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녀석이 얼마나 귀찮게 하고 옆에서 치댔는지, 잔뜩 지친 민호는 그날 끙끙 앓았다. 더 놔두면 민호가 발목이 낫기도 전에 몸살로 앓아누울 것이란 사실을 확신한 뉴트는 간신히 둘을 손님들이 쓰는 방으로 데려갔다. 물론 얌전히 간 것은 아니었지만, 다친 사람 옆에서 바짝 누워서 잘 수 없다는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일어나서 올게. 형.”
“그래. 그래.”
“언제쯤 낫는 거야?”
“그야 나도 모르지.”
“…….”
“그리고 당장 낫는다 해도 한참은 조심해야 해.”
“그런가.”
“당연하지. 이것들아. 이러다 또 다치면 정말 큰일 나는 거야.”
“알았어.”
잘못하면 더 다친다는 소리에 심장이 떨어졌는지, 둘은 얌전히 물러섰다. 방금까지 팔을 잡고 늘어지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잔뜩 긴장한 표정의 둘을 보던 민호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 말 한마디 했다고 곧이곧대로 믿는 놈들을 어떻게 귀여워하지 않을까.
“그럼 얌전히 둘이 자고 내일 만나자.”
“응.”
“…잠깐. 그런데 말이야.”
“응? 왜?”
“너희 여기 온 거 말을 하고 왔어?”
“…….”
“설마…….”
“잘 자. 형! 내일 봐!”
토마스가 재빠르게 토미의 뒷덜미를 덥석 잡았다. 잠깐 난 아직 인사 안 했어! 조용히 하고 따라와! 토미 귓가에 으르렁거리듯 속삭인 녀석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 정도로 입을 다물 토미가 아니었지만, 그리고 질질 끌고 방을 빠져나갔다. 놔! 토마스! 야! 한참 시끄러운 목소리가 얽히는가 싶더니 점점 멀어졌다.
물론 주변에 있던 어른 중 누구도 둘을 말리지 않았다. 익숙하게 옆에 붙은 선수가 저쪽으로 가라며 둘을 쿡쿡 찔렀다. 고개를 꾸벅 숙인 녀석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와글와글 떠들며 민호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민호. 애들 울겠다. 아주.”
“뭐, 사실이잖아.”
“애들이 네놈이 좋아서 그러는 건데, 도대체 왜? 일부러 그러는 거냐?”
“아니야.”
“아니긴 뭘.”
“실제로 다치면 손해 보는 건 이쪽이잖아. 나도 괜히 아픈 모습 보이기 싫다고.”
“애 아빠 다됐네.”
아니 잠깐. 민호가 잠시 대화를 끊고 낄낄거리며 웃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이놈들이. 하여튼 조금만 틈을 보이면 놀리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그런 민호의 표정을 본 녀석들이 또 한 번 웃으면서 어깨를 팡팡 쳤다. 아악.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건 그렇고, 저 녀석들 어쩌지.”
“뭘 또? 왜 애 아빠 짓이야.”
“또 말 안 하고 여기로 날아온 거 같은데…괜찮을까?”
“…….”
“아무리 봐도 애들 표정이 거짓말한 거 걸렸을 때랑 똑같단 말이지.”
“잘도 아네.”
뉴트가 한마디 거들었다. 물론 뉴트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민호가 저렇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재밌으니 맞장구 정도만 같이 쳐주기로 했다.
“그러니까…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은데.”
“생각해보니까 저번에도 그랬었지.”
“그래.”
“…또? 그 녀석들이? 참 어리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그래. 또 저렇게…….”
민호는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저번에 멋대로 일주일 내내 연구소를 비웠다가 뒷목을 잡혀 끌려갔던 녀석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또 그럴 줄이야. 어쩐지 다리보다 머리가 더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
그 옆에서 그런 민호를 바라보던 뉴트는 내내 재밌는 눈치였다. 항상 진중하고 말도 없던 녀석이 저 둘만 나타나면 허둥거리는 모습이 볼만했다. 물론 뉴트가 나서서 알려준 것이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저번처럼 또 끌려갈 때까지 놔두지그래.”
