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갈유비] 창공의 전기(蒼空之傳記) 014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 조조와 사마의 / 손책과 주유가 각각 궁의 주인과 신선으로 나옵니다.
제갈유비 연성으로 시작했지만, 둘이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양 AU 및 설정 날조가 항상 함께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돌아오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제갈량은 내내 아무 말도 없었다. 품에 소중히 안아온 작은 아이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인간의 몸으로 선계에 들어오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몇몇 군주는 인간으로 태어나 신수의 선택을 받는다. 옥새와 신수는 늘 가장 옳은 방향으로 군주를 선택한다. 그 핏줄이 왕후장상이어도 평민이어도. 하다못해 선계 출신이라고 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그저 세상의 균형을 맞춰주면 충분했다.
“…….”
혹여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른 권속이 이 이야기를 주인에게 전할까 걱정이 되었다. 가까이 다가오면 소멸시킬 생각도 만만했다. 하지만 방금까지 있었던 이유 모를 큰 싸움으로 모든 것이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것 같았다. 하늘이 이렇게 조용하고 가라앉을 줄이야. 제갈량은 품에서 스르르 흘러내리는 작은 몸을 다시 한번 부드럽게 안아 들었다.
“도대체…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 제갈량의 입술이 가늘게 떨린다. 하고 싶은 은 많은데 목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주군이 간 곳도 이르지 않고 사라진 이후 이렇게 놀랄 일이 또 있으리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서서. 제갈량은 아픈 이름을 불렀다. 너무 늦게 태어나 빨리 간 신선은 자신의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아니 남기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물론 신선이란 그저 소멸하면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간다. 애초에 핏줄로 이어져 있지 않은 육신이니 슬퍼해 줄 이가 없었다. 그런 곳에서 잠시나마 가족처럼 지냈던 서서는 제갈량에게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었다.
서서가 남긴 이 아이를 지켜야 했다. 주군인 것은 알고 있다. 제대로 느껴지진 않지만 인간의 껍질 속에 숨어있는 응룡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확실히 느껴지는데 왜 지금까지는 없는 존재처럼 굴었던 것일까. 주군에게도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음.”
볼에 화끈한 아픔이 느껴진다.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상처가 조금씩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깊은 상처가 아니라서 일단 옮겨온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갈량의 예상은 조금 빗나갔다. 상처의 깊이는 얕을지 몰라도 평범한 공격은 아니었다. 두 손이 자유로웠다면 당장 손끝으로 상처를 쓸어봤을 테지만, 지금은 녹록하지 않았다.
“상처도 보통이 아니고…신선을 소멸시켰다.”
“…….”
“응룡궁의 주인 또한 위험에 빠뜨리려 했다.”
“…….”
“어디서부터 시작된 일인지는 천천히 알아봐야겠군요. 상처를 제게 옮겨놓은 것도 다행입니다. 신선과 군주의 몸은 다르니 조금 더 오래 보존하면서 꼬리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
“마땅히 계셔야 할 곳으로 이렇게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아직 조금 더 가야 하지만…….”
“…….”
“아. 벌써 궁이 살아나는군요.”
아이는 여전히 의식이 없다. 가늘게 쉬던 숨마저 뚝뚝 끊기고 만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약한 호흡이 겨우겨우 가슴을 움직인다. 인간이 선계에 올라오면 세례를 받기도 한다.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지 확인을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과정조차 그대로 건너뛴 군주의 귀환이었다.
하지만 상태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제갈량은 애써 불안함을 속으로 삼킨다. 주군이 사라졌을 때부터 속은 이미 끊어서 까맣게 타버린 지 오래였다. 주군이 다시 돌아왔으면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데 이리저리 뒤섞인 감정이 따라가지 못한다.
