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큰둥하게 뒤돌아 누운 민호의 등은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미 커다랗게 몸집을 불린 두 녀석은 안절부절못하며 민호 등 뒤에 앉아있었다. 키는 이미 민호와 비슷해지고, 힘도 제법 겨룰 만큼은 됐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어린애인지, 민호가 대꾸도 안 하고 돌아 누워있는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형이 왜 이러지.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 똑같이 생긴 머리 위로 한가득 떠오르는 물음표는 점점 많아지더니 천정을 가득 채울 만큼 부풀어 올랐다.
“…….”
“형.”
“왜.”
“우리가 잘못 했어.”
“…뭘 잘못했는데?”
“그러니까…그게…….”
“그것도 모르면서 사과부터 하려고?”
“…….”
민호가 일어나 앉았다. 제법 엄하게 말하자 또 비 맞은 강아지처럼 몸을 웅크린다. 물론 이 웃긴 상황을 보는 사람마다 민호가 잘못했다며 한마디씩 보탰다. 예를 들어 뉴트라던가.
“우리 그래도 할 일도 다 하고 왔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민호가 싸늘하게 말하면 꼭 이렇게 말끝이 사라진다. 한 두 번 그랬으면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을 텐데, 쌍둥이들은 정말 말주변이 없었다. 하긴 민호가 이 정도로 화를 내는 상황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사고를 친다 해도, 머리 한 대 쥐어박거나 잔소리 조금 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오늘은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단단히 혼을 내주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니까…….”
“누가 말할래?”
“…….”
또 둘이 눈을 데록데록 굴리면서 눈치를 본다. 똑같이 생긴 짙은 샴페인 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고민을 툭툭 털어낸다.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할까. 형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둘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뻔했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민호가 조금이라도 화를 덜 낼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 컸다면 다 컸고, 어리다면 어린 나이인 녀석들은 언제나 이렇게 고민이 많았다.
“토마스가 할래?”
“…….”
“토미가 할래.”
“…….”
입이 붙었는지. 민호만 보면 다물지 못하고 재잘거리는 입은 꾹 다문 채 눈만 깜박거렸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침대에 은은하게 스며드는 햇살이 가득 걸린 속눈썹 두 쌍을 바라보던 민호는 아차 싶었다. 또 이렇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흐지부지 넘어갈 뻔했다.
“내가 할래.”
토마스가 먼저 나섰다. 민호는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길고 긴 변명과 사실을 주야장천 떠들던 녀석이 먼저 나가떨어졌다. 그런 쌍둥이를 보던 토미는 뭔가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민호의 눈에 시선을 맞추며 눈만 깜박거렸다. 나한테 물어보지 마. 형. 그 안타까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한 민호는 곧 토미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둘에겐 정말 죽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
“뭐야. 왜 그렇게 한숨을 쉬고 그래.”
“애들이…말을 안 듣잖아.”
“그래. 내가 그 이야기 할 줄 알았다.”
“…….”
뉴트는 내내 한숨을 쉬는 친구의 얼굴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무거운 걸음을 뗐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것 따위였다. 저 녀석은 어떻게 해야 하지. 뉴트도 걱정이 깊었다.
내 친구가 이렇게 팔불출은 아니었는데. 뉴트 기억 속의 민호는 똑 부러지고, 무뚝뚝하지만 자기 할 일은 찾아서 하는 녀석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업어 키우다시피 했던 녀석들에 대한 걱정이 도가 지나쳐서, 지금 약간 일의 경중을 따지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뉴트는 그런 민호를 보며 빙긋 웃었다. 이미 반 쯤 녹아버린 얼음은 커피를 밍밍하게 만들었고, 컵에 달라붙은 물방울은 뚝뚝 소리를 내며 탁자에 떨어졌다. 지지부진한 대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뉴트가 먼저 의자에 허리를 기댔다.
“저기…민호.”
“응?”
“넌 걔들이 몇 살 일 거라 생각해?”
“…무슨 소리야?”
