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직업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널뛰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물론 민호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주변 환경 때문이라 해야 할까. 내내 한숨만 쉬고 있는 민호를 보던 뉴트는 또 저러냐는 표정으로 척척 걸어가서 캔 커피를 안겨줬다.
“…뭐야?”
“이거 먹고 힘내서 똥강아지 잘 보살피라고.”
“…….”
“왜 이젠 도저히 못 받아 주겠어?”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네 팔뚝을 보아하니 오늘도 거하게 사고를 쳤나 보네.”
“…….”
“정답이네.”
뉴트는 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민호는 뉴트가 이럴 때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잘 알고 있었다. 뉴트 녀석이 웃는 낯으로 민호한테 밥그릇을 내밀었다.
“벌써?”
“벌써는 뭐가 벌써야. 아마 배고프다 난리가 났을 텐데.”
“…….”
“수인들은 성장기에 두 시간마다 밥을 먹여도 모자라 다니까? 어서 가서 밥 주고 와.”
“…….”
“어서? 오늘 갤리 비번이라 네가 둘 다 봐야 해.”
“내 팔자야.”
“다음엔 갤리한테 두 번 시키라고. 자. 어서 다녀와. 그러면 아마 우리 밥 먹는 시간이랑 딱 맞을 거야.”
민호는 짧게 탄식을 하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삶은 닭고기가 가득한 밥그릇 두 개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 명이 한 마리 책임지기도 바빠 죽겠는데, 갤리 녀석은 몇 달 동안 벼르고 벼르던 휴가라며 새벽부터 훌쩍 떠나버렸다. 그렇다고 어린 애들을 굶길 순 없었다. 이건 직업병이야. 민호는 짧게 투덜거리며 새끼 수인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연결된 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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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인은 처음 태어났을 때 평범한 동물들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젖을 뗄 정도가 되어야 조금씩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젖을 떼기 시작하면 삶은 닭고기나 사료를 먹이면서 돌봐주는 사육사들이 1:1로 어린 수인에게 붙어있었다. 동물과 인간의 습성이 반반씩 나타나는 녀석들은 워낙 손이 많이 가서 한 명이 둘을 보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들 일이었다.
갤리와 민호가 쌍둥이 표범 수인에게 배정된 이후로 몇 달 동안 월차나 휴가를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나마 요즘은 어느 정도 말도 알아듣고 낯도 가리지 않아 조금 편해졌다 싶었는데, 눈치 빠른 녀석이 한발 앞서 휴가를 신청해 버려서 민호는 꼼짝없이 둘을 돌봐야 할 처지였다. 두 손에 들린 밥그릇은 왜 이렇게 무거운지.
‘…저번 주보다 훨씬 많이 먹는 거 같은데.’
한눈에 봐도 한주먹은 더 담겨있는 고기는 밥그릇 위로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물론 이걸 두 시간마다 먹여야 하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다.
“토마스. 토미.”
“…….”
“나야. 들어간다?”
“…….”
어쩐 일인지 두 녀석이 조용했다. 잘 시간은 아닌데. 민호는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낮잠 시간은 세시부터라 한참 뛰어놀 시간인데, 왜 이렇게 조용한지. 놀다가 떨어져서 어디를 크게 다친 건가 싶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민호는 아까까지 투덜거리며 늦게 걸어온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다. 급하게 문을 열었을 때 조그만 인영이 와락 민호의 다리를 덮쳤다.
“으악!”
하마터면 밥그릇을 대차게 엎을 뻔했다. 간신히 비틀거리는 다리의 중심을 잡고 밥그릇을 옆에 있는 프레이에 얼른 올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니 까만 귀와 점박이 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 녀석들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녀석들은 이젠 어른을 놀릴 줄도 알았다. 아직 발톱도 못 숨기는 털 뭉치 주제에 머리만 영악해진 것인지. 밥 시간에 맞춰 숨죽이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 녀석들이.”
“…….”
아직 인간의 말은 배우지 못해 삐약거리는 녀석들의 목덜미를 잡아 눌렀다. 목에서 울리는 캬릉 캬릉 소리에 민호가 가늘게 웃었다. 알아듣긴 하는데 입이 트이지 않아 답답한지 바르작 거리던 녀석들이 꼬리를 쭉 뻗었다.
“밥 시간인 줄 알았는데, 놀이 시간이었나 보네.”
“…….”
“얼른 먹고 낮잠이나 자라. 너희는 힘도 좋다.”
“…….”
슬쩍 손에 힘을 풀어주자 스르르 빠져나간 녀석들이 민호의 다리에 냉큼 달라붙었다. 그릉 그릉 목 안으로 울었다. 복슬복슬하고 짧은 솜털이 송송한 꼬리가 종아리를 감아 들었다. 이럴 때 보면 꼭 고양이 같았다. 실상은 맹수였지만. 민호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허리를 굽히고 팔을 쭉 뻗었다. 손끝으로 밥그릇을 간신히 끌어냈다.
“자, 밥 먹자.”
“…….”
밥이란 소리에 작은 귀가 쫑긋거리며 반응했다. 하지만 민호를 놔줄 것 같진 않았다. 어이구. 민호는 또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알았어. 먹여줄 테니까 여기로 와서 앉아.”
“…….”
까만 녀석이 먼저 훌쩍 달려가서 항상 앉아있는 방석 위에 자리를 잡았다. 뒤이어 점박이 녀석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민호가 가운데 앉아서 허벅지에 밥그릇을 올리면 식사가 시작되었다.
**
“맛있어?”
“…….”
“맛있나 보네.”
잔뜩 신이 나서 살랑거리는 두 쌍의 꼬리를 바라보던 민호가 손으로 닭고기를 집어 꼬맹이들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장난을 치겠다며 민호의 손을 잘근거릴 때마다 꽤 날카로워진 송곳니가 느껴졌다. 이러다 한번 대차게 물리면 피를 보겠다 싶었다.
“토마스 깨물지 마.”
“…….”
“토미 너도! 따라 하지 마.”
“…….”
“이 녀석들이 남이 하는 건 다 해보려고 하네.”
제법 엄하게 한마디 한 민호는 밥이나 먹으라며 다시 찢은 닭고기를 입에 넣어줬다. 짭짭거리며 고기 씹는 소리가 방안 가득히 울리다 사라졌다. 배부를 만큼 먹으면 곧장 꾸벅꾸벅 졸 것이 분명했다. 수북하게 담긴 고기를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은 두 녀석은 잔뜩 행복한 표정으로 민호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꼬리론 민호의 다리를 감고 팔론 허리를 잡았다. 양옆에서 그릉거리는 숨소리를 듣던 민호는 몇 번 움직이다 곧 포기했다.
“너희 밥 챙겨주다 내가 못 먹게 생겼다.”
잘 크고 있는 건 고마웠지만, 가끔 이렇게 귀엽고 얄미운 짓을 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싶었다. 뉴트는 그런 민호를 보면서 애를 키우는 사람들은 다 그렇다고 깔깔거렸다.
‘정말 그 말이 맞나.’
보송보송한 속눈썹에 걸린 잠이 뚝뚝 떨어졌다.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민호는 작은 두 녀석과 함께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