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민호/토민호] Full of happiness 002
+) NOTICE
플레어 걱정없는 현대 AU
위키드 토마스와 글레이드 토마스가 쌍둥이로 나오는데 형제 둘이 민호를 많이 좋아합니다.
실제 영화와 본 회지상의 나이 설정이 다릅니다.
첫 만남은 토마스 형제가 5살 , 민호가 17살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책이 나와도 샘플은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Full of happiness 002
민호는 그날 이후로 옆집에서 무슨 소리가 날 때마다 숨도 편히 못 쉬는 상태가 됐다. 저질러놓은 잘못이 있으니 제 발 저리는 것이었지만, 아직 꼬맹이들을 바라볼 용기가 낫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뉴트 생각이 이를 벅벅 갈았다.
하지만 뜻밖에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놀 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골목에서 한 번 정도는 마주칠 법했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기억이 희석되고 있었다.
“…….”
물론 뉴트가 놀러 오기만 하면 산통이 깨졌지만. 아무래도 이 녀석은 민호가 당황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분명했다. 제집처럼 쳐들어와서 소파를 점거한 채 민호를 바라봤다.
‘저 녀석을 그냥.’
그대로 친구를 대접하겠다고 들고 온 과자를 얼굴에 부어줄까 하다 간신히 참았다. 그런 민호의 손에서 냉큼 과자를 들고간 뉴트는 내내 편안한 표정이었다. 아, 정말. 이젠 한숨도 말라버렸는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뭐 진전은 있어?”
“무슨 진전.”
“옆집이랑 안면을 텄으면 뭐라도 할 거 아냐.”
“…….”
“아니야?”
“진전이고 뭐고, 애들이 밖에 나와 있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흐음.”
“항상 집도 조용하니까…잠깐만. 근데 왜 자꾸 걔들이랑 날 엮으려고 해?”
“이웃이잖아.”
“네 녀석 이웃은 아니잖아. 넌 여기 살지도 않으면서…아니다. 됐다. 저지른 일을 또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민호는 이제 포기에 익숙해졌다. 물론 이 이후로 뉴트는 내내 민호의 집에 드나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같이 운동을 가자는 것이지만, 두 번째는 누가 봐도 쌍둥이 때문이었다. 애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자기를 놀리는데 재미를 붙인 건지. 이런 녀석을 친구라고. 민호는 욕을 꾹꾹 삼키며 뉴트가 들고 있던 과자를 뺏어 들었다. 그런 점에서도 둘은 꽤 닮아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아니라고 딱 잘랐다.
이렇게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이 상태 그대로 데면데면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사건은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가볍게 몸이라도 풀러가자고 둘이 집을 나설 때였다. 문을 열고나올 때부터 뒤통수가 이상하게 아릿하다 했더니, 옆집 꼬맹이들이 문을 반쯤 연 채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또 한 번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민호의 눈동자를 보던 뉴트가 웃었다. 그리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꼬맹이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안녕? 나 저번에 봤었지?”
“…….”
“기억 안 나?”
“형…친구?”
“그래. 저 형 친구.”
그래도 옆집에 살던 민호가 좀 더 낯이 익는지 뉴트의 시선을 슬슬 피했다. 이것 봐라. 그런 꼬맹이들의 표정을 뉴트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민호가 뉴트의 목덜미를 덥썩 잡아서 끌어냈다.
“무슨 짓이야.”
“왜!”
“진짜 내가 미친다.”
“…알았어.”
뉴트가 툴툴거리며 물러섰다. 민호는 뭐라고 말을 붙여야 할지 내내 고민했다. 물론 입에서 나온 말은 처음 만났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그때보다 조금 나았다. 뭔가 궁금한 것은 있지만, 쉽게 말을 못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큰 눈이 데굴데굴 소리를 내며 굴러갈 것 같았다. 깜빡.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속눈썹이 흔들렸다. 그렇게 어색한 눈 맞춤을 참지 못한 뉴트가 툭 한마디 말을 던졌다.
“같이 놀러 갈래?”
“…….”
“우리 저기 공원에 운동하러 갈 거야. 같이 가서 놀자.”
“뉴트!”
“응?”
저 표정 봐. 민호는 끙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꼬맹이들은 당연히 거절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문틈으로 보이는 똑같은 얼굴이 둘. 작은 손이 넷. 눈이 두 쌍.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데 두 명이 똑같은 표정으로 고민했다.
