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06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속으로 곪아가는 캡틴이랑 기억 조각을 찾는 버키가 나옵니다 취향탈 수 있어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괜찮아?”
“괜찮아.”
“…살짝 문지르…아니다. 내가 할게.”
또 이렇게 허술한 말을 했다. 지금 버키가 한쪽 팔을 문지를 수 있는 상태란 말인가. 스티브는 몇 번이나 자신을 자책했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 해도 해선 안 되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버키는 별생각 안 한다는 듯 스티브 앞에 팔을 대뜸 들이밀었다.
“해줘.”
“…….”
“해준다며.”
“아, 그랬지.”
허둥지둥 알콜 솜을 댄 스티브가 천천히 주삿바늘이 들어갔다 나온 부위를 눌렀다. 갑자기 힘주면 멍들어. 그 한마디에 버키가 입술을 당기며 웃었다. 좀 더 깔끔해진 얼굴은 여전히 까칠했다. 하지만 얼굴엔 언제나 근심이 어려 있었다.
“스티브. 내 친구.”
“…….”
“이런 거로 멍이 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야.”
“…….”
“안 그래?”
“…….”
버키의 한마디에 스티브의 귀 끝이 붉어졌다. 아. 스티브. 스팁. 스티비. 입에서 감도는 이름이 조금은 낯설지 않아졌다. 이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때 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몇 년 전 만났을 땐 알아보지 못했다. 다리 위의 그 남자. 버키는 스티브를 그렇게 불렀었다. 익숙하지만 모르는 사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널 만나서 다행이야.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이래도 되는진 모르겠지만…….”
“버키!”
“항상 그런 생각을 해.”
“…….”
“내…머리가 망가져서 모두 기억할 수 없지만, 그 날 이후 기억이란 걸 할 수 있을 때부터 항상 잊지 않으려고 했어.”
“…….”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내 옆에 있으면 돼.”
“…….”
“더는 떠나려고 하지 말고.”
“나는 이제 갈 곳이 없어.”
“…….”
“알잖아.”
“그래도 항상 불안해.”
스티브로선 굉장히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진중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버키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것은 물론 이해가 갔다. 하지만 버키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스티브에게 좋은 영향만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몸으로 배운 예민함은 바짝 선 채 항상 주위를 살피곤 했다.
“됐다.”
“금방 없어지겠네.”
“검사용은 이 정도면 될 거야. 잠깐 다녀올게.”
“…….”
“괜찮아. 나 멀리 안가.”
“아니 그건 아니지만.”
“금방 다녀올게.”
스티브가 버키를 다시 안았다. 품 안 가득 옛 친구를 안은 채 뒤통수를 만져주고 등을 토닥였다. 사실 잠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잘 생긴 콧대를 목덜미에 묻으면 피부가 바르르 떨렸다. 버키. 목덜미에서 이름을 부르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많이 뛴다.”
“…….”
“예민한 감각이 이럴 땐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스티브. 언제부터 이렇게 능글맞아졌어.”
“그러면 안 돼?”
“많이 어색해.”
버키가 웃었다. 어색하다. 그 한마디에 스티브는 또 옛날 일을 생각하고 말았다. 버키가 과거를 모두 잊었다면 어색하단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버키. 버키 반즈.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주고 목덜미에 입술을 댔다. 아쉬운 표정으로 떨어지자 버키가 고개를 들어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어서 갔다 와.”
“…….”
“그깟 피 좀 뽑아서 가져다주는 일인데 언제까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셈이야.”
“아…….”
“어서. 난 괜찮아.”
영 마음을 놓지 못하는 스티브에게 괜찮다는 것을 일부러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버키는 가볍게 발을 흔들었다. 피를 닦아내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무서웠다. 금방 훌쩍 떠날 것 같은 친구를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 둘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버티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금방 다녀올게.”
“넘어지지 말고 천천히 다녀와.”
“내가 애야?”
“항상 어린애지. 작은 스티브.”
