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갈유비] 창공의 전기(蒼空之傳記) 002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 조조와 사마의 / 손책과 주유가 각각 궁의 주인과 신선으로 나옵니다.
제갈유비 연성으로 시작했지만, 둘이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양 AU 및 설정 날조가 항상 함께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바깥이 아무리 소란스럽다 하더라도, 그건 그쪽 사정이었다.
응룡궁은 그대로 도려내진 것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저 몇 겹의 담을 지나고 문을 건넜을 뿐인데, 불던 바람이 멎었다. 나뭇잎 하나 바람을 타고 흐르지 못하는 곳은 고요하게 멈춘 채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우거진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담 너머로 보이는 꽃 한 송이까지 시간을 타지 않는 것 같았다.
“…….”
이미 그곳에 기거하던 이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신선만 그것을 쫓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을 멈추고 바람의 흐름을 거스른다 해도 궁이 비어있으면 어쩔 수 없이 티가 나곤 했다. 소란스럽게 움직이던 권속조차 없는 넓은 곳에 홀로 기거하는 신선은 그런 분위기가 이상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응룡궁은 자연에 묻혀 살아가는 장소였다. 그런 궁터에 가장 깊은 곳에 편전이 있었다. 늘 권속과 함께 인간 세상을 논하던 곳은 조용히 먼지와 함께 마모되어 간다. 넓고 곧게 뻗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했다. 때때론 전 군주들의 취향에 따라 조성된 작은 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얇은 박석을 깐 넓은 마당이 나올 때까지 걸어가다 보면 문득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푸른 숲에 푹 잠겨있는 건물의 끝엔 햇살이 주렁주렁 걸려 있곤 했다.
“신선 제갈량…….”
조용히 걸어온 인영은 편전을 똑바로 바라본 채 멈춰선다. 신선이 기거하는 곳은 편전보다 조금 더 안쪽인 내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군주가 없어진 궁에서 그렇게 편히 살 수 없다던 제갈량의 고집은 끝이 날 줄 몰랐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방금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미 익숙한 일인 듯 한참 동안 서서 텅 비어버린 편전을 바라보았다. 눈길 끝엔 누가 있을까. 누구 하나 감히 추측할 수 없었다. 단정한 옷은 금방이라도 먼지와 함께 삭아버릴 것처럼 버석거렸다. 햇살에 그대로 녹아내리기라도 할 것처럼 굴던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랐다. 한 단. 또 한 단. 그렇게 올라서면 비어있는 옥좌가 제갈량을 맞이한다.
“…….”
제갈량이 움직이면 그제야 공기가 돌기 시작한다. 뚝뚝 떨어져 내리던 나뭇잎이 미약한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신선의 머리카락에 바람이 스친다. 하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향을 피워서 연기로 비어있는 공간을 깨끗하게 한다. 그리고 긴 소매와 옷을 넓게 펼치며 자리에 앉았다. 옷깃이 서로 구겨지는 소리만 조용히 들린다. 신선은 이 상황이 언제나 익숙한데, 그곳엔 주인만 없었다.
“…….”
응룡의 주인과 늘 독대하던 자리 그대로였다.
하지만 권속 회의는 늘 시끄러웠다. 말을 하고 싶은 쪽도 많고 들어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보통 큰 목소리로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응룡의 줄을 타고 싶은 권속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 하나하나에 군주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앉아서 경청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슬쩍 눈을 들어 모여 있는 권속을 쳐다보곤 했다.
오히려 가장 말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 군주가 입을 열지 않으니, 회의는 날로 소란스러워진다. 제갈량은 몇 번이나 그런 상황에 대해 첨언했지만 젊고 현명한 군주는 그렇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며 단칼에 잘라내곤 했다. 물론 이해할 순 없지만, 주군이 그렇다고 하면 이해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주군이 사라지기 직전 열린 회의에선 후계자 문제가 제기되었다. 응룡의 주인이 아직 젊고 창창한 나이인데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알 수 없었다. 그 당시 제갈량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면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랬었다. 결국, 군주가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편전엔 기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저 자신의 주인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제갈량은 온통 신경이 그쪽으로 가있었다. 물론 조용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래에서 아무리 떠들고 의견을 통일한다 해도 최종 결정권은 군주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입술만 떼었을 뿐 속 시원한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런 주인을 바라보던 한 권속이 입을 열었다.
“후계자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아무리 군주께서 용맹하고 남이 따를 수 없는 힘을 가지셨다곤 하나, 후계자가 없이는 힘드실 거라 사료됩니다.”
“…….”
“정식 후계자를 임명하셔야 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혼례를 올리셔야죠.”
“…….”
“군주께서 무너지시면 궁이 무너집니다. 저희 권속에게도 큰 피해가 올 수 있단…….”
“그래서 지금 주군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무슨 소리일까요. 그저 제 귀엔 그리 들려서 대답한 것인데, 어찌하여 화를 내시는지요. 신선 제갈량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
사실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제갈량은 상당히 짜증이 쌓여있었다. 보통 때라면 감히 신선이 나설 수 없는 자리였다. 아무리 궁의 주인에게 배속된 신선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방자하게 회의에 끼어들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량은 좀처럼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늘 그림처럼 군주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사람이 끝까지 한 마디 한 마디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니 말릴 재간이 없었다.