“갈래.”
“그래…미안 뭐?”
“같이 갈래.”
“…….”
뜻밖의 대답에 뉴트와 민호는 황당하고 말았다. 반쯤 장난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쌍둥이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한없이 진지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 내뱉은 말이니 약속은 지켜야 하겠지만, 어른들 허락이 먼저였다. 어린아이를 멋대로 데리고 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은 친 사람은 뉴트인데, 고민은 민호가 더 깊었다. 뉴트는 그런 민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이미 두 아이는 뉴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데리고 가줄 수는 있는데.”
“응!”
“대신 가서 허락받아와. 맘대로 나가면 안 되잖아.”
맞는 말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듣기에도 떼를 쓸 수 없는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토마스. 나 나갈래. 같이 가자.”
“…….”
“내가 허락받아올게!”
“토미!”
“같이 가는 거다?”
쌩하니 안쪽으로 뛰어들어간 아이가 사라지자, 토마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분명 민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뉴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가시를 세운 새끼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대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낯을 가린다고 생각하기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뭔가 할 말을 다 하는 아이 같은데, 이상하게 민호만 보면 입을 열지 않았다.
지루한 대치 상황이 계속되었다. 한 마디 말을 걸어볼까 하던 그 순간 토미가 불쑥 나타났다. 잔뜩 신난 얼굴을 보니 분명 허락을 받은 것이 확실했다. 두 손으로 토마스의 옷을 꾹꾹 잡아당기며 칭얼거렸다.
“토마스, 허락받았는데 옷 입고 나가래.”
“…….”
“응? 형들이랑 놀러 가자.”
“…….”
“응?”
“…….”
입을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않으니 점점 울상이 되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에라도 칭얼거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줄이 끊어지기 직전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옷 입고 나와. 뉴트가 둘을 안쪽으로 돌려세워 주며 웃었다. 잠깐 시야에서 쌍둥이가 사라진 틈을 타 민호는 뉴트의 멱살을 잡았다.
“넌 진짜.”
“쟤네가 너한테 할 말이 있다니까. 난 다리 놔주는 것뿐이야.”
“아니 저런 어린 애들이랑 다리 놔줘서 뭐하게.”
“뭐하긴. 잘 지내는 거지.”
“…….”
“그냥 애들을 키우라는 소리구나.”
“아니야. 절대.”
뉴트가 멱살을 잡고 있는 민호의 손을 하나하나 떼어 냈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하자마자 동그란 머리 둘이 또 툭 튀어나왔다.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어린아이라 걱정이 되는지 니트에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똑같은 옷이 항상 두 벌씩 있는 걸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틀에 찍어낸 인형이 둘 서 있는 것 같았다. 작은 가방까지 하나씩 메고 나온 녀석들의 손을 잡으려 했다.
“응?”
냉큼 뛰어가 민호의 다리에 매달린 녀석이 생글거리며 웃었다. 뉴트는 머쓱하게 손을 거뒀다. 이럴 거로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직접적이었다. 뚱한 표정으로 문을 잡고 서 있던 녀석도 주춤주춤 밖으로 걸어 나왔다. 토미의 반대쪽에 서서 옷자락을 꾹 쥐는 걸보고 있자니 귀여워 죽을 것 같았다.
“다행이야. 민호.”
“뭐…뭐가.”
민호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어린 애들이라 뿌리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지춤을 잡힌 채 서 있었다.
“애가 셋이었으면 팔이 모자랐잖아.”
“뉴트!”
“둘이니까 한 손에 하나씩 잡으면 되겠네.”
“…….”
“한 번에 안고 가진 못할 거 아냐.”
“그렇긴 하지.”
“내가 친구 된 도리로 가방은 들어줄게.”
뉴트가 저렇게 빠져나갈 때마다 정말 쫓아가서 멱살을 잡아야했다. 뉴트가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하나씩 걸치더니 어서 데리고 오라는 듯 고개만 까닥거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별수 있나. 민호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조그만 두 손을 하나씩 나눠 잡았다. 굳이 다행인 점을 찾으라면,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았던 녀석이 먼저 다가왔다는 정도일까. 민호가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하자 작은 발자국 소리가 따라왔다.
“…….”
“민호?”
“아, 내 걸음이 너무 빠른 거 같아서.”
