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로우버키/럼벜] SomeDay 2 001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있었던 일을 망상 날조중입니다
윈터솔져 와 이어지는 내용이 있습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디마온에 나왔던 SOME DAY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책이 나와도 올린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럼로우는 나름대로 에셋에게 신경 쓰고 있었다. 도망치듯 떠나와서 간신히 구한 방이라 좋은 건 해줄 수 없었지만, 적어도 먹고 자는 건 도와줄 수 있었다. 혼자 살면 대충 끼니를 때우고 말 것인데, 위장 장애를 달고 사는 불쌍한 백치를 데려온 죄로 매일매일 먹을 것은 사 날랐다. 게다가 밖에 파는 자극적인 음식은 위장이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얹혀사는 녀석은 온몸이 예민해도 너무 예민했다.
물론 이 정도 까지 사이가 가까워지기 위해 몇 번이나 지랄 발작을 했는지 모른다. 고집도 어지간히 셌다. 누가 캡틴 아메리카 친구 아니랄까 봐. 끼리끼리 지랄은. 럼로우는 괜히 화를 캡틴에게 돌렸다. 싫다 좋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입술만 불뚝 내민 채 구석에 처박혀 있는 곰 같은 녀석을 끌어와 식탁에 앉히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야, 밥 먹어.”
“…….”
“왜 또 시위야? 굶을 거냐?”
“…….”
뚱한 표정으로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제저녁 일이 멀쩡히 기억이 나는데, 왜 저렇게 백치인 척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다. 백치는 맞지. 조금 정신이 돌아왔을 뿐이지만, 말이야. 럼로우는 혀를 쯧쯧 찼다. 물론 그런 백치 녀석 하나 구슬리자고 팔자에도 없는 보부 노릇을 하는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어디 가서 이런 일 한 적 없었는데, 도대체 저 시커먼 새끼가 뭐가 예쁘다고 이렇게 절절매는지. 여기까지 생각하니 뭔가 지는 것 같았다.
“아니, 여보쇼. 에셋 양반. 내가 아무리 너 하나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 끌고 오긴 했는데, 이건 너무 하지 않아?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야.”
“…….”
“내가 미쳤지. 진짜.”
이럴 때마다 뒷골이 쭉 당기면서 얼얼하게 아팠다. 자기만 아픈 줄 아나. 나도 화상환자고, 여름이면 피부가 땅겨대니까 살질 못하겠어. 럼로우가 이렇게 툴툴거려봤자, 저 백치는 들은 척도 안 한다. 여우 같은 새끼. 모른 척하는 법은 어디서 배워 와서 저 난리지. 하지만 럼로우는 내내 버키한테 져줬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병신 하나 구제하는 셈 치고, 반병신이 된 상태로 데려왔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보단 정말 많이 나아졌다. 입도 트이고, 제법 툴툴거리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허리 좀 주무른다 해도, 표정이 없었다. 정말 무기물마냥 멍한 표정으로 럼로우의 일그러진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눈이 너무 공허해서 순간 입맛이 싹 달아났다. 얌전하면 재미 좀 보려 했는데, 저렇게 돌아버린 눈깔을 보고도 설만큼 지독하진 않았다.
“럼로우.”
“내 이름 부르지도 마.”
“…럼로우.”
“…….”
“밖에 나가고 싶어.”
“얼씨구?”
“밖에 잠깐만 나갔다 올게.”
“…….”
럼로우는 식탁에 탁 소리가 날 정도로 그릇을 올려놓았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 번 더 되물었지만, 백치는 물러서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 눈을 잘 못 쳐다보긴 한다. 특히 럼로우가 노려보면 금방 주눅이 들어 쭈글쭈글해지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밖에 나가고 싶어.”
“왜? 다시 잡혀가서 뇌를 아주 갈아버리려고?”
“…….”
“그게 아니면 뭐야? 경찰서 가서 자수라도 할 거야?”
“…….”
“백치야. 네가 지금 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우리 여기 신혼여행 기분 내려고 온 거 아니거든? 너도 알고 있지? 응? 대답해봐.”
“…….”
“어서 대답해 봐.”
“…….”
대답은 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알고 있네. 어쩐지 입맛이 씁쓸했다. 거지꼴인 집구석이지만 계속 얌전하게 있으면 신혼 기분이라도 내볼까 했었다. 좋지 않은가. 어느 정도 주무를 것도 있고, 적당히 야한 얼굴에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성정까지. 어쩐지 완벽한 상황이었다. 물론 둘 중 하나는 범죄자고, 하나는 소문의 윈터솔져였을 뿐이지만 말이다. 몇 번이나 발작하는 몸뚱이를 내리누르고 찬찬히 설명을 해줬는데, 그새 다 까먹어버린 모양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밖에 나가겠다고?”