‘나도 주군을 지키던 이처럼 심장이 굳어버렸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그리게 움직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마 군주가 나타났으니 제갈량이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궁이 단번에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엔 예외가 있다. 예전이라면 그리 생각하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군주가 사라진 그 날부터였다. 난데없이 궁에 홀로 남겨진 제갈량은 그저 주군을 기다리며 모든 일의 예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엇나간 적이 없는 삶이었다. 그런 삶에 예외와 변칙이 스며들기 시작하자 꼭 비웃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세상일이 너무 어지럽게 돌아갔다. 하늘의 흐름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을 흔드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숲이…….”
살아난다.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곳부터 서서히 제 색을 찾고 있었다. 검게 타버린 뼈가 늘어서 있던 것 같은 대나무 숲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바짝 마른 대나무에 물이 흐른다. 단단하고 곧은 녹색이 올라오고 새순이 돋는다. 하늘을 가릴 듯 빽빽하게 늘어선 대나무가 바람에 부딪혀 말발굽 소리를 낸다. 이 소리를 응룡궁의 주인은 퍽 좋아했다. 꼭 바다 같다고 했고, 그렇지 않으면 가슴 속에 담아둔 걱정을 쓸고 지나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
다시는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한 적이 많았다. 신선의 몸으로 주군의 소멸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 그 영광을 고스란히 다시 찾아올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을 순 없었다. 그저 몸이라도 성하게. 그것도 아니라면 어디서 무엇을 하셨는지 라도. 그 누구도 제갈량의 타들어 가는 속을 짐작하지 못했다.
유진을 안은 팔에 좀 더 힘이 들어간다. 무거울 법도 한데 제갈량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주군을 안은 신선이 걷는 걸음걸음마다 꽃이 피었다. 꼭 생명의 힘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앞다투어 살아나는 세상을 본다. 누구보다 죽음에 가까웠던 공간은 다시 한번 푸르게 자라났다.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
“제가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
혹여 말이 새어날까 급히 궁 안으로 들어선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궁은 이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제갈량은 어지럽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정리하려 한다. 군주의 귀환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군주의 기세를 천하에 알릴 수 있는 장점이자 어떤 식으로도 감출 수 없는 단점이었다. 이미 다른 군주들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으리라. 죽어가는 숲이 살아나고 하늘이 움직이는 것을 읽었을 테니 제갈량은 또 한 번 바빠질 것이 분명했다. 이런 분주함은 차라리 행복일 테니 불평하지 않기로 한다.
얇은 박석을 깐 곳을 걷는다. 제갈량의 힘으로 궁을 지탱하는 동안은 많은 곳을 손댈 수 없었다. 그저 가장 중요한 곳만 간신히 손을 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무도 없지만, 꼭 권속이 가득 찬 기분이었다. 물론 떠나간 권속은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자리가 비어 있던 침전의 문이 열린다. 꼭 유비가 처음 떠났을 때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곱게 정리된 침구 위엔 유비가 남기고 간 편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어딘가에서 꺾어왔다면서 화병에 한 아름 꽂아둔 꽃도 그대로였고, 그 옆에 가득 쌓여있던 서류도 마찬가지였다. 제갈량은 침전을 그대로 봉인한 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꽃이 시든다. 물기 한 점 없이 바짝 마른 꽃은 바람에 날리는 고운 재가 되어 사라진다. 다른 것은 변하지 않으나 꽃은 시간을 따라가기엔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한번 읽은 후 곱게 접어둔 편지가 바람에 날려 바닥에 툭 떨어진다.
