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갈유비] 창공의 전기(蒼空之傳記) 006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 조조와 사마의 / 손책과 주유가 각각 궁의 주인과 신선으로 나옵니다.
제갈유비 연성으로 시작했지만, 둘이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양 AU 및 설정 날조가 항상 함께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그래. 이쯤이면 네가 이곳에 오리라 생각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나야 언제 나와 같지.”
“…송구하지만, 제가 궁을 오래 비울 수 없는 처지라.”
“넌 항상 그런 아이였지.”
“…….”
제갈량은 한정된 시간 안에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좀처럼 조급한 행동을 보이지 않던 신선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사마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제갈량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 아이가 물어볼 말은 사마의와 비슷할 것 같았다.
“서서는 데려왔느냐.”
“같이 오긴 했으나, 여기까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아직은 이곳이 불편한 모양입니다.”
“여기를 제집 드나드는 것처럼 드나드는 이도 있으니, 이곳이 낯선 아이도 있겠지.”
“그렇습니다.”
“그래 어떤 것이 궁금하지?”
사마휘는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제갈량을 바라본다. 늘 꼿꼿하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얼굴에선 약간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하긴 이런 상황은 평생 겪지 못할 일이었다. 애초에 신선이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옥새의 관리자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이 정도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대견할 정도였다. 사마휘는 제갈량이 할 말을 고르는 동안 조금 더 기다려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신선은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주군이 사라졌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만큼 충격이었다. 신선이 존재하는데, 신선이 다시 태어난다는 소리는 어느 고서를 읽어보아도 적혀있지 않았다. 신선의 삶은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지만, 그 끝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도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서서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말이냐.”
“예.”
“그럴 리가. 내가 옥새의 정보를 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총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서서는 나의 의지가 아니다. 내가 이번대의 군주를 보필하기 위해 너희를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나도 몰랐다.”
“사마휘님의 의지가 아니라면…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제갈량.”
“…예.”
제갈량은 자신이 약간 방자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죄송하다곤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들고 있던 부채를 좀 더 힘있게 쥐면서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제갈량의 말을 한번 끊은 사마휘는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대해 궁금한 것은 인정한다.”
“……”
“하지만.”
“…….”
“내가 모르는 일에 대해선 대답할 수 없다.”
“…알겠습니다.”
“다만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
“서서는 응룡 궁의 신선이 맞다.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지.”
“…….”
“총명한 너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는다.”
“예, 알겠습니다.”
“그래. 조만간 다시 보도록 하자.”
딱히 확실한 답은 얻지 못했다. 접견실에 휘장이 쳐진다. 불이 사그라들었다. 제갈량은 가만히 불투명한 휘장을 쳐다보다 밖으로 나왔다. 그새 향냄새가 옮아붙은 모양이었다. 서서는 차마 접견실까진 따라가지 못한 채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손에 꽃이 들려있는 것을 보니 뒤쪽 후원에라도 다녀온 것 같았다. 제갈량이 그런 서서롤 조용히 바라본다. 서서는 그런 제갈량을 발견하자마자 냉큼 가까이 다가왔다.
‘한 시대에 신선이 둘이라니…….’
“이야기는 잘 끝났어?”
“예. 어느 정도는요.”
“그럼…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게 무슨 말인지.”
“뭔가 잘못된 거 같아서…….”
“그럴 필요 없습니다.”
“…….”
금방 시무룩해지는 서서를 끌고 돌아간다. 서서는 잠자코 제갈량을 따라 걸었다. 손에 꾹 쥐고 있던 꽃에서 작고 하얀 꽃잎이 하나둘 떨어졌다. 제갈량은 여전히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일단 무엇보다 빨리 돌아가야 했다. 생각보다 일이 길어지진 않았지만, 늘 궁이 걱정되는 것은 변함없었다.
“저…….”
“괜찮습니다. 응룡궁 신선이 맞으니.”
“…….”
“막 태어나서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일단 한 시대의 군주 밑에 신선이 둘일 수는 없습니다.”
“…….”