“뭐? 무슨 소리야.”
“어차피 저 녀석들은 가라고 해도 너한테 붙어서 안 떨어질걸?”
“…….”
“맞지?”
“그러네.”
나름 심각해졌다. 하긴 저번에도 그렇게 안 가도 된다고 그렇게 떼를 쓰다가 끌려간 전적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제대로 된 절차를 밟고 온 것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 녀석들을 데리고 가십시오 하면서 연구소에 전화하기도 뭐했다.
형! 어떻게 그래요! 둘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잔뜩 배신당한 표정으로 바라볼 둘을 생각하니 분명 해야 하는 일이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쌍둥이한테만 유난히 물렁물렁하게 대하는 민호를 잘 아는 뉴트는 웃기만 했다.
“일단 자고 일어나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그렇게 간단하게.”
“하지만 지금 끙끙거린다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잖아? 이 시간이면 다들 퇴근하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
“일단 좀 자라. 너 그러다 염증 생기면 더 고생한다.”
뉴트가 말을 끝내자마자 사람들을 휘휘 몰아냈다. 간신히 혼자 남게 된 민호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어서 얌전히 잠이나 자기로 했다. 영 잠이 안 오는지 이리저리 뒤척거리던 민호가 겨우 조용해졌다.
***
그리고 민호가 일어나고 나선 예상외의 일이 생겨있었다. 생글거리며 민호 옆에 들러붙은 녀석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내 기쁜 빛을 감추지 않았다. 슬슬 불안해지는 민호는 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형 왜 그래.”
“너희 둘 무슨 일이 있었냐?”
“응?”
“왜 갑자기 이렇게 신나.”
“…….”
“나 화 안 낼 테니까. 말해봐.”
“…….”
둘은 또 얌전해졌다. 그리곤 둘이 뭔가 눈빛을 주고받더니, 민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 같이 휴가 가요. 형.”
“응?”
“같이 갈 거죠?”
“아니. 잠깐 이게 무슨 소리야.”
“어제 연구소에 통화해서 허락도 받았는데, 어차피 형도 이번 대회 안 나가고, 발목도 치료해야 한다면 서요.”
“그렇긴 하다만…이게 무슨.”
“감독님. 맞죠? 저희랑 형 놀러 가도 괜찮은 거죠?”
언제 왔는지, 감독님이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셋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민호는 짧게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쩐지 이번 휴가가 끝나면 엄청나게 굴러다녀야 한다는 사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냥 좋은 둘을 끌어안은 채 감독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뉴트는 기왕 가는 거 즐기고 오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좋겠네. 휴가 얼마 만이냐?”
“어디로 갈진 모르겠지만, 올 때 선물이나 사와라.”
“다들…진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잘 쉬다 오도록 해.”
“감독님…….”
이젠 민호에게 남은 아군이 없었다. 민호는 발을 다쳤고, 저 꼬맹이 녀석들은 면허가 없었다. 도대체 뭘 얼마나 떼를 썼는지 위키드에서 셋을 위해 차를 보내줬다. 민호는 잔뜩 민망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런 민호를 가운데 두고 양 옆자리를 차지한 녀석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형 사실 수영은 할 수 있는 거죠?”
“뭐?”
“총장님한테 위키드에 소속된 별장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이 녀석들이…정말 그런 소리를 했다고?”
“왜요? 가끔 다른 누나들도 놀러 가는 곳인데.”
“…….”
어쩐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민호는 그냥 반쯤 체념한 표정으로 얌전히 시트에 등을 기댔다. 여름 휴가를 얼마나 길게 잡았는 진 모르겠지만, 어쩐지 순탄치 않을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었다. 두 녀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재잘거리며 민호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