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두통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루마니아 생활상 날조중
럼로우가 버키한테 연애하자고 하는 이야기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오랜만에 백치를 뒤에 달고 바깥으로 나온 럼로우는 약간 기분이 좋았다. 늘 꿉꿉하던 날씨도 맑았고, 오그라든 피부가 아플 정도로 햇볕이 내리쬐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새끼들이랑 시비도 붙지 않은 데다 적당히 구석진 카페 자리도 남아있어서 운 좋게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어차피 이 녀석은 뭘 주던지 넙죽넙죽 받아 마신다. 적당히 메뉴판을 훑어보고 이것저것 멋대로 주문을 해버렸다.
“아, 잠깐만.”
“네.”
“이거 하나 더 추가 주문하지.”
기분이 좋은 김에 저 녀석이 잘 먹었던 쿠키까지 하나 더 주문했다. 그래 봤자 주는 만큼 받는 것도 없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녀석은 모자를 좀 더 눌러쓰고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러더니 시간이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심심한 듯 손가락으로 장난질한다. 이럴 땐 꼭 아기 같고 귀여운데, 고집을 부리면 악마가 따로 없었다.
“네가 한두 살 먹은 애새끼냐. 손가락 장난을 하게.”
“…….”
“손 꺼내지 마”
“…….”
불편한 듯 손을 움직이는 녀석에게 엄하게 한마디 했다. 두리번거리면 괜히 다들 수군거리잖아. 제발 얌전히 좀 있어. 그런 말을 해봤자 귓등으로 듣지 않는다. 집 안에 있으면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그렇게 징징거리면서 막상 데리고 나오면 주눅이 들어서 영 기를 펴지 못한다. 럼로우는 그저 혀를 찼다. 그리고 주머니에 들고 온 초코바를 꺼내 껍질을 뜯었다.
“이거나 먹고 있어라.”
“…….”
“이게 개인지. 사람인지.”
“…….”
대답이 없다. 냉큼 럼로우 손에서 초코바를 집어왔다. 그대로 입에 문 채 우물우물 씹으면서 또 주변을 살폈다. 분명 신문을 찾고 있었다. 아니면 라디오나 TV 같은 거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의 눈에 띄기 싫어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뭐가 필요해?”
“…….”
“말을 해야 갖다 주지.”
“신문.”
“얼씨구.”
또 한마디 들을까 싶어 목을 움츠렸다. 그 꼴을 보던 럼로우가 껄껄 웃으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이 확실했다. 계산대에서 적당히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신문을 찾는다. 얼굴 보고 흠칫 놀라는 사람은 너무 많이 봐서 이젠 익숙했다. 에셋 앞에 신문을 던져두고 다시 맞은편에 앉았다. 럼로우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에셋은 급히 신문을 펼친다. 신문은 생각만큼 잘 잡히지 않았다. 끙끙거리면서 한 손으로 간신히 신문을 넘긴다.
“백치야 우리 연애나 할까?”
“…….”
“어때?”
“…….”
신문을 쥐고 정신이 없는 녀석을 바라보던 럼로우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지나가던 사람이 들었으면 놀라서 둘을 돌아볼 것 같았지만, 정작 남자 앞에 앉아있는 녀석은 듣지도 않은 것 같았다. 새끼. 럼로우의 입술이 대놓고 씰룩거렸다.
“백치야. 예쁜아. 우리 연애나 하면서 여기서 그냥 자리 잡는 건 어때?”
“…….”
“응?”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허.”
안 듣고 있는 줄 알고 되는대로 지껄였는데, 이 자식은 다 듣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정신이 좀 돌아오더니 이런 것만 배워 와서 가끔 럼로우를 놀라게 했다. 또랑또랑한 눈을 보고 있으니 조금 흥미가 생겼다. 알아듣는 건지 아니면 장단이나 맞추는 건지. 사실 알 바는 아니었다.
“글쎄. 이렇게밖에 나다니고 한 침대에서 자고 그러는 거지.”
“…그건 지금도 하잖아.”
“그러니까. 이제부터 진짜로 하자고.”
“…….”
“비싸게 구는 건 이제 좀 그만할 때도 안됐냐?”
“그래. 뭐…그러지 뭐.”
