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민호/토민호] Full of happiness 001
+) NOTICE
플레어 걱정없는 현대 AU
위키드 토마스와 글레이드 토마스가 쌍둥이로 나오는데 형제 둘이 민호를 많이 좋아합니다.
실제 영화와 본 회지상의 나이 설정이 다릅니다.
첫 만남은 토마스 형제가 5살 , 민호가 17살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책이 나와도 샘플은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Full of happiness 001
“누구?”
“…….”
“이상한 녀석들이네.”
“…….”
사고뭉치들을 처음 만난 것은 3월의 마지막에 해가 걸쳐있을 무렵이었다.
아침부터 옆집이 시끌시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시하고 조금 더 자려 했지만, 뭔가 옮기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아.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소리가 조금 줄어든 것 같아 빨리 잠이 들고 싶었다. 하지만 5분 뒤 커다란 가구가 끌리는 소리가 다시 귀를 파고들었다.
“…….”
시끄러워.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침대에서 뒤척거리던 민호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일어나 앉았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지. 잠이 잔뜩 붙은 얼굴로 눈만 깜박이던 민호가 조용히 귀를 쫑긋거렸다. 도대체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남자들의 대화 소리. 뭔가 끌리는 소리. 벽을 사이에 두고 조금씩 흘러들어오는 소음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뿐이었다. 잠깐 소리가 그쳤을 뿐인데, 잠이 솔솔 왔다. 민호는 베개를 껴안은 채 한참 꾸벅꾸벅 졸았다. 안 그래도 며칠 동안 내내 늦게 잔 터라 잠이 부족했는데, 밖에서 아침부터 꿀 같은 잠을 깨우니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졸려.”
좀 더 잘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다시 꿈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순간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민호 아직도 자냐!”
“아…제발.”
“민호!”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민호의 방으로 자연스럽게 뚜벅뚜벅 걸어오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민호는 목 안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베개를 안고 거꾸로 쓰러진 민호가 끙끙거리며 다리를 움직였다. 하나. 둘. 셋. 벌컥. 꼭 셋을 세고 났을 때, 문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열렸다. 자는 척을 해보려 했지만, 물론 그런 것이 통할 리 없었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녀석이 민호의 목을 꽉 누르며 웃었다.
“아직도 자냐. 어제 뭐 했어.”
“…뭐하긴. 할 일 하다 잤지.”
“무슨 일이 그렇게 새벽에만 있으실까.”
“야!”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있던 민호가 벌떡 일어났다. 눈썹이 바짝 올라간 것을 보니 정말 짜증이 난 것 같았다. 그런 얼굴을 보던 뉴트가 그럴 줄 알았단 표정으로 웃었다. 아, 또 말렸다. 항상 이런 식으로 당하고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뭐, 맞는 소리잖아.”
“…….”
“그렇게 좋을 대로 뒹굴 거리면 몸 다 망가진다? 네? 장거리 유망주 씨?”
“내가 무슨 일주일을 놀았냐, 사흘을 놀았냐. 운동 빼먹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삼십 분만 더 자자고. 나 아침부터 옆집이 시끄러워서 제대로 못 잤단 말이야.”
“시끄러울 만하지. 이사 오던데.”
“…이사?”
“몰랐어.”
“응.”
뉴트는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민호는 이제야 뭔가 알 수 없는 대화와 소음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하나하나 아귀가 맞아 들어갔다. 그렇구나. 민호는 괜히 머쓱했다.
“어디에다 정신을 빼놓고 다니면 옆집에서 일어난 일은 내가 먼저 알고 있냐.”
“그럴 수도 있지. 어젠 별소리 없었단 말이야.”
“당연히 그랬겠지.”
“…….”
“이 정도면 잠 깼지? 일어나.”
“진짜 못 당하겠네.”
민호는 느릿느릿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미 한발 먼저 일어나 민호가 일어나길 기다리는 뉴트의 표정은 웃음이 가득했다. 이 녀석이야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낸 터라 이런 일은 익숙했다. 예전엔 옆집에 살아서 심심하면 같이 만나서 달리기하러 가곤 했는데, 몇 번 이사하고 학교가 갈라지다 보니 좀 애매해진 감이 있었다. 물론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였지만, 옆집에 딱 붙어살던 때와는 조금 달랐다.
