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04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벜른 전력인 새끼손가락 파트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전력 분량을 붙여넣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속으로 곪아가는 캡틴이랑 기억 조각을 찾는 버키가 나옵니다 취향탈 수 있어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버키!”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던 스티브가 벌떡 일어났다. 꿈자리가 영 사나운 것을 보니 편히 잤어도 정신은 내내 피곤했다. 물론 그만큼 바짝 몰려있다는 말이 되겠지만, 스티브의 모든 걱정거리는 버키를 향하고 있었다. 새벽에 몇 번 일어나 보긴 했는데, 그러다 완전히 잠이 들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스티브는 몇 번이나 속으로 자책을 하고 말았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이렇게 편히 잠을 자 버리다니. 누가 보면 깔깔거리며 웃을 일이 분명했다. 미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혹시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쉽게 침대를 쳐다볼 수 없었다. 크게 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몇 번이나 마른세수를 하며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지금보다 더 피곤한 상황에서도 조금만 눈을 붙이면 몸 상태가 꽤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곤 하는데, 오늘은 영 기운을 쓸 수 없었다. 아.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버…….”
“…….”
“버키.”
“…….”
버키는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금방이라도 숨을 쉬지 않을 것 같아 걱정했던 지난 일이 떠올랐다. 그대로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운 느낌은 스티브의 손끝에 얼음 조각을 얹어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여전히 까칠한 모습 그대로지만, 어쩐지 그런 걱정은 들지 않았다.
“마음이 놓인 건가.”
“…….”
“아니면 몸이 버틸 수 없어서 전원을 꺼버리기라도 한 걸까.”
“…….”
“그래도 잠시라도 편히 잘 수 있다면 좋을 거겠지.”
스티브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렇게 푹 잠든 모습은 처음 봤다. 예전에도 그랬다. 얼마나 바득바득 늦게 자려고 하는지 스티브는 언제나 먼저 잠들고 말았다.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은 터라 도저히 버키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 봤다. 버키가 잠을 자고 있으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했다. 물론 하울링 코만도와 함께 작전을 다닐 때는 잠깐씩 같은 막사를 쓰긴 했지만, 그땐 전쟁 중이었다. 이렇게 편하게 잘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천천히 시선을 올리면 또 한 번 심장이 욱신거렸다. 아직 제대로 처리를 하지 못한 절단면은 오그라든 부분마저 너무 잘 보였다.
그제야 스티브는 스스로 꾸짖었다. 이 녀석이 자는 동안 저 팔이라도 제대로 싸매둘걸. 그렇게 후회해 봤자 이미 날을 밝았고, 조금 있으면 의료진이 올 것이 분명했다. 스티브는 버키가 그랬던 것처럼 침대에 걸터앉았다. 두 사람의 무게가 더해진 침대는 약간 삐걱거렸다.
“…….”
어릴 적 버키가 하던 그대로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기울여진 시선에 친구가 턱 걸렸다. 한참 자라고도 남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렇게 똑같이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릴 적 스티브는 항상 침대에 누워있었고, 버키는 그 곁에 앉아서 어서 잠을 자라고 치대곤 했다. 왜 그랬을까. 이렇게 쳐다봐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잠자는 사람이 뭐가 그렇게 재밌었나 싶었다.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된다. 아차 싶어 정신을 차리니 눈을 뜬 친구가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버키?”
“…….”
대답하지 않으면 항상 불안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질 것 같았다. 잡지 못하면 차라리 같이 죽어버리자고 했던 곳에서도 그러지 못했다. 친구는 물에 빠져 다 죽어가던 자신을 건져놓은 채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번에도 또 그렇게 가버리면 어쩌나. 스티브는 걱정이 많았다.
“버키. 깼어?”
“…스티브. 내 친구 아냐.”
“…….”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또…….”
“…….”
“설마.”
