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의 양팔을 하나씩 붙잡은 녀석들은 잔뜩 뚱한 표정으로 버티고 있었다. 민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물론 민호가 힘도 더 좋고 덩치도 컸지만, 매몰차게 둘을 밀어낼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던 뉴트는 그저 혀를 쯧쯧 차며 팔짱을 꼈다.
“쟤네 또 저래?”
“그냥 아들이라니까.”
“아니 저럴 거면 그냥 일주일 데릭 다녀오지. 무슨 강아지들도 아니고 저렇게 떨어지기 싫어하냐.”
“내 말이 그 말입니다.”
뉴트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하긴 뭐 저런 모습 보는 것도 언제나 재밌긴 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떠나려 해도 어떻게 일정을 아는지 귀신같이 나타나는 두 쌍둥이를 보는 사람들은 신기하다며 한마디씩 보탰다.
사생도 저렇겐 안 하겠다. 칭찬인지 뭔지. 뉴트는 그런 녀석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콱 찍었다. 애들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타박하는 소리를 들으며 죽는소리를 하는 동료를 옆에 놔둔 뉴트가 민호를 불렀다. 이렇게 끊어주지 않으면 평생 놓아주지 않을 기세였으니까.
“민호. 슬슬 출발해야지.”
“토마스. 토미. 들었지? 나 이제 가야 해.”
“언제 올 건데.”
“이 녀석이 은근슬쩍 말이 짧아진다?”
“우리랑 약속한 거는 하나도 안 지키고, 이게 뭐야!”
“토마스. 조용히…….”
민호가 허둥지둥 토마스의 입을 막았다. 스무 살도 넘은 녀석들은 이럴 때만 어리광을 피웠다. 잔뜩 억울한 눈으로 민호를 올려다보는 통에 없던 두통이 생기는 것 같았다. 토마스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자, 토미도 주춤주춤 다시 다가왔다. 자기만큼 커다란 녀석들을 어떻게 제어할 줄 모르는 민호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형이 예전에 약속한 거 잊었어요?”
“…뭐가.”
“스무 살 되면 같이 살자고 했잖아요.”
“…….”
“근데 벌써 우리 스무 살 되고도 세 살이나 더 먹었는데 이러는 게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
“진짜 너무해.”
물론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이 영악한 아이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민호를 쉽게 보내주기 싫었다. 어렸을 땐 스무 살만 되면 당장 같이 살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이젠 어린이가 아니지 않으냐면서 빠져나가기만 했다.
“그게 아니고 나도 운동을 해야, 대회에 나갈 거 아냐. 안 그래?”
“…….”
“응? 토마스. 토미. 나 보고 이야기해봐. 안 그래?”
“…그래요.”
둘의 목소리가 죽어갔다. 아마 귀와 꼬리가 달려있다면 물을 잔뜩 먹은 것처럼 축 처졌을 것이 분명했다. 또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나도 이제 뭐라고 못하겠네.’
민호가 한숨을 쉬며 둘에게 잡힌 팔을 빼냈다. 형. 잔뜩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 전에 민호는 모른 척 두 팔을 벌렸다. 이리와. 뉴트는 이미 그 꼴을 보고 웃겨서 넘어가고 있었다. 똑같이 생긴 커다란 놈 둘을 품 안 가득 안아준 민호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말투로 달래고 있었다. 물론 무뚝뚝한 사람이 그렇게 말해봤자 얼마나 상냥하게 말하겠냐만.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둘은 충분히 이해한 것 같았다.
“알았어.”
“이번에 돌아오면 너희 연구소로 놀러 갈게 알았지.”
“…응.”
“토마스도 대답.”
“…….”
잔뜩 부루퉁한 표정으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불안해하는지. 꼭 새끼 분리하는 부모 개를 보는 기분이었다. 하긴 둘한테 부모님 말고 가장 소중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민호일테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 형 다녀올게.”
“빨리 다녀와.”
“훈련 스케줄이 있는데 어떻게 일찍 오냐. 대신 끝나자마자 연구소로 갈게.”
“응.”
