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갈유비] 창공의 전기(蒼空之傳記) 016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 조조와 사마의 / 손책과 주유가 각각 궁의 주인과 신선으로 나옵니다.
제갈유비 연성으로 시작했지만, 둘이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양 AU 및 설정 날조가 항상 함께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
“제가 잘못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게 다 먼저 물러서라고 하신 분 덕인걸~.”
“…….”
“그렇게 중하셨으면. 응? 그랬으면 이렇게 물러나게 하지 말았어야죠오.”
“…장각.”
“아차. 말실수.”
“…….”
“하지만 이제 다시 응룡이 깨어났는걸요. 아하하하. 전 그저 재밌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네? 사마의님은 좀 귀찮으시잖아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어머. 어머. 먼저 절 불러서 세상을 휘저어 놓으라고 하신 분은 누구?”
“…….”
“신선이…네? 그런 식으로 아무도 모르게 불의를 저지를 것이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
“재밌어. 너무 재밌어!”
“…….”
선계 병의 절반을 잃고 돌아온 장각은 상당히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선계 병은 장각의 야심작이었다. 옥새의 부름을 받지 않는 사병을 부리는 기술을 꽤나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그 선계병력의 절반을 한순간에 잃었다. 게다가.
“저번에 해주신 거…네?”
“…….”
“그것도 펑~하고 터져버렸답니다.”
“여포 말인가.”
“흑 신수라고 할까요. 그렇게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어휴.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정말 정말 속상해서…내가.”
“끝을 봤어야 했는데.”
“이제 어찌하실 겁니까?”
“뭘.”
장각은 사마의의 꼿꼿한 얼굴을 보면서 빙글빙글 웃기 바빴다. 간신히 몸만 살아서 도망 온 주제에 입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하긴 정말 죽을 뻔했으면 이렇게 냉큼 사마의를 만나러 오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장각을 부리는 사마의는 또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내가 분명히 이 곳에 자주 오지 말라고 일렀을 텐데.”
“하지만 중요한 일이니까요.”
“…….”
“응룡의 군주가 다시 살아났다. 사마의님께도 굉장~히 안 좋은 소식인 건 확실하지 않나요? 저야 그저 빌어먹고 돌아다니는 존재라지만…사마의님은. 네? 아니잖아요.”
“…….”
“봉황궁의 신선이 이렇게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으응. 다들 무슨 생각을 할까.”
“장각.”
“정말 궁금해~ 정말.”
“장각. 내가 방자한 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농담입니다. 농담.”
“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리면 다시는 말을 할 수 없게 만들겠다.”
아이 무서워라. 장각은 과장된 몸짓으로 한걸음 물러선다. 태오 장군이 있을 땐 이곳에 드나들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장각은 사마의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도 제멋대로 굴었다. 물론 그런 방자함을 눈감은 쪽은 사마의였지만, 지금은 너무 위험했다.
“일단 알려야지.”
“전요? 전 뭘 할까요? 다시 좀. 세상을 이렇게?”
“내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움직이지 말아라.”
“에이. 좀 더 놀면 안 되나요? 어린 신선을 잡는 데 그만한 공을 들였는데…….”
“물러서라고 했다. 장각.”
“…알겠습니다.”
“…….”
“대신.”
장각의 눈이 빛난다.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것 같은 표정에 사마의는 절로 눈을 찡그린다. 저 녀석이 저런 표정을 한 뒤로 사고를 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저 쓸모가 있을 것 같아 곁에 두었는데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저 나름대로 새로운 수를 두겠습니다.”
“…….”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해주시죠. 제 선계병을 반이나 잃었는데.”
“알아서 하라. 대신 다른 이의 눈에 띄면 내 손에 먼저 사라질 것이니.”
“정말 무섭다니까. 알겠습니다. 콕~ 숨어서 할 일을 하죠.”
“눈치채기 전에 물러가라.”
예. 예. 장각이 뒤로 물러선다. 기껏 여포의 힘을 빼돌려서 새로운 신수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쓰질 못했다. 제 주군이 딸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벌인 일이었다. 여포가 강한 것은 궁에 굉장한 이점이었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이에겐 그것보다 큰 장애물은 없었다.
그래서 힘을 빼돌릴 생각을 했다. 사마의는 욕심이 많았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싶어 했다. 그런 신선에게 장애물이란 그저 없애야 할 존재였다. 여포가 궁주의 품에서 놀 때 조금씩 손을 보았다. 어차피 말을 못 하는 신수이니 큰일은 없었다. 그렇게 간신히 만든 것은 장각에게 주었더니, 하라는 일의 절반도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게다가 다 잡은 줄 알았던 응룡 군주도 깨워버렸다.
‘젠장.’
