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갈유비] 창공의 전기(蒼空之傳記) 011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 조조와 사마의 / 손책과 주유가 각각 궁의 주인과 신선으로 나옵니다.
제갈유비 연성으로 시작했지만, 둘이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양 AU 및 설정 날조가 항상 함께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하여튼 말이야. 위엣 분들은 아랫것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하나도 모른다니까~.”
길게 늘어지는 말투엔 웃음이 가득 배어있었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인간계에 내려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렇다 할 수익이 없었다. 이렇게 좀 훑고 다닌다고 군주가 발견될 일이었다면 제갈량인지 뭔지. 그 녀석이 그렇게 절절매면서 기다릴 필요가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짜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계로 보낸 이유가 있으니 결과를 들고 와야 했다. 하지만 사마의도 찾지 못하는 군주의 흔적을 찾아오라니. 이런 억지가 또 없었다. 하지만 명령을 따라야 하는 인생은 늘 그랬던 것처럼 부질없이 자꾸 헤매기만 했다.
“정~말 안 나타나면 환수를 풀어버릴까?”
“…….”
“너희 생각은 어떻지?”
“…….”
“하긴 너희들이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지. 정말 재미없다니까안.”
“…….”
요란하게 다녀서 눈에 띌 이유가 없지만, 그렇다고 쥐새끼처럼 숨어다니는 것도 취향이 아니었다. 장각은 늘 변덕스러웠고 자기 재밌는 것에 혼을 파는 남자였다. 애초에 사마의에게 붙은 것도 반쯤은 재밌는 일이 계속 생길 거라는 속셈이 아니었던가. 불순한 생각이긴 하지만 둘의 이해관계는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이러다 들키면 사마의가 알아서 도와주겠지. 장각은 약간 방자한 생각을 한다.
따지고 보면 타락 신선이라 이름 붙은 것 또한 옥새와 신선의 이해관계 범위였다. 그렇게 태어난 운명을 거스른 것은 장각이었다. 찰나의 순간 발생한 불협화음은 타락 신선을 만들어 내기 충분했다. 옥새는 장각에서 규칙을 벗어난 지적 능력을 주었고, 그런 지성은 군주의 도구라고 불리는 운명에 절로 반감을 품게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감정을 읽을 수 없으니 여러모로 귀찮은 존재였다.
“하지만!”
장각의 눈이 빛난다. 분명 뭔가 수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일부러 목청을 높이고 과장된 몸짓으로 움직인다. 그런 남자를 주변 사람들은 의심할 법하지만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내가 또 다~ 수가 있단 말씀이야. 정~말 재밌다니까. 인간계는.”
깔깔깔깔.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훌쩍 몸을 숨긴다. 아무리 봐도 금지된 술법을 쓰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아마 평범한 인간이라면 장각을 의식할 수 없게 만드는 향을 섞어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각은 아무도 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공간에 존재하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알아봐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짜릿하다고 말하던가. 아니면 그저 재미를 위한 것이던가.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장각의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그림자를 접어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람에 실려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대담하게 도술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찾아가는 사람은 그리 예민한 축은 아닌 모양이었다. 장각은 커다란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다. 그렇게 한창 기다리고 있으니 작은 아이가 나타난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니까.”
장각은 소리 없이 손뼉을 친다. 짝짝짝. 보통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공기 중에 흩어진다.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가면 분명 크게 경을 칠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단시간에 발견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제갈량도 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다른 이가 하겠는가.
하지만 장각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응룡 궁에 신선이 둘이고, 한 명이 인간계로 자주 향한다. 무의식적으로 군주의 흔적을 찾아가리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용히 서서의 뒤를 밟았다. 물론 서서가 장각을 눈치채기엔 너무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서서는 며칠 동안 유진을 만나지 못했다. 그럴 때면 하는 일 없이 장터를 빙빙 돌다 꽃을 꺾어서 돌아가곤 했다. 그러면 장각은 발을 쾅쾅 구르면서 분을 이기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의 뒤를 밟고 응룡궁 주변을 맴돈 효과가 지금 나타났다.
“네 녀석이…서서가 만나는 인간이구나?”
“…….”
“짜릿해. 정말.”
“거기…누구 있어요?”
“힉.”
“서서?”
“…….”