단박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제야 아차 싶었던 스티브가 허겁지겁 표정을 풀었다. 브루클린의 꼬맹이처럼 웃으려고 애썼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비슷한 표정일진 확실하지 않았지만, 스티브도 노력하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온 건지 버키는 얌전했다. 그리곤 몸을 일으키려 했다. 자연스럽게 왼쪽 팔로 침대를 짚으려다 멈칫했다. 아. 팔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오른쪽 팔을 움직였다. 스티브가 자연스럽게 버킷의 몸을 받았다.
“내가 자꾸 까먹어서.”
“…….”
스티브가 마음 쓰는 것이 눈에 보이는지 버키는 자꾸 변명했다. 내가 잊어버려서. 뇌가 망가져서. 버키는 항상 그랬다. 그런 버키에게 또 미안한 스티브는 한참 동안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버키의 손이 스티브를 끌어당기고 나서야 얼굴을 조금 펼 수 있었다.
“안 다쳤어?”
“뭐?”
“다친 곳은 없냐고.”
“버키. 난 괜찮아. 그러니까…….”
“다행이다.”
“…….”
그렇게 편안한 웃음은 처음 봤다. 아직 웃는 것이 익숙하진 않지만 정말 한시름 던 표정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자꾸 스티브의 얼굴을 만져보면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눈이 안 보이는 건가. 스티브는 단단해진 푸른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눈동자가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 걸 보아 완전히 안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둘은 여전히 서로 걱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친 곳은 없네. 다행이야.”
“네가 더 문제야.”
“내가? 아…이 팔 때문에?”
“…….”
“괜찮아. 어차피 원래 없었던 부분이었는걸.”
“…….”
아픈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물론 스티브는 하이드라가 버키에게 가한 생체 실험 보고서를 거의 다 읽은 상태였다. 사고 이후 남아있었던 팔을 어떻게 잘라냈는지. 그리고 다시 어떤 식으로 이식했는지. 끔찍한 날 것의 언어로 적힌 보고서는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런 주제에 또 스티브를 안심시키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마음이 찌르르 아팠다.
“정말이야. 차라리 없어진 것이 다행일지도…….”
“팔만 날아갔으면 다행이지. 정말 죽을 뻔했어.”
“그랬…나.”
“…….”
“그랬었지. 내가 그랬으니까.”
“버키.”
“기억이 있어도, 기억이 없어도 모두 내가 한 일이야.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데, 자꾸 억지로 지워버리는 통에. 희미한 자국밖에 남아있지 않아.”
“…….”
“팔만 날아가고 살아있으면 다행이지. 안 그래?”
“…….”
“몇 번이나 이렇게 살아남았잖아.”
“…….”
“살아있으면 된 거지.”
스티브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가장 오랜 전쟁 포로로. 하이드라의 인형이자 무기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닌 버키의 인생을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고 세뇌당한 채 사람을 죽였는데,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스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남은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복잡한 스티브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키는 오늘따라 말이 참 많았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일찍도 물어본다.”
“…방금 일어났잖아.”
“그래. 방금 일어나서 도망 안 간 것만 봐도 훨씬 좋아진 건 확실하네.”
“…….”
“농담이야.”
“…알아.”
허겁지겁 스티브가 한마디 덧붙이자 다 안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당겼다. 길쭉한 입꼬리 아래로 가지런한 치아가 보였다. 정말 버키가 돌아온 걸까. 이젠 괜찮은 건가. 스티브는 조심조심 걱정을 내려놓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아진 모습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버키냐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버키는 버키일 뿐이었다. 그렇게 둘이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아주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사람은 듣지 못할 만큼 떨어진 거리였다.
“…….
그 순간 버키의 눈매가 사납게 변했다. 그러더니 잔뜩 긴장한 채 귀를 쫑긋 세웠다. 당장에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말려야 했다. 그런 모습을 보자마자 심장이 또 덜컥 내려앉았다. 안돼. 버키. 스티브가 피가 나도록 주먹을 쥔 손을 꾹 눌렀다.
“버키. 아니야. 위험하지 않아.”
“…….”
“괜찮으니까. 제발.”
“…….”
“버키!”
“소독약…냄새가 싫어.”
“뭐?”