쓸모없는 녀석이 늘었군. 사마의는 혀를 쯧쯧 찼다. 그나마 태오 장군의 시선이 어린 궁주에게 돌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새파란 장군은 자꾸 자신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사마의는 그런 눈이 그저 치기 어린 병아리 일뿐이라 그다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평범한 장군은 신선의 일에 간섭할 권리가 없었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응룡의 군주가 살아 돌아왔다…라.”
정말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이었다. 비록 왕윤과 다른 이에게는 어서 군주룰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살아 돌아오는 것을 바라진 않았다. 제갈량. 운도 좋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궁에 처박힌 제갈량을 바라보면서 가끔 안쓰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 정도로 잠재력이 뛰어나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았던 녀석은 다시 살아 올라와서 자신의 앞길을 막았다.
“정말…귀찮게 하는군.”
사마의는 자신의 계획은 조금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애초에 응룡궁이 다시 재건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든 계획에서 응룡궁을 배제한 것도 맞았다. 비록 인정하긴 싫지만, 제갈량이 선계 최고 신선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군주가 강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이야기였다. 일개 신선이 자신의 주인도 없는 곳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또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 제갈량의 얼굴을 잠시 떠올리던 사마의는 불쾌한 표정을 가릴 수 없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그저 무표정을 가장하고 꼿꼿한 신선이 되어야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부채로 입술을 가린 후 사실만 고해 올린다. 주군인 왕윤은 늘 슬기로운 답변은 내놓을 것이고. 신선은 그 결정에 약간 불만을 가질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숨길 수도 없었다.
사마의는 불쾌한 기분을 꾹꾹 삼킨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 고하기 위해 왕윤의 집무실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
“서서가…….”
“…….”
“제갈량은 서서를 만났어?”
“예.”
“…….”
“옥새의 인도로 응룡의 신선으로 태어나. 아무것도 모른 채 궁으로 왔고. 전 서서를 처음 만난 응룡궁의 신선이었습니다.”
“…….”
“한 궁에 신선이 둘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맞는 말이야.”
“전 그러기에 제 삶이 끝났으리라 생각했고, 서서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
“그런데…….”
제갈량의 말끝이 흐려진다. 늘 당당하고 조리 있게 말을 하던 신선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부채를 쥔 손이 가늘게 떨린다. 유비의 표정도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둘에게 서서는 꽃 같은 존재였고, 갑자기 찾아온 봄과 같았다. 하지만. 그 신선은 둘의 곁에 없다.
“서서가 날 찾아왔어.”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저도 그렇습니다. 애초에 신선인 제가 주군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니.”
“…….”
“오히려 제가 서서한테 용서를 빌어야 할 겁니다.”
“그…….”
“예?”
“아니야. 다들 나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하네.”
“군주가 강건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
“맞다.”
유비가 옷소매를 걷어 올린다. 주술로 단단히 묶어둔 끈이 눈에 들어온다. 제갈량은 옷을 갈아입힐 때 이미 저 장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봉인이 되어있기에 굳이 손을 대지 않았을 뿐이었다. 유비가 장식을 뜯어낸다. 단단하지만 여린 봉인이 툭 부서진다. 제갈량의 눈엔 사방으로 부서지며 떨어지는 주홍빛 생명 에너지가 보였다.
“서서가 준거야.”
“…….”
“제갈량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 분명하니까. 굳이 열어보지 않았어.”
“…….”
“자.”
“전…….”
제갈량은 끝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저 편지에 무슨 말이 쓰여 있을까. 서서는 무슨 심정으로 편지를 썼을까. 신선으로 태어나 해준 것보다 해줄 것이 많았는데, 그 잠깐을 참지 못하고 가버렸다. 제갈량은 가만히 장식을 받아들었다. 손끝으로 이리저리 깨진 노리개를 만져본다.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예?”
“졸려.”
“그러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
자꾸 잠을 깨려고 눈을 깜박인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의 몸은 야속하기만 했다. 이젠 거의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작은 주군을 바라본다. 제갈량은 다시 웃으면서 주군을 안아 든다. 모시고 온 것이 저이니 침전으로 모시는 것도 제갈량이 할 일이었다. 아직 안 졸려. 피곤한 것도 아니야. 목소리가 길게 늘어지는 것도 모른 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자꾸 한다. 유비는 제갈량의 품에 안겨서 꾸벅꾸벅 졸았다. 제갈량은 그런 유비의 등을 두드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직 안 잘래…….”
“이미 반쯤 주무시다 일어나셨습니다.”
“…….”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시죠.”
“…….”
