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뉴트/톰늍] MAZE IN THE TRAP 005
+) NOTICE
둘이 멀쩡하게 연애하는게 보고싶어서 시작한 평범한 세계에 대학교 AU 입니다.
플레어는 발병하지 않았고,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세계.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현재까지 전개가 전혀 네이버 톰늍같지 않지만 톰늍임.......쓸쓸
톰늍 대학교 편까지 연재하고 대학교 졸업 이후 버전을 따로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5.
이쯤부터였을까. 견고하게 쌓은 뉴트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미미한 변화였지만, 적어도 토마스는 알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항상 같았다. 남들이 보기엔 똑같은 표정과 성질머리였지만, 저 신입생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끈질기게 주위를 맴돌았다. 결국, 눈앞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토마스를 향해 성질을 냈다. 뉴트가 졌다.
“토마스. 귀찮으니까 나가서 놀라고 했지!”
“나도 시간이 비어서 온 거야. 너무하네.”
“이놈이 선배한테 반말이나 하고.”
토마스가 은근슬쩍 말을 놓기 시작했지만, 뉴트는 뭐라고 할 힘도 없는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뉴트. 뉴트. 끊임없이 귀로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면 조용해지긴 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토마스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름은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하지만 정작 이름의 주인은 도대체 자기 이름이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민호도, 알비도, 그리고 수많은 동기가 학기 내내 부르는 이름이었다.
“…….”
“뉴트.”
“역시 너 이상해.”
“응?”
“…됐다. 할 일 없으면 나가서 신입생들이랑 놀아 토마스, 난 여기서 잘 거니까.”
“민호가 수업 꼭 가라고 했는데.”
“그 소리 이년 째 하는데 안 지겨우냐고 민호한테 전하고 와. 너 민호랑은 언제부터 반말했냐?”
“좀 전부터?”
“대단하네.”
뉴트가 솔직하게 감탄했다. 그 민호가 신입생한테 져줬다고? 주먹이 먼저 나간 게 아니라? 민호의 눈길 한 번,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지나쳐간 사람들이 땅을 치고 울 일이었다. 민호가 뜻밖에 저런 얼굴이 취향인가 싶어 슬쩍 떠보리라 다짐했다.
“그게 왜 대단해?”
“아냐.”
“…….”
호기심이 철철 넘치는 녀석은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뉴트가 뭐라고 한마디를 하면 세 마디로 되물어왔다. 뉴트는 귀찮은 걸 싫어했다. 언제나 적당한 시점에서 입 다물고 나가 놀라며 흘려 넘겼지만, 토마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후배를 들인 건지 개를 주워 온 건지 알 수 없다면서 선배는 내내 괴로워했다. 물론 토마스가 이렇게까지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면서 귀찮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뉴트의 책임이기도 했다. 자신이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늘 하던 대로 벽을 쳤어야 했는데, 은근슬쩍 치대고 들어오는 녀석에게 눈길을 줬더니 저렇게 난리 법석이었다.
‘진짜 시끄럽다.’
평범한 사람의 신경 줄로는 토마스를 당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뉴트라서 이 정도로 오랫동안 상대해 줄 수 있는 것이 확실했다. 소파에 길게 누워서 자기 전용으로 구겨둔 쿠션까지 껴안고 눈을 감자 토마스가 조용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끊임없이 질문하는 주제에 뉴트가 입을 다문 그 순간부터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오십 미터 정도 떨어져서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그런 꼴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뉴트는 곧잘 소파에 누워서 자는 척을 했다. 물론 그러고 나서 정말 한숨 잘 자고 일어나긴 했지만.
뉴트의 숨소리가 사분사분 규칙적으로 내려앉자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 주저앉은 토마스는 끙끙거리면서 머리를 멋대로 헝클어뜨렸다. 나름 마음을 숨기고 있었지만, 뉴트에 대한 모든 것에 호기심이 타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연구소에서도 무엇인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답을 알아낼 때까지 몇 날 며칠을 매달려서 실험을 계속하던 그 끈기가 어디 가지 않았다.
토마스의 세계가 뉴트만큼 넓어졌다. 고작 해봐야 한 줌도 안 되는 공간을 안쪽으로 파고 내려가던 토마스가 옆을 보면 어느새 한 발자국만큼 넓어진 자신의 세계가 보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린 토마스가 만든 아이의 세계에 그대로 갇힌 채 살아왔다. 그 공간에 불쑥 들어온 뉴트라는 존재는 너무 강렬했다.
“…뉴트.”