“너랑 같이 있어서 몰랐는데, 소독약 냄새가 너무 심해. 이런 거…싫은데.”
버키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파였다. 머리가 아픈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끙끙거리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심장 깊이 새겨진 암살자의 본능이 또 살아올라 왔다. 버키의 의지는 상관없었다. 몸에 숨어든 이명은 빨리 도망가라고 재촉했다. 다시 잡히면 또 끌려갈걸. 그 순간 버키가 벌떡 일어섰다.
“버키! 안 돼!”
“가야 해. 더는 싫어.”
눈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있었고, 귀는 단단히 닫힌 채 스티브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날카로운 본능만 남아 빠져나갈 곳을 찾았다. 하지만 이곳은 가장 깊은 건물이었고, 몇 겹이나 둘러쳐진 문을 지나야 나갈 수 있었다. 무기였던 메탈암마저 없는 상황은 버키를 낭떠러지로 끌고 갔다. 정신은 긴장으로 당겨질 대로 팽팽하게 당겨져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아니야. 버키. 진정해.”
“가야 돼. 날 놔줘.”
“…….”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스티브의 얼굴에 무엇을 겹쳐보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과호흡이 오는지 숨을 헐떡거리는 친구를 가만둘 수 없었다. 진정제라도 맞으면 괜찮아질까 싶은데, 잔뜩 흥분한 녀석한테 주삿바늘이 들어갈 리 만무했다.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들이마시는 양이 적어졌다. 헐떡이는 버키의 몸을 그대로 꽉 껴안은 스티브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차라리 날 죽이고 가.”
“…….”
내가 널 어떻게 눈앞에서 다시 보내주겠어.“
“…….”
“내가 있잖아. 나한테서 누굴 보는 거야. 버키. 나잖아. 스티브 로저스.”
“…스…티브?”
“그래. 스티브.”
“스티브. 도와줘.”
“…….”
“다시 돌아가는 건 싫어.”
“……”
가늘게 청하는 도움은 너무 아팠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로운 칼처럼 심장에 푹푹 박혔다. 하나밖에 없는 팔은 스티브의 등을 더듬었다. 그리고 옷을 붙잡고 매달렸다. 얼마나 두려운 건지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호흡은 거칠어지다 못해 쇳소리가 났다. 버키. 버키. 잔뜩 겁에 질린 친구는 이름도 알아듣지 못했다.
“…….”
스티브는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버키의 콧대에 입술을 댔다. 아. 짧은 파열음이 들렸다. 순간 얌전해진 몸뚱이가 파르르 떨렸다. 큰 눈을 깜빡거리던 녀석이 시선을 맞춰왔다. 뭘 보고 있는 걸까. 이렇게 묻고 싶었다. 상처 많은 눈은 너무 깊어서 그 안에 담긴 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안아주는 것 밖에 해줄 수 없었다.
“이제 괜찮아.”
“…….”
콧등에 입술을 댄 채 조용조용 말하더니 천천히 타고 내려왔다. 까칠하게 다 터져버린 입술을 찾아 들은 스티브가 부드럽게 겹쳐왔다. 한번. 다시 두 번,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은 입술이 진득하게 버키를 잡아먹고 있었다. 놀라서 내뱉는 거친 숨이 스티브의 입안을 돌아 다시 흘러들어 갔다. 크게 뜬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다 눈을 감아버렸다. 속눈썹을 축축하게 적신 눈물이 볼에 흘러내렸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입술을 겹치고 숨을 섞었다. 잔뜩 날이 서 있던 공기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핏줄이 툭툭 불거질 정도로 스티브의 옷을 잡고 매달리던 손에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괜찮아. 버키. 마치 주문 같았다. 스티브의 목소리를 들으면 놀라울 정도로 마음이 진정되곤 했다. 느릿하게 떨어진 입술이 못내 아쉬운지 슬슬 따라가던 까칠한 얼굴이 뚝 멈춰 섰다.
“…….”
“괜찮아?”
“…괜찮아.”
“다행이다.”
눈앞에서 브루클린 꼬마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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