“모자…잘 쓰고, 팔도 안 보이게 하고 다녀올게.”
“…….”
“안 들키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한 번만…….”
최선을 다해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럼로우가 넘어올 눈치가 아니자 금방 풀이 죽는다. 말끝을 질질 끌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얼굴이 퍽 귀여웠다. 나도 미쳤지. 럼로우는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단 앉아봐. 식탁을 탕탕 치자 냉큼 일어났다. 식탁에 앉아서 럼로우가 주는 밥을 받아들고 한참 깨작거린다. 물론 한소리 듣고 나서 열심히 위장에 오트밀을 퍼 넣었다.
“…….”
“왜 안 그러나 했다.”
그릇을 반 정도 비우고 나자 곧장 반응이 온다. 수저를 내려놓은 에셋의 얼굴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수십 년 동안 얼리고 녹이는 걸 반복해온 위장이 단시간에 멀쩡해질 리 없었다. 잘 먹을 땐 누가 뭐라 해도 열심히 꾸역꾸역 먹어대는데, 한 번 속이 뒤틀리면 꼭 이런 식으로 대차게 배앓이를 했다. 금방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배를 감싼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어깨를 보아하니 오늘은 좀 많이 아픈 것 같았다.
“이런 몸으로 밖에 나가겠다고?”
“나…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이 멍청아.”
“럼로우. 나…….”
“그만 말해. 먹은 거 다 토하기 전에.”
“…….”
“일어나.”
“…….”
럼로우가 팔을 잡자 비척비척 일어났다. 아프긴 정말 아픈지 얌전하게 럼로우를 따라왔다. 머리를 좀 높게 해주면 나을 것 같은데 이곳엔 베개 같은 사치스러운 물품은 없었다. 내 팔자야. 럼로우가 매트리스에 다리를 쭉 펴고 누운 채 에셋을 눕혔다. 자연스럽게 둘은 마주 보게 되었다. 물론 아파서 정신이 없는 녀석은 눈마저 흐려졌는지 자꾸 시선이 엇나갔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에셋의 볼을 쓰다듬었다.
“백치야. 왜 자꾸 여기서 나가려고 그래.”
“…….”
“그냥 여기서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얌전히 있으면 너도 좋고, 나도 편하잖아. 왜 자꾸 고통 속으로 기어들어가려 하냔 말이야.”
“럼…로우.”
“대답하는 거 보니 덜 아픈가 보네.”
“나 괜찮아. 멀쩡해지면 한 번만 나갔다 올게.”
“…….”
“응? 럼로우.”
이럴 때만 끼를 떨어대는 것이 웃기긴 했다. 알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살기 위해 익힌 것인지. 그런 것까진 알 필요가 없었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럼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배앓이가 나을 때까지 잠이나 자라며 볼을 토닥토닥 두들겨 줬다. 몇 번이나 목 안으로 칭얼거리던 녀석은 아픔과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선잠을 잤다. 럼로우는 옴짝달싹 못한 상태로 내내 에셋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담배 땡기네.”
“…….”
“예쁜아. 어디 갈 생각하지 마. 네가 무슨 기억을 찾는다 해도, 그건 꽃길이 아니라 가시넝쿨이야. 왜 자꾸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해.”
“…….”
사실 알고 있었다. 해동된 지 오래된 녀석은 상하려는 직전 다시 살아났다. 다 죽어가던 뇌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자, 곧 이런저런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물론 하이드라에 관해서도 일부 기억하는 이미지가 있었다. 에셋이 뜬금없이 하이드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럼로우는 조금 긴장했지만, 다행히 자신을 알아보진 못했다. 하이드라에 관한 기억은 모두 아프고 무서운 것뿐이었다. 단어 사용이 어려워 제대로 표현은 못 하지만 몸으로 보여주는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떠올린 것은 버키 반즈였고, 세 번째는 다리 위의 그 남자였다. 물론 하도 고집을 부려서 멋대로 하라며 박물관에 데려다준 것도 럼로우였고, 직접 티켓을 끊어준 것도 럼로우였다. 하지만 그땐 그렇게 가슴에 와 박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런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머릿속에 그깟 사전적 지식을 쑤셔 넣어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땐 얌전했는데, 기억 조각 몇 개 찾았다고 이렇게 밖을 갈망했다. 해가 닿는 곳에서 살 수 없는 주제에 왜 그리 어리석은지. 역시 뇌가 맛이 간 녀석이었다.