“그래서 분주한 것이니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난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예. 일단은 말이죠. 다만, 제가 칩거하는 도중 옥새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으니…그 부분은 천천히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구나…….”
“응룡의 신선이라면 제 형제자매와 같습니다.”
“…….”
“좀 더 알아봐야 하지만 그저 원래 지내던 곳처럼 지내면 됩니다.”
“알았어. 제갈량!”
“…….”
“어…이름을 부르면 안 되는 거였나.”
“마음대로 하시죠.”
“그래. 난 이름 부르는 게 좋아.”
냉랭한 목소리가 슬쩍 누그러진다. 물론 제갈량은 주변에 누군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서를 밀어낼 생각은 없었다. 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끌어안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두 명의 신선에 대해 조금 더 알아봐야 했다. 이름이야 주유나 사마의가 부르는 것을 들었겠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는 주군뿐이었던 지라 기분이 이상했다.
“궁에 돌아가면 할 일이 많습니다.”
“무슨 일?”
“지금까지 이야기도 해야 하고, 생각해볼 문제도 있고.”
“…….”
“서서의 처소도 만들어야 하니…긴 하루가 되겠군요.”
“나도 도와줄게!”
“그러시죠.”
제갈량의 말에 서서가 방실거리며 웃는다. 꼭 금방 피어난 꽃 같은 신선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신선 술도 알지 못하는 데다, 신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 제갈량의 힘을 나누는 존재는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주군의 생사를 확실히 알 수 없으니 자신의 힘을 나누는 것은 곤란했다. 서서를 하나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 궁을 더는 유지 못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서서는 개별적인 존재인 것 같으니, 궁을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군이 있었다면 크게 기뻐하셨을 텐데. 제갈량은 오랜만에 꼭꼭 묻어둔 주군의 부재로 인한 슬픔을 꺼내보았다.
**
“내가 정말…….”
문을 쾅 열면서 돌아온 신선은 짜증 섞인 한숨만 푹푹 쉬었다. 눈치를 보던 시비들이 달려 나와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늘 눈이 날리는 추운 북쪽 지방에 위치한 백호 궁은 날이 험해지면 부탁이 있어 이곳을 찾는 권속도 발길을 끊을 만큼 험한 곳이었다. 그런 곳을 평지 걷는 것처럼 이동하는 신선은 볼 때마다 신기한 존재였다.
“신선님. 돌아오셨습니까.”
“그래. 내가 요새 궁을 비우는 일이 잦다.”
“손책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뭐?”
“한 식경 조금 전에 도착하셔서, 지금 안채에 계십니다.”
“세상에. 알았다.”
“예.”
역시 손책은 감이 좋았다. 호랑이라고 불리는 것이 거짓은 아닌 모양인지 꼭 이럴 때마다 그 이름과 겹쳐진다. 주군이 언제나 돌아올까 걱정하던 주유는 한시름 덜어낸 표정으로 안채로 향했다. 마침 이번 일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손책이 부재중이었다. 이번에야말로 할 말을 모두 하고 지긋하게 궁에 들여앉혀 놓으리라 다짐한다.
“손책님!”
“주유. 돌아왔군요?”
“네. 영랑. 일이 어느 정도 수습되어서 빨리 복귀했습니다.”
“주유. 오랜만이다. 나 없는 동안 궁은 잘 보호했느냐.”
“…….”
“아니…왜 또.”
“손책님은 도대체…….”
“그래도 생각보단 일찍 돌아왔다. 숲속에 있는 여우를 쫓느라 산을 내도록 뒤지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지 뭐냐.”
“…….”
“사람을 홀려서 자꾸 끌고 가니 그것을 내버려 두고 올 수 없었다.”
“꼬리가 한 천 개는 달린 여우였나 보네요.”
“그렇진 않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역시 그렇지?”
“…….”
약간 비꼬는 것 같았지만, 손책은 별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옆에 남아있는 의자에 앉은 주유는 한숨부터 푹 쉰다. 몇 달 만에 이 얼굴은 본 것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얼마나 산을 구르고 다닌 건진 모르지만, 얼굴엔 생채기가 가득했다. 도대체 저분이 백호 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누가 믿을까. 주유는 내내 그런 것이 불만이었다.