뉴트가 토마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지, 토마스는 이미 홀딱 빠져있었다. 물론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또래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다. 한참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서 머리만 쥐어뜯던 토마스가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잽싸게 일어나 달려갔다. 복도를 단숨에 뛰어가서 계단으로 휙 꺾어 들어갔다. 토마스가 계단 아래로 급히 내려감과 동시에 뉴트가 학생회실 문을 벌컥 열었다. 금방 깼는지, 잔뜩 잠이 붙은 얼굴이었다. 버석버석하게 마른 머리를 쓸어 올리며 복도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갔나.”
곁에서 종알거릴 땐 좀 귀찮았는데, 막상 사람이 없자 조금 아쉬워졌다. 이미 사라진 사람을 다시 부를 수 없어서 뉴트는 문을 닫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유난히 발목이 뻐근하게 아팠다. 소파에 걸터앉아 어제보다 짧아진 해를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지는 해는 붉은 기운을 담고 방 안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내가 미쳤지.”
뉴트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 홀로 서서 허탈하게 웃었다. 점점 느리게 떨어지는 웃음이 멈췄을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눈썹을 약간 찌푸린 채 밖을 쳐다보았다. 뉴트가 토마스를 계속 신경 쓰고 있던 것은 계속 머릿 속에서 맴도는 자잘한 기억 때문이었다.
“진짜 어디서 만난 거 같은데, 왜 기억이 안 날까.”
뉴트는 뉴트 나름대로 계속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토마스를 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굳이 컵까지 바꿔가면서 밖으로 끌고 나온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분명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었고, 묘하게 얼굴이 익숙했다. 물론 그 익숙함은 최근의 것이 아니었다. 저 멀리 흐릿하게 떠오른 어린 날의 기억처럼 잔뜩 바래버린 작은 조각이었다. 이런 기억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아 머리가 간질간질하게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할 때 신경을 긁고 지나갔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결국, 오늘도 기억을 떠올리는 데 실패한 뉴트가 느지막하게 밖으로 나왔다.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거리를 걸어갔다.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가로등이 길쭉하게 자란 사람 뒤로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 ✓ ✗
좀 귀찮은 일이 생겼다.
총장을 겸임하는 에바 페이지가 학교에서 세미나를 한다는 사실은 좋았다. 하지만 학생회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았다. 보고서도 제출해야 했고, 참여할 학생들의 명단도 작성해야 했다. 알비가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자 덩달아 민호와 뉴트도 바빠졌다. 처리해야 할 서류는 쌓이기만 하고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뉴트를 볼 기회가 줄어든 토마스는 내내 우울해했다. 물론 티는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친구들은 어떻게 알아챘는지 토마스의 허리를 퍽퍽 치면서 놀려대곤 했다. 한참 우울한 표정으로 다니다 왜 학생회가 바빴는지 알 수 있었다. 인턴들이야 서류 옮겨다 주는 비둘기 역할 정도만 하면 충분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에바…페이지.”
“맞다. 너 저거 들을 거야? 원래 잘 안 오신다는데 이번에 특별히 세미나 개최하신다더라.”
“잘 모르겠는데.”
“당연히 들을 거라 생각했는데, 좀 놀랍다?”
“그럴 수도 있지.”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워. 라고 말하려 하다 입을 다물었다. 굳이 여기서 에바 페이지와 무슨 관계인지 알리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저 세미나에 뉴트가 참석한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졌다. 에바 페이지 총장님한테는 조금 미안한 말이었지만, 이번 딱 한 번만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세미나를 들으러 가기로 했다.
“토마스 너도?”
“네. 세미나 들으려고.”
“하긴 너 생명공학 전공이었지. 그래. 뭐 신입생 땐 이것저것 들어보는 것도 좋으니까.”
“물론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알비가 학생 명부에 토마스를 적어 넣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밖으로 나온 토마스는 또 한 번 무의식적으로 뉴트가 들고 오는 서류를 냉큼 받을 뻔했다가 자기 손목을 스스로 붙잡고 간신히 참았다. 정말 바쁜지 귀찮다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대로 스쳐 지나간 뉴트를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세미나 당일은 자리 잡기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대학 총장을 겸임하는 에바 페이지가 직접 세미나를 하러 온 것은 몇 년 만이었다. 학생들의 기대도 컸고, 교수님들까지 참석한 강연장은 조금 시끄러울 정도로 사람들도 북적였다.
물론 이 귀한 세미나가 목적이 아닌 사람도 있긴 했다. 용의주도하게 사람들 틈을 뚫고 지나가 뉴트 뒷자리를 차지한 토마스는 잔뜩 만족한 얼굴로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시작 전까지 급하게 뛰어다닌 학생회 간부 셋이 들어와 앉았다. 뉴트는 자리에 앉았다가 무엇인가 잘못 본 것처럼 잠시 고민하다 뒤를 휙 돌아보았다. 자기 뒤에 토마스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잠시 멍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공에 관련된 거라 들으러 왔을 뿐인데.”