장각은 눈을 크게 뜨면서 숨을 집어삼켰다. 평범한 인간이 자신을 알아차릴 수 없다. 애초에 숨어드는 능력이 탁월해 신선도 제대로 인지를 못 할 정도인 장각을 고작 인간이 알아본단 말인가. 에이. 설마.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
“끼아아.”
“…….”
“세상에. 날 봤어? 어머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
“분명 누가 있었는데.”
유진은 분명 장각이 있는 나무 근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뜨이지 않아 완벽하게 짚어내진 못했지만, 누군가 있다는 것은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린아이라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워낙 형이 걱정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장각은 더 다가오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주 경을 치는 정도가 아니라 목이 달아날 뻔했다.
“유진! 나 기다렸어?“
"서서?”
“응. 서서 왔어,”
“방금 나무 뒤에 있었어요?”
“나무 뒤? 아~니.”
“…….”
“왜?”
“아니에요. 내가 잘못 본 것 같아서…….”
“나무 뒤에 뭐가 있었을까?”
서서는 금방 호기심이 돋는다. 성큼 다가가려는 것을 유진이 소맷자락을 잡고 말린다. 불안한 기분이 들 땐 굳이 그 기분이 향하는 곳을 들쑤시지 않는 편이 나았다. 몇 번 고개를 저으면서 서서를 바라본다. 다행히 서서는 그렇게 고집이 세지 않았다. 금방 돌아서서 유진을 바라본다.
“싫다면 하지 않을게.”
“…네.”
“그럼 오늘은 어디로 갈 거야?”
“자꾸 이렇게 나오면 혼난다면 서요.”
“그래도 오늘은 공부 다~하고 왔는데?”
“…….”
“정말이라니까?”
“안 믿어요.”
“힝.”
금방 볼이 부풀어 오른다. 하긴 제갈량이 내준 숙제를 겨우 반만 하고 도망치듯 인간계로 온 것은 사실이었다. 아마 돌아가면 실컷 잔소리를 듣겠지. 서서는 약간 무서워진다. 제갈량은 늘 한숨을 쉬면서도 자신에게 하나하나 뭐든 많이 가르치려 한다. 도술 운용 방법부터 크게는 궁을 지탱하는 방법. 사라진 주군을 찾는 것. 가르쳐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도 서서가 조용히 궁을 빠져나가는 것을 내내 못 본 체한다. 그래서 더 자주 내려온 것인지도 몰랐다.
“정말이야. 응?”
“…….”
“진짠데.”
“알았어요. 오늘은 장터에 사당패가 왔다니까 거기 가봐요.”
“그때 그거. 춤추는 거?”
“그렇죠? 뭐 다른 걸 할 수도 있지만.”
“신난다.”
“서서는 하루하루가 신기한가 봐요. 뭐가 그렇게 신기한가요?”
“인간 세상은 다 신기해.”
“…….”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그렇구나.”
유진은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딱히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서서는 약간 특별한 소녀가 되어있었다. 곱게 자란 여식인 것 같지만 미묘하게 인간 세상에서 사는 것 같진 않았다. 늘 훌쩍 사라졌다가 훌쩍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밖으로 이것저것 이야기하기도 뭐해 그냥 그런 식으로 이해를 한다. 부모 없이 눈칫밥을 얻어먹고 사는 아이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떡해~. 정말 응룡인가봐.”
“…….”
“선계 병들아. 너희도 저 작은 녀석의 몸에서 역린이 보이느냐.”
“…….”
“에이 말도 못 하는 것들.”
“…….”
“좋아. 일단 한발 물러서서 보고부터 해야겠다.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야. 꼬옥~.”
장각은 노련한 맹수처럼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 예전 군주를 생각하면 저런 모습이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아무리 다 죽어가는 응룡이라 하더라도 일개 신선보단 강하다. 신선은 보조 도구와 같으니 절대 혼자서 군주를 상대할 수 없다.
물론 약한 소 군주라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것은 응룡궁의 군주였다.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간 예전처럼 크게 혼이 날 수 있었다. 당장 계획을 다시 점검해봐야 할 시기기도 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대기하거라.”
“…….”
“나 혼자 갔다 오마.”
“…….”
만들어진 존재인 선계 병은 장각의 말만 듣는다. 애초에 이런 사병력을 만들 수 없겠지만, 장각은 조금 달랐다. 애초에 질서에서 튀어나온 존재인지라 혼돈을 주무르는 것이 가능했다. 선계 병은 그늘에 몸을 숨긴 채 그대로 녹아들었다.
