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이라 시간이 부족해 보고싶은 부분만 쓰느라 굉장히 불친절 하지만, 언제나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윈터솔져 기반 럼로우와 버키 이야기 입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겨울이 빨리 오려는 모양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럼로우 옆에 서있는 신참은 늘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어떻게 눈에 들었는지, 럼로우가 냉큼 뽑아다 자리에 앉힌 이후로 오만가지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 상납한 갈비뼈만 석대가 넘었다. 하지만 그게 싫지도 않은 모양인지 연신 질문을 한다. 럼로우가 그렇게 살가운 남자는 아니기에 대충 대충 흘려 넘기지만 그래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있었다.
“넌 아직도 그렇게 눈이 안 트여서 어떻게 먹고 살겠냐.”
“예? 진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러다 골로 간다.”
“…….”
“눈이 병신이면 전쟁터에선 좋은 먹이일 뿐이지.”
“…….”
“잘 봐둬.”
“…….”
“무기가 움직이는 걸 보면 다 알 수 있지. 계절이 바뀌는 것도 상태도.”
“언제나 비슷한 걸요.”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
알 듯 말 듯 요상한 말을 한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녀석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럼로우 옆에 붙어있으면 얻어먹을 것이 많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럼로우의 시선은 여전히 윈터 솔져를 향해있었다.
“그런데 팀장님은 말입니다.”
“뭐 또. 왜 자꾸 귀찮게 해. 하여튼 오냐오냐 해주니까 이 놈이고 저 놈이고.”
“팀장님은 어떻게 이렇게 오래 무기를 다를 수 있는 겁니까.”
“그런 걸 왜 또 물어봐. 안 죽고 살아있으니까 하는 거지.”
“…….”
“왜 내가 죽었으면 하냐?”
“아닙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지만…….”
“새끼. 돌아가서 총기 손질이나 해놔. 좀 있다 저 녀석 따라 나가야 하니까.”
“…….”
“가봐. 뭐해?”
“네. 네. 알겠습니다.”
럼로우는 귀찮다는 것처럼 손만 흔든다. 이럴 땐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편이 났다. 키만 멀끔하게 큰 남자는 조용히 한걸음 물러선다. 그리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사라진다. 저 괴물 같은 녀석을 가둘 정도로 무거운 문이 닫히는 소리는 느리고 묵직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럼로우는 다 타들어간 담배를 땅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껐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공중에 퍼진다.
“…….”
“어쭈.”
그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챈 녀석이 고개를 돌려 럼로우를 바라보았다. 늘 보는 얼굴이지만 항상 낯선 표정을 한다. 이 녀석에겐 그런 일이 너무 당연해서 놀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아니. 놀랄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 다음 일에 대한 대비는 해야 했다.
“어이쿠.”
“…….”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훅 들어오는 칼을 간신히 피한 남자는 익숙한 듯 옆에 있는 쇠파이프를 들었다. 칼로 인한 공격이 실패하자 바로 손이 움직인다. 그 손을 막는 것은 단단한 쇠였지만, 막기엔 역부족인 것 같았다. 우그러지는 쇠파이프를 바라보던 럼로우가 순간 힘을 빼면서 뒤로 빠져나온다. 아무런 대비책 없이 달려든 녀석은 그대로 나뒹굴고 만다.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가 등을 꾹 밟는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은 그리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요새 힘이 더 좋아졌는지. 이 늙은 아저씨는 점점 힘이 부치네.”
“…….”
“허리 부러지면 네가 책임 질 거야?”
“…….”
“하여튼 이렇게 손이 많이 간다니까.”
“…….”
꾹꾹 힘을 주면서 체중을 실어본다.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럼로우의 발목을 잡아챈다. 콘크리트가 무너질 만큼 큰 소리가 들리고 바로 긴 신음소리가 들렸다. 이런 것도 익숙했다. 아. 긴 신음이 뚝 끊긴다. 콘크리트가 쩍쩍 갈라질 정도로 큰 충격이었지만, 럼로우는 입안에 가득 고인 피를 뱉어내는 걸로 이 모든 것을 마무리했다.
“이러다 진짜 나 죽는다니까.”
“…….”
“매일 놀라고, 매일 패악을 부리고. 도대체 뭘까.”
“…왜.”
“왜?”
“왜 날 깨워.”
“무기가 쓸 일이 있으니 깨우지.”
“…….”
“뭘 하겠어. 안 그래?”
“…….”
맞는 말이었다. 윈터솔져는 자신을 무기라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뇌를 지져놨다더니 의외로 남아있는 지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것을 알아차리면 바로 끌려갈지도 몰랐다. 럼로우는 딱히 이 녀석을 아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이상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이 자신의 이중 생활에 도움이 될 일이었다.
“에셋.”
“…….”
“생각보다 말을 할 줄 아네.”
“그건…….”
“왤까. 설마 제정신이야?”
“…….”
“그건 아닌데.”
“…….”
“왜 자꾸 말을 하고 싶어 할까.”
“…….”