잔뜩 뻗친 머리카락을 손으로 슥슥 정리하는 민호를 보면서 뉴트는 또 한마디 잔소리를 했다. 오늘은 자율 연습 아니야? 잔뜩 볼멘소리하던 민호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늘 그렇듯 부모님은 아침부터 일하러 가셨는지, 집은 텅 비어있었다. 뭐라고 먹고 나가야 할 텐데. 익숙하게 민호네 냉장고를 뒤지던 뉴트는 영 먹을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점점 심각해졌다.
“먹을 거 없을 걸? 오늘 마트 들린다고 하셨는데.”
“그러게. 아무것도 없네. 계란 두 개 있다.”
“그걸 누구 코에 붙여.”
“하긴 그러네. 뭐 사 먹고 갈까?”
“가는 길에 햄버거나 먹고 가자.”
“저렇게 먹고 싶은 거만 먹다가 체중 오버 나야 정신을 차리지.”
“너나 신경 써.”
뉴트가 냉장고 문을 닫았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해도, 이 집에 남아있는 재료로 할 만한 요리가 딱히 없었다. 별수 없네. 이미 익숙한 투닥거림이었다. 기다려봐 나 옷 좀 갈아입고. 민호가 의자에 일어섰다. 길쭉길쭉하게 뻗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근육을 풀었다.
사실 따지자면 아침잠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꼭 이렇게 뉴트가 집으로 오는 것을 기다렸다. 민호 말로는 어릴 땐 자기가 매일 데리러 가지 않았느냐고 변명했지만, 뉴트는 그저 이 상황이 웃긴 모양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느긋하게 등을 기댔다. 빨리해. 빨리. 입으로만 재촉하는 뉴트는 내내 입꼬리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몰랐다.
뉴트랑 민호는 약간 다른 종목을 연습하고 있지만, 이미 선수들 사이에선 유명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부터 같이 시작하고, 항상 둘은 상위권 기록을 냈다.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둘은 항상 눈길을 끌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당장 스카우트 하려고 벼르고 있는 에이전시도 많았다. 묘한 소꿉친구는 마을 안에서도 꽤 명물이었다. 점점 시끄러워지는 소리에 뉴트가 감고 있는 눈을 살짝 떴다.
“시끄럽긴 하네.”
“내 말이 맞지?”
“하지만 그게 네가 늦장을 부려도 되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니지. 안 그래?”
“뉴트 넌 내 소중한 친구지만 그렇게 정색하면서 말할 때마다 한 대 치고 싶어.”
“치던가?”
“아, 진짜.”
“넌 이기지도 못하면서 꼭 그러더라.”
뉴트는 오늘도 말로 민호를 이긴 것 같았다.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옆에 내려놨던 가방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각각 반대쪽 어깨에 가방을 멘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집을 빠져나갔다. 입맛도 다르고, 주 종목도 다르고. 찬찬히 뜯어보면 얼굴도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친해졌는지. 서로 어울려 다니는 둘을 볼 때마다 주위에서 하는 말이었다.
“…아.”
민호가 힐긋 옆을 돌아보니 여전히 가구를 옮기느라 바쁜 사람들이 보였다. 거의 막바지인지 자잘한 생활 도구가 끝없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사를 오는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인사라도 해야겠네. 막연하게 생각을 하던 민호는 옆구리를 퍽퍽 치는 뉴트에게 가방끈을 잡힌 채 반강제로 그곳을 벗어났다. 안 그런 척 하지만 분명 저 녀석이 배가 고팠던 것이 틀림없었다.
“너도 아침 안 먹었냐?”
“당연하지.”
“어쩐지 서두르더라.”
“이 정도 알고 지냈으면, 눈치껏 행동해야 하는 거 아냐? 난 세트.”
“나도.”
“사람이 별로 없길 기도해야겠네.”
“이 시간에 뭐 그렇게 많을까.”
낄낄거리며 뉴트의 어깨를 콱 잡았다. 귀찮게. 짧게 타박하는 것도 익숙했다. 둘이 골목을 벗어나고 한참이 지나도 이사가 끝나지 않았다.