“좋아. 이제 기쁜 소식을 알리러 가야지.”
하하하하하하. 장각의 목소리가 훌쩍 멀어진다.
**
“뭐라?”
“응룡의 군주를 찾았습니다.”
“…….”
“아, 물론. 아~주 작은 조각이지만 말입니다. 깔깔깔.”
“조각?”
“예. 조각. 반절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던걸요. 그마저도 아직 인간의 육신에 갇혀 제대로 발현조차 되지 않았더군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지.”
“살고자 하면 뭐든 못하겠습니까. 네? 사마의님.”
“…장각.”
“아차. 말실수.”
“…….”
사마의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군주의 목숨이란 이렇게 질린 것인지. 하지만 여기서 뭐라고 할 순 없었다. 알아서 하라는 듯 손짓을 한다. 하긴 태오 장군과 왕윤이 같이 있는 궁에서 혼자 떨어져 나오긴 힘들었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시간을 냈지만 하나하나 장각에게 일러줄 수는 없었다.
“알아서 할까요?”
“그래. 이쪽도 경계가 점점 삼엄해지니 쉽게 출입하지 말도록,”
“제 능력을 잘 아시면서~.”
“괜한 소음을 만들면 아무리 너라도 용서하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알아서 처리하죠.”
“그래.”
“…….”
“이후 보고는 결과만 받겠다.”
알아서 끝내라는 소리였다. 사마의는 주변을 둘러본다. 아직 일반 병사는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허락되지 않은 존재를 자꾸 궁으로 들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태오 장군이 없을 때는 조금 나았다. 지금은 어린 궁주가 여포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알자마자 수비 병력을 두 배로 늘렸다. 그리곤 자신도 주군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 천성이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니 은연중에 불안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실체를 알지 못하는 적이란 늘 두려운 법이었다. 그런 삼엄한 경계 속에서 사마의는 혼자 유유자적 걸어 다닌다. 태오 장군은 늘 사마의를 미심쩍은 눈으로 보곤 했지만, 딱히 꼬투리를 잡을 것도 없었다. 그렇게 미묘하게 빗겨나가는 상황이 계속될 뿐이었다.
“사마의?”
“장군. 안녕하십니까.”
“여기까지 어쩐 일인가.”
“결계 쪽을 손봤습니다.”
“결계?”
“네. 아무래도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적어도 바깥에서 오는 위험은 없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
“여포가 주군의 곁에서 떨어져 있기에 예민하신 것도 이해합니다.”
“아니…난.”
“결계는 신선인 저의 의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럼 먼저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하지.”
“예.”
사마의는 금방 떠나려 했던 것처럼 걸음을 옮긴다. 봉황궁 신선이 제법 멀어질 때까지 태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결게를 손본다니 눈에 뻔히 보이는 수였다. 태오는 사마의가 가끔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신선이 궁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적지가 확실한 것도 아니었다.
한번 생긴 의심은 점점 깊게 자라서 단단하게 굳어간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쉽게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신선은 봉황궁의 기둥과 같다. 그런 존재에게 의심을 품고, 바깥으로 공론화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었다. 신선이 하는 대부분의 일은 궁을 위한 일이라고 넘어가곤 한다. 그런 일이 팽패한 곳에서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몰아세울 수는 없었다.
“내가…며칠 쉬지 못해서 예민한가.”
태오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누른다. 토벌전으로 인해 궁을 오래 떠나있어서 이러는 것이리라.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분명 실수를 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천천히 주변을 돌아본다. 결계를 만졌다는 곳까지 가서 확인한다. 그리고 어렵게 발걸음을 돌렸다. 긴 망토가 펄럭인다.
“재밌는 사람이라니까.”
“…….”
“눈치는 빠르지만, 안타깝게도 그걸 실행할 한만 그만한 능력을 받지 못한 남자구나.”
장각은 대놓고 태오를 조롱한다. 애초에 봉황의 힘을 이어받지 못한 사람은 한계가 있었다. 그걸 꿰뚫어 본 타락 신선은 입술 끝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낸다. 눈치는 채지 못했다 하여도, 아차 하는 순간 결계가 흔들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그럼. 이제 일을 하러 가볼까?”
받을 명령이 있으니 따라야 한다. 장각이 품에서 수상한 물체를 꺼낸다. 빠르게 처리하는 데는 역시 도술보단 물량 공세였다. 음험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얼굴이 점점 싸늘하게 변해갔다.