“신선이 어째서…….”
“주군과 저는 일심동체. 주군의 생각을 대신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어허.”
“아니면 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으흠.”
“제가 듣기론 응룡 궁이 미덥지 못하단 소리로도 들리는군요. 주군의 힘과 권력을 보고 권속으로 받아달라고 청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
“그러니…….”
그 순간 아주 약간 한숨 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제갈량은 그 한숨의 출처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제갈량을 말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는 방자하게 구는 것을 두고 보진 않겠다는 명령과도 같았다. 제갈량은 물러서야 할 때는 잘 알았다.
“잠시…….”
“…….”
“다들 바람 좀 쐬고, 다시 시작하도록 하지. 아직 생기지도 않은 내 후계자 이야기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 줄 미처 몰랐군.”
“…….”
“그럼 잠시 회의를 중단하고, 잠시 뒤에 다시…….”
“…….”
“어차피 하루 이틀 내로 끝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묵직하고 단단한 말이었다. 물론 그것이 맞는 말이라 차마 한마디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응룡의 주인이 이곳을 잠시 빠져나가기 전까진 한마디로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군주는 자신의 신선을 바라본다. 제갈량은 부채로 입가를 슬쩍 가린 채 허리를 숙인다.
저 좋을 대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권속을 그대로 놔둔 채 군주는 잠시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권속은 권속끼리 할 말이 있는 법이었다. 그걸 억지로 누른다고 딱히 좋은 것은 아니라고 늘 말하곤 했다. 그런 주인의 속내를 알아챈 신선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
“…….”
후원으로 향하는 복도엔 반질반질하게 고운 빛이 날 정도로 닦아낸 흑목에 단정한 문양을 짜 넣었다. 사치스럽진 않지만 우아한 느낌의 복도에 여러 겹 천이 스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뒤를 이었다. 군주는 앞만 보고 걸었고, 신선은 그런 주인의 옷 끝을 따랐다.
“제갈량.”
“…네.”
“…….”
“제게 혹여 죄를 물으실 생각이라면, 전 당장 저 회의에 다시 돌아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한 다음 벌을 받겠습니다.”
“…….”
“멍청한 것이 죄라면 제가 오만방자하게 굴었다는 것보다 더 큰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갈량은 언제나 똑같구나.”
“응룡 궁을 깎아내리는 것을 참을 수 없을 뿐입니다.”
“…그런가.”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발 그렇게 가벼운 어투로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권속들이 낮추어봅니다. 주군께서 상냥하신 것은 기쁜 일이지만, 공은 공. 사는 사.”
“…….”
“지금은 공적인 일을 위해 만난 자리이니까요.”
“…….”
군주는 입을 다문다. 아까까지만 해도 권위가 넘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인지 찾을 수 없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누구보다 진중한 얼굴인데, 입만 열면 누구보다 가벼운 사람처럼 보인다. 물론 혹자는 그런 쪽이 인간미가 느껴져서 좋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응룡궁의 주인이 인간미가 넘쳐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제갈량은 그런 생각을 가득 안은 채 자꾸 잔소리를 한마디씩 보탰다. 누가 봐도 무례한 일이었지만, 막상 잔소리를 듣는 사람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힘든데.”
“저도 그렇습니다.”
“…후계자는 왜 필요한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강한 군주를 모시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할 텐데.”
“…….”
“그래도 저런 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군주가 할 일이더군요.”
“역시 그렇지?”
“예. 그만 돌아가시죠. 아마 주군이 다시 나타나시지 않아 걱정하는 권속이 많을 겁니다.”
“그래.”
“…….”
“그래야지.”
길고 넓은 옷을 걸친 군주는 천천히 돌아선다. 간신히 숨을 쉴만한 공간에서 벗어나자마자 시끌시끌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늘어졌다. 얼마나 끼리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제갈량은 속으로 웃고 또 웃었다. 도대체 이런 영양가 없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시작된 토론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하지만 별다른 합의점을 얻어내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군주도 신선도 후계자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주위를 둘러싼 권속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이러다 보니 후계자에 대한 모든 상황은 일말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는 회의는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예민한 문제에 신선이 말을 얹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아니 제갈량이 아무 말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이야기는 끝내 마무리 지어야할 문제였다. 하지만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사람들이 저리도 지리한 토론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안 제갈량.”
“주군이 제게 왜 미안하십니까.”
“그거야…….”
“주군을 보필하는 것은 신선의 의무. 의무에 하나하나 고마워할 필요는 없으십니다.”
“…….”
“비록 제가 주어진 삶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많은 이를 다스리는 군주일수록 사적인 감정 표현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았어.”
“그만 돌아가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제갈량은…….”
“예?”
“아니야. 아무것도. 어서 가자.”