***
자율 연습이지만, 훈련을 받는 것만큼 힘들었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며 결승선을 통과한 민호가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으아아. 숨이 차 거칠게 오르내리는 가슴은 좀처럼 진정할 줄 몰랐다. 힘들고 숨이 차서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내내 헉헉거리는 민호는 트랙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몇몇 선수들이 그런 녀석을 흘낏 쳐다보며 지나갔다. 민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쯤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하늘만 바라보았다. 뛰고 나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고, 한 번에 피곤이 몰려왔다. 온몸이 찌르르 울릴 정도로 근육이 아팠다. 달리기 편하게 짧고 달라붙는 재질인 트레이닝 복에서 늘씬하게 뻗은 팔다리엔 근육이 붙어 탄탄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다 못해 줄줄 흘러내렸다.
‘물 마시고 싶다.’
생각은 하고 있지만, 움직이기 싫었다. 누가 물통 하나 던져줬으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뒤통수 너머에서 들렸다.
“민호. 기록 더 좋아진 거 같은데? 아니야?”
“뉴트?”
“응.”
“넌 네 연습은 안 하고 남의 기록이나 신경 쓰고 있냐.”
“난 끝났지.”
“…….”
뭐라고 한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바짝 마른입이 계속 물을 찾았다. 목마르다. 민호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은 채 뉴트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애초에 움직일 만한 기운이 남아있지도 않았지만.
“물 좀 줘봐.”
“이럴 땐 줘봐 가 아니고 주세요 라고 하던가 아니면 뮬 좀 주실래요 라고 해야지.”
“야!”
“짜증은. 여기 있다.”
해가 그대로 내리쬐는 민호 얼굴 위에 찬물을 적신 수건을 덮어주고. 트랙에 늘어진 손에 물통을 쥐여 줬다. 차가운 물통이 손에 들어오자 그 부분부터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나서 땀과 먼지투성이인 얼굴을 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급하게 물통에 입을 댔다. 아. 이제야 살 것 같았다. 한참 물을 마시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찬 수건을 목에다 걸고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뱉었다. 탄탄한 목덜미에 차가운 물이 콸콸 쏟아졌다.
“아 차가워! 야!!”
“시원하지 않아? 너 해주려고 따로 가져온 건데.”
“너, 진짜. 한다고 말 좀 하고 하면 안 되는 거냐?”
“그래도 시원하지?”
“…….”
“시원하지?”
“그래. 시원해서 죽겠다.”
사실 열로 잔뜩 달아오른 몸을 한 순간에 식혀준 물이 고맙긴 했다. 민호의 상체가 다 젖도록 물을 탈탈 부어버린 뉴트가 저 멀리 물통을 던져버렸다. 캉. 캉. 트랙에 부딪히며 물통이 저 멀리 굴러갔다. 민호의 턱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트랙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진한 자국을 만들었다. 뜨거운 열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런 민호의 등에 다리를 올리고 몸을 풀던 뉴트는 결국 한 소리 들으며 때아닌 추격전을 벌였다.
뭐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인지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
“간다?”
“그래. 내일도 늦잠 자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 민호.”
“…….”
“그리고 옆집에 누가 이사 왔는지 알려주고.”
“알 수 있으면. 그렇다고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얼굴을 보자 할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네. 나 인제 간다?”
“그래. 내일 보자.”
헤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어차피 내일 훈련하러 가거나, 학교에 가면 또 볼 녀석이었다. 지금은 방학 중이니 딱히 학교에선 만나지 않겠지만. 중간에 학교가 한 번 갈라졌다가 다시 만난 터라, 더 친해진 것도 있었다. 방학이라고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니 민호는 좀이 쑤셨다. 물론 달리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주일 내내 같은 스케줄이 적혀 있다는 것이 좀 지겨울 뿐이었다. 물론 하루만 달리기를 안 해도 영 찝찝하다며 뛰쳐나가겠지만.
“내일은 훈련 내용이 뭐더라.”
해가 노을을 만들며 건물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긴 그림자를 데리고 있었다. 민호는 이젠 눈감고도 찾아갈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조금 피곤하기도 했고, 빨리 돌아가서 누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 피곤해. 하품이 절로 나왔다. 한 손으로 들고 있던 가방을 좀 더 바투 들었다. 잔뜩 물을 먹은 옷은 무겁기만 했다.
“음?”