아이들이 민호의 보폭을 따라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차라리 한명씩 안고 가면 더 편할 텐데. 두 녀석 다 민호한테서 떨어지질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민호는 아이들의 발걸음에 맞춰 최대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원래 달리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태어난 녀석인지라 이런 좁은 보폭이 불편하고 답답했지만 놔두고 갈 수도 없었다. 뉴트는 한참 앞에서 빙글 뒤로 돈 채 세 명을 내내 바라봤다.
“형 얼마나 더 가야 해?”
“조금 더.”
“…….”
“가면 재밌어?”
“음…재밌겠지? 걸을 수도 있고 나무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가.”
눈을 반짝이는 녀석이 자그마한 손을 민호의 손가락을 꽉 쥐었다. 그래도 얌전해서 다행이야. 민호는 등 뒤에서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이제야 느끼고 있었다. 말을 잘 듣고 순해서 다행이지, 천방지축이라면. 아마 반도 못 가서 주저앉았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억지로 한 명씩 안고 걸어가던가. 하지만 이 정도를 걸어가면 힘들다고 칭얼거릴 법도 한데 끈기 있게 따라오는 녀석들이 대견하긴 했다.
공원은 그리 멀지 않았다.
애초에 공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가볍게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할 목적으로 만든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가까운 곳도 좀처럼 나와 보지 않았는지, 쌍둥이들은 두 눈에 공원이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당장 뛰어가고 싶었지만, 손을 단단히 잡고 있는 민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멀리 가면 안 된다?”
“응!”
두 번 씩 약속하고 세 번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잔뜩 신난 녀석들은 이리저리 움직이기 바빴다. 민호는 눈앞에서 타박타박 걸어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잠깐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민호의 어깨에 턱 하고 턱을 얹은 뉴트가 어깨너머로 음료수를 건넸다.
“…….”
“왜 또 표정이 그래.”
“너 같으면 지금 걱정이 안 되겠냐.”
“별로. 애들도 착하고 얌전하잖아. 연습이 모자라면 여기 한 바퀴 뛰고 오던가. 애들은 내가 시켜보고 있을게.”
“…….”
“지금 좀 쑤신 거 다 안다?”
이렇게 속마음을 숨기기 힘들었다. 민호는 잠깐 고민하다 저지를 벗었다. 혹시 몰라 편한 옷을 입고 오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애들 손잡고 있으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다가, 오른쪽으로 휙 뛰어갔다. 뉴트는 그런 뒷모습을 보며 내내 웃고 있었다. 저렇게 뛰는 걸 좋아하는데, 지금까지 참은 것도 대단했다. 그리고 슬금슬금 눈앞에서 이것저것 만지며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토미.”
“응?”
“토마스.”
“…왜?”
“재밌는 구경 할래?”
“…….”
재밌는 구경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거렸다. 뉴트가 씩 웃으며 두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가장 가까운 벤치로 데려갔다. 한 명씩 안아다 벤치에 앉혀준 다음 손으로 저 먼 곳을 가리켰다. 뉴트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는 샴페인 색 시선엔 잔뜩 호기심이 돌았다.
“이제 여기 보고 있으면 민호 형이 지나갈 거야.”
“왜?”
“그 녀석이 좀 달리기 바보라서, 뛰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그렇구나.”
“뭐 나도 연습해야 하는 건 마찬가진데, 오늘은 쉬기로 했으니까. 잘 봐야 해? 형 순식간에 지나가니까.”
“응!”
아이들은 가끔 이렇게 순수할 정도로 단순했다. 뉴트도 벤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곤 물통을 꺼냈다. 천천히 쉬면서 민호를 기다리려 했는데, 토미의 눈이 물통에 닿았다. 아. 뉴트가 입으로 가져가던 물통을 손가락으로 쿡쿡 건드렸다. 그리고 눈을 맞추자 작은 얼굴이 아래로 움직였다.
“목말라?”
“응.”
“빨대가 없는데. 마실 수 있겠어?”
“응. 괜찮아.”
“조심. 조심.”
토미가 물을 마시자 조용히 토마스도 손을 뻗었다. 아직도 낯을 가리나. 뉴트는 속으로 내내 귀여워 죽겠다는 생각만 했다. 토마스가 물병에서 입을 떼려는 그 순간 눈앞에 민호가 휙 지나갔다. 손을 잡고 올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엄청나게 커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토마스의 작은 손에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물통을 놓치고 말았다. 뚜껑을 닫지 않은 물통이 그대로 한 바퀴 회전하며 바지 위에 물을 쏟았다.