갑자기 멍해지는 표정을 보던 뉴트가 또 웃었다. 쌍둥이들이 연구소 일이 끝나자마자 민호한데 연락을 할 때까진 약 한 시간. 그리고 이곳까지 달려오는 덴 삼십 분. 이야기를 마치기엔 적당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여전히 물기 어린 컵 표면만 만지작거리는 민호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걔들이 몇 살로 보이느냐고.”
“그야…….”
민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눈을 깜박거리더니 입술을 혀로 슥 쓸었다. 일분. 이분. 결국, 참지 못한 뉴트가 또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넷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이러다가 다들 제 명에 못 살 거라며 농담을 해댔다. 사실 오지랖이 넓은 것은 비단 민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쌍둥이들 벌써 내년이면 성인이야.”
“…….”
“지금은 고등학교 다닐 나이고.”
“…….”
“네가 자꾸 어린애 취급하고 눈높이 교육을 하려고 하니까 걔들도 자꾸 거기에 맞춰서 어리광만 느는 거잖아.”
“…….”
“안 그래?”
“그런가.”
아이고 답답아. 뉴트는 당장 입에서 불을 뿜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물론 처음 만났을 땐, 저 녀석들이 조그마하고 뽀얗고 귀엽고. 이랬던 것 인정한다. 하지만 그때부터 십 년도 넘게 지났는데, 민호의 머릿속엔 언제나 저 두 녀석은 어린애였다. 그것도 열두 살이나 차이가 나는 띠동갑 어린애 말이다. 하긴 퍽 귀여울 나이였다. 민호는 이미 나이를 많이 먹은 어른이었고, 저 둘은 막 살아 올라오는 십 대 아닌가.
하지만. 뉴트는 민호의 머릿속에 박힌 어린애 공식을 깨주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무리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 해도 성인을 성인 대접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팔자에도 없는 아동학을 공부하게 생긴 뉴트는 눈앞에 보이는 소꿉친구의 얼굴을 보자, 어쩐지 옆구리를 대차게 찔러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른을 어른으로 대해주면서 잘 해보라고.”
“…….”
“계속 아이처럼 대하면 너희한테 남는 게 뭐냐.”
“…그러네.”
의외로 쉽게 수긍한다. 물론 금방 바뀔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토미가 워낙 애교가 많은 타입이었고, 둘이 똑같은 얼굴과 표정을 한 채 누군가를 바라보면 다들 흐물흐물 녹아내리곤 했다. 물론 이 똑똑한 녀석들은 그런 걸 알고 영악하게 써먹었다. 대부분 민호에겐 통하지 않았지만. 또 심각해진 민호의 얼굴엔 수심이 떠날 줄을 몰랐다.
“…아.”
뉴트의 시선이 탁자 위 핸드폰으로 옮겨갔다. 웅웅 소리를 내며 진동하는 핸드폰의 발신인은 안 봐도 뻔했다.
“네 새끼한테 전화 왔다.”
“아니라니까.”
“그냥 인정해라. 애 아빠.”
“…….”
자신을 한번 흘겨보며 전화를 받는 것을 보고 나서 뉴트는 커피 컵을 들고 일어섰다. 그럼. 실례. 이 정도로 찔러줬으면 알아서 해야지. 그런 생각이었다. 통화가 길어질 것은 분명하고, 아마 끊을 때쯤 되면 쌍둥이들이 이곳에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다.
‘…이런 걸 다 알고 있는 나도 큰일 아닌가.’
어쩐지 민호보다 민호의 일정을 더 잘 알아버린 뉴트는 괜히 입맛을 다셨다. 망할 친구 녀석 때문에 여럿 고생한다며 혼잣말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
“그러니까. 우리도 잘할게.”
“…응?”
“연구소 일도 열심히 하고, 프로젝트도 안 빠지고. 형이 원하는 거 이거 맞지?”
“그야…그렇지.”
“그러니까. 다 열심히 할 거라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 둘은 사뭇 진지했다. 물론 손에 들고 있는 초코 드리즐이 가득 뿌려진 스무디는 별로 안 진지해 보였다. 보통 어른은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한다고 커피를 사달라고 했다 된통 혼나고 얌전히 초콜릿 음료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