**
“신신이고 군주고 하여튼 하나도 마음에 드는 쪽이 없다니까.”
그게 응룡이면 더하고 말이야. 장각은 내내 서서 뒤를 밟았다. 물론 언제부터 인간을 신경 썼다고 저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재미를 추구하는 방법이려니 한다. 꼭 먹잇감을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것처럼 느긋하게 따라간다. 가장 완벽한 순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처럼 틈을 노리는 신선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재미있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했던가. 그러니 이런 일에 빠질 수 없었다.
인간계 조금 뒤집히는 것은 윗사람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지만, 괜한 잡음을 남기기 싫었다. 인간 몇 휘말려 다친다 해도 그건 흥밋거리도 되지 못한다. 눈앞에 갓 태어난 신선과 정체를 모르는 어린 인간이 있는데, 과연 이것보다 구미가 당기는 일은 있을 수 있는가. 장각은 이미 답을 알고 있기에 그저 조금 떨어져서 뒤를 밟기 바빴다.
‘둘 다 눈치가 없어서 다행이야.’
깔깔 웃는 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진다. 제갈량이 옆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했다. 그 예민한 녀석까지 이곳에 오면 일이 더 어려워진다. 아무리 주군 외에 관심이 없는 신선이라고 하지만 눈앞에서 같은 주군을 모셔야 하는 녀석이 공격받고 있으면 어떻게 나올지 뻔했다. 게다가 제갈량은 아무리 기습에 도가 튼 장각이라고 하지만 어지간하면 정면으로 맞서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그럼. 어디까지~따라가 보실까요.’
장터의 수많은 사람 사이를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시끄럽고 인파가 많은 곳은 안 그래도 희미한 발자국 소리를 완벽하게 지워준다. 몇 번 저 둘이 노는 것을 지켜봤지만,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좋을 대로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간다. 거기서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계로 신선은 선계로. 꼭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각자 가야 할 길을 찾곤 한다. 아마 이번에도 그러리라. 장각은 서서가 매일 유비와 헤어지던 곳 가까이에 선계 병을 숨겨두었다.
‘마지막은 늘 화려해야지. 난 화려한 것이 좋단 말이야.’
아무리 신선이 힘이 강하다고 해도 물량 공세를 이길 수 있는 상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서서는 아직 도술조차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다. 신선을 먼저 쓰러뜨리면 인간이야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았다. 이 넓은 숲에 어린아이 하나 눈에 띄지 않게 숨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이번에야말로 시킨 일을 무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사람이 이상하게 적은 기분이 드네.”
“무슨 일이지. 이럴 리 없는데…….”
“장터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혹시 다른 곳에 재밌는 일이 생겼을까?”
“그건…아닐 텐데.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럴 수가. 정말 기대했는데…….”
“가끔 이래요. 늘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고, 바쁘고…….”
“그래도 유진을 만나서 기분이 좋아.”
“정말요?”
“그럼. 우린 친구잖아. 친구!”
“…….”
“아니야?”
“아뇨. 뭐 그렇다고 해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 같은 애랑 친해져서 뭐가 좋을까 싶긴 한데, 그게 좋다면 나도 좋아요.”
“나도 유진이 좋아. 이상하게 자꾸 익숙한 기분이 들거든.”
“예?”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꼭 어디서 본 거 같고.”
“…….”
“넌 안 그래? 나 어디서 본 적 없어?”
“내가…어디서 봐요.”
“그런가.”
“가끔 이상한 말을 한다니까…….”
서서는 자꾸 유진을 바라본다. 얼굴도 표정도. 눈매도. 꼭 처음 본 것 같진 않은데, 도대체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렇게 익숙하면 분명 어디서 한 번이라도 만났던 것 같은데. 뭘까. 어디서 만났을까. 제갈량은 알고 있을까. 이 답답함이 나아지지 않는다.
유진은 그런 서서를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쩐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점점 단단하게 굳어간다. 꼭 이 세상에 살지 않는 사람처럼 구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이러다 훌쩍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무섭기도 했다. 그런 서서가 자신을 아느냐고 묻는다. 그 소리를 들으니 더 당황스러웠다. 어쩐지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은 것 같았다.
‘…….’
유장은 늘 유진한테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고 가르치곤 했다. 하늘 아래 부모 없이 형제 둘만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물론 유진은 어렸고, 유장은 조금 나이를 먹었기에. 유장이 좀 더 고생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 사라질까. 늘 전전긍긍하곤 했다. 지금도 비슷했다. 유진이 굳이 서서이야기를 깊게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유장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벌컥 화를 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해?”
