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갈유비] 창공의 전기(蒼空之傳記) 012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 조조와 사마의 / 손책과 주유가 각각 궁의 주인과 신선으로 나옵니다.
제갈유비 연성으로 시작했지만, 둘이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양 AU 및 설정 날조가 항상 함께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그렇게 늘 무사히 헤어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했는데. 장각이 버티고 있으니 그렇지 못했다.
“깜~짝 등장!”
“꺅!”
“…….”
“으응. 으응. 그렇게 별~써부터 놀라면 내가 슬프지.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이 남았는데 말이야. 아. 하하하하하.”
“누…누구세요?”
“누구긴.”
“…….”
“누굴 거 같아?”
“…….”
서서의 눈이 동그랗게 되다 못해 등잔만큼 커진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누구보다 위험한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제갈량이 흘러가는 것처럼 말한 것이 기억났다. 왜 인제 와서야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유진 앞으로 나서서 막아선다. 장각과 유진 사이에 버티고 선 서서는 주먹을 꾹 쥔다.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갈량이 왜 인간계에 내려가는 것을 꺼렸는지. 이제야 하나둘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신선의 숙명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고 했다. 선계 병을 필요 한대로 주무르고, 나아가 주군과 신선 사이를 갈라놓거나 없애버리는 일도 심심하지 않게 벌이는 인물. 분명히 이 사람이 그 존재였다. 신선은 신선끼리 어느 정도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다. 애초에 자신의 주군을 보필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니 그것을 숨길 이유가 없다.
“무슨 일이시죠?”
“일은 무슨.”
“…….”
“내가. 재밌는 걸 아주~아주 좋아하거든. 그래서 잠시 보여주려고.”
“인간계에서 신선의 힘을 쓰는 것은 금지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야 그렇게 배웠으니 그러겠지.”
“…….”
“목격자만 없으면 되는 것 아닐까?”
“…….”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아주 많단다. 어린 신선아.”
“인간을 해치면 안 되어요!”
“어머. 어쩌나. 난 인간만 해친다고 한 적이 없는걸.”
“…….”
“응룡궁도 이제 슬슬 주군과 신선의 관계를 끊을 때가 되었지. 이상하지 않아? 어때서 신선은 군주 밑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
“난 그런 의문을 가진 존재. 그리고 재밌는 것을 좋아하지. 나와라 선계병!”
“어. 어어.”
“미리 말해두지만, 저 녀석들은 아~주 무자비해. 그럼…….”
“…….”
“무사히 다시 만나길 빌지.”
장각은 허리를 접어가면서 웃는다. 그런 장각의 뒤에서 나타난 시커먼 갑옷을 입은 선계 병은 그저 커다란 위협이었다. 애초에 대상을 지목한 상황이었다. 서서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서서 뒤엔 어린 유진이 있었다.
“이걸…이걸 어쩌지.”
“왜? 무섭나?”
“…….”
“그냥 네가 잘못 태어나서 다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
“네가 태어나서 모든 일이 어그러졌단다. 거의 다 성공할 뻔했는데.”
“그…그런. 무슨 말이에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렴. 선계 병을 뭐하나!”
“…….”
“가는 길은 곱게 보내줘야지.”
너무 많은 정보를 들어서 혼란스러웠다. 장각이 말하는 어그러짐이 무엇이며, 자신의 탄생이 왜 잘못된 것인지. 저 남자가 말하는 윗선은 무엇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유진을 데리고 이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얼굴도 보이지 않게 투구로 꽁꽁 싸맨 선계 병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꼭 연기처럼 흔들린다. 그러면서도 장각의 말을 따라 빠르게 달려온다. 서서는 한걸음 물러서면서 유진의 손을 잡았다. 놀란 아이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하지만 깊게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다.
“유진. 내 말 잘 들어.”
“…….”
“괜찮으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내 옆에 붙어 있어야 해?”
“이…게.”
“아무 일 없을 거야. 괜찮아. 응?”
“…….”
“나 믿지?”
“…….”
