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MAZE IN THE TRAP 004
+) NOTICE
둘이 멀쩡하게 연애하는게 보고싶어서 시작한 평범한 세계에 대학교 AU 입니다.
플레어는 발병하지 않았고,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세계.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현재까지 전개가 전혀 네이버 톰늍같지 않지만 톰늍임.......쓸쓸
톰늍 대학교 편까지 연재하고 대학교 졸업 이후 버전을 따로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얼굴 한 번 보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그러면 그때 다시 보자고 하지나 말지. 속으로 연신 툴툴거리던 토마스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제법 늦게 찾아온 사춘기는 훤칠하게 큰 남자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가끔 비슷한 머리카락 색만 지나가도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스쳐 지나갈 때는 비슷했지만, 그 누구도 뉴트와 똑같은 색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서 신입생들은 학기 초에 이리저리 참여해야 할 일이 많았다. 오늘도 선배들과 만나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에게 두 팔을 잡혀서 질질 끌려가는 토마스는 혹시나 하고 주위를 빠르게 훑었지만, 역시 오늘도 뉴트는 참석하지 않았다. 집 잃은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꼴을 보던 친구들은 술이나 마시라며 토마스 앞에 잔을 밀어주었다.
“토마스 설마 술 못하는 건 아니지?”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됐네. 마셔야지. 받아. 받아. 너 요즘 표정 진짜 비 맞은 강아지 같은 거 아냐?”
“뭐?”
“뭘 또 발끈하고 그래.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봐라. 다들 그렇게 말할걸.”
“…….”
“도대체 우리 토마스를 이렇게 정신없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지는데. 예쁘냐?”
“…….”
“새끼. 말도 안 해주고.”
“아니…그러니까.”
토마스의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입술에 잔이 닿았다. 마시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그대로 꿀꺽꿀꺽 절반을 비워버렸다. 주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몸은 점점 취해만 가는데, 정신은 반대로 말짱해져만 갔다. 볼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조금만 움직여도 휘청거릴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술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조심히 가라면서 손을 흔들어주는 원수들에게 대충 인사를 했다.
사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실이었고, 잠시 필름이 끊겼다가 눈을 뜨니 침대 위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앞이 핑핑 돌았다. 집에 깨끗한 걸 보니 청소하는 분이 오셨다 가신 것 같았지만, 이 상태로는 제대로 확인조차 하기 힘들었다. 술기운이 뭉클 올라오는 머리를 잡고 끙끙거리며 뒹굴던 토마스가 눈 밑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채 벌렁 돌아누웠다.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았다. 빙글빙글 도는 천장에서 헛것이 보이자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아침을 맞이했다. 옷도 안 벗은 채 뻗어있던 몸이 술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무거웠다. 분명 새벽 내내 꿈을 꾼 것 같았다. 눈을 한번 깜박일 때마다 한 뼘씩 잘려나가는 꿈의 내용은 결국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선배가…나온 거 같았는데.”
이것도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리를 싸매고 간신히 수업에 들어간 토마스는 내내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은 채 수업을 들었다. 점심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아 간단하게 음료수 하나 물고 나오는 길이었다. 넓은 운동장에서 누군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탄탄한 몸이 햇빛을 받을 때마다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생각을 했다. 곧 민호가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모르고 지나쳤다면 그냥 갈 수도 있었지만, 눈에 들어온 김에 가서 인사라도 할까 싶어 발을 돌렸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며 결승점을 통과한 민호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거칠게 오르내리는 가슴에서는 숨소리가 울렸다.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헉헉거리는 민호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트랙 가장자리 나무에 기댄 채 그 모습을 쳐다보던 토마스는 입에 대고 있던 음료수 병을 기울였다. 민호는 토마스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하늘만 바라보았다. 짧고 타이트한 트레이닝 복 아래로 보이는 팔다리가 길고 탄탄하게 뻗어있었다.
“여, 민호. 기록 더 좋아졌다?”