제갈량은 손수 주군의 침대를 정리한다. 부드럽게 깃털을 넣어 만든 이불을 푹 덮어주고, 주변에 불편한 것은 없는지 하나하나 돌아본다. 창문으로 희미하게 넘어오는 달빛이 길게 그림자를 만든다. 이미 반쯤 꿈나라에 발을 걸친 주군을 가만히 바라본다. 혹여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라도 깰까 싶어 조용히 움직인다. 그 순간 이불 속에서 급하게 튀어나온 작은 손이 옷자락을 콱 잡는다. 제갈량은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방금까지 잠에 취해있던 얼굴은 어디 갔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주군이었다.
“가지마.”
“…….”
목소리는 아직 졸린 것이 분명한데, 손끝은 야무지게 옷자락을 쥐고 놓지 않는다. 제갈량은 마음이 약해지기 전 손을 떼어낼까 싶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유비한테 이기기 힘들었는데,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주군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아니면 같이 자면 안 돼?”
“몸이 어려지셨다고 어리광까지 느신 겁니까.”
“하지만…응? 같이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주군.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
“신선은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존재입니다.”
“…….”
“제가 움직이면 주군의 잠자리를 해칠 것이 분명하니…….”
“그래도 여기 있어. 명령이야.”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시는 것은 군주로서 그리 좋지 않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냉정한 말에 유비는 금방 꼬리를 내린다. 누구 하나 똑바로 우러러볼 수 없는 군주인데, 제갈량을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작은 볼이 부투룽하게 부어오른다. 속에 들어있는 주군은 그저 옛날과 같은데, 어린아이의 모습이 그런 성정에 영향이라도 가나 싶었다. 군주와 신선은 그저 상호 보완적인 관계. 감정적인 교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궁을 위한 것이었다.
‘어쩐다.’
궁을 걱정하다 버석하게 말라버린 심장에 작은 싹이 자란다. 어떤 감정인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은 간신히 싹을 틔우고 제갈량의 뇌에 부채질한다. 늘 이성적이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하는데. 요새는 좀처럼 그런 것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직도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 흐릿하게 웃으면서 손등을 톡톡 두드린다. 어쩔 수 없이 스르르 옷자락을 놔준 손이 이불을 잡고 끌어당긴다. 눈만 빠끔하게 내놓은 채 제갈량을 바라본다.
“제가 아무리 전계 최고라고 하지만 어린아이를 달래는 법까진 습득하지 못했습니다.”
“…….”
“게다가 밤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젠 정말 주무셔야죠.”
“어린애 아닌데…….”
제갈량은 꼭 아이를 어르는 것처럼 웃으면서 말한다. 누구보다 꼿꼿한 신선은 유비에게 약하다. 권속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칼도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은 얼음 같은 이였다. 한없이 단단하고 엄한 신선이라고 하지만 주군에겐 늘 약했다.
“어린애가 된 기분이야.”
“육체를 보면 맞고, 성정도 하나도 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린애가 맞죠.”
“너무하네. 제갈량.”
“정말요?”
“응. 완전 너무해.”
“그럼 주무시고 일어나서 마저 제게 한마디 해주세요.”
“…….”
“주무실 때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침대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은 아이를 빠짐없이 바라본다. 제갈량으로선 물러설 수 있을 만큼 물러선 대답이었다. 작은 아이의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어느새 볼의 상처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의 안으로 보이는 작은 몸엔 아직도 그날의 상흔이 가득했다.
“역시 그건 싫어.”
“네?”
“어떻게 제갈량은 침대 옆에 앉혀두고 내가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어.”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한번 잠들면 일어나시지도 못하시지 않습니까.”
“…….”
이번엔 유비가 졌다. 하지만 계속된 어리광에 신선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군주는 늘 성장하는 존재라고 하는데, 유비는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천천히 변하는 바다와 같아서. 오히려 모든 것을 품고 움직이려 한다. 그 모든 것에 자신도 포함된 것일까. 제갈량은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더는 놀리지 않기로 했다. 이럴 땐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는 것도 좋았다. 유비가 처음 군주로 올라선 날. 약간 늦게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선은 자신의 주군에게 영원한 맹세를 했다. 그러면서 혹독하게 가르쳤었다. 그때 제갈량이 보면 웃을 일이군. 제갈량은 늘 주군이 휘둘리는 것을 걱정했지만, 오히려 더 크게 휘청이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럼 여기 누워서 같이 자자.”
“군주의 침실에 감히 어떻게.”
“주군의 명령이야 제갈량.”
“이럴 때만 명령이라고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어서. 응?”
“…….”
명령이라고 말이 나온 이상 제갈량은 거부할 수 없었다. 가볍게 한숨을 쉬며 팔로 크게 호를 그린다. 길고 복잡한 옷이 한 번에 사라진다. 그리고 깨끗한 하얀 침의를 하나만 걸친 채 가만히 주군을 바라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다니. 아이를 키워도 이것보단 덜 귀찮을 것 같았다.