“에셋. 예쁜아. 자?”
“…….”
“자는구나. 그래 그냥 좀 자라.”
“…응.”
대답인지 잠꼬대인지 모르는 한마디를 들은 럼로우는 고개를 젖혀가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참 웃긴 광경이었다. 럼로우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녀석은 계속 머릿속을 긁어 내렸다. 하지만 단칸방에서 얻을 수 있는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럼로우는 에셋이 신문이나 라디오에 접근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집 안엔 밥을 먹고 살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 외에 다른 것은 먼지만 쌓여갔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 에셋은 늘 수첩에 무엇인가를 끄적거렸다. 럼로우는 모르는 체하고 있었지만, 방이 너무 좁았다. 늘 종이에 한마디 두 마디 기억을 붙여넣은 녀석은 뒤에 노려보는 시선을 느끼면 허겁지겁 수첩을 감췄다. 물론 그래 봤자 럼로우 손바닥 위였지만 말이다.
“그래. 수첩에 그 새끼 면상도 있었다. 그렇지.”
“…….”
수첩에 소중히 붙어있는 입장권 생각이 나자 쓰다듬던 손길에 힘이 들어갔다. 금방 손에 엉키는 브루넷이 금방이라도 투두둑 소리를 내며 끊어질 것 같았다. 럼로우는 캡틴 아메리카, 아니 스티브 로저스에 대한 분노를 불쌍한 백치에게 풀고 있었다. 백치는 그 분노가 자신이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얌전히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불쌍한 새끼.”
“…….”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럼로우의 말은 영 종잡기 어려웠다, 방금 전까지 누구 하나 씹어 먹을 정도로 분노에 차있다가도 어느새 에셋을 보며 얄팍한 동정을 표한다. 복잡한 남자는 무릎이 저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질 때 까지 그렇게 백치를 쳐다보고 있었다.
“…럼로우.”
“깼냐? 정신 들었으면 좀 일어나봐. 얼굴 반쪽이 타버렸는데, 이러다 다리도 자르겠다.”
“…….”
“얼굴 보니 죽진 않겠네. 됐다.”
“……”
에셋이 눈을 뜨자마자 또 냉랭하게 말을 잘랐다. 에셋은 여전히 밖에 나가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까의 아픔이 자신의 고집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불쌍한 녀석은 사건의 앞뒤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폭력 속에서 잠깐 동정을 보여주면 곧잘 그 사람을 따르곤 했다. 럼로우는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늘 에셋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렇게 밖에 나가고 싶어?”
“…….”
“대답 안 하면 말고. 나 바쁜 사람이야.”
“갈래.”
“…….”
“갈…래. 럼로우.”
“새끼 겁먹긴. 누가 잡아먹는다고 했어?”
“…….”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말이지. 럼로우는 쩝쩝 마른 입맛을 다셨다. 하이드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럼로우 정도 되는 짬밥이면 어렴풋하겐 알 수 있었다. 그런 주제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쳐다볼 때마다 그 표정이 마음에 거슬렸다.
“좋아. 나중에 한 번 나가자.”
“정말?”
“대신 나도 같이 나갈 거야. 그리고 내 허락 없인 아무 데도 가면 안 돼, 내 옆에 붙어있어.”
“…….”
“싫으면 다시는 걸어서 이 방 밖으로 못 나갈 줄 알아.”
“알…알았어. 그럴게. 럼로우. 그럴게.”
“그래. 착하다.”
잔뜩 겁먹을 표정을 풀어주려는 듯 또 볼을 툭툭 쳐줬다, 그리고 그대로 턱을 잡아당겼다. 순순히 끌려온 녀석의 입술에선 버석한 겨울 냄새가 났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쉽게 빠지지 않는 냄새는 산사람의 것 같지 않았다. 뭐 비슷하지. 럼로우는 껄껄 웃으면서 까칠하게 튼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뻣뻣하게 굳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건 선불금.”
“…….”
“나갔다 재밌는 일 생기면 후불도 또 받을 거야.”
“…….”
“새끼 내외하기는.”
턱을 한 번 더 잡아당겼다가 놔주니 엄지로 입술을 만져댔다. 담배 냄새라도 나나. 럼로우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여전히 루마니아 이야기를 날조중입니다.
전력까지 읽으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올라온 럼벜은 SOME DAY 에서 이어집니다.
럼로우랑 버키가 열심히 지지고 볶고 있습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블 > └ 럼로우버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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