문을 열려고 자연스럽게 열쇠를 찾고 있는 민호의 시선에 뭔가 까만 것들이 걸렸다. 애써 무시하고 가방을 뒤지고 있으니, 자꾸 가까이 오는 인기척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결국, 가방을 옆으로 치우며 아래를 내려다보자 낯선 녀석들이 있었다.
“누구?”
“…….”
“뭘 그렇게 쳐다봐.”
“…….”
“이상한 녀석들이네.”
똑같이 생긴 두 녀석이 서로 손을 잡은 채 한군데 뭉쳐서 커다란 눈으로 민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 눈엔 낯선 것을 바라보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민호는 애써 미소를 띠며 다시 한 번 물어봤지만,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뭐지?”
“…….”
똑같은 얼굴로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은 녀석들이 서로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그러더니 서로 힘을 합쳐 문을 열었다. 키가 약간 모자란 지 까치발을 하고 낑낑거리며 문을 여는 것이 좀 귀엽기도 했다. 겨우겨우 문을 여는 데 성공한 녀석들이 문에 매달린 채 또 한 번 민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민호는 사실 어린 아이들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동생도 없어서인지, 오히려 친구나 어른과 어울리는 쪽이 편했다. 하지만 이제 내내 봐야 할 이웃 사촌인데, 인사라도 한마디 건네야 할 것 같았다.
“이사 왔어?”
“응.”
“이름이 뭐…….”
“…….”
물론 민호의 다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곤 다시 얼굴도 안 보여준 채 쌩하니 집 안으로 사라졌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잠깐 들릴 분이었다. 동글동글하고 작은 뒤통수를 따라가던 시선이 닫혀버린 문에 막혀버렸다. 아. 민호는 혹시 자기가 뭔가 잘못했나 싶어 뒤통수를 문질렀다. 잠깐 밖에 서서 기다렸지만, 다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집이 이사를 왔네.’
민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적당히 빨랫감을 세탁기에 던져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조금 남아있는 과자를 꺼내서 우물거리며 소파에 늘어져 있으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바꿔봤지만, 재밌는 것은 하지 않았다. 지루하게 흘러나오는 광고를 자장가 삼아 막 잠에 빠지려는 순간 현관문이 다시 열렸다. 다리를 번쩍 들었다 튕기듯 일어난 민호가 현관을 쳐다보며 웃었다.
“오셨어요?”
“왔니? 오늘은 조금 일찍 온 모양이구나.”
“자율 연습이라 적당히 하다 왔지 뭐.”
“저녁은?”
“아직요.”
자연스럽게 마트 쇼핑백을 받아든 민호가 부엌으로 걸어갔다. 이것저것 물건을 꺼내고 정리하는 손길이 익숙했다. 뉴트가 왔을 땐 텅텅 비어있던 냉장고에 음식과 재료가 가득 찼다. 뭔가 뿌듯한 얼굴로 냉장고 문을 닫은 민호는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간단한 재료 준비를 돕던 손이 잠시 멈췄다. 손엔 껍질을 깎다 만 감자가 들려있었다. 잠시 뭔가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엄마.”
“왜 그러니?”
“옆집 이사 온 거야? 아까 자다가 시끄러워 깼는데.”
“그래. 아침에 나가다 이사 온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시간이 꽤 걸린 모양이네.”
“그런가 봐”
잠시 대화가 끊기니 그 빈 공간을 통통 야채를 써는 칼 소리가 채웠다. 민호도 남은 껍질을 마저 깎았다. 뽀얗게 속살을 내민 감자를 한데 모아놓은 민호가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엄마가 조금 더 빨랐다.
“애들이 쌍둥이더라.”
“쌍둥이?”
“그래. 저 나잇대 애들은 안 그래도 눈만 떼면 사고 치는데, 애가 둘이니 저 집도 힘들겠어.”
“…그랬구나.”
아. 민호는 그제야 왜 똑같은 녀석이 둘인지 알아챘다. 어쩐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귀엽다는 생각보다 사내애가 둘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시끄럽겠다.”
“너도 뉴트랑 붙어 다닐 땐 시끄러웠어.”
“…….”
“다들 쌍둥이 아니냐고 했던 건 생각 안 나니.”
“뭐…그러니까”
민호는 괜히 말을 우물우물 집어삼켰다. 저런 말을 들으면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어릴 적 둘이서 사고를 안 쳤다고 말하면, 엄마한테 미안했다. 얼마나 활동적인지, 자기 몸이 다치지 않으면 꼭 어딘가 하나씩 부수고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날이 분명 있었다.