“아, 그러세요.”
“그럼요.”
“그럼 세미나나 열심히 들으시길 바랍니다? 전 이런 거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이만.”
“…….”
의심을 피하고자 준비한 것이 분명한 필기 노트를 들어 보였다. 공부하러 왔다는 것을 애써 어필하던 녀석은 괜히 민망한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뉴트가 한참동안 토마스를 노려보다 돌아앉았다. 물론 필기 노트치고 접힌 자국도 없이 지나치게 깨끗해서 믿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의 소품 하나하나 살피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토마스는 너무 알기 쉬운 상대였다. 자기는 숨긴다고 숨기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한없이 어눌한 눈속임일 뿐이었다.
‘진짜 웃긴 놈이네.’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는 과학 세미나를 몇 시간 내내 들을 생각을 하나 벌써 지겨웠다. 졸기라도 하면 나중에 크게 한 소리 들을 것이 분명하니 몰래몰래 잘 수도 없었다. 수업을 빠진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었지만, 뉴트는 원래 수업을 자기 맘대로 들어가고 있었으니 결국 좋을 것 하나 없었다. 끝나면 같이 술이라도 마시러 가자 할까. 이런 생각만 잔뜩 하던 뉴트가 작게 하품을 했다. 조금 전까지 결심했던 모든 것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평생 살면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들다는 그 유명한 에바 페이지가 연설을 시작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빨리 끝냈으면 하는 생각만 들었다. 생명 공학이니 뇌 연구니 하는 것은 전혀 취향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 듣고 있는 전공인 미술사도 따지고 보자면 그리 취향에 맞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귀찮아하는 쪽에 가까웠다.
뉴트가 하고 싶은 것은 의외로 운동이었다. 꽤 오랫동안 단거리 달리기 선수로 활동했었고,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면서 유망주로 성장하고 있었다. 멀티 러너인 민호와도 제법 잘 맞는 파트너였고, 경쟁자였다. 하지만 그 꿈을 같이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뉴트는 재활 훈련을 하자며 붙잡는 모든 사람의 손을 뿌리쳤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운동기구와 달리기에 관련된 것을 싹 내다 버리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리고 깨끗하게 포기한 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
쓸데없는 옛날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 뉴트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저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사실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전공 수업을 빠지는 명분이 있는 만큼 따로 제출해야 할 보고서가 있었다.
‘아, 완전 망했다.’
물론 공학 쪽 지식이 전무 하다시피 한 사람이 고작 세미나 한번 듣고 보고서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아예 이렇게 딴생각을 한다면 말이 좀 달랐다.
알비에게 필기한 걸 보여 달라고 할까. 아니면 민호한테…까지 생각하고 옆을 보니 세미나가 전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같은 처지의 인간이 보였다. 하긴 저 녀석도 딱히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뉴트는 약간 울고 싶어졌다.
하나둘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세미나실에서 뉴트가 알비를 붙잡았다.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다급한 목소리가 후두둑 떨어졌다. 잔뜩 당황한 표정의 뉴트가 알비의 팔을 단단하게 붙든 채 놔주지 않았다. 놓고 이야기하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소란에 여태까지 의자에 앉아있던 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둘의 곁으로 다가왔다.
“알비, 오늘 거 필기 다 했어?”
“하긴 했는데. 나도 이쪽에 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서.”
“보고서 써야 하는 거 완전 까먹고 있었어.”
“아, 나도. 있었는데 보고서.”
“어쩌지? 이거 다시 들을 수도 없는 거잖아. 미치겠네.”
“…….”
“민호 너도 잘 모르지?”
셋은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이미 끝나버린 세미나를 되돌릴 수 없었다. 그나마 세미나 내내 필기를 정리해놓은 알비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아예 딴생각을 하고 있던 뉴트와 뭔가 적긴 했는데 알아볼 수 없는 필기를 들고 있던 민호는 수습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싶었지만 뾰족한 해결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애꿎은 바닥만 신발로 문지르고 있었다.
“뉴트. 세미나 자료 필요해?”
“응?”
“세미나를 완전히 가지고 온 건 아니지만, 무슨 이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인지는 다 알고 있으니까 필요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아직도 집에 안 갔는지 뒤에서 불쑥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뉴트가 돌아보았다. 잔뜩 반짝반짝한 부담스러운 눈이 한가득 들어왔다. 필기도 제대로 안 한 거 같은데 뭘 저렇게 당당히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 알비를 잡고 놔주지 않던 팔이 스르르 풀렸다. 냉큼 뉴트 옆으로 붙어 앉는 토마스를 옆으로 끌어다 앉혔다. 그리고 급하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어떻게 도와줄 건데? 나 딴 생각해서 하나도 못 들었어.”