뻣뻣하게 얼어있는 얼굴이 겨우 끄덕거린다. 잔뜩 겁을 먹을 녀석은 그대로 혼자 도망가지 않고 서서 옆에 붙어섰다. 물론 도망가다 둘이 따로 잡히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함께 포위당하는 편이 나은지는 알 수 없었다. 서서는 제갈량에게 배운 말을 되새겼다. 신선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면 안 된다. 물론 교류를 막을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선을 넘어 그것에 대한 의문이 자라난다면 그 즉시 멈추어야 한다. 인간은 인간이 걸어갈 길이 있기에. 신선과 함께 일 수 없다. 그 말이 왜 당장 목숨을 위협받는 지금에서야 생각이 나는지. 서서는 이런 상황이 약간 무섭고 억울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침착하자. 침착하자. 서서를 유진을 뒤로 숨기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제대로 도술을 사용해본 적이 손에 꼽았다. 애초에 주군이 없으니 환수를 처치하러 나갈 수도 없었고, 제갈량은 아직은 너무 이르니 실습보단 이론에 신경 쓰라는 말을 하곤 했다. 조금이라도 익숙해져야 했는데. 서서는 영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유진을 보호해야 했다.
“다스리기를! 대지와 같이!”
허어. 영창을 듣는 장각의 표정이 어그러진다. 저 어린 신선은 자신이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로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가르친 놈이 제갈량이라고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지식을 알려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린 신선이란 병아리와도 같은 존재였다. 쉽게 죽어도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것. 장각의 눈에 서서는 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저 어린 신선이 저 죽을 날을 조금 미뤄보려는 가련한 노력을 이해하기로 했다.
“신선 마법! 연환!”
손끝에서 문양이 퍼져 나온다. 손가락으로 선계 병을 가리키면서 도술이 퍼질 범위를 지정했다. 모든 선계 병을 막으면 좋을 텐데. 서서는 아직 넓은 범위를 완벽하게 지탱할만한 힘이 없었다. 적어도 도망칠 수 있을 정도의 시간만 벌면 된다. 제발 자신의 도술이 제대로 움직이기를. 도술이 전개 되는 그 짧은 순간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이럴 수가!”
땅에서 솟아오른 쇠사슬이 선계 병의 발목을 휘감으며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앞으로 달려가는 명령만 인식한 선계 병은 자신의 속도와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쓰러졌지만, 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애초에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모양이었다.
“돼…됐다.”
“…….”
“이제…어떻게 해야 하지.”
“…….”
도술을 성공한 기쁨도 잠시. 선계 병의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몸을 속박한 쇠사슬을 힘으로 끊으려는 듯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술로 만든 쇠사슬은 시전자의 정신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쇠사슬에 금이 쩍쩍 가는 것을 보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유진!”
“…….”
“이리와. 어서!”
“…….”
“가서 이야기해 줄게. 빨리!”
유진의 손을 덥석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서 앞만 보고 달린다. 다른 도술로 적의 시야를 방해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애초에 서서가 연계도술을 성공한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선계 병이 도술을 깨려 애쓰는 동안 장각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꼭 저 멀리 내다보는 사람처럼 흐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사실 선계 병은 땅에 붙어있는 존재가 아니니 열심히 도망치는 저 둘 앞에 다시 소환하면 그만이었다. 애초에 사람도 아닌 존재였다. 그만큼 장각이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하단 소리였지만, 어쩐지 그 능력으로 한 번에 숨통을 끊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정말 재밌다니까.”
어서어서 움직여라. 명령은 선계 병에게 전달된다. 어차피 멀리 가지 못한다. 신선이 인간을 데리고 신선계로 돌아갈 리도 없고. 이 상황에 응룡궁으로 갈 수도 없을 것이 뻔했다. 인간계에서 숨어야 한다면 그저 장각의 손바닥 안이었다. 서서가 이곳을 찾아와 놀러 다닌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디일까. 어디쯤 몸을 숨기고 이 상황이 지나가길 빌고 있을까. 장각은 그런 생각을 하면 온몸이 짜릿짜릿해진다. 즐거운 일이 없다면 만들면 그만이었다.