“물통 좀 줘봐.”
“이럴 땐 주세요- 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아, 좀!”
“여기 있다. 망할 녀석아.”
민호 얼굴 위로 수건을 떨어뜨린 사람이 물통을 가볍게 던지자 민호가 익숙한 듯 공중에서 낚아챘다. 땀투성이인 얼굴을 수건으로 닦고 벌떡 일어나서 급하게 물을 마셨다. 원하는 만큼 물을 마시고 나서야 정신이 드는 듯 좌우로 머리를 털었다. 수건을 목에다 걸고 고개를 숙이자 차가운 물이 목덜미로 콸콸 쏟아졌다.
“야!!”
“시원하라고 해주는 서비스거든.”
“뉴트 너, 진짜.”
“시원하지?”
“그래. 시원하다.”
민호의 머리부터 목덜미까지 물 한통을 모두 쏟아낸 뉴트가 웃었다. 턱에 맺힌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뉴트가 살짝 허리를 숙이고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뭐라고 한마디 하기 시작했다. 대화는 길어졌다. 주위를 지나는 학생들은 익숙한 광경인지 눈길 한 번 주고는 각자 갈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토마스는 아니었다. 민호를 보면서 뉴트가 웃던 모습이 눈에 그대로 박혔다. 민호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손을 뻗자 가볍게 옆으로 돌아서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
물론 같은 학년에 일 학년 때부터 학생회를 했다고 하니 서로 친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토마스가 생각하기에 평범한 친구라고 하기에 지나치게 친밀한 모습이었다. 뉴트가 민호의 어깨를 팡팡 치면서 눈을 마주치는 것을 보자 뭔가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민호도 웃고 있었고, 뉴트도 그런 얼굴을 보면서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돌아가던 민호가 자연스럽게 뉴트의 손을 잡아주는 것까지 보고 나서 결국 뒤돌아서고 말았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왜 그렇게 먼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늦게 찾아온 첫사랑은 열병처럼 토마스를 붙잡고 늘어졌다. 물론 반쯤 질투라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민호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몸도 좋고, 게다가 뉴트랑 친하기까지 했다.
신입생들 앞에서는 항상 딱딱하게 할 말만 하고 사라지던 사람이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었다. 토마스 기준으로 친구끼리 하기엔 좀 진한 스킨쉽까지 보고 있자니 머릿속은 잔뜩 저어놓은 휘핑크림처럼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섞여버렸다. 몇 번이나 냉정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될 리가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평소 연구실에 있는 토마스를 아는 연구원들이 지금 이 상태를 보면 그대로 쓰러져서 배를 잡고 웃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분노도 아니고 그렇다고 질투도 아닌 복잡 미묘한 감정을 숨 쉴 때마다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옥죄이다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 굳은 심장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 토마스는 내내 한숨을 쉬면서 걸었다. 연구나 실험으로 한숨을 쉬고 속상해한 적은 있었지만, 이런 인간적인 일로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새 좀 친해진 친구들에게 몇 번이나 민호와 뉴트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하지만 다들 말하는 것은 비슷했다. 새로 얻은 정보는 둘이 어렸을 때부터 이웃에서 살아서 굉장히 친하다는 것이었다.
“민호 선배나 뉴트 선배나 둘 다 인기가 많은데, 애인 하나 안 사귀는 이유가 있는 거지. 안 그러냐?”
“이 자식 또 루머 살포한다.”
“루머 아니라니까. 그럼 왜 애인도 안 만들고 저렇게 둘이 내내 어울려 다니겠냐고. 너네 같으면 안 이상해? 분명 좋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텐데.”
“그렇긴 하지.”
“…….”
“토마스. 안 그래? 넌 또 왜 말이 없냐.”
“아니 난…….”
“난?”
“그냥 두 선배가 많이 친하다 싶어서.”
“친하겠지. 내가 말했잖아. 어렸을 때부터 옆집에 살았대.”