“같이 잘 거지? 어서 이리로 들어와.”
“…네.”
“어서.”
“제가 어디 갈 곳이 있다고 이러시는지.”
“하지만…….”
작은 아이가 말은 잘한다. 결국, 제갈량은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똑바로 누운 채 천장에 새겨진 문양을 하나하나 센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자 유비는 또 제갈량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 기어코 돌아눕게 만든 후 품 안 가득 제갈량을 끌어안았다. 누가 보면 어린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줄 알 것이다. 제갈량의 품에 볼을 맞대고 있던 작은 주군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기만 한다.
“이불 잘 덮고.”
“신선은 추위를 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제 그만 주무세요. 신수들이 이 모습을 보면 온종일 저를 놀릴만한 일이니까요.”
“정말?”
“네. 석 달하고도 열흘 동안 내내 놀림을 당하게 생겼습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할게.”
“꼭 그렇게 해주세요.”
정말 주군을 재우려는 듯 어색하게나마 등을 두드려준다. 억지로 떼어내면 또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로 온종일 자신을 따라다닐 것이 분명했다. 군주와 신선 간의 접촉이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제갈량은 늘 이런 것에 낯설어했다. 기억을 더듬고, 옥새가 나눠준 지식을 헤집어본다. 유비가 자신에게 어떻게 해줬던가. 하나하나 어색하지만 성실하게 따라 한다.
자신의 몸속에 심장이 있는지. 그것이 인간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가슴에 손을 대어보아도 신선은 느낄 수 없었다. 심장이라고 하기보단 핵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맞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품에서 주군이 편안하다면 그걸로 되었다. 제갈량은 하나도 졸리지 않은 표정으로 자꾸 등만 토닥였다.
그렇게 졸리지 않는다고 하던 고집이 툭 꺾인다. 새근새근 내려앉는 숨소리가 들리는 침실에서 제갈량은 홀로 깨어있었다. 유비가 완전히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혹시 어디 갈까 봐 옷자락을 꼭 쥐고 있는 작은 손을 하나하나 곱게 편다. 제갈량은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곤 침대 곁에 앉아서 주군을 내려다본다.
“계속 지켜드리겠습니다.”
날이 샐 때까지 여기 앉아있을 모양이었다. 신선은 눈이 밝아 어둠 속에서도 쉽게 글자를 읽어낸다. 누군가 본다면 여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제갈량은 작게 한숨을 쉬며 받아둔 노리개 속에 들어있는 편지를 꺼낸다. 몇 번이나 꼭꼭 접혀 들어가 있던 종이는 잔뜩 구겨져 있었다.
“서서…….”
유비는 이 편지를 읽지 않았다고 했다. 어차피 날이 새면 주군 곁에서 떨어질 수 없으니 지금 읽어야 했다. 하지만 차마 편지를 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끝나기 직전까지 자신이 모를 수 있었을까. 계속 그 생각을 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서서는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편지를 읽고 나서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수많은 물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채 괴롭힌다. 제갈량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 편지를 손에 쥐었다. 서서가 한 글자 한 글자 새겨넣은 편지는 너무 무거웠다.
제갈량. 첫 소절을 읽고서 눈을 감아버렸다. 모든 감정은 아침이 오기 전에 정리하려고 했다. 제갈량은 늘 당당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그런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찬찬히 편지를 읽어간다. 제갈량이 원하던 답이 모두 편지에 있었다. 서서는 비록 모든 진실을 다 알진 못했다. 허나 자신이 왜 이런 식으로 유비를 만나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짐작하고 있었다.
“정말…바보같이.”
꾹꾹 참아온 말이 툭 터져 나온다. 이제야 왜 자신이 유비를 찾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얽혀버렸으니 전대 주군의 신선인 제갈량이 새로운 군주를 알아차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서서는. 제갈량은 그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꼭꼭 눌러쓴 글자를 읽었다. 마지막 한 줄까지 모두 읽은 뒤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 감정은 아침이 오기 전에 모두 정리해야 했다. 서서의 편지대로 라면 제갈량은 할 일이 아주 많았다. 모든 일은 마지막에 자신이 소멸하고, 서서를 만나면 말하기로 했다. 비록 신선의 생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어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서서의 부탁을 모두 들어주고, 주군을 가장 강한 군주로 만든 후에. 제갈량은 먼 미래를 생각한다. 가늘게 웃었다가 다시 입꼬리를 닫아버린다.
해야 할 일이 생겼으니 이젠 그것을 향해 걸어가면 된다. 한번 정한 목표를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달이 천천히 선 뒤로 넘어갈 때까지. 신선은 내내 침실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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