“일단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린아이가 쓰기엔 지나치게 넓은 침대였다. 하지만 달리 모실 곳이 없었다. 주군이 사용하는 침전이 이곳 말고 있을 리 없었다. 제갈량은 조심스럽게 유진을 침상에 눕혔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주려다 잠시 멈칫한다. 다 찢어진 옷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이곳엔 어린아이가 입을만한 옷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제갈량은 가만히 생각하다 가장 작은 옷을 꺼낸다. 넝마가 된 옷을 벗기고 깨끗한 옷을 걸쳐준다. 길게 내려오는 소매는 몇 번 접어서 곱게 마무리했다. 아직 온몸에 남은 상처는 안타깝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
제갈량은 그제야 자신의 볼에 옮아붙은 상처가 생각났다. 상처에 손끝을 가져간다. 알싸한 고통과 함께 피부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 난다. 인간의 무기로 당한 것이 아니었다. 최소 환수. 그것도 아니라면 신수. 제갈량은 이런 상처에 익숙했다. 자신의 주군은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신선에게 상처를 옮겨줘야 할 때가 있었다. 제갈량은 덤덤히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 부상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았다.
“어떤 존재가 감히 응룡궁의 주인에게 이런 짓을 했는지는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돌아오셨으니 오늘은 편히 주무시길.”
“…….”
“전 밤새 침전을 지킬 것입니다.”
“…….”
“간신히 찾아서 모셔온 유비님을 다시 놓칠 수 없군요.”
“…….”
“…그럼.”
“…….”
“오호대장군도 곧 깨어날 겁니다. 그 날 이후로 주군이 오시는 것을 저만큼 손꼽아 기다렸으니. 곧 소식이 들려오겠지요.”
“…….”
“전 드릴 말씀이 아주 많습니다.”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를 쓸어준다. 주군보다 한참 작은 아이는 제갈량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의식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정에 고파하는지. 제갈량은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괜히 볼을 쓰다듬어주고 이마에 식은땀도 닦아준다. 다행히 선계의 세례는 피했다고 하나 인간의 몸이 멀쩡할 순 없었다. 약하게 앓을 수도 있고, 죽을 고비를 넘길 수도 있다. 여린 몸이 부디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었다. 신선은 상처를 옮겨올 순 있지만, 세례를 대신 겪어줄 수는 없었다.
창문을 닫고 발을 친다. 그리고 조용히 걸어 나간다. 가장 깊은 곳에 있다고 하나 완벽하게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제갈량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앉고 앉았다. 혼자서 궁을 유지하던 부담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이런 상태라면 하루 이틀쯤은 잠을 자지 않아도 충분했다. 제갈량은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이 사라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단한 돌덩이가 그대로 사라진 것 같았다.
군주의 몸이 완벽하진 않으니 어느 정도 부담을 지어야 하는 것은 마땅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제갈량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몸에 흘러넘치는 술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강제로 궁을 위해 사용하던 힘이 다시 주인에게 돌아온다. 제갈량은 눈을 감은 채 상처 치료와 분석에 집중한다. 종이 인형이 찢어진 것처럼 벌어져 있던 곳이 조금씩 아물기 시작한다. 육체를 다시 꿰매서 재구축을 하는 동시에 공격한 객체를 찾는다.
“…….”
뭐지. 이런 종류의 공격은 받아본 적이 없는데. 제갈량은 미간을 찌푸린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잊고 다시금 공격의 뿌리를 파헤쳐본다. 쉽게 끝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지독하게 엉킨 것은 좀처럼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꼭 눈을 감은 채 복잡하게 얽힌 절벽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아차 하는 순간 그대로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무리 제갈량이라 해도 확실히 짚어낼 수 없는 종류였다. 신선의 육체에 이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격은 한정되어 있다. 애초에 몸이 조금 다친다고 죽는 존대도 아니었다. 물론 육신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친다면 좀 달라질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그 정도가 아니라면 치료하지 못할 상처가 없었다.
“…….”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육체를 갉아 먹으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식으로 상처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신수 혹은 그에 준하는 힘. 어느 궁의 신수가 움직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신수의 힘보다 조금 탁하고 복잡했기에 속단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신수가 움직였다면 제아무리 궁에 칩거하던 제갈량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었다.
궁은 서로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견제하지 않는 것은 또 아니었다. 비록 균형을 위한다는 말로 서로 묶여있지만, 목표는 비슷했다. 자신이 섬기는 군주의 영원한 통치. 그리고 언제 올지 기회가 모르는 옥새의 관리자를 배출하는 것.