“그래. 안 그래도 상향이가 할 말이 있다고 하더구나.”
“…아. 그게.”
“막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는데 주유가 돌아왔습니다.”
“아…그럼 제가 마저 이야기를 올릴까요.”
“그래요.”
손상향은 익숙하게 시비를 불러 차를 준비시킨다. 약간의 다식과 따뜻한 차가 금방 탁자 위에 준비된다. 하얀 자기에 푸른색으로 호랑이를 그려 넣은 찻잔은 금방 열을 품어서 따끈따끈해진다. 주유는 손끝으로 찻잔을 만지작거리면서 해야 할 말을 골랐다.
“저도 방금 보고 오는 길이라…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상향이 말로는 엄청난 빛이 하늘을 집어삼킬 것처럼 터져 나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예.”
“하긴…나도 본 것 같긴 하다. 아마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서 빽빽한 나무 때문에 확실히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만.”
“인간들이 봤다면 하늘이 노한 것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아니란 소리구나.”
“…뭐 그런 셈이죠.”
“그럼?”
“그게…….”
주유는 한 번에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이쪽엔 그리 득이 될 리 없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머릿속이 펑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손책은 시시각각 변하는 주유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응룡궁에 신선이 태어났습니다.”
“…거긴 신선이 아직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도 그래서 놀랐다는 거죠. 왜 태어났는지 사마휘님 조차 알지 못하신다고 하니…….”
“응룡 궁에 좋은 일이 생겼군.”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안 되는 거죠. 주군!”
“왜. 좋은 일이면 같이 누려야지.”
“정말…….”
주유는 이렇게 속이 넓기만 한 손책을 바라보면 가끔 답답해진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반응할 수 있는 건지. 하긴 응룡 군주가 사라지기 전에도 가끔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긴 했었다. 응룡의 주인이 사라졌을 때 제일 먼저 인간계로 내려가 살핀 쪽도 손책이었다. 하지만 신선이 둘이 된 주인 없는 응룡 궁을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주군이 자꾸 그러시니까…다들 우리한테 잡일을 시키는 거 아니에요!”
“잡일이라니. 어련히 해야 할 일인데.”
“…….”
“그래도 괜찮다. 나에겐 주유가 있는데, 그깟 신선이 둘이 된다 한들 별수 있겠느냐.”
“그렇긴 하지만…….”
“네가 있으면 됐다.”
“하긴 제가 제갈량보다 못한 것은 없죠,”
“그럼. 그럼.”
“그래요. 어차피 주인도 없는 궁에 신선이 둘 있다고 해서 큰일이 나겠습니까.”
손책은 계속 웃는다. 주유는 뭔가 털어낸 눈빛으로 차를 마신다. 요새 손책이 자주 궁을 비운 것도 사실이고, 주유가 바빴던 것도 맞으니 약간 미안해진다. 물론 그런 미안함을 느끼자마자 동생과 신선의 손에 잡혀서 끌려갔다. 아마 몇 달 동안은 궁에서 꼼짝도 못 할 듯싶었다.
**
“다녀왔습니다.”
“그래. 이제 돌아오는 길인가.”
“예.”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든 모양이야.”
“그렇습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겠나?”
“아닙니다.”
왕윤은 신선이 피곤한 것을 눈치챈다.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미미하게 나타나는 표정의 변화를 숨길 수 없었다. 빨리 보고를 듣고 쉬게 하는 쪽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왕윤은 늘 자기 밑에 있는 부하를 아낀다. 너무 아껴서 문제가 될 법도 한데, 늘 이런 식이었다.
“응룡 궁에 신선이 늘었습니다.”
“신선?”
“예. 저번에 보았던 것은 아무래도 신선이 태어나는 것을 알리는 빛이었던 듯합니다.”
“흠.”
“사마휘님께 여쭈어보았으나, 자신도 알 수 없다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아마 옥새의 의지가 아닐까 합니다만…….”