“천천히 찾아보도록 하지. 어차피 어린 신선의 도술 따위야 금방 깨질 설탕 같은 것이니까.”
“…….”
“오. 그래. 나의 선계 병들이 이제야 스스로 속박을 풀었구나.”
“그럼 두 번째 전쟁을 시작해 볼까? 아니 전쟁이라기보단 토끼몰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어. 어린 녀석 둘만 잡으면 되니까 말이야.”
선계 병이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길고 검은 연기가 남았다. 뱀이 움직인 것처럼 어지럽게 얽힌 것은 햇빛을 받자 바삭바삭 부서져 내리면서 그 형태가 점차 사라졌다. 물론 위쪽에서 알아서 처리해줄 일이지만 혹시나 백호궁 군주에 눈에 띄어서 좋을 일은 없었다. 장각은 최대한 빨리 이번 일을 마무리 짓기로 정했다.
**
“서서. 이쪽으로 와요.”
“…….”
“여긴 서서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날 믿고.”
“응. 으응.”
“빨리. 조금만 더 힘내요.”
“…….”
사실 서서가 어린아이의 보폭에 맞춰 뛴 것이 가까웠다. 신선은 땅을 접고, 바람을 타고 움직일 수 있는 존재. 인간은 그 속도를 따라올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정신도 없는 모양이었다. 유진은 어느새 앞서서 서서를 잡아끌었다. 유진이 안내한 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서서가 놀라기도 전에 방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여긴…….”
“우리 집이에요. 정말 좁고 볼품없지만.”
“아냐.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괜찮아요.”
“그게…….”
“…….”
“미안해. 다 나 때문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유진은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서서는 이제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이 정도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직접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서서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진다. 유진은 방문이 단단히 닫힌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한다.
“아까 그 사람들은 뭐예요?”
“그건…….”
“평범한 인간은 아닌 거 맞죠? 사실 서서 처음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난 아마 돌아가서 큰일 날거야.”
“…….”
“그런데 정말 여기가 안전해? 집 위치가 들키면…….”
“어…뭐랄까. 예전부터 우리 집을 사람들이 잘 못 찾았거든요.”
“…….”
“그러니까 아까 그 사람들한테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상하게 기억이 흐릿해서 매일 오는 곳도 오기 힘들다고 하시던데…….”
“…뭐?”
“형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해서…필요하면 그냥 내가 나가요.”
“…….”
이게 무슨 말인지. 서서는 가만히 유진을 바라보았다. 설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제갈량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제갈량과 함께 내려왔어야 했다.
“…유비 님?”
“네? 서서. 내 이름은 유진이에요.”
“…….”
“난…….”
그 순간 엄청난 기운이 반 안에 가득 찬다. 서서는 입도 열지 못할 만큼 그대로 얼어붙었다. 유진의 상태도 조금 이상하다. 꼿꼿하게 앉은 채 가만히 눈을 떠서 서서를 바라본다. 까만 눈 속에서 번쩍이는 황금빛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호박을 박은 것처럼 번쩍번쩍 빛이 난다. 꼭 촛불을 켜놓은 것 같았다. 혹여 빛이 밖으로 새어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하지만 꼭 공간이 분리된 것처럼 조용했다.
“유비 님?”
“…….”
“세상에. 이걸 제갈량한테 알려야 하는데…….”
“…….”
“왜 장각이 왔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
“어쩌지. 이걸 어떻게 알려야 할까.”
“서서?”
“네. 유비 님. 신선 서서 주군을 뵙습니다.”
“…….”
하지만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껍데기를 깨고 흘러나올 것 같던 힘이 한순간 사그라진다. 힘없이 옆으로 쓰러진 아이는 정신을 잃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서서는 무릎걸음으로 달려가 유진을 안아 들었다. 축 늘어진 몸은 아직 따뜻했다. 놀란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뛴다. 왜 응룡궁의 주인이 되어야 할 군주가 인간의 몸에 들어가 있는 걸까. 차라리 이곳에 자신보다 제갈량이 있었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서는 계속 후회를 한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응룡궁의 군주를 죽이러 나타난 것이 분명한 무리가 있다. 애초부터 유진이 누군지 알았고, 서서가 자연스럽게 그를 찾게 했으며. 시간이 되자 나타나서 둘을 한 번에 없애려 한다. 누구일까. 어디서부터 연결된 계략인지는 짚어낼 수 없었다. 애초에 한두 군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서서는 유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유진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히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이래서…이곳이 안전하다고 했던 걸까.’