“…복잡하군.”
여기까지 생각하면 사실 그 누가 공격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군주끼리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것은 맞지만, 군주의 생각과 다른 이해관계가 꼭 같다고는 볼 수 없었다. 군주의 눈을 가린 무리가 뒤쪽에서 움직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상처는 곧 낫겠지만, 확실한 원인을 짚어내지 못하니 답답함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었다. 제갈량은 결국, 원인을 찾는 것을 중단한다. 그저 상처를 빨리 치료하는 것에 좀 더 신경을 쓰기로 한다. 주군의 안위에 대한 은밀한 공작을 찾아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자신이 아는 주군은 늘 자기 곁의 사람이 다치면 가슴 아파한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자 자신이 이런 얼굴로 주군을 맞아선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참. 제갈량.’
‘…….’
‘이렇게 다쳐서…….’
‘주군의 상처를 옮기는 것은 신선의 의무. 그다지 놀라시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이…….’
‘자잘한 일에 마음을 쓰지 마세요.’
‘…….’
‘전 괜찮습니다.’
‘…….’
‘이럴 때마다 흔들리시면 나중엔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미안.’
‘아닙니다. 그런 말씀은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해본다. 썩 입에 대답이 붙지 않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주군 생각을 한다. 다시 돌아온 주군은 과연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자잘한 곳에 마음을 쓰지 말라고 한마디씩 방자하게 얹었던 대화가 겹겹이 쌓인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주군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혹여 그 말이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제갈량은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았다.
“주군…….”
차마 입 밖으로 내는 것도 힘들었던 단어가 자꾸 흘러나온다. 계속 부르면 그 기억마저 희미해질 것 같아 꾹꾹 눌러 담기만 했다. 과거와 완전하진 않지만 돌아온 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좋아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신선은 그렇게 내내 침실 앞을 지켰다.
“이제들 오셨는가.”
“…….”
“오호 대장군이 생각보다 잠이 많으시더군.”
“…….”
“오호 대장군인데…한 분은 어디로 가셨는지.”
“…….”
“주군께서 곧 깨어나실 테니 여기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군요.”
짐승 우는소리가 바람에 섞여든다. 주군을 휘호 하던 신수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였다. 제갈량은 딱히 신수와 친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주군을 옆에서 보필하는 신수와 신선의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신선은 늘 신수들과 부딪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반갑긴 합니다.”
“…….”
“말을 하지 못하니. 말이 통하는지도 모르겠고…….”
신선이 웃자 옆에 올라앉은 그림자도 함께 움직인다. 아직 제대로 힘이 돌아오지 않아 형체를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단단하게 굳어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제갈량은 여전히 꼿꼿하게 자리를 지켰고, 네 마리의 신수는 가끔 움직이면서 주군의 주위를 지켰다.
그르렁거리며 우는 소리가 길게 내려앉았지만, 그렇게 기다리는 주군은 아직 깨어날 힘이 없는 것 같았다. 낯선 얼굴에 신수들은 고개를 흔들면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와서 턱에 얼굴을 댄다.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의 끝이 오색으로 빛난다. 신수는 군주의 가장 강한 무기이자 친우였다. 군주가 있어야 그 힘을 가장 강하게 다룰 수 있었다. 게다가 신수 힘의 원천은 군주와의 굳건한 신의였다.
그러니 지금 당장 원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돌아온 주군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고, 의식도 없다. 일단 희미하게나마 의식이라도 돌아와야 이야기를 해볼 텐데 당장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궁 주변이 복구되는 것을 보면 분명 좋은 일인데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찾아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으니.”
“…….”
“내일부턴 또 바빠지겠군요. 물론 그게 제 능력 밖의 일은 아니지만…….”
제갈량은 궁을 가득 채운 신수의 기운을 느낀다. 그리곤 다시 자세를 꼿꼿하게 고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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