둘은 지겹게도 무릎을 갈았다. 달리다가 넘어지고, 놀다가 굴러서 항상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손바닥보다 더 큰 밴드를 무릎에 붙이고 절뚝거리는 민호 옆엔 항상 뉴트가 있었다. 그런 둘은 다들 한데 묶어서 부르곤 했다.
“…….”
여기까지 생각하니, 시끄럽겠다고 말한 것이 조금 미안해졌다. 낯을 가리는 건지 대답도 제대로 안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차피 이웃이 된 거 그래도 좀 잘 지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적당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그런 민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지 뉴트에게 메일이 왔다. 액정에 뜨는 팝업 창을 바라보던 민호가 껄껄 웃으며 잠금을 풀었다.
“와, 이 타이밍 봐라.”
민호는 한 손으로 팔베개를 하고 문자에 답장했다. 남자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직설적인 답장이었다. 몇 번 더 문자가 왔다 갔다 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대화였다. 내일 훈련 일정이라던가. 몇 시에 잘 거냐. 일찍 자라. 알게 뭐냐. 투덜거리면서도 하나하나 답장을 하던 민호가 자판을 누르던 손을 뚝 멈췄다. 방금 도착한 문자를 찬찬히 읽으면서 뭐라고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옆집 애들은 어때?」
뭐라고 해야 하지. 사실 얼굴만 봤을 뿐 그렇게 친해진 것도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는 새 어지간히 궁금한데 연속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아, 이 귀찮은 놈. 민호는 속으로 이를 갈며 자판을 두들겼다.
「뭐가」
「뭐긴 뭐야. 이사 온 집. 어떠냐고.」
「그걸 알아서 뭐하게.」
「궁금하잖아」
「그냥 애들이 있어 쌍둥이.」
「쌍둥이?」
「그래」
민호는 여기까지 답해주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쉼 없이 울리는 진동을 애써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저 녀석은 남의 집 일에 뭐 저렇게 관심이 많은지. 항상 그러진 했지만, 이번엔 쌍둥이란 단어에 반응한 것이 틀림없었다. 징징 울리던 진동이 잦아들 때쯤 민호는 조용히 핸드폰을 뒤집었다. 난 지금 자는 거야. 몇 개나 쌓인 문자 팝업 창이 눈에 들어왔지만, 지금 답해주기엔 너무 말이 길어질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서 귀를 기울여 봤지만, 딱히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 우리가 정말 시끄럽긴 했구나. 자신이 저 나이 정도 됐을 대 집에서 어떻게 하고 놀았는지 생각하던 민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옆집은 꽤 얌전한 아이 같았다.
‘아직 집이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지.’
좀 시끄러워도 귀엽게 봐주리라 마음먹었다. 그 흔한 TV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집은 그저 비어있는 것 같았다. 인기척이라도 들리거나 뭔가 청소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급격하게 졸음이 밀려왔다. 일찍 일어난 탓이라 생각하던 민호는 어느새 꿈속에 빠져들었다. 잠에 막 들려는 그 순간 조용히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반쯤 넘어간 의식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
조만간 꼭 한번 제대로 말을 붙여봐야지. 이 생각을 마지막으로 민호는 완전히 잠에 빠져버렸다.
***
어제 시끄러웠던 만큼, 오늘도 소란스러울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뉴트가 익숙한 듯 집으로 쳐들어올 때까지 옆집은 조용하기만 했다. 사내애들은 보통 뛰어놀거나 장난을 치지 않던가. 괜히 긴장하고 잔 탓에 평소보다 일찍 깬 민호가 어쩐지 억울한 얼굴로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알람이 울릴 때까진 삼십 분도 넘게 남아있었다. 억울해. 베개를 껴안고 다시 자세를 잡으며 누웠지만, 완전히 깨어진 잠은 영영 사라진 건지 눈이 감기질 않았다.
“…….”
이 억울함을 어디에 풀어야 할까. 애써 잠들려고 노력해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민호는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일어났다. 아, 더 자야 하는데. 어제부터 왜 이렇게 아침잠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은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방학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었다. 잔뜩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핸드폰을 들었다. 그제야 어제 답장을 하지 않은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톡톡. 자판을 두드려 짧은 답장을 보내고 참대에 다시 누워버렸다.