젊은 군주는 금방 시무룩한 표정을 풀고 웃는다. 뭐 늘 그러던 사람이라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꼭 바다와 같은 사람이라 모든 것을 품지 않고선 끝낼 수 없는 운명인가 했다. 제갈량은 그런 주군을 따르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으니 굳이 반대되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군을 위한 것이며, 한낱 권속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간신히 권속 회의를 끝내는가 싶었더니 이번엔 제갈량이 하나하나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신선은 똑똑하고 총명한 만큼 눈에 걸리는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번엔 군주조차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제갈량의 말엔 시퍼런 비수가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하나로 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군이었다. 주군이 흔들림이 없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표명한다. 결국, 권속 회의에서 뭔가 얻어낸 것은 제갈량뿐이었다. 신선은 만족했고, 그의 주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랬었지”
쓸데없는 꿈을 꾸었다. 아니 꿈이라고 말하기보단 명상 중 찾아오는 짧은 한 폭의 과거 잔상 같은 쪽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편할지도 몰랐다. 제갈량은 홀로 편전에 앉아 명상한다. 아무도 찾지도, 찾아올 수도 없는 궁을 아득바득 지켜내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갈량은 그날 자신이 끝내 주군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굉장히 후회하고 있었다.
“오늘도 이곳은 늘 한결같습니다.”
주군. 이젠 듣지 못하는 제 주인에게 천천히 말을 건다.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강한 사람이 한순간 사라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언제든 돌아오면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가 점차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애써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심장을 잡아먹으면서 자란다. 불안의 씨앗은 심장에 박힌 채 싹을 틔우고 생각의 흐름을 막아버리곤 했다. 감히 신선으로 태어나 주군의 안위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제갈량은 몇 번이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했지만, 아무도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니 혼자 계속 속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신선이 궁에 묶여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궁에 들어가려면 약간의 절차가 필요할 뿐, 다른 제약은 없었다. 과거 몇몇 군주들이 유난히 신선을 속박했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쪽 일이었다. 신선이 아무리 군주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맹세한 후 궁을 지키기 위한 존재로 태어났다고 하지만, 대다수 군주는 그들을 도구처럼 쓰긴 싫어하는 눈치였다.
“…제가 밖으로 나가 주군을 찾을 수 없는 이유를 아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혹여 누군가 들을까 싶어서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는다. 속에 단단하게 맺힌 멍울이 아직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슬픔과 불안함이 뭉쳐서 그 위에 얹어진다. 한마디 할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아파져 온다. 심장의 주인은 간 곳이 없는데, 신선은 홀로 남아 궁을 지키고 있다.
몇 번 주군을 찾기 위해 궁을 나선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궁을 유지할 힘이 없자 금방이라도 소멸할 것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돌아온 제갈량은 그 꼴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 궁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문을 닫아걸고, 자신 또한 칩거를 선택했다. 어차피 응룡의 주인이라면 언젠간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믿었다. 그라기 위해선 이곳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 기다림이 쌓이고 쌓여서 단단하게 굳어간다. 왕윤이 봉황 궁으로 들어간 이후였을까. 아니면 그 이전이었을까. 이젠 시간의 흐름마저 흐릿했다. 모든 관계를 끊고 궁 안에서만 있다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애초에 신선에겐 시간은 그다지 필요한 관념이 아니었다. 모든 생의 시작과 끝은 그저 주군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그런 것을 하나하나 세어볼 틈이 없었다.
사마의와 같은 대에 태어났다. 비록 눈을 조금 늦게 뜨긴 했지만,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채 응룡 궁에 배속되었다. 물론 능력을 모두 보여주진 않았다. 평범한 신선의 삶에 쉽게 염증을 느낀다. 시험은 왜 봐야 하고, 회의는 왜 계속해야 하냐며 되묻곤 했다. 하나는 알려주면 두 배 세배로 이해해 받아들이는 명석한 신선은 자신의 삶에 때때로 의문을 가진다. 그렇게 겉돌던 녀석이 간신히 정착한 곳에 응룡 궁이었다. 누구도 제갈량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응룡의 주인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그때 후계자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전 그것이 정말 궁금합니다.”
“…….”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알 수도 없는 일인데. 왜 주군은…….”
그리고 갑자기 주인이 사라졌다. 갈 곳을 잃은 신선은 그저 황망해 했다. 그 이후 슬픔이 밀려오고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라진 군주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고 사라진 탓에 권속들의 반발이 심했다. 그렇게 하나둘 떠난 궁엔 여전히 주군을 기다리는 갈 곳 없는 신선만 홀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늘도 오시지 않는 군요.”
이제 편전을 정리해야 했다. 제갈량은 다 타서 사라진 향을 조용히 바라본다. 늘 피우던 향냄새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향이 타고 남은 재가 버석거리며 부서졌다. 제갈량은 옷을 정리하면서 조용히 일어났다. 당장 저곳에서 주인이 나타날 것 같은데, 응룡궁은 여전히 그때 그대로 시간이 멈춘 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약간 남은 향을 손으로 비벼 끈다.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은 최대한 힘을 아끼기 위해 생체 능력을 조절했기 때문일까. 제갈량의 속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저 모두 추측을 한다. 그것도 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응룡궁의 문은 어떤 신선도 깨기 힘들 정도로 견고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홀로 남은 신선의 목소리 끝에 향냄새가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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