“…….”
“그리고 한번 듣는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너무 당당하게 하는 말에 알비와 민호는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짧은 신음을 뱉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입생인데, 저 앞에서 저래도 되나 싶었다. 물론 토마스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럼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들으면 보고서 쓸 수 있어?”
“네가 무슨 수로?”
“아니 내가 어떤 식으로 할건진 물어보지 말고,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말해. 난 널 도와줄 수 있어.”
“그래. 도와줘 봐. 그런데 알비랑 민호도 나랑 같은 보고서 내야 하는데 같이 가도 괜찮아?”
“물론이지.”
도대체 어떻게 도움을 줄 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일단 따라오라는 말에 학교를 빠져나오자 토마스가 어딘가로 전화했다. 연신 웃으면서 통화를 하던 표정을 보고 있으니 학교에서 보던 그 녀석이 아닌 것 같았다. 기분이 좀 살아난 것으로 보이는 토마스의 옆모습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웃기도 하고 볼을 살짝 긁적이기도 했다. 저 괴짜 녀석이 저렇게까지 좋아할 만한 것이 있었나 싶었다.
“됐다. 조금만 기다리면 차가 올 거야.”
“무슨 차?”
“연구소가 여기서 꽤 멀어서. 걸어가기도 무리고, 미리 이야기해줬으면 세미나 시작하기 전에 전화를 해뒀을 텐데……. 기사님이 여기까지 데리러 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셔서 좀 기다려야 해.”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딜 가는데?”
“총장님 연구소.”
“??”
“응?”
토마스가 하는 말을 듣고 머리 위로 떠오르는 모든 의문을 입 밖으로 내기도 힘들었다. 당사자는 별일 아니란 듯 목도리를 좀 더 당겨서 묶었다. 연신 도로를 바라보며 핸드폰을 번갈아 확인하는 토마스를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본 세 명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해결방법이라 도저히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세미나를 놓쳤다고 하는 친구에게 필기 노트 정도 복사해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지금 토마스가 제시한 방법은 세 사람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을 파괴하는 느낌이었다.
“뭐, 연구소에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런데 아는 사람이 있다고 저렇게 막 차를 보내주고 그래? 그것도 직접 전화했잖아.”
“그야 나도 모르지. 멍청아.”
“아 왜 나한테 그래. 넌 어차피 이해도 못 하고 있었잖아.”
“딴생각한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도와준다고 하니 가보긴 하자. 가면 알겠지.”
알비의 정리에 쑥덕거리던 세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붙잡고 도와달라고 했는데, 연구소에 가는 건 부담스러우니 못 가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연신 두 손을 비비면서 벽에 기대있는 토마스 곁에 모인 셋이 함께 차를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토마스 앞에 까맣고 반질반질하게 손질된 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연구소에서 나온 차니까 놀라지 말라면서 셋은 손을 마주 잡았다. 익숙하게 차를 맞이한 토마스가 활짝 웃으면서 창문으로 뭔가 소근거렸다.
“어서 와서 타 뭐해?”
“어? 어 그래.”
“친구 분이신가요. 연구소에서 나왔습니다.”
“아, 네.”
“보통 땐 이렇게 급히 나오지 않는데, 특별히 부탁하셔서. 갑작스럽게 나오느라 시간이 좀 지체된 거 같아 죄송합니다.”
"아뇨. 뭐 저희가 더."
점점 더 무슨 일이 생기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달려서 연구소에 도착했다. 연구소 앞에 서서도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 셋에게 더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저 녀석 뭐하냐?”
“…….”
익숙하게 문 앞에 연구원증을 대고 잠금을 풀고 있는 토마스를 본 순간 뉴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문을 열고 들어갔던 토마스가 셋이 따라오지 않자 문밖으로 얼굴을 쑥 내밀었다.
“뭐해 들어와.”
“아니, 근데 이렇게 막 들어가도 괜찮은 거야?”
“뭐가?”
“내 말은 견학하려면…그러니까 연구소 측으로 보내야 할 서류도 많고 그런 거 아니었어?”
“아, 그렇게 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무래도 이쪽이 편할 거 같아서 그냥 내 맘대로 데려왔는데. 역시 불편한가? 정 불편하면 지금이라도 정석대로 할 수도 있는데…….”
곤란하게 쳐다보는 눈빛에 셋은 한숨을 푹 내쉬고 토마스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토마스는 연구소 로비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로비를 통할 생각이 없었는지 연구원들이나 쓰는 복도로 셋을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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