갔다. 차라리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했지만, 야속한 시곗바늘은 좀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시계를 쳐다보다 다시 멍하니 앞을 보고, 다시 문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뉴트의 입술이 바짝바짝 갈라지기 직전 조용히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뇨.”
“전 위키드 엔터테인먼트의 인사 담당자입니다. 저희가 뉴트씨에게 갑자기 연락은 드려서 많이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뭐. 프리랜서란 다 그러니까요.”
“뉴트 씨 아니면 안 되겠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어서, 급히 연락을 드렸습니다. 전 회사에 알아보니 계약 기간이 끝나셨다고 해서요.”
“그렇죠.”
“저희도 이렇게 매니저 분을 스카우트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닙니다만, 좀 특별한 아이라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죠? 매니저를 스카우트해서 붙여줄 정도면 신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요.”
“이쪽입니다.”
“…….”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건지 인사 담당자가 뉴트 쪽으로 종이를 슥 밀어줬다. 제법 두꺼운 종이 뭉치였다. 곧장 그 서류를 받아든 뉴트가 빠르게 안에 담긴 내용을 눈으로 읽어 내렸다.
‘음?’
짧게 의문을 띄운 뉴트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아서 서류를 읽었다. 서류에 붙어있는 얼굴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뜻밖의 사람이 눈에 들어오자 뉴트는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 농담 아니시죠?”
“그럼요.”
“이 정도 되는 녀석을 저한테 굳이 찾아서 맡기시는 이유라도 있는지 궁금하네요. 보통은 이렇게 지목하진 않으니까요.”
“…좀 복잡한 이야기입니다만.”
“?”
좀처럼 말을 꺼내지 않는 담당자를 빤히 쳐다보던 뉴트가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손끝에 걸리는 이력서는 뭐 볼 것도 없었다. 신인도 아니고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은 사람은 안 봐도 뻔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든 일을 부탁하려는 건지. 살짝 찌푸린 까만 눈동자가 다시 인사 담당자의 얼굴로 향했다. 여전히 나긋나긋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불안한지. 뉴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저희 아이가 좀 특별해서요.”
“뭐 그러시겠죠.”
“인기나 이런 걸 빼고도, 다들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그래서 매니저가 자주 바뀌기도 했습니다.”
“네, 그것도 소문으로 들었네요. 일주일 만에 바뀐 적도 있다던데.”
“…….”
“사실인가요.”
“네.”
“생각보다 까다롭네.”
“그 것 뿐만은 아니고, 만약 매니저 계약을 하신다면 꼭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뭐죠?”
프로필을 다시 한 번 넘겨보는 뉴트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모든 생활을 그 아이와 같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방은 따로 마련해 드리고, 가구도 원하시는 대로 채워 드리겠습니다.”
“…네?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실래요?”
“완전히 입주한 매니저로 24시간 옆에 붙어계셨으면 합니다.”
“…….”
뉴트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처음엔 잘못 들은 것인줄 알았는데, 진지한 표정을 보니 농담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개 매니저를 굳이 연예인이 사는 집에 밀어 넣을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들 이래서 남자만 뽑았구나. 뉴트는 애써 현실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지만, 당최 이런 파격적인 제의를 한 진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굳이?”
“좀 특별해서요. 잠시라도 사람의 눈이 떨어지면 안 되는 타입이라.”
“…….”
“어려운 부탁이니만큼 계약금에 관해서는 저희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흐음.”
뉴트는 뭐라고 입을 떼야 할지 열심히 말을 고르고 있었다. 입주 매니저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었다. 물론 거절하고 일어서야 했지만, 뒤이은 계약금 액수를 듣고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한 번 부딪혀보자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때쯤, 뉴트는 이미 계약서를 받아들고 있었다. 당장 며칠 뒤부터 같이 다닐 녀석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
계약서를 손에 들고 건물 밖으로 나온 뉴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가장 중요한 일이 뭘까. 한참 고민을 했다. 당장 자신이 살고있는 집부터 수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녀석의 화려한 매니저 갈아치우기 이력을 봤을 때, 자신도 며칠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이고. 이상한 계약을 한 느낌인데.”
뉴트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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