“사마의.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예.”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건…….”
왕윤이 반문한다. 사마의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기에 잠시 말을 끊는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내뱉을 단어를 고른다. 왕윤은 늘 인자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을 헐렁하게 처리하진 않았다. 오히려 정말 까다로운 군주라고 할 수 있었다.
“어서 말해보라.”
“솔직히 고하자면, 이 상황에선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제갈량은 이미 서서를 데리고 궁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아시다시피 제겐 궁을 출입할 명분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예. 하지만 불안하시다면 대책을 강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뭐 그럴 필요는 없지.”
“…예?”
사마의는 뜻밖의 말에 약간 놀랐다. 왕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지금까지 자신이 걱정하고 있던 일이 모두 바보 같은 짓이 된 것 같았다. 당장 서서와 제갈량을 분리하고 싶었고, 둘의 상관관계를 캐볼 생각이었다. 하다못해 서서가 제갈량의 힘을 나누어 받은 쌍생이라고 한다면 한쪽을 치는 것만으로 제갈량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왕윤은 조금 달랐다.
“하오나…주군.”
“그쪽도 많이 외로웠을 것 아닌가.”
“…….”
“군주가 없는 궁을 홀로 지키는 신선이 짠해서 옥새가 선물을 내려줬을지도 모르지.”
“…….”
“이런 말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가.”
“아닙니다. 그저…….”
“…….”
“놀라시지 않아서 제가 오히려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기 마련이야.”
“…….”
“응룡 군주는 어디로 갔는지…….”
왕윤은 유난히 응룡 궁을 걱정한다. 아마 자신보다 젊은 군주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그저 지금 뼈대만 남은 궁이 안타까웠을 수도 있다. 홀로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 물론 사마의는 이런 물렁물렁한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앞으로 나서서 응룡 궁을 끌어내리자고 말했던 남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생각을 차마 자신의 주군에게 고해 올릴 수 없었다.
“어딘가에 계시겠죠.”
“그렇지. 빨리 일이 마무리되어야 할 텐데. 저렇게 계속 두면 다들 안 좋을 것 아닌가.”
“…….”
“그래. 수고했네. 오늘은 들어가서 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그럼…….”
사마의가 고개를 숙인다. 오늘은 침소에서 나오지 않고 한참 앉아있을 계획이었다. 두 걸음 정도 걸었을 때 왕윤이 사마의를 물렀다.
“아…맞다. 내가 잠시 잊은 것이 있군.”
“무슨 일이십니까.”
“태오한테서 서신이 왔네.”
“아…….”
“아끼는 매를 날려 보낸 것을 보아하니, 거의 토벌전이 끝난 모양이야.”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말은 없지만, 한시름 놓았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 태오가 돌아오면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예.”
“내가 힘든 이를 너무 오래 붙잡았군.”
“아닙니다. 신선은 주군의 도구.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늘 꼿꼿한 말이었다. 왕윤은 크게 웃으면서 어서 들어가 보라고 손짓한다. 아마 사마의가 처소로 돌아가면 끔찍하게 아끼는 궁주를 보러 갈 생각인 것 같았다. 사마의는 잠자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머릿속엔 왕윤이 한 말이 덕지덕지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강한 군주라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저런 성품은 장기적으로 봉황궁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앞에서 바짝 엎드린 채 자신을 도구라 칭하던 남자가 하는 말 치곤 제법 날이 서 있었다.
“…장각.”
“부르셨습니까~ 사마의님~. 너어무 오래 안 불러 주셔서 좀이 쑤시던 참이었지 뭡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예. 예. 하명만 하시지요~”
“조용히 인간계로 내려가서 응룡 군주의 흔적을 찾아보아라.”
“허어. 그건 또 갑자기 왜.”
“…….”
“아닙니다. 너~무 재밌는 일이네요.”
깔깔깔 배가 찢어지라 웃던 인영이 훌쩍 사라진다. 꼭 그림자에 녹아든 것 같았지만 사마의는 놀라는 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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