“네? 아뇨. 잠깐 형 생각을…….”
“맞다. 아직 돌아올 시간이 아니라고 했지.”
“네. 저 멀리 상단을 따라갔으니 한참 있어야 올 거예요.”
“혼자라서 쓸쓸하겠다.”
“괜찮아요. 뭐 한두 번도 아니고.”
“…….”
“정말이에요. 대신 이렇게 서서가 매일 놀러 오니까…….”
“내가 놀러 와서 좋아?”
“그럼요.”
“그렇구나. 다행이다.”
“오늘은 별로 볼 게 없는 거 같은데, 나무 그늘로 갈래요?”
“그럴까?”
“그래요. 이상하게 사람도 없고. 재밌는 것도 없고. 역시 큰 상단이 떠나서 그런가 봐요. 이럴 때라도 좀 쉬려고 하니까.”
“그렇구나.”
둘은 빙글 돌아서 장터를 빠져나간다. 사람 속에 섞인 장각이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둘을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깔깔 웃으면서 목덜미에 비수를 들이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한낱 호기심 때문에 대의를 망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비록 작은 장난이지만 그런 것이 얼마나 일을 뒤틀리게 하는지는 장각이 제일 잘 알았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사람 찾기를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좋아. 나도 따라가 볼까?’
장각이 웃으면서 한 발짝 내딛던 바로 그 순간. 유진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히익. 장각의 입에서 절로 높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장된 몸짓으로 멈춰선 채 유진을 바라본다. 보이는 것 같진 않은데 정확히 시선이 장각 쪽에 닿아있었다.
장각은 이 상황이 심히 당황스러웠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 자신을 눈치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저 어린 사내아이가 뭔가를 봤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선이 너무 곧게 뻗어 있어서 의심이 간다. 장각은 천천히 손가락을 흔들어본다. 그러더니 한 걸음 다가섰다. 눈동자가 움직이는지를 본다. 아주 적은 수지만 자신을 알아봤다면 당장 둘을 없애야 한다. 서서가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니 애초에 이것이 제갈량의 술수일 수도 있었다.
‘에헤이. 정말 이렇게 날 짜릿하게 만들다니.’
정~말. 정말 즐거워. 장각은 유진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라 확신했다. 장각이 뒤를 밟는 것을 알아봤다면 저렇게 눈동자가 고정되어있을 리 없다.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했다. 그것도 서서가 앞에 있는데 저렇게 태연히 멈춰 서있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었다. 뭐. 그렇게 따지면 둘이 아주 비슷한 것 같긴 하네. 장각은 그새 낄낄 웃으면서 둘을 품평한다.
“왜 그래?”
“…….”
“누구 있어?”
“아뇨. 누가 뒤에서 보는 것 같아서.”
“아무도 없는데? 다들 자기 할 일을 하는 걸.”
“잘 못 봤나.”
“…흐응.”
“잘못 봤나 봐요. 어서 가요!”
“정말이야?”
“네. 그런 거 같아요.”
유진은 괜히 민망한지 서서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둘이 비슷하다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닌 모양인지 금방 둘의 감정이 섞인다. 금방 서로 얼굴을 보면서 웃기 바빴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길 행복하기라도 해야지. 장각은 약간 떨어져서 다시 뒤를 밟기 시작한다. 늘 가던 곳으로 가면 그곳의 선계 병과 함께 둘을 없앨 생각이었다.
“여긴 늘 와도 좋아. 탁~트이고. 인간세계도 한 번에 보이고.”
“네?‘
”어. 아냐. 아냐. 그러니까…음.’
“…….”
“장터! 장터가 신기하다고 하는 소리야.”
“…….”
“난 제갈량한데 또 혼나겠다.”
“우리끼리 비밀해요.”
“뭘?”
“여기서 말한 거 모두다?”
“그럴까?”
둘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소곤거리며 웃는다. 허리보다 조금 더 올 정도로 작은 아이는 서서를 보면서 내내 웃었다. 더벅머리가 바람에 날린다. 서서는 어디서 묻어온 지 모르는 볏짚을 손을 쓸어서 떼 주곤 했다. 그렇게 늘 앉아있는 나무 그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아래쪽을 굽어보기만 했다. 너무 평화로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조용한 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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