사실 유진은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서 자각을 못 한 것 같았다. 서서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을 한낱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했겠지. 왜 이제야 신호를 보낸 것인지. 그렇게 익숙하다면서 따라다닌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가슴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왈칵 솟아올랐다. 당장 제갈량에게 알려야 한다. 응룡궁의 주인이 돌아왔다고 말해야 하는데,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당장은 작게나마 결계가 쳐 있으니 인기척을 숨길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느껴질 텐데…….’
장각이라면 충분히 알아차릴 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이 서서에게 불리했다. 애초에 제대로 된 결계도 아니었다. 그저 눈가림의 일종. 하지만 이곳을 떠나도 딱히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선계로 가는 통로는 한 곳 뿐이니 이미 막혀있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몰래 제갈량을 부르는 것도 힘들었다. 전서구를 날려 보낼 수는 있지만, 그것조차 적에게 발견될 확률이 너무 높았다.
“어쩌면 좋아.”
서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차라리 유진이 완벽하게 각성해서 응룡궁의 주인이 된다면 좀 더 편할지도 몰랐다. 그러면 선계의 모든 이가 알아차릴 테고. 자연스럽게 장각이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을 바라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신선은 주군을 위한 도구. 신선 서서. 주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평생 못 만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행이에요.”
“…….”
“제갈량도 기뻐할 거랍니다.”
서서는 밤이 깊도록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더니 방 안을 뒤져서 뭔가를 찾는다. 하지만 작은 방 안엔 그다지 많은 물건이 없었다. 간신히 종이 한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다. 먹이나 붓이 없으니 도술로 한 자 한 자 제갈량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새겨 넣는다. 차라리 이쪽이 조금 더 안전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해본 적은 없지만, 시간을 조금만 쓰면 가능할 것 같았다. 손가락을 따라 제갈량에게 보내는 편지가 빼곡하게 돋아난다. 조금 지나면 그저 보통 종이처럼 보이겠지. 제갈량이라면 이 편지를 익숙하게 찾아주리란 생각을 한다.
“…….”
해야 할 일이 생기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물론 무섭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서서는 편지를 작게 접어 자신이 자고 있던 노리개 장식 안에 넣었다. 그리곤 장식 술을 모두 뜯어낸다. 유진의 손목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몇 번이나 줄을 묶어서 고정했다. 제갈량은 이 아이, 아니 주군을 보호해줄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만 시간을 끌면 충분했다.
“쥐새끼 같은 것.”
“…….”
“어쩐지 왜 이렇게 보이지 않나 했다. 인간 발걸음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한정되어있는데 말이야.”
“…….”
“이런. 이런. 그렇게 쥐죽은 듯 숨어 있어도 내 눈엔 다~ 보여요.”
“…….”
“가라. 선계병. 저 결계부터 부숴버려!”
바깥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린다. 서서는 이제야 때가 왔음을 알았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유진을 데리고 나가기엔 힘이 부족했다. 그저 조금이라도 결계가 버텨주길 바라면서 숨을 죽인다. 하지만 장각의 공격은 거세기만 했다. 애초에 끝을 알고 있는 싸움이었다. 장각의 목표는 확실했고, 서서 또한 그랬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알고 있지만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쩍. 쩌적. 귀를 찢을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선계 병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지 몸을 부딪쳐 결계를 흔든다. 애초에 인간의 육신을 타고나지 못한 것이니 타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저 재가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결계에 닿은 부분이 사라진다. 한 명. 다시 한 명. 이내 서너 명이 달려든다. 한곳을 집중적으로 흔들기 시작하자 결계가 급속도로 불안정해진다. 유진이라도 깨어있으면 조금 나았을까. 사실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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