럼로우는 흔들거리던 발목으로 땅을 딛는다. 이상하리만큼 빠른 회복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녀석은 또 귀신을 본 것처럼 벌벌 떨었다. 미친놈 데리고 장난을 하는 것은 딱히 취미가 없었다. 이젠 할 일을 해야 했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명령에 대한 거부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이드라는 내부에 비밀이 많았다. 한 사람이 아는 것을 꼭 그 팀 모두가 알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이번 명령도 그와 비슷한 일이었다. 윈터 솔져를 제어해야하는 팀에겐 어느 정도 정보를 알려준다, 하지만 그 것 뿐이었다. 목숨은 알아서 챙겨야했고, 그에 대한 불응은 죽음으로 갚아야 했다. 오래 있는 녀석은 목숨을 건 명령을 따르다 죽기 일쑤였고, 도망가는 놈들은 곧바로 사살되었다. 그런 곳에서 럼로우는 제법 오래 버틴 최고참 중 한명이었다.
매일 임무가 끝나면 뇌를 깨끗하게 비우지만, 알게 모르게 쌓인 정보가 있는 모양이었다. 럼로우는 그런 작은 정보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나마 이 미친 무기를 제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란 소리와도 같았다. 빠른 회복력만큼 럼로우의 목숨 줄은 길기만 했다. 그걸 아는 건지. 아니면 그저 장난감처럼 생각을 하는 건지. 윈터 솔져의 머릿속은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오히려 알기 어려웠다.
“이제부터 게임을 하자.”
“…….”
“늘 하던 일이니까 어려울 것도 없고.”
“…….”
“기간은 넉넉해. 다들 귀한 무기 혹사시키면 안 된다고 하더라.”
“…….”
“정말 웃기지도 않아. 안 그러냐?”
“…….”
원터솔져는 점점 얌전해 진다. 뭔가 끊임없이 기억하려고 하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그저 멍청하게 앉아있는 놈은 조용했다. 그리고 그 앞엔 늘 군화가 있었다. 남자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 따윈 기다리지도 않는 모양인지 자기 할 말만 계속 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대답은 하지 않지만 가끔 고개를 끄덕이긴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론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이렇게 매일 뼈를 내주는데 왜 이렇게 낯을 가릴까.”
“…….”
“시간은 넉넉하게 가을부터 겨울사이로 하자. 겨울은 네게 제일 익숙한 날씨잖아.”
“…….”
“겨울이 오고 있어. 응?”
“…….”
가을과 겨울 사이는 꼭 계절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흐르곤 한다. 끊임없이 달아오르던 지면이 해가 떨어지면 순식간에 식어가고 어둠이 찾아온다. 가로등 불빛마저 흐릿해질 무렵 하이드라의 무기는 조용히 밖으로 나온다. 늘 그런 식이었다. 임무가 있을 때만 일어나는 녀석은 늘 그렇게 조용했다. 럼로우가 말하는 게임은 늘 비슷했다. 사진에 있는 인물을 찾아서 암살한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기지로 복귀한다. 간단한 룰이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
“…….”
“이번 게임엔 패널티가 좀 많아. 사방에 눈이 있어. 하지만 조금이라도 꼬리를 밟히면 널 폐기 처분 할지도 몰라.”
“…….”
“아니. 그러기엔 아까우니 얼굴을 뜯어서 다른 얼굴을 이식할 수도 있겠지.”
“…….”
“기간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시작될 때까지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하지만 서두르다 들킬 거면 차라리 시간을 넉넉하게 쓰도록 해.”
“…….”
“백업은 나랑 A급 대원 몇몇만 간다. 이번엔 좀 까다로운 상대니 많은 사람이 움직여서 좋을 것 없어.”
“아니.”
“뭐?”
얌전히 있던 녀석이 반문한다. 이런 일을 흔하지 않았기에 럼로우는 잠자코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려 보았다. 보고를 해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하이드라의 무기는 늘 이렇게 재밌는 사건을 일으키곤 했다. 물론 그 뒤에 수습할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말이다.
“럼로우. 너만 가.”
“무슨…….”
“다른 놈들은 죽으면 그만이지.”
“…….”
“필요없어.”
“…야. 에셋.”
“필요 없다고.”
“…….”
녀석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잠깐 제정신이 돌아왔을까 싶을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바로 무너져 내리는 표정을 보아하니 그냥 얻어걸린 모양이었다. 럼로우는 늘 생각했다. 이 녀석 옆에 있으면 분명 비참하게 죽어버릴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절대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얼굴이 익숙해지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군.”
“…….”
“왜 이렇게 나만 믿을까.”
“…….”
“팔자가 사나워도 보통 사나운 게 아니야.”
“…….”
“한대만 더 피고 들어가자. 거기 대충 구겨져 있어.”
럼로우는 한 대 남은 담배를 꺼낸다. 불을 붙이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냄새가 코 끝에 닿자마자 녀석은 저 멀리 물러선다. 아. 냄새가 옮으면 안 되던가. 럼로우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면서 속으로 웃었다. 괜히 담배연기를 한입 물고 걸어가서 후 불어본다. 펄쩍 뛰는 녀석이 휘두르는 손에 코뼈가 내려앉을 뻔 했지만, 다행히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임 시작은 삼일 뒤야. 또 사람 잡지 말고 얌전히 말 들어.”
“…….”
“그럼 돌아가 볼까.”
“…….”
럼로우는 다 타들어간 담배를 툭 던진다. 차가운 바닥에 떨어진 새빨간 불씨가 점점 죽어가는 것을 눈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이럴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지만, 그냥 가을을 타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