“…….”
이렇게 꼭 형처럼 굴었다. 스티브는 조금이라도 빨리 다녀오기 위해 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몇 발자국 가다 다시 뒤돌아 버키를 바라보았다. 어서 가. 짐짓 단호하게 말하는 말에 엉덩이라도 차인 것 같았다. 그리고 곧장 문을 나가 오른쪽으로 사라졌다. 티찰라가 아직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나 했다. 하지만 원체 바쁜 몸이라 금방 집무실로 돌아간 것 같았다.
걱정이 가득한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대기하고 있던 연구원들이게 버키의 피를 넘겨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멍한 표정의 캡틴 아메리카를 보던 연구원은 결국 종이로 하나하나 뽑아 중요한 부분에 줄까지 그어주었다. 캡틴은 손에 종이 뭉치를 쥐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합니다.”
“신경 쓰이시나 봐요.”
“아, 예. 뭐.”
하하하. 캡틴이 허탈하게 웃었다. 검사는 금방 나올 것 같지만, 좀 더 자세한 검사를 받길 원한다면 버키 반즈를 설득해달라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그게 잘 될 것 같지 않은데. 물론 스티브의 마음이야 버키의 몸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낱낱이 알고 싶었다. 그리고 고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검사가 버키를 불안하게 한다면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음?”
“왜 그러시죠?”
“아닙니다. 잠시.”
잘생긴 얼굴에 그늘이 서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뒷골이 서늘하다 싶더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버키? 캡틴 아메리카는 결국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연구실을 뛰쳐나왔다. 보통 이런 불안한 기분은 대다수가 들어맞았다. 분명 버키 때문이다. 스티브는 그렇게 생각했다.
허겁지겁 버키가 있던 곳까지 달려온 스티브는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굽혔다. 문을 열기 위해 패드를 조작하려는 그 순간 안쪽에서 큰 소리가 났다. 억눌린 비명도 같이 들렸다. 묵직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에 스티브는 정신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문이 조금만 늦게 열렸어도 그대로 부수고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버키!”
“…….”
“버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스…티브? 스티브?”
“그래. 나야. 왜 그래. 응? 무슨 일이야.”
“스티브. 내…눈이 안 보여.”
“…….”
“눈이…분명…아까까진.”
몸부림치다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 확실했다. 바닥에 쓰려져 있는 친구를 일으키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이 스티브의 옷을 잡고 매달렸다. 놀라서 심하게 흔들리는 눈을 좀 더 자세히 보려 했지만, 겉으론 아무런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약간 먼 곳을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스티브가 오랫동안 보아왔던 예쁜 눈 색 그대로였다.
“안 되겠다. 어서 일어서. 일어설 수 있겠어?”
“스팁, 스티브.”
“검사 받아야 해. 어서.”
“…….”
버키를 구조했을 그때와 똑같았다. 다리가 풀려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를 도와 일으켰다. 한쪽 팔을 어깨에 단단히 두르고 손으로 허리를 잡았다. 비틀거리는 친구를 몇 번이나 추스르면서 걸음을 옮겼다. 방금까지 멀쩡하던 눈이 보이지 않자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버키는 내내 비틀거렸다. 또 한번 과거가 얽혀들었다. 그때. 그 당시. 스티브가 할 수 있는 일은 버키가 넘어지지 않게 꽉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괜찮아.”
“…….”
“버키. 아무 일 없을 거야.”
“스티브. 옆에 있어?”
“물론이지. 내가 어딜 가.”
“…….”
“조금만 참아. 네가 싫어하는 검사를 할 수도 있는데 조금만 참아줘.”
“…….”
“이 상태로 널 둘 수 없어.”
“장담…못할 거 같은데.”
쓰게 웃던 친구는 다리가 꼬여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몇 번 소란이 있고 나서야 버키는 진료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아까 누른 비상벨 때문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와르르 몰려들었다. 물론 그 발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 버키는 눈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자꾸 물러서려 했다.