“아…….”
“아이고.”
뉴트가 깜짝 놀라서 토마스를 안아 일으켰다. 잔뜩 젖어버린 옷은 이미 물기를 흡수하다 못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뉴트가 재빨리 물을 털고, 코트를 벗겼다. 잔뜩 찡그린 표정이던 아이가 주춤주춤 물러섰다.
“토마스.”
“응. 괜찮아. 이 정도면 이런 날씨엔 금방 말라.”
“…하지만.”
“뭐 이런 거 가지고 놀라. 괜찮아.”
뉴트가 옷을 꾹꾹 짜고 물을 털었다. 한참 토마스를 돌봐주는 새 민호가 뭔가 이상한지 가볍게 방향을 틀어 다가왔다. 잔뜩 신난 표정으로 답싹 안기는 토미를 몇 번이나 밀어내다 결국 안아 올렸다.
“지금 나한테 안기면 땀 냄새난다.”
“괜찮아!”
“내가 못 살아. 뉴트. 토마스는 왜 그래?”
“아 물을 쏟아서. 금방 마를 거 같아.”
“토마스. 괜찮아?”
“…응.”
시무룩한 목소리가 땅바닥에 잔뜩 깔렸다. 그런 분위기를 어떻게 해보려는 듯 민호가 손을 내밀었다. 토마스. 눈을 깜박이며 그 손바닥만 쳐다보던 토마스의 얼굴에 살짝 웃음기가 돌았다.
“가자. 어차피 물은 금방 말라.”
“…어딜?”
“같이 좀 걷거나 뛰거나 하지 뭐. 안 갈래?”
“…….”
“토미는 간다는데.”
“…갈래.”
“뉴트 형도 같이 가자 해. 이리와.”
토마스가 주춤주춤 뉴트의 옷자락을 쥐었다. 결국, 아이들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신나게 뛰어놀았다. 막판엔 피곤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았다. 민호는 웃으면서 토마스를 업었다. 뉴트는 토미를 안아 들었다. 어쩐지 늦둥이 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뉴트는 몇 번이나 애들 눈을 봤느냐고 물었다. 완전히 푹 빠진 거 같은데. 민호는 그런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저 늦둥이 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정말 못 봤어?”
“뭘.”
“요 녀석들 눈 말이야. 너한테 푹 빠진 거 같은데. 알아주지 않는다니 나쁜 형이잖아.”
“그냥 신기해하는 거라니까.”
“신기한 사람이면 그냥 한번 보고 넘겼겠지. 네가 엄청 마음에 든 거 같더라.”
“개소리를 신기하게 한다.”
“개소리 아니라니까. 내가 장담해.”
깔깔 웃던 뉴트가 잠에 푹 빠져서 흐물흐물 흘러내리는 작은 몸을 다시 들쳐 안았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이대로 업어다 우리 집에 데려놔도 모르겠다. 뉴트가 땀에 푹 젖은 토미의 머리를 살살 쓸어 정리했다. 친구란 놈이 또 헛소리한다며 민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날 이후 조금씩 가까워진 것은 확실했다.
경계도 덜 하는 데다 가끔 아침에 마주치면 작게나마 인사도 받을 수 있었다. 민호는 외동이어서 그런지 이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일부러 깨어있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일찍 일어나는지 민호가 밖으로 나오면 항상 문을 반쯤 열고 쳐다보고 있었다. 모른 척 하기도 뭐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
“이상해.”
“뭐가.”
“아니 다른 건 아니고, 쌍둥이 말이야.”
“응?”
“지나치게 조용해서.”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항상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너…생각보다 그 애들한테 관심이 많네.”
뉴트가 들고 있던 빵을 베어 물며 민호를 빤히 쳐다봤다. 또 그런다. 민호는 작게 뉴트를 타박했지만, 말엔 거짓말이 들어있지 않았다.
집안 자체가 조용한 분위기일 수도 있지만 민호가 느끼기엔 과할 정도로 조용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밖으로 놀러 나오는 적도 거의 없었다. 가끔 민호 손을 잡고 공원을 가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옆집에 사는 어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던 뉴트는 너도 이제 끝났다- 라는 표정이었다. 물론 잔뜩 심각한 민호는 그런 뉴트의 표정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구구절절하게 다시 시작되는 옆집 탐험기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민호는 옆집 문을 다시 두드렸었다. 누구세요. 언제나 그랬든 것처럼 문을 여는 아이의 눈에 민호가 가득 들어왔다. 형! 민호를 알아본 아이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이럴 생각까진 아니었지만, 옆집에 놀러 가서 주스도 대접받았다.