생각보다 쉽게 대답을 한다. 사실 럼로우가 말하는 건 늘 해왔던 것뿐이었다. 어디 나가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가끔 녀석을 뒤에다 붙인 채 밖을 나돌아다니곤 했다. 그러다 힘들면 둘이 대충 걸터앉아서 쉬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한마디 더 하려는 순간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잠시 말이 끊겼다. 내내 수상한 걸 보는 마냥 잔만 내려다보는 에셋과 달리 럼로우는 잔을 들었다. 수상해 하든 말든. 럼로우는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백치는 눈앞에 사람이 커피를 마시는 걸 빤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었다. 누가 봐도 수상쩍은 모습이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이목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수상하면 말을 덜 걸곤 했다.
뭐 여기 사는 것을 들키면 그냥 이 집을 버리면 그만이었다. 딱히 남겨둔 것이 없으니 훌쩍 떠난 사람 꼬리를 잡기 어려웠다. 그래서 굳이 집에 많은 집기를 들이지 않았다. 언젠간 버릴 곳이었으니 그저 밤이슬만 피할 수 있으면 된다. 물론 다행히도 아직 소문이 퍼진 것 같지 않았다. 럼로우는 화상에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져서 쉽게 알아보긴 어려웠다. 물론 수군거림이 흘러들어오긴 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너도 기억 찾지 말고, 나고 손 씻고 여기서 살자.”
“기억을 왜?”
“멍청아. 굳이 과거 기억해봤자 뭐가 바뀌기라도 하냔 말이야.”
“그거야…….”
“그러니까 그냥 이러고 살면 편하잖아. 내가 널 굶기는 것도 아니고.”
“…….”
“뭐가 또 마음에 안 들어?”
“연애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건 장담 못 하겠어.”
“…….”
“연애는 지금도 하는 거 같은데, 아닌가?”
“허.”
김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악한 건지 아니면 진짜 백치인 건지. 물론 어느 쪽도 상관없었다. 적당히 장단만 맞춰주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기억 찾기 놀이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하긴 그러니 그 많은 뇌 갈림 속에서도 살아남았겠지. 하이드라는 버키 반즈를 죽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처음엔 고문과 협박이 있었다. 몸이 고통스러워도 고집을 굽히지 않는 녀석을 끌어다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그리고 캡틴 어메리카를 들먹이면서 협박을 하고 끝내 버키 반즈가 지워지지 않자 뇌를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뇌를 한번 갈면 비명이 두 번 나온다. 구석에 숨어들어 가 살아남은 버키 반즈가 기어 나오기 시작하면 또 갈아버리고, 종국엔 세뇌해서 완전히 뭉개버렸다. 그래도 살아남았다니. 웃긴 모양새는 확실했다.
‘신기한 녀석이야.’
럼로우는 그런 윈터솔져를 보면서 지냈기에 언젠간 이럴 것이라 확신했었다. 세뇌가 풀리면 벌벌 떨면서 인간적인 동정심을 구걸하는 녀석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 모양으로 백치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언젠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떠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꿈이라도 꿔보자는데 이 백치는 좀처럼 넘어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봐?”
“너 귀여워서.”
“…….”
“어우, 그렇게 쓰레기 보는 눈빛은 하지마라.”
쿠키를 집어 에셋의 입에 축 처박은 럼로우는 껄껄 웃었다. 나가자. 다 먹었잖아. 신문이 조금 남아있어서 나가기 싫은 눈치였지만, 럼로우는 이미 앞서 걷고 있었다. 고집부릴 생각도 못 하고 냉큼 일어난 녀석이 어색하게 모자를 눌러쓰고 남자 뒤를 졸졸 쫓아갔다. 점원이 자리 정리룰 하려고 걸어왔다. 그러더니 빈자리에 남아있는 신문을 휙휙 넘겼다. 럼로우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치가 보던 신문 바로 뒷장에는 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언제나처럼 평범한 사설이었지만, 사진이 같이 인쇄된 것을 보아 조금 중요한 내용이 분명했다.
***
“럼……. 아니지.”
“…….”
“같이 가.”
밖에서 큰소리로 이름 부르지 말라고 머리에 박아놓은 것이 효과가 있었다. 이름도 부르지 못하고 허겁지겁 따라온 녀석이 앞을 막아섰다. 왜? 입술 끝을 씰룩이며 바라보자 내내 억울한 표정이었다. 오래 데리고 다니면 꼭 이랬다.