“넌 도대체 그런 걸 어디서 듣고 오는 거냐.”
“다 듣는 구석이 있지. 나 아니면 이런 이야기 누가 해주냐.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
“잘났다.”
또 우울해졌다. 토마스가 그런 기분으로 말하면 눈썹이 축 처지고 아래 속눈썹이 촘촘하게 들어찬 눈이 울망 울망한 강아지처럼 변하곤 했다. 그 얼굴을 보면 웃기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일부러 토마스를 살살 긁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었다.
힘이 하나도 없는 불쌍한 사람을 바라보던 친구들은 우리 친구가 또 이상하다며 작게 웃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웃기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절망스러웠고,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과연 자신에게까지 번호표가 올수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 네가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생각하는 걸 실행해 보지그래?”
“그러기엔 프로세스가 제대로 없잖아.”
“무슨 프로세스야. 사랑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하더라.”
잔뜩 우울해져서 턱을 괴고 있는 토마스는 사실 한참 전부터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고백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당장 얼굴도 못 보는 상태였다. 이 거리감을 줄이지 않으면 될 것도 안될 것이 뻔했다.
“나…간다.”
“그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힘내고. 내일 보자.”
“응.”
비틀거리며 걸어나가는 토마스를 보던 남학생들이 영 알 수 없다는 듯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같은 또래지만 묘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태도를 보면 한참 어린 것 같은 토마스는 천방지축인 신입생들이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집은 여전히 비어있었다. 토마스는 잔뜩 열이 오른 얼굴을 식히려고 오랫동안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냉장고를 뒤져서 맥주 캔을 꺼냈다. 반쯤 먹다가 그것마저 질려 식탁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그냥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이런 현상을 뭐라고 정의하는지 찾아보려 했지만, 마땅히 짚이는 것도 없었다.
“아…모르겠다!!”
소리를 지르며 팔을 쭉 뻗자 손가락 끝에 인형이 툭 걸렸다. 손끝으로 인형을 집어 들었다. 양손으로 들어 올려 반질반질한 단추 구멍 눈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알싸하게 오르는 술기운이 눈가를 아릿하게 만들었다. 분명 눈 밑이 잔뜩 붉어졌을 것이 확실했다.
“뉴트 선배 되게 멋있는데,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는 거 같아.”
“…….”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인형이 대답할 리 없었다. 토마스의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던 인형은 여전히 웃는 표정 그대로 바뀌지 않은 채 자신의 주인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네가 보기에도 선배 좀 멋있는 거 같지 않아?”
“…….”
“그럴 거라고 생각 했어. 뉴트 선배 진짜 멋있어.”
인형을 와락 껴안은 토마스가 작은 인형에 코를 묻고 웅얼웅얼 주정이 섞인 혼잣말을 했다. 보통 때면 맥주 반 캔으로 취하지도 않는 사람이 별일이었다. 몇 번이나 더 대답 없는 대화를 하고 나서야 토마스는 인형을 놔주었다. 아니 손에 힘이 풀려 인형이 알아서 굴러 떨어졌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지도 몰랐다.
✗ ✓ ✗
뉴트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토마스가 선택한 방법은 주위를 맴도는 일이었다. 수업만 끝나면 학생회 실이 있는 건물 근처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물론 이런다고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저번에 민호와 함께 있는 뉴트도 운이 좋아서 목격한 것이 분명했다. 남보다 일찍 학교에 오고 늦게 돌아가는 선배란 사람은 비는 시간 모두를 학생회 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
오늘도 허탕인가 싶어 잔뜩 우울해진 토마스는 차라리 학생회 실에 들어가 볼까 싶었다. 물론 왜 왔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긴 했다. 그래도 정식으로 뽑힌 인턴인데. 뭐라도 시킬 일이 있다면 도와준다는 핑계라도 대려고 생각했다.
“어, 선배다.”
