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18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속으로 곪아가는 캡틴이랑 기억 조각을 찾는 버키가 나옵니다 취향탈 수 있어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캡틴 로저스와 반즈 씨가 오셨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버키는 사실 제정신인 상태로 궁을 돌아본 적이 없었다. 연신 두리번거리다 눈앞에 사람이 많은 것을 알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버키는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서 그런 자신을 박해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늘 마음이 불편했다.
“…버키?”
“아냐. 조금 긴장해서.”
“괜찮은 거지?”
“내가 이상했으면 벌써 여길 뛰쳐나갔어,”
“…….”
애써 농담처럼 던졌지만, 스티브는 영 마음을 놓지 못했다. 간신히 돌아서서도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버키보다 조금 앞에 서 있는 캡틴은 아까까지 표정은 간데없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볼 것 같은 굳은 얼굴로 가볍게 인사를 하며 걸어 들어갔다. 티찰라는 의자에 앉은 채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왔는가.”
“좀 늦었습니다.”
“…….”
버키는 뭐라 말할 타이밍을 놓친 뒤 고개만 꾸벅 숙였다. 예전 셋을 생각해 본다면 이런 상황이 굉장히 웃긴다는 것을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였고, 현재는 현재였다. 티찰라는 왕답게 사과를 건넸고, 버키는 딱히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이 안전하단 사실은 알고 있었다. 왕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식탁 앞에 서 있는 둘에게 가볍게 손짓을 한다. 그 손짓에 옆에 대기하던 사람들이 캡틴 아메리카와 버키 반즈를 의자로 안내했다. 잠시 움직이지 않던 고집스러운 발걸음이 약간 불규칙하게 들리다 뚝 끊겼다. 의자 끄는 소리. 긴장을 풀려는 듯 낮게 울리는 헛기침 소리. 재미라곤 단 한 점도 없는 식사시간이었다.
“…….”
꽤 커다란 식당에 앉아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버키를 배려한 것인지, 원래 이렇게 휑한 모습으로 밥을 먹는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차라리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버키는 쉽게 긴장을 풀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모습이 유난히 눈에 잘 들어왔다. 스티브는 식탁 아래로 내린 손을 조금씩 움직여 친구의 하나뿐인 손을 덥석 잡았다. 음. 익숙한 감촉에 버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 티찰라를 바라보았다.
“반즈가 몸이 안 좋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불렀네.”
“배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예의 차리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다 비슷한 사람 아닌가.”
“그렇습니까.”
버키는 그 대답이 의외인 듯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다, 다시 푹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푸석한 브루넷이 식은땀이 채 가시지 않은 턱에 자꾸 붙었다. 머리카락이 간지러운 지 버키는 자꾸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버키의 한 손은 스티브가 잡고 있으니 머리를 정리할 수 없었다. 그냥 그래서 웃고 말았다. 티 나게 손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일 이라는 게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라.”
“…….”
“생각보다 돌아가야 할 길이 많기도 하네.”
“…….”
“우리 모두의 일도 마찬가지야. 반즈. 그대가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예?”
갑작스러운 말에 버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어차피 우리 영토에서 보호해주기로 한 것 아닌가. 너무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네.”
“하지만 제가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경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걸요.”
“그렇게 생각하는가.”
“꼴은 이 모양이지만, 아직 제가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 무리가 꽤 있을 테니까요.”
“…….”
“예를 들면…….”
버키는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침을 삼키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할 말을 고르고 있었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 걸까. 버키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해야 했다. 자신마저 정신을 놓아버리면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다. 가장 오래된 전쟁포로는 늘 그것이 걱정이었다. 자신의 몸에 달린 무기가 몇 개나 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은 공포로 다가와 온몸을 잡아먹으려 하곤 했다. 버키의 말이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지만, 캡틴 아메리카와 왕은 인내심 있게 다음 말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겨우 마음을 정리한 남자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아직 제겐 남아있는 무기가 너무 많아서요.”
“…….”
“머릿속에 아직 폭탄이 박혀있습니다.”
“…….”
“해제할 수 없어요, 누군가 다시 코드를 읊으면 전 그저 인형이 되어 같은 짓을 반복할 겁니다.”
“그건 이쪽에서도 방법을 찾고 있네.”
“제 머릿속의 폭탄은 예외가 없습니다. 그 코드를 해제할 수 있다면 벌써 했겠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캡틴 아메리카가 괴로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야기는 티찰라와 몇 번이나 했던 말이었다. 그걸 이런 식으로 당사자에게 듣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다.
“전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입니다.”
“…….”
“제 존재가 와칸다란 나라에 큰 흠이 될 수 있어요.”
“…….”
“폐하가 배려해주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버키 그만해.”
결국, 캡틴이 말을 자르고 말았다. 아. 버키가 가늘게 눈을 치부렸다. 방금까지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은 간 곳이 없었다. 손 뼈마디 뼈마디가 아플 정도로 꽉 쥔 채 놓지 않았다. 스티브. 티찰라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친구를 불렀지만 듣지 않았다.
“아직 좀 혼란스러운 모양입니다. 폐하.”
“그런가.”
“스티…아니 캡틴. 난…….”
“항상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쩐지 할 말이 남았지만, 더는 이어갈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있었다. 버키는 입을 꾹 다문 채 내내 하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만 바라보았다. 캡틴 아메리카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정의롭고, 유연한 말솜씨로 티찰라와 대화를 했다. 하지만 버키는 낄 수 없었다. 메인 식사가 나오고 나서야 겨우 대화가 끝났다. 캡틴 아메리카는 그제야 꽉 쥐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누가 봐도 새빨갛게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버키는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포크를 들었다.