“버키.”
“싫어.”
“버키. 괜찮아.”
“내 몸에 손대지 마!”
“…….”
날 선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몸이 멀쩡해야 했다. 지독한 공포는 이성을 잡아먹고, 몸을 얽었다. 스티브가 아무리 붙잡고 달래도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겨우겨우 의자에 앉히긴 했는데, 오른팔이 망가질 정도로 반항했다. 힘이 달리니 스비트를 떨칠 수 없었다. 그러면 억지로 기계에 눕혀지던 생각이 살아올라 왔다. 으윽.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에 물기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버키. 미안해. 잠시만.”
“…….”
“캡틴. 그대로 잡고 계세요. 진정제와 수면제를 준비하겠습니다.”
“…….”
“어쩔 수 없어요.”
스티브는 이 꼴이 꼭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버키는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것도 문제지만, 오른팔을 휘두르다 더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스티브가 버키를 꾹 누르는 동안 몇 번이나 진정제를 놓았다. 약물 내성이 있는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뼈를 부술 것 같이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번 약효가 돌기 시작하면, 금방이었다. 스르르 쓰러진 버키는 잔뜩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
“이렇게까지 힘들어할 줄은.”
“버키.”
“진정제가 사라지기 전에 검사하죠. 다른 것은 못하지만, 눈은 적어도.”
“감사합니다. 혹시 모르니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버키를 막을만한 사람은 저밖에 없으니까요.”
스티브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다행히 검사가 끝날 때까지 버키는 움직이지 않았다. 피 검사 결과보다 조금 빨리 나온 안과 진단서를 손에 들자마자 마음이 불안했다. 친구의 몸이 얼마나 아픈지 아는 것은 가슴이 저리는 일이었다. 마치 예전에 버키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쉰 스티브는 천천히 진단서를 넘겨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
“눈엔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깨끗해요.”
“…그럼 어째서.”
“다른 쪽 문제가 있는 거라 생각이 됩니다만, 반즈 씨가 받을 수 있는 검사가 한정되어 있어 알아낼 수 있을진 알 수 없습니다.”
“도대체 왜.”
바짝 마른 입술을 깨물면서 종이를 든 반대쪽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아, 버키.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만큼 가슴이 답답한 일도 없었다. 차라리 고통의 원인이 명확하게 나오면 조금 나을 텐데. 답답한 마음에 진단서를 읽고 또 읽던 스티브는 조금 늦게 도착한 다른 진단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이게.”
“반즈 씨의 피검사 내용입니다.”
“이럴 리 없는데.”
“이 검사가 맞는다는 전제하에 첨언 하자면 안과 쪽 일도 한 번에 설명될 것 같습니다. 혹시 캡틴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캡틴?”
“잠시만…생각할 시간을 좀.”
“알겠습니다. 반즈 씨는 원래 있던 곳이 아닌 편히 쉴 수 있는 방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있으셨습니다.”
“…예?”
“언제까지 그 불편한 곳에 계실 수 없으니까요.”
“…….”
스티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손으로 콧대를 꾹 눌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천천히 진단서를 읽었다. 아니 몇 번이나 읽어도 항상 같았다. 센티넬 인자. 버키의 몸속엔 있어선 안 되는 것이 있었다. 발현이 안 된 성질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마 버키가 센티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입대 당시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반즈씨를 옮길 준비가 되었습니다. 캡틴.”
“잠시 진정하신 뒤 의료진이 방문할 예정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버키가 누운 이동 침대가 조용히 움직였다. 그 뒤를 따라가는 캡틴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
읽어주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지 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만큼 읽어주시는 분들께 잘 전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재 이후 추가 원고를 포함한 책을 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원고 진도가 빠르다면 8월 쩜오온에 느리다면 11월 버키른에 가져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많이 부족한 연성 읽어주시고 감상 달아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놀아주시면 항상 좋아합니다. 잡담은 트위에서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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