저 멀리서 뭔가 잔뜩 들고 아슬아슬하게 걸어오는 길쭉한 인영이 보이자 토마스의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약간 불안한 특유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조금씩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자 손에 들린 것이 엄청난 양의 종이 뭉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도와줄 법도 한데,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약하게 한숨을 쉬며 서류 더미를 옮기고 있는 뉴트의 얼굴을 본 순간 재빠르게 뛰어간 토마스가 뉴트의 손에서 종이를 받아들었다.
“뭐야.”
그 순간 날카롭게 쳐다보는 뉴트의 눈에선 형형한 분노가 흘러내렸다. 날렵한 눈썹이 잔뜩 치켜 올라가 화가 났음을 명백하게 알리고 있었다. 일단 너무 무거워 보여서 냉큼 빼앗듯 받아들긴 했는데, 토마스는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언제 너한테 도와 달라 했어?”
“…아니…그러니까.”
“내가 도와달라고 했냐고. 신입생.”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면 갈 길이나 가지 왜 되지도 않는 친절을 베풀어? 그 종이 당장 내 팔에 내려놓지 못해?”
“…….”
“그리고 꺼져.”
도끼눈을 뜨고 따박 따박 말하는 뉴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짜증이 묻어나왔다. 물론 토마스는 토마스대로 당황하고 있었다. 연구소에선 누군가 도움을 주면 고맙다는 소리가 일반적이었다. 무거운 것이 있으면 서로 돕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토마스는 왜 저렇게 날카롭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뭔가 잘못한 것이 있는 거 같은데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빠르게 깜박이면서 들고 있던 종이를 좀 더 움켜잡았다. 여기서 다시 팔에 내려놓으면 다시는 뉴트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학생회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뉴트가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하기 전엔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주지 않는 것이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뉴트가 하도 히스테리를 부려서 그러면 안 되는 일이긴 했지만 알비가 학생회 임원들을 불러 따로 부탁했다. 제대로 된 이유도 듣지 못하고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임원들 뒤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민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뉴트를 바라보았다.
잔뜩 화가 나서 거친 숨만 내쉬던 뉴트가 아무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눈 주위를 문질렀다. 아주 짧은 행동이라 민호 외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일 년도 넘게 지켜오던 불문율을 덥석 깨버린 토마스에게 화를 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입생. 내 말 안 들려? 내가 웃기냐? 종이 내려놓고 꺼지라고! 누가 도와달라고 했니?”
“…….”
토마스가 당황하면 나타나는 특유의 표정이 얼굴에 나타났다. 눈을 깜박이고 입술을 꾹 물었다. 뉴트보다 머리 하나는 큰 토마스가 안절부절 하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렇게 날카로운 대치상황이 계속되었다. 뉴트도 스팀이 오른 머리가 조금 진정이 되자, 조금 심했나 싶어 눈앞에 신입생을 바라보았다.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모습에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일부러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정말 놀랐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눈만 꿈뻑거리는 멀대같은 녀석을 보고 있자니 좀 모자란 아이인가 싶어 짠해지기까지 했다. 제 성질에 못 이겨 한 손으로 거칠게 자기 머리를 헝클어뜨리던 뉴트가 입을 열었다.
“됐다. 너도 모르고 그런 거겠지.”
“…….”
“내가 부탁한 셈 치자. 들고 따라와.”
“네?”
“싫으면 꺼지던가.”
“아뇨.”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는 뉴트 뒤를 토마스가 따라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도착지는 학생회 실이었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뉴트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서 턱으로 명령했다.
“저기 책상보여? 저기다 올려놓으면 돼.”
“…….”
“아, 뭐해. 평생 들고 있을 거야?”
학생회 관련 자료를 시키는 대로 책상에 잔뜩 올려둔 토마스가 빙글 돌아서 뉴트를 쳐다보았다. 소파에 앉아서 고개를 한쪽으로 약간 기울인 채 토마스를 바라보는 짙은 시선이 아플 만큼 따가웠다. 토마스가 가졌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그대로 단단하게 굳어버린 눈을 계속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뭐해 다했으면 그만 가봐.”