“속에서 받지 않더라도 먹어두게.”
“…예?”
“와칸다에 있는 동안 그대가 또 쓰러지는 일은 없었으면 하거든.”
“…….”
“특히 영양이 모자라 다거나, 굶어서라는 이유로 말이야.”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그런가.”
“몸이 생각보다 튼튼해서 그러진 않습니다.”
티찰라는 웃으면서 수저를 들었다. 길고 긴 대화가 끝나고 드디어 식사가 시작되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버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어쩐지 약간 날이 선 것 같은 기분에 버키는 뭐라 말도 붙이지 못한 채 그저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괜찮을까.’
물론 지독한 위장장애를 달고 사는 몸이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것까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왕이 저렇게 말하는데, 감히 음식을 남길 수 없었다.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집었다. 입에 넣은 뒤 천천히 씹으면서 몸 상태를 점검했다. 다 먹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먹을 수 있는 데까진 먹어보기로 했다.
“…….”
“입에 맞았으면 좋겠네.”
“맛있습니다.”
“그런가.”
“예.”
사실 맛있다는 감각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긴 했다. 하이드라에선 입으로 밥을 먹은 날을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어차피 한번 죽기 직전까지 굴린 다음 냉동시키면 그만인 무기를 예쁘게 대해줄 사람은 없었다. 수액과 영양제로 버티고 또 버티다 더는 안 되겠다 싶으면 끌어다 앉혀놓고 억지로 고열량 음식을 퍼 넣었다. 그때부터 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물론 루마니아로 도망친 직후도 마찬가지였다. 미각이 돌아오지 않고, 먹는 행위에 두려움을 느끼다 보니 변변찮은 것만 주워 먹고 다녔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열량이 높은 음식을 찾았고, 파괴된 미각을 조금이라도 사용하기 위해 늘 자극적인 음식을 고르곤 했다. 그렇게 살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사실 샐러드니 계란이니 하는 음식이 혀가 닿아도 별맛이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만든 사람의 정성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반즈가 어렵지 않다면 가끔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방에만 있는 것도 좋지 않아. 그대가 있는 방 근처엔 내가 믿을만한 사람을 골라서 배치했으니, 남의 눈에 띌까 고민하지 말고 돌아다니게. 그들은 내 수족과도 같아.”
“…….”
“그리고.”
“…….”
티찰라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버키는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칸다는 약하지 않다네. 우린 누가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아.”
“…….”
“자네가 그런 것까지 걱정하고 방에 틀어박히는 일은 내가 사양하겠네. 그건 왕으로서 용납 못하지.”
“…….”
“안 그런가. 캡틴.”
“그렇습니다. 폐하.”
어쩐지 스티브의 목소리를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기분이었다. 가늘게 떨리는 스티브의 손을 본 순간 버키는 식사를 어떻게 마쳤는지 알 수 없었다. 긴 식사가 끝나고 왕은 또 일이 남았는지 집무실로 돌아갔다. 조금 늦게 걸어 나온 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자꾸 스티브의 눈치를 보게 되니, 답답하기만 했다. 친구는 늘 고집이 세서 자신이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스티브.”
“…….”
“스팁. 스티비?”
“…….”
“우리 산책하러 갈까?”
“…….”
“폐하가 배려해 주셨는데. 또 방에 처박힐 순…….”
그 순간 스티브가 날 선 표정으로 버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무서운 표정은 처음 봤다. 버키는 순간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인자가 모두 섞인 채 형형한 분노를 흘리고 있는 남자는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센티넬도 급이 있어서, 상위 그룹에 속한 녀석들은 하위 그룹을 어느 정도 힘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일종의 마운팅과도 같았다. 버키는 그런 상황에 스티브의 가이드인자에 보살핌을 받는 처지인지라 무슨 수를 써도 센티넬 상태인 캡틴 아메리카를 이길 수 없었다.
“…….”
몸이 뻣뻣하게 굳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를 떼는 것도 힘들어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꼭 진공 상태에 들어온 것 같았다. 공기조차 멈춰버린 것 같은 날카로운 분위기는 그대로 쩍쩍 갈라서 온몸을 찢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응?”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왜…그래? 스티브. 응?”
“살아야 하는 사람과 죽어야 하는 사람은 누가 정해.”
“…….”
아. 버키는 스티브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아까 손이 으스러지라 잡은 것도 화를 삭이기 위한 행동이었을 텐데, 뇌가 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난 정말 버키…네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슬프다 못해 화가나.”
“…….”
“왜 자꾸 날 떠나려고 해.”
“그건…….”
“대답은 안 듣겠어.”
“…….”
“따라와. 버키.”
스티브는 버키를 끌고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발이 자꾸 꼬일 것 같아 몇 번이나 멈춰 서려 했지만, 스티브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해. 버키의 망가진 뇌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상해. 스티브가 이상해. 차마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을 곱씹으며 버키는 그렇게 친구의 손에 계속 끌려가기만 했다.
+)
책은 250~300p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쓴 것을 한번 다 붙여봐야 확실해 질텐데, 원고가 죽어버린 본체에 들어있어서 수습을 할 수 없네요
원래 20편에서 끝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버키 이야기와 캡틴 이야기도 하고싶고, 제가 생각하지 못한 스토리도 써보고싶은 욕심은 나는데
시간이 모자랄까봐 늘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항상 시간내어서 읽어주시고, 감상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보고싶은 부분이라던가, 상황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스토리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라면 외전 형식으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마블 > └ 스팁버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19.5 (0) | 2016.07.26 |
---|---|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19 [비번 공지에] (0) | 2016.07.21 |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17 (0) | 2016.07.18 |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16 (0) | 2016.07.17 |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15.5 (0) | 2016.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