‘아, 이런 거 신경 쓰면 안 되는데.’
남의 집 소파에 앉아서 아이들을 얼러주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집은 전체적으로 흰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은 가구를 보면 어떤 느낌의 가정인지 알 것 같았다. 되게 깔끔한 집이네. 그런 생각도 잠시. 마냥 형이 좋다고 달려드는 녀석들이 소파 위에 냉큼 올라앉았다.
조금 말을 튼 다음 물어봤다.
아이들에게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일어나면 항상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일은 하는진 듣지 못했지만, 굉장히 바쁜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을 이해한다는 말도 따라왔다.
“…….”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가 이렇게 속 깊은 말을 하는 것이 좀 가슴이 아팠던 민호가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줬다. 금방 볼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아이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말하며 민호의 품에 안겨들었다.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토미가 그러기 시작하면, 아닌 척 앉아있던 녀석도 똑같이 따라 했다 완전히 등을 묻은 채 두 아이를 품 안 가득 끌어안아 줬다. 민호는 또래 아이들보다 덩치가 큰 편이었고, 쌍둥이들은 평균보다 조금 작았다. 품으로 파고 들어간 아이들은 내내 생글거렸다.
그 상태로 토미는 또 재잘거렸다.
“…자고 일어나면 도우미 누나가 오는데.”
“그래?”
“응. 밥도 해주고 옷도 골라주고. 청소도 해줘.”
“그리고 나선?”
“우리 둘이 방에서 노는데.”
“방에서?”
“응! 구경 갈래. 형?”
품 안에서 벌떡 일어난 녀석이 민호를 보면서 웃었다. 민호는 모른 척 토미가 손을 잡고 끄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대로 걸어가려 하다 반대쪽 손을 소파에 남아있는 아이에게 쭉 뻗었다.
“같이 가야지?”
“…….”
“안 갈 거야?”
“갈 거야.”
뭐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는진 몰라도 주춤주춤 소파에서 내려왔다. 그리곤 손을 잡는 대신 민호의 상의 끝을 잡았다. 옷 늘어난다. 괜히 타박을 하던 민호가 씩 웃으면서 손을 떼서 직접 잡았다. 깜짝 놀라서 바르작거리는 손끝이 느껴졌지만, 뭐 어떤가. 그렇게 둘은 토미가 안내하는 대로 방으로 걸어갔다. 쌍둥이들은 둘이서 방 하나를 쓰고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쓰기엔 꽤 큰 방이었지만. 문을 열자 민호는 생각지도 않은 방 안 모습에 조금 놀랐다.
“와우.”
“우리 방!”
“이게 다 너희 거야?”
“응. 민호 형.”
“…….”
찬찬히 방안을 살펴보자 뭔가 보통 아이들이 가지고 있을 만한 것이 잔뜩 있었다. 침대에서 책을 보다 그대로 뛰어나왔는지, 조금 정리가 되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집안 분위기하고 그리 다르지 않았다. 민호는 곁눈질로 펴져 있는 책을 슬쩍 넘겨다 보았다.
“…….”
도대체 저걸 이해하고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그림책 삼아서 보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볼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눈만 깜박이며 책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토미가 또 손을 쭉쭉 끌어당겼다. 토마스는 침대에 앉혀주고 토미도 들어 올렸다. 커다란 침대 위에 널브러진 책들은 빼곡하게 과학식이 들어차 있었다. 손끝으로 책장을 넘겨보던 민호는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랑 같이 보는 거야.”
“…….”
“그렇지. 토마스.”
“응.”
“너희 몇 살이라 했지?”
“다섯 살.”
“…….”
나이를 들으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였다. 자기들의 보금자리에 초대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 경계심을 내려놓았다. 물론 그전부터 민호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눈치를 보긴 했지만. 민호는 딱히 그런 눈치를 키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너무 직접적이었다. 나이를 듣고 보니 생각보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났다. 열 살. 아니 열두 살. 띠동갑 이네. 민호는 손으로 셈을 해보다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왜?”
“아니야. 너희가 어려운 책을 보는 거 같아서.”