“…아, 어제 오늘 나한테 왜 이러냐.”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베개만 쥐어뜯던 민호는 잠시 조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이 완전히 깬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일찍 출근하신다 했다. 꽤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집은 비어있었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반절도 넘게 마신 우유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생긴 이런 애매한 여유 시간엔 도대체 뭘 해야 할까. 민호는 눈을 깜박거리며 거실을 바라볼 뿐이었다.
“올 때가 됐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러더니 익숙한 듯 비밀번호를 누르려 했다. 야, 나 일어나 있어. 민호가 문밖을 향해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끔한 모습의 민호가 문을 열어주자 뉴트는 꽤 놀란 눈치였다.
“웬일이냐?”
“그냥 자다 깼어.”
“뭐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 아침부터 일어나 있는 모습을 다 보고.”
“…….”
“옆집 쌍둥이들 때문에 그래?”
“뭐?”
“어제 답장도 안 하더니.”
이 녀석은 분명 이게 궁금해서 준비하자마자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민호는 잠깐 머리가 아팠다. 미간을 손으로 주무르면서 뉴트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포기할 녀석이 아니었다. 꼬치꼬치 캐묻는 녀석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면서 짐을 챙겼다. 방까지 따라 들어와서 민호의 어깨를 잡은 뉴트가 한 번 더 물어봤다. 사실 이 정도 되면 그냥 말해줄 법도 한데, 그러기 싫었다. 사실 알고 있는 것도 한손으로 겨우 꼽을 만 했지만.
“도대체 쌍둥이가 어떻기에 이렇게 말도 안 해줘?”
“…….”
“너 오늘 이상하다?”
“그런 게 아니고…….”
“아니고?”
또 말려들었다. 아아. 민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면 뭔데?”
“그냥 어린애들이야. 그것도 엄청 어린애들.”
“몇 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뭐야. 어제 인사라도 해본 거 아니었어?”
“내가 언제 그랬어.”
뉴트는 대놓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기껏 궁금해서 일찍 달려왔다고 구시렁대더니, 곧 어린애란 소리에 집중했다. 민호는 어쩐지 일이 귀찮게 돌아갈 것 같았다. 이 녀석이 사고를 치기 전 빨리 데리고 운동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친구를 끌고 집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으며 한숨 돌리려는 순간 뉴트가 눈을 반짝였다. 민호는 이쯤에서 뉴트를 붙잡아야 했다.
“얼굴 궁금해. 애들 볼래.”
“뭐? 미쳤어?”
“너도 얼굴 보는 김에 인사 하면 되겠네.”
“야!!”
민호가 뉴트를 잡아채는 손보다 뉴트가 문을 두드리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쾅쾅. 조용한 아침을 찢으며 울리는 엄청난 소리에 민호는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아니 그대로 장난인 셈 치며 도망가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민호한테 뒷목을 잡힌 뉴트는 내내 웃고 있었다.
‘이 새끼는 여기 살지도 않으면서, 왜…….’
어쩐지 울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소리를 못 들었는지, 옆집은 조용하기만 했다. 장난인 줄 안 건가. 다행이다. 이 순간 흐르는 정적이 이렇게 기쁠 줄이야. 민호는 뉴트를 확 끌어당겼다. 조금이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너 이따 가서 보자.”
이를 꽉 깨물면서 귓가에 한마디를 남기고 가방끈을 휙 잡아당겼다. 왜! 왜! 버둥거리는 뉴트를 끌고 막 한걸음 내딛으려는 순간 옆집 문이 열렸다. 민호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가방 끈을 잡은 민호의 손을 떼려고 하던 뉴트가 빼꼼 열린 문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
“아…저기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
“이 녀석이…….”
“…….”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연실 죄송하단 말을 하던 민호는 이상한 분위기에 주춤주춤 고개를 들었다. 뉴트는 이미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웃다 못해 반쯤 주저앉아있었다. 그리고 민호의 시선이 닿는 곳엔 아무도 없었다.
“…응?”