“그래. 나 같다. 둘이 싸우지 말고 얌전히 있어.”
민호가 두 녀석의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어 주고 나서야 긴 이별 인사가 끝이 났다. 그런 민호의 어깨에 손을 올린 뉴트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웃으며 말을 걸었다. 쌍둥이는 민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
연구실이 발칵 뒤집힌 건 민호가 훈련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재미없다. 재미없다. 하는 소리는 입에 달고 살던 녀석들의 핸드폰이 울렸다. 둘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형인가 봐.”
냉큼 핸드폰은 낚아챈 토미가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형! 밝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하고 축 가라앉았다. 갑자기 심각해진 분위기에 침대에 누워있던 토마스가 주섬주섬 일어나 앉았다.
“야, 왜 그래.”
“…….”
“토미, 왜 그러냐고!”
“…….”
“야!”
냅다 짜증을 내는 녀석은 날카로운 목소리와 달리 잔뜩 긴장한 듯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토미는 점점 심각해졌다. 대답만 하다 전화를 끊은 녀석을 돌려세운 토마스가 하나하나 캐묻기 시작했다. 낯빛이 잔뜩 어두워진 토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토마스, 형이…….”
“형? 민호 형? 왜?”
“그러니까…….”
“아, 답답해. 빨리 말해봐. 왜 그러는데.”
“훈련하다 다쳐서 이번 대회는 불참하기로 했다고.”
“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몰라. 뉴트 형이 전화 온 건데 일단 알고만 있으라고…….”
“…….”
잔뜩 당황한 둘은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토마스는 눈을 깜박이며 계획을 세웠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났다. 토미가 그런 쌍둥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뭐해. 일어서.”
“응?”
“형한테 안 갈 거야? 지금 출발해도 늦어.”
“아…아니. 갈 거야.”
“연구소 휴가가…아 모르겠다. 그냥 가자.”
이 녀석들은 도통 이 버릇이 고쳐지지 않았다. 둘이 휑하니 사라진 방안을 발견한 사람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그 짧은 개인 시간 동안 어디로 사라진 건지. 전화도 받지 않는 녀석들 때문에 연구소는 또 한 번 난리를 겪고 말았다.
**
“…….”
“형 빨리 할 말 있음 해봐.”
“…….”
“빨리!”
민호가 부목에 붕대를 매고 누워 있는 침대 옆을 점거한 쌍둥이는 잔뜩 화난 표정이었다. 민호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집요하게 따라오는 두 쌍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진짜 뉴트. 이 도움이 안 되는 놈. 이글이글 끓는 속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형!”
“어…그래.”
“우리 약속했잖아!”
“…그랬지.”
“일 생기면 이야기한다며. 근데 이게 뭐야. 왜 다쳤는데 말도 안 하고.”
“그야…….”
잔뜩 화난 둘은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항상 두 녀석한테 뭐라고 하는 입장이던 민호는 갑자기 바뀐 상황에 영 적응을 할 수 없었다.
“너희 걱정할까 봐 그랬지. 그리고 그렇게 큰 부상도 아니고, 예전에 다쳤던 발목 염좌가 다시 생긴 것 뿐이라니까.”
“…….”
“초기 치료도 다 했고, 어차피 다친 김에 몸 좀 조심하라고 대회 참가 안 하기로 한 거고.”
“…….”
“그래. 내가 잘못 했다.”
“형 진짜 나빴어.”
볼이 터질 듯 부어오른 토미가 툴툴거렸다. 그러면서도 민호가 싫진 않은 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허리를 잡고 매달리는 녀석과 아직도 잔뜩 화가 난 토마스를 번갈아 상대하느라 없던 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약속도 안 지키고.”
“그래. 그래. 내가 잘못 했어.”
“다치고.”
“그것도 내가 나빴네.”
“우리 마음도 몰라주고.”
“그래. 그것도…뭐?”
민호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다시 물어봐도 둘은 조개처럼 입을 다문 체 다시 말해주지 않았다. 민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열 살도 넘게 차이 나는 녀석이 하는 말에 말려들어서 이러는 것이 어른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는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