침대 위에 올라앉는 녀석들은 여전히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민호를 따라왔다. 와락 품 안으로 돌진하는 녀석을 받아준 민호가 휘청거렸다. 그리고 슬쩍 붙어오는 토마스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자니 조그만 녀석들이 꼬물거리며 자꾸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똑같은 얼굴인데 표정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아.’
어쩐지 둘은 조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미. 토마스. 민호가 부르자 조그만 얼굴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아, 정말이네. 알겠어. 물론 둘 다 무표정하게 있으면 절대 구분 불가능 할 것 같지만, 지금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약간 쌩하게 굴면서도 멀리 도망가지 않는 녀석이 토마스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사고 치는 쪽이 토미였다. 어째서 이름이 비슷한지 까진 알 수 없었다. 마치 같은 틀에서 찍어낸 얼굴처럼 다른 부분이 없었다. 하다못해 볼에 박혀있는 점조차 똑같은 곳에 있었다. 민호가 두 손을 들어 각자 볼을 만지작거리자 금세 고양이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누가 형이야?”
“으음. 토마스?”
애매한 대답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귀여워 보이는 것은 이미 콩깍지가 단단히 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도대체 이 쌍둥이들은 무슨 이유로 민호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맹목적일 정도로 따르고 있었다. 민호는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저런 책 보면 재밌어?”
“왜? 항상 보는 거라고 보고 있을 뿐이야.”
“내내 집에서만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친구가 없는 거 아냐?”
“…….”
“너희 바깥에도 잘 나오지 않잖아.”
맞는 말인지 표정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민호는 괜히 미안해서 말을 돌렸다.
“공원이라도 나갈까? 운동해야지.”
“싫어.”
“토미는?”
“…….”
토미는 토마스와 민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선택은 언제나 다르지 않았다.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얼굴로 토마스를 조르기 시작했다. 물론 쌩하게 대답한 녀석도 조금씩 마음이 돌아서는 모양이었다. 민호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옷 입자.”
“응?”
“그 상태로 나갈 거야? 아니지?”
“응. 아니야. 형!”
“…….”
“그럼 허락받고 오렴.”
“알았어!”
토미가 침대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제법 달리기가 빨랐다. 아마 허락도 내내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에게 받아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뭔가 시끌시끌한 소리가 나는 거실에서 시선을 거두니 옆에 토마스가 붙어있었다. 옷자락을 꽉 쥔 채 큰 눈으로 민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떨어지기 싫어하고, 토미가 하는 건 똑같이 따라하는 조그만 녀석은 대답엔 너무 박했다.
“토마스 왜 그래?”
“…….”
“너는 말을 좀 하고 살아야겠다.”
“…해.”
“조금 더. 형이라고 불러봐.”
“…민호.”
“형.”
“…….”
“민호 형.”
“…….”
또 입을 다물었다. 조금만 더 친해지면 될 거 같은데, 영 마음을 터놓지 않았다. 그리고 토미가 돌아와서 또 민호의 허리에 매달렸다.
“나가도 된다고 해?”
“응! 옷 입고 나가래.”
“그래.”
토미가 열어주는 옷장에서 적당히 겉옷을 꺼냈다. 똑같은 옷이 두 벌씩 있으니 고르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혼자서 둘을 데리고 나가는 건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너무 얌전하게 따라왔다. 공원까지 가는 길이 제법 익숙한지 손으로 방향을 이리저리 짚어보며 맞는지 묻곤 했다. 공원에 도착해서도 딱히 많은 일을 하진 않았지만, 민호랑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웃음이 한가득 이었다.
한참 공원을 걸어 다니던 민호의 눈에 아이스크림 차가 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간식을 줘도 되는진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거란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용돈을 털었다. 그리고 두 녀석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여주었다. 금방이라도 녹아 흐를 것 같이 아슬아슬한 아이스크림을 보던 민호는 결국 두 녀석을 벤치에 나란히 앉혔다. 벤치 위로 쑥 올라간 다리를 흔들던 아이들은 얌전히 먹는 것에 집중했다.
“맛있어?”
“응.”
“간식 이렇게 멋대로 사줘도 되는지 모르겠다.”
“괜찮아. 아무 말 안 할게.”
“그게 아니잖아.”
“우리끼리 비밀.”
입술에 가득 크림을 묻힌 채 말하는 걸 보니 분명 하루도 못 가서 들통 날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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