“그만 가자. 많이 놀았잖아.”
“신문 다 못 봤는데.”
“백치는 그냥 백치처럼 있으면 되는 거야.”
“…….”
“내가 너 굶기진 않는다니까.”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이었지만, 곧 순순히 발걸음을 돌렸다. 백치는 세상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꼭 그걸 붙잡고 싶었다. 말없이 걷는 녀석을 바라보던 럼로우는 좌판에서 자두를 한 무더기 사서 녀석 품에 안겨줬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 퍽 귀여웠다.
“연애한다며. 선물이야.”
“…….”
“놀라긴.”
럼로우는 온종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단칸방에 돌아와서도 제법 흥이 돋는지 이름 모를 콧노래를 불러댔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매트리스에 다리를 쭉 뻗은 남자 옆에 꾸물꾸물 주저앉은 녀석은 자두 먹으라면서 하나를 내밀었다. 사실 럼로우는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 걸 귀찮게 왜 챙겨 먹냐는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거절했다.
“너나 많이 먹어라.”
“연애하자며.”
“…….”
“줬으니까 나눠주는 거야.”
“새끼. 끼 떨긴.”
럼로우는 못 이기는 척 자두를 받아들었다. 저 요망한 백치를 어떻게 구워삶을까 찬찬히 생각해봤지만,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괜히 정을 주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은 사람의 눈을 현혹하고, 손을 떨게 한다. 그래서 항상 중요한 순간을 그르치게 되는 법이었다. 멍한 녀석한테 굳이 손을 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왜 그래. 또?”
“…….”
“머리 아프냐?”
“…응.”
“백치 새끼가 꾸역꾸역 글자 읽을 때부터 알아봤다.”
“왜 이렇게 아프지.”
두통이 도진 듯 에셋이 머리를 꾹꾹 눌렀다. 꼭 이렇게 한번 나갔다 오면 일을 치르곤 했다. 망가진 뇌에 너무 많은 정보가 담겨서 그럴 거라 막연히 추측했다.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 앓는 녀석을 매트리스에 끌어다 눕혔다. 죽어도 눕기 싫다던 녀석은 아프긴 한 것인지 제법 고분고분했다. 똑바로 누운 채 얼굴을 찡그린 녀석을 보다 못한 럼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수건에 찬물을 적셔왔다.
“눈 감아.”
“…….”
“이러고 좀 누워있어. 가서 약이라도 사올 테니까.”
“…괜찮아.”
“그러다 머리 터진다.”
“…….”
“눈감고 가만히 누워있어. 움직이지 말고. 돌아와서 움직인 흔적 있으면 엉덩이를 걷어차 버릴 거야.”
짐짓 무섭게 한마디를 하고 일어섰다. 머리가 아프면 볼에 후끈한 열이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녀석을 보고 처음 알았다. 약을 어디서 구할까 고민하던 럼로우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으…….”
남자가 나가자마자 꼭꼭 누르던 신음이 줄줄 흘렀다. 머리 한구석에 시작된 두통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갈아버린 뇌를 다시 한 번 뭉개려는 것처럼 사방에서 내리눌렀다. 눈을 감고 있어도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에 속까지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머리…아프네.”
아프다는 감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에셋은 끙끙거리다 제풀에 지쳐 늘어졌다. 남자가 두통약을 구해서 돌아왔을 땐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허 참. 연애 한번 하자고 했다가 별 지랄 같은 상황을 다 겪네.”
꼴은 애인 아프다고 허겁지겁 약 구하러 나간 사람 같으니 뭐 됐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계약을 손에 쥔 남자는 축 늘어진 백치를 내내 바라보았다.
아까 했던 말의 반쯤은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
반쯤 진심인데 그 진심이 어느 쪽인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마블 > └ 럼로우버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럼로우버키/럼벜] SomeDay 2 002 (0) | 2016.07.08 |
---|---|
[럼로우버키/럼벜] SomeDay 2 001 (0) | 2016.07.07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나도 잘 모르겠어 (0) | 2016.06.26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그것이 궁금했다 (0) | 2016.06.18 |
[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호감 (0) | 2016.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