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 Bucky? Bucky!
“그만 퇴원해도 될 것 같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좀 더 쉬지 그래요. 캡틴.”
“그럴 순 없지.”
짧은 대화가 끝나고 캡틴 아메리카는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나타샤도 말려보고, 옆에 있던 팔콘도 한마디 거들었지만 스티브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항상 그래서 익숙하다는 듯 나타샤가 어깨를 으쓱 올려 보이며 반걸음 쯤 뒤로 물러섰다.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로 스티브는 항상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날짜는 착실하게 달력을 넘기고 있었지만, 스티브의 머릿속 한 구석은 헬리 케리어가 폭발하던 그 날에 잠시 멈춰있었다. 캡틴 아메라카로 활동하는 동안 잊지 못하는 사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길을 걸어가다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멈춰 서서 눈을 감고 한숨을 길게 쉬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저릿하게 뭉쳐진 심장이 아프게 삐걱대곤 했다.
버키. 스티브는 더는 부를 수 없는 친구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이름은 찬 공기에 그대로 얼었다가 이내 부서져 내렸다. 눈앞에서 삽시간에 하얗게 바스러지는 단어는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흩어졌다. 스티브가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친구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버키. 버키 반즈.’
스티브는 정신을 차린 그 순간부터 버키를, 원터솔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헬리 케리어가 침몰하던 날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캡틴아메리카를 굳이 물 밖으로 끌어올린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이후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마치 그대로 하늘에 녹아내린 것처럼 사라졌다.
“버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윈터솔져가 아닌 버키 반즈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다면 솔직히 쉽게 입을 뗄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은 줄 알고 살아왔다. 그 높이에서 떨어져서 살아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고, 수색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스티브 로저스의 친구는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하이드라의 실험체로 끌려가 정신도 차리지 못한 사이에 강철로 된 팔을 이식받았다.
그것도 부족해서 강제로 냉동 수면을 취하게 했다. 죽지못해 살아있는 친구를 필요할 때마다 냉동된 몸을 끄집어내 멋대로 움직였다. 기억도 지우고, 과거도 지워버렸다. 태엽이 떨어진 인형처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보통은 냉동된 상태로 지내지만, 해야 할 일이 많아 가끔 오랫동안 깨어있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원터솔져는 때때로 자신에 대해 반문하곤 했다. 물론 누구도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윈터솔져가 명령받은 일 외에 다른 곳에 의문을 품을 때마다 쓸데없는 것이 묻어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비슷한 수순이었다. 브레인 워싱을 받기 위해 의자에 앉곤 했다.
“…….”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마우스피스 사이로 새어나오는 친구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버키에 관한 서류를 본 것을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윈터솔져에 대해 알지 않으면 영영 버키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더는 친구가 망가지기 전에 찾아야 했다. 예전에 그가 자신을 돌봐주었던 것처럼 이번엔 자신이 버키를 찾아가 안아줄 차례였다.
하지만 쉴드도 무너지고, 퓨리 국장도 죽은 것으로 된 이 마당에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나타샤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캡틴 아메리카인 자신도 원치 않은 휴가를 받은 상태였다. 점점 더 추워지는 밤이 야속하기만 했다.
무거운 발걸음이 저 멀리 사라지고 텅 빈 거리엔 나무에서 떨어진 늦은 낙엽만 바람에 날려 굴러다녔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여기저기 엉켜 들었다
***
“캡틴, 차라리 동물이라도 키워보는 쪽이 어때요?”
“동물이라니?”
갑작스러운 말에 스티브가 잔뜩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으며 나타샤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훌쩍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는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많잖아요. 익숙한 동물이라면 개라던가 아니면 고양이라던가. 뭐라도 집에 움직이는 게 있으면 좀 덜하지 않겠어요?”
“내가 항상 집에 있는 것도 아닌데 동물까지 키우기엔 환경이 많이 모자라지. 동물한테도 좋지 않고 말이야.”
“자꾸 그렇게 힘없이 다니니까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그런 거 같잖아요. 캡틴.”
“말이라도 고맙네.”
“자꾸 내가 이러니까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농담으로만 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요. 캡틴 아메리카 정도라면 아무도 사기 안 치고 튼튼한 애완동물로 당장 안겨 드릴 거니까.”
“…….”
“정말 괜찮아요. 캡틴?”
나타샤도 걱정되어서 하는 소리였다.
그런 나타샤를 보며 목 안으로 웃던 스티브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딱히 애완동물을 기를 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키워야 한다면 운명이란 것을 믿는 쪽에 속했다. 운명적으로 만나는 녀석이 있다면 같이 부대끼고 살자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 짧은 휴가가 끝난다면 다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질 것은 분명 했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곳에 말 못하는 동물을 놔두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버키라면…….’
이럴 때마다 친구 생각이 났다. 옛날 둘이라면 어떻게 했었을까. 골목길 끝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거둬서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스티브는 캡틴 아메리카가 되었고, 죽은 줄 알았던 버키는 윈터 솔져가 되었다. 그렇게 한번 어긋난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고, 오히려 손을 대지 못하는 일도 생기는 법이었다. 그런 일은 쉽게 손을 댈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스티브에게 생명을 거둔다는 것은 후자에 속했고, 굳이 욕심을 부리려 하지 않았다. 문득문득 심장 깊은 곳에서 버키에 대한 걱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런 생각은 사치에 가깝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날은 점점 추워져만 갔다.
겨울이 성큼 가까워진 것을 느낄 때마다 스티브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남아있는 버키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언제나 많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윈터솔져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스티브의 정보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버키를 찾았으면 했다.
‘버키.’
스티브는 몇 번이나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버키의 이름을 불렀다. 낙엽과 함께 굴러간 이름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혹시나 기억을 찾았다면 갔을 만한 곳을 모두 뒤졌지만, 이렇다 할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박물관에서는 혹시나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다.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옛날이야기가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박물관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그러다 버키의 사진이 새겨져 있는 투명한 전시물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사진 속의 버키는 언제나 같은 얼굴로 여기에 있는데, 정작 스티브는 만날 수 없었다.
“응?”
“쉿.”
어른들보다 시선이 아래에 있어 캡틴 아메리카를 알아본 아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려고 하자, 입술에 손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곧 그 행동의 뜻을 알아들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깜박거리는 푸른 눈은 당장에라도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꾹 참고 비밀을 지키려는 그 모습이 퍽 귀여워서 스티브는 아이의 곁을 스치는 지나가며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결국, 오늘도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하루가 지나게 떨어지는 기온은 이제 온몸이 떨릴 정도의 추움을 함께 가지고 왔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이 세상을 얼려버릴 것 같은 겨울이 오는 것처럼 윈터 솔져가 곁에 다가오길 빌었다.
물론 그때처럼 스티브를 기억하지 못할 수 있었다. 실험용 침대에 묶인 채 내 작은 친구가 너무 커져 버렸다면서 웃는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몇 번이나 마주쳐서 몸싸움했지만, 윈터 솔져는 스티브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많지 않았다. 넌 나의 임무일 뿐이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하지만 적어도 만나기만 한다면 스티브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복잡하군.”
머리가 쪼개질 정도로 걱정을 해봐도 정작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스티브가 그렇게 바라고 원하는 일은 이 상황에서 좀처럼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길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초입에 서 있는 캡틴 아메리카는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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