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갈유비] 창공의 전기(蒼空之傳記) 003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 조조와 사마의 / 손책과 주유가 각각 궁의 주인과 신선으로 나옵니다.
제갈유비 연성으로 시작했지만, 둘이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양 AU 및 설정 날조가 항상 함께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사마의. 무슨 일이냐?”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그 날 이후 나를 그다지 찾지 않았던 것 같은데.”
“…….”
“무슨 바람이 불었느냐.”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해야 할 일?”
“예.”
“그래. 넌 그런 아이였지.”
사마휘는 옥새를 관장하는 신선이었다. 따지자면 지금 태어난 신선의 윗대쯤 될까. 물론 인간이 세는 시간으로 치면 까마득한 어른이었다. 지금 각 궁 수장들의 선대부터 모셔왔다고 한다. 그러다 옥새를 관리하기 위해 영겁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옥새를 관리할만한 재목이 없었던 것이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옥새를 관리하는 곳은 따로 떨어진 공간이었다. 신선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라 선계라고 부르곤 했다. 늘 푸른 안개와 하얀 구름이 떠나지 않는 곳. 옥새를 보호하기 위해 향을 피우는 곳. 늘 좋은 날씨만 이어지는 곳. 새로운 신선이 태어날 때 가장 먼저 보는 장소였다. 사마휘는 현재 활동하는 신선의 대모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사마휘에게 대들지 못했다. 그 자존심 높은 사마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그저 어린 신선으로 사마휘 앞에 서 있었다.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왔는지 들어나 보자꾸나.”
“…….”
“넌 이곳에 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 어서 이야기하고 네 주군께 돌아가고 싶을 테니, 긴 인사말을 필요가 없다.”
“그…….”
“사마의.”
“예. 사마휘님.”
“하고 싶은 말을 하라.”
“…….”
“나에게 궁금한 점이 있어서 이리 독대를 청한 것이 아닌가.”
“…….”
“어서.”
“…….”
사마휘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선계를 지배하는 신선의 말은 날카롭고 무거웠다. 웃고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묘한 감정을 도통 읽어낼 수 없었다. 옥새와 동화되어서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선계의 모든 정보는 사마휘를 통해 퍼져나간다.
옥새의 관리자라는 말에 걸맞게 화려하게 장식된 의자와 대비되는 하얀 옷은 희미하게 빛을 뿌린다. 사마의는 바닥에 툭툭 떨어지는 작은 빛의 알갱이를 보았다. 그 작은 빛조차 함부로 쳐다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속으로 해야 할 말을 가다듬었다.
“제갈량이 여전히 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백호 궁과 봉황궁이 어떻게든 균형을 찾으려 애쓰고 있지만, 점점 더 가중되는 의무가 무겁습니다.”
“그럴 테지.”
“응룡 궁을 이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의 응룡 궁은 멸족의 상태. 응룡의 권속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채 제 살길을 찾아갔습니다. 게다가 궁의 주인은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낸 적도 없습니다.”
“…….”
사마휘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계속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사마의를 부드럽게 쳐다볼 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물러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꼭 해야 할 말을 다 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응룡 궁을 감싸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저 운이 좋아 응룡의 힘을 타고났을 뿐이다. 응룡의 신선으로 태어난 것도 우연이었다. 그렇게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권세로 이런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봉황궁의 주인이 격이 낮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과분할 정도로 강하고 단단한 군주였다. 그렇게 좋은 성군를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데, 고작 다 죽어가는 응룡 궁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맡아서 힘들어야 했다. 균형이 깨지면서 수많은 악수가 쏟아져 내린다. 봉황 궁에서 마수를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토벌 전을 해왔는지 응룡 궁은 모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마의의 얼굴에 묘한 분노가 일었다.
“사마휘님.”
“…….”
“왜 응룡 궁을 그대로 두시는 겁니까. 인간세계에 관여하는 균형이 깨진다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문이 득세할 것입니다.”
“…….”
“이미 응룡 궁은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뼈대만 남은 궁터라도 보존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신선의 능력 때문이 아닙니까.”
“…….”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채 방치된 곳을 과연 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
“사라진 것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제갈량의 아집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사마휘님께서 정리를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
사마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늘 자애로운 표정으로 신선을 굽어보던 얼굴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사마휘는 늘 인자하게 세상을 보살피지만, 방자한 말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사마의는 자신이 주제넘은 말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어떤 처벌이 내려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이런 식으로 의무를 빠져나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차라리 봉황 궁이 중심이 되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마의의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왕윤은 누가 보더라도 완벽함에 가까운 군주였다. 여러 군주를 배출했지만, 이만큼 강하고 자애로운 남자는 없었다고 말한다. 봉황 궁 신선에게서 신선으로 이어지는 기억은 모두 한마음으로 뜻을 모으곤 했다.
사마의는 그런 남자가 봉황궁의 주인이란 사실을 뿌듯해하곤 했다. 가고자 하는 이상이 높은 신선은 강한 군주를 원하기 마련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강한 군주는 자연스럽게 발언권이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그 옆을 보좌하는 신선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
“…….”