결국, 주저앉아서 흐느끼기 시작하는 뉴트를 냅다 째려봤다. 저 녀석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따라 시선이 점점 내려갔다. 보통 일반 어른의 키보다 훨씬 아래. 그러니까 민호의 배꼽쯤 오는 높이에 작은 머리통이 보였다. 아. 민호는 그제야 문을 연 사람이 어른이 아님을 깨달았다.
“…시끄러워서 깼니?”
“…….”
“그러니까…아…….”
쌩한 표정으로 민호를 바라보는 녀석은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민호는 어린애 잠을 깨운 건가 싶어서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내가 미쳐. 뭔가 사소한 말 한마디 들리지 않는 어색한 상황은 좀처럼 풀러질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기절하는 것이 나을지 몰라. 온갖 생각이 다 들 무렵 안쪽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토마스 뭐해!”
“…넌 들어가 있어.”
“형! 안녕?”
“어…그…그래. 안녕.”
“둘이 뭐해?”
뒤에서 자기와 똑같이 생긴 녀석을 와락 껴안은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민호를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좀 발랄한 아이가 끼어드니 상황이 나아졌다. 민호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자 아이가 방실방실 웃었다. 하지만 문을 붙잡고 선 녀석은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내내 경계하는 표정으로 민호와 뉴트를 바라봤다. 들어가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기어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온 녀석이 민호를 보면서 눈을 깜박였다.
“형 왜?”
“아니…그러니까.”
“놀아주려고?”
“토미. 들어가 있어.”
“응?”
이 녀석도 만만치 않게 말을 안 듣는 녀석 같았다. 계속 움직이지 않고 문을 잡고 있던 녀석이 타박타박 걸어 나와 똑같은 손을 꽉 쥐었다. 으응. 토마스. 왜.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칭얼거렸다. 하지만 바로 옆에 보이는 쌍둥이의 표정에 금세 시무룩해져서 뒤로 물러섰다. 괜히 작은 발로 바닥을 문지르는 것을 보던 민호는 빨리 이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너희들 이름이 뭐야?”
“뉴트!”
“왜. 어차피 나온 거 통성명이라도 하지 뭐. 난 뉴트고, 저기 옆에 서 있는 시커먼 애는 민호라고 해. 너희는?”
“…….”
“말 안 해 줄 거야?”
“난 토미고, 얜 토마스야!”
“토미!”
“하지만 형들도 이름 알려줬잖아.”
눈을 반짝거리며 한마디 보태던 녀석은 또 축 처진 채 물러났다. 도통 어린아이 같지 않은 표정을 한 토마스가 토미의 손을 잡아끌었다.
“됐어. 들어가자.”
“…….”
“어서.”
“…알았어.”
물론 둘이 집을 들어가긴 위해선 생각보다 높이 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겨야 했다. 쌩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던 아이가 낑낑거리며 손잡이를 잡으려 하는 걸 보던 뉴트가 홀린 듯 다가섰다. 그리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줬다.
“…….”
“도와준 거야.”
“…….”
눈을 깜박이며 뉴트의 얼굴을 바라보던 토마스가 한마디 말도 없이 집 안으로 쏙 들어갔다. 뒤이어 끌려가던 토미가 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시 문 밖으로 몸을 쏙 내밀었다. 그리곤 손을 붕붕 흔들었다.
“형들. 잘 가!”
“그래.”
뉴트가 웃으면서 인사를 받았다. 민호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뒤통수에 한마디 말을 더 얻어맞은 녀석이 아쉬운 표정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뉴트는 그런 민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해. 가자.”
“너…진짜.”
“왜?”
“넌 여기 사는 것도 아니면서 아침부터 그렇게 소란을 피우냐.”
“결과적으론 이웃집끼리 얼굴 텄잖아. 애들 귀엽던데 뭐.”
“말을 말자. 너 진짜…….”
“그, 토미? 토마스? 걘 너 좋아하는 거 같던데.”
“좋아하는 게 아니고 그냥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신기한 거겠지.”
민호가 뉴트의 말을 잘라냈다. 뉴트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저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곤 표정이 어두워졌다.
“근데…말이야.”
“왜!”
“우리 늦었어.”
“…….”
“시간 봐.”
웃으면서 핸드폰을 들이대는 녀석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지금 누구 때문에 늦은 건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더 대책 없는 상황이었다. 소리 없는 비명이 울리더니 엄청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뉴트와 민호는 숨이 턱까지 닿을 정도로 달려서 간신히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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