“…….”
“응? 신입생 씨. 인턴이라고 해도 학생회 실은 맘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잖아.”
“…….”
저번에 봤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냉랭한 반응에 토마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근사근하게 대해주던 모습이 진짜인지, 이쪽이 진짜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
뭐라고 더는 할 말이 남아있지 않았다. 시무룩하게 돌아선 토마스 뒤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웃다가 지쳐 소파 위에 늘어진 뉴트가 숨을 고르면서도 계속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너 진짜 바보구나.”
“…….”
“가란다고 진짜 가는 거야? 내가 여기 입학하고 너 같은 괴짜는 처음 본다. ”
“아니…전 그냥.”
“학생회 실이 무슨 교수실이야? 맘대로 못 들어오게. 아 진짜 재밌는 놈이네. 토마스.”
소파에서 일어나 앉은 뉴트가 아직도 웃긴지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큭큭 거렸다. 토마스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 지금 저 사람이 날 놀리고 있구나. 간신히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이미 토마스를 놀린 당사자는 소파에서 일어난 상태였다.
“앉아있어 봐.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가.”
“…….”
“영광으로 알아라. 내가 이런 거 하는 사람은 아닌데. 괜히 성질 낸 거 같아서 해주는 거니까.”
“그…….”
“그냥 다음부터는 안 도와줘도 괜찮아.”
토마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딱히 길게 말할 필요가 없어서 그래. 나 혼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거니까.”
뉴트가 한번 벽을 치자 더 캐묻긴 어려웠다. 토마스는 소파에 앉아 처음으로 학생회 실을 구경했다. 면접도 물론 이곳에서 보긴 했지만, 그땐 워낙 정신이 없어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넓네.’
물론 토마스가 혼자 쓰던 실험실보다 작았지만, 보통 대학교의 재정으로 생각했을 땐 충분히 크고 좋은 시설이었다. 하나 같이 처음 경험하는 곳이니 조금 신이 났다. 축 쳐져 있던 어깨가 조금씩 살아 올라올 무렵 뉴트가 머그컵을 불쑥 내밀었다.
“자.”
“…….”
“안 받아? 커피 못 먹는 건 아닐 테고.”
“…아.”
두 손 가득 들어오는 컵을 쥐었다. 아직 구경을 덜 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런 토마스를 빤히 지켜보던 뉴트가 소파 앞에 있는 책상에 비스듬하게 기댔다. 그리고 먼저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넌 뭐가 그러게 신기하지?”
“뭐가…….”
“항상 보면 부산하게 돌아다녀서 말이야. 아무리 신입생이라 해도 좋은 건 삼세번이면 끝나잖아. 안 그래?”
“그냥…사람들이랑 이렇게 부대끼는 게 처음이라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역시 내 눈은 정확하다니까. 너 되게 재밌구나.”
서글 서글 웃으면서 말하는 뉴트의 목소리에 긴장이 마저 풀린 토마스가 부지런히 커피를 마셨다. 잔이 비었다. 다 먹었으면 그만 돌아가렴- 이라는 말과 함께 학생회 실 밖으로 내쫓겼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누가 보면 꼬리를 붕붕 돌리고 있는 강아지가 보인다고 했을 수도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토마스를 오랫동안 쳐다보던 뉴트가 돌아섰다.
'메이즈 러너 > └ 톰늍'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마스뉴트/톰늍] MAZE IN THE TRAP 006 (0) | 2014.12.02 |
---|---|
[토마스뉴트/톰늍] MAZE IN THE TRAP 005 (0) | 2014.11.30 |
[토마스뉴트/톰늍] MAZE IN THE TRAP 003 (0) | 2014.11.26 |
[토마스뉴트/톰늍] MAZE IN THE TRAP 002 (0) | 2014.11.24 |
[토마스뉴트/톰늍] MAZE IN THE TRAP 001 (2) | 2014.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