“내가 현재 군주를 보필하기 위해 신선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나도 선대 관리자의 인도 아래 태어났겠지.”
“…….”
“허나.”
“…….”
사마휘의 말투가 엄해진다. 사마의는 그저 고개를 조금 숙이며 다음에 따라올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 선계의 지배자가 어린 신선 속에 감춰진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오래 살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일까. 사마의는 좀처럼 대답이 들리지 않아 초조해하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임의로 신선의 생명을 회수할 순 없다.”
“…….”
“신선은 군주의 힘이 되기 위한 존재. 그렇기에 군주가 사라지면 제 몸속에 남은 모든 힘을 소진하고 천천히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사마의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네.”
“제갈량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그저 제갈량의 능력이 강하단 증거이니. 나로선 기다려야 한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구나.”
“…그렇다는 말씀은.”
“그때도 말했었지. 남은 신선 중 네가 가장 강하고 똑똑해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응룡궁의 대리를 맡긴 것이다.”
대리. 대리라. 사마의의 얼굴에 옅은 불쾌감이 밀려 올라온다. 고작 뒤치다꺼리를 하려고 신선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응룡 궁의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운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이런 식으로 감싸고 도는지 알 수 없었다. 사마의는 자신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축이었다. 모든 배움이 빨랐고, 이번 대 신선 중 가장 먼저 눈을 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남들보다 많이 흡수한 정보는 꽤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등바등 노력해도 천부적인 역량을 넘어서지 못했다. 게다가 제갈량은 신선의 삶을 거부하곤 했다. 그렇게 방자한 녀석이 그저 능력이 뛰어나단 이유만으로 응룡 궁에 처박힌 채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신선의 의무인 궁을 지키는 것은 저버리지 않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에선 도망친 셈이 되겠군요.”
“…….”
“하다못해 신선끼리 의논하는 회의 자리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
“허나. 갑자기 군주가 사라졌다.”
“…….”
“멸문을 눈앞에 눈 신선의 충격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구나. 신선의 처지에서 보면 부모가 죽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는 일일 테니.”
“…….”
“조금만 기다리면 옥새가 답을 할 것이다.”
“…….”
“그때가 되면 나도 결단을 내리마.”
“…예.”
사마의는 물러날 때를 아는 신선이었다. 여기서 한마디 더 얹어봤자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마휘를 만난 것은 자신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왕윤에겐 그저 신선 회의를 다녀온다고 말했을 뿐이니, 굳이 그쪽까지 말이 흘러 들어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사마의의 얼굴이 다시 냉정하게 굳어간다. 썩 맘에 드는 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실패한 수는 아니었다. 원래 한 번에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충분한 답이 되었느냐.”
“예. 사마휘님.”
“조금만 더 부탁하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안다. 하지만 밑에 속한 다른 신선에게도 모범이 되었으면 한다.”
“…….”
“그럼.”
접견이 끝났다. 걷혀있던 휘장이 스르르 내려와 공간을 분리한다. 이젠 더 물어볼 방도가 없었다, 워낙 바쁜 분이니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일지도 모른다. 옥새를 관리하고 선계를 지배한다는 감각은 어떤 느낌일까. 사마의는 원하는 것이 많았다. 늘 깨끗하고 조용한 선계는 지루할 정도로 평온하다. 인간계처럼 날씨가 요동치는 일도 없고, 갑자기 춥거나 더워지는 일도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터벅터벅 걷던 사마의는 이유 모를 불쾌감이 울컥 뱉어냈다.
“내가…….”
들을 사람이 없는 원망은 화살촉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채 땅바닥에 푹푹 박히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응룡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렇게 자신의 힘을 소진하는 것이 그리 영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제갈량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았다. 기분이 그리 좋진 않지만 조금만 더 참기로 했다.
제갈량이 눈을 뜬 이후로부터 늘상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저어하지 말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죽어라 노력한 것을 제갈량은 한 번에 모두 가져간다. 게다가 운을 얼마나 좋으니 그 큰 그릇으로 응룡궁의 신선으로 태어나지 않았던가. 제갈량과 견주어봐도 그리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제갈량은 자신의 힘으로 봉인한 궁터를 유지하는 이 순간조차 자신의 능력을 모두 보여주지 않았다.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뱃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아냈다. 사마의는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주유는 이미 백호 궁에 도달했을 테고, 슬슬 신선의 행방을 궁금해할 봉황 궁이 눈에 선했다. 태오 장군은 마수를 토벌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있으니 안 그래도 넓은 궁이 더 광막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아득하게 펼쳐진 궁에 어린 궁주와 홀로 있을 주군을 생각하니 약간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저 중앙을 차지한 궁이 아닐 뿐. 왕윤은 그 누가 뭐라 해도 가장 강한 군주였다.
“조금만 기다리면…….”
사마의는 나름대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다. 왕윤은 연륜만큼 성격이 단단했다. 그 어떤 존재에게도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식솔을 아끼곤 했다. 무인의 기질을 타고났지만 그렇다고 문인이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단한 눈매가 조금씩 깊어갈 동안 그의 옆엔 떠나지 않는 충직한 신하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무리에서 반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 사마의는 늘 왕윤의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약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내곤 했다.
너무 정직하다. 단단하다. 왕윤을 모시고 있는 사마의가 내린 결론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론엔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앙으로 세력을 확장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말할 때마다 사마의는 대들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주군이 하는 말은 절대적. 신선은 그것에 반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왕윤은 너무 이상적인 군주라 사마의의 야심을 받아주기엔 약간 부족함이 있었다.
**
세상 모든 일이 생각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신선 회의가 끝나고 얼마 동안은 별다른 소란이 없었다. 여전히 제갈량은 궁 안에 틀어박힌 채 생사조차 알리지 않았다. 정말 삶이 다했다면 아마도 사마휘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신선을 불러 모을 테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단은 무사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냉정한 말이지만, 응룡궁에 들어갈 수 없는 사마의로선 나름 합리적인 추론을 한 셈이었다.
“…응?”
“무슨 일인가.”
“아닙니다. 그저…….”
“그저?”
“…….”
왕윤은 사마의가 이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늘 해야 할 일만 하면서 한걸음 뒤에 서서 조용히 있던 신선이었다. 해야 할 일을 잔뜩 들고 와서 보고한다. 단지 태오 장군이 복귀하지 않았기에 그에 관해선 할 말이 없었다. 태오 장군은 굳이 전령을 보내지 않는다. 왕윤도 알고자 하면 모를 리가 없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믿어서 그런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신선계에 알 수 없는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신선계에? 그건 큰일이 아닌가.”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아마 제 예지가 맞는다면 연락이 올 터이니 그리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
“어디까지나 주군을 모시기 위한 일이니까요. 아마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가.”
“예, 주군.”
사마의의 목소리에는 단호함마저 실린다. 하긴 신선계의 일은 군주가 걱정할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신선끼리 해결하면 된다. 이런 일까지 생각을 쏟기엔 왕윤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산더미 같은 서류가 하나둘 사라진다. 늘 비슷한 일과였다. 왕윤은 이럴 줄 알았으면 태오를 따라 같이 토벌을 하러 가야 했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면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았겠는가. 젊은 녀석 혼자 보내서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사마의는 그런 왕윤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친다.
“상장군은 늘 훌륭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시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
“…….”
“하지만 말이야. 내가 어릴 때부터 보던 녀석이라 그런지 도통 마음이 놓이질 않는군.”
왕윤은 늘 태오 장군을 걱정한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이립에 가까운 나이였다. 이미 혼인을 해 아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물론 인간계과 선계의 시간이 비슷하게 흘러간다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왕윤의 눈엔 늘 지켜줘야 하는 아이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주군께서 장군을 총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장군을 어리게 대하시면 군의 기강이 무너집니다.”
“…….”
“어디까지나 신선이 올리는 충언이니. 부디.”
“내 신선의 충언을 어떻게 흘려들을 수 있겠는가.”
“감사합니다.”
“곧 좋은 소식이 오겠지.”
걱정을 속으로 삼킨다. 하루에 열두 번씩 전령을 보내 확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신선 술을 쓸 수 있는 자는 궁에 있으니 빠른 방법을 쓸 수도 없다. 그저 좋은 소식이 날아들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순간 귀를 찌르는 이명이 들린다.
“…읏.”
“사마의. 왜 그러지?”
“…….”
“무슨 일인가.”
자애로운 군주는 자신의 신선을 걱정한다. 늘 꼿꼿하고 단정했던 얼굴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하얗게 질려간다.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려서 턱 끝에 맺힌다. 귀를 통해 시작된 이명은 뇌를 뒤흔드는 것처럼 고통스럽기만 했다.
“…….”
“사마의?”
“주군…괜찮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어찌하여…….”
“정말 신선계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엄청난 빛이 하늘을 가득 메운다. 얼마나 강한 빛인지 꼭 태양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사마의는 여전히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지기 직전이었고, 왕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빛이 걷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도저히 꺼지지 않을 것 같던 빛이 점점 줄어든다. 그와 동시에 이명이 뚝 멎었다.
“아…….”
“괜찮은가.”
“예. 주군.”
“이런 빛은 나도 쉬이 보지 못했는데.”
“…사마휘님을 뵙고 와야겠습니다.”
“혹여 곤란한 일인가.”
“그저 빛을 봤을 뿐이니 확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백호 궁에서도 이 빛을 알아챘을 겁니다.”
“…….”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어서 다녀오라.”
“예.”
아직 식은땀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사마의는 급하게 떠날 채비를 한다. 사마휘를 접견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또 생기는지. 이 모든 것이 응룡궁의 잘못이리라. 그곳이 멀쩡히 돌아갔다면 이렇게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할 리 없었다.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을 곧 정리하고 하직 인사를 올린다. 급히 가야 하니 편법을 쓰기로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깊게 허리를 숙이고 물러난다. 주유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모든 상황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하니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이렇게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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