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로우버키/럼벜] 벜른 전력60분 : 너는 늘 나를 기다렸고 나는 늘 너를 잊었다
+) NOTICE
사실 혈청 실험 대상자였던 럼로우와 그 혈청 제공자 윈터솔져 이야기
영감님(@ygDM25_93) 과 풀었던 썰을 기반으로 합니다.
전력이라 시간이 부족해 보고싶은 부분만 쓰느라 굉장히 불친절 하지만, 언제나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윈터솔져 기반 럼로우와 버키 이야기 입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솔직히 이 정도로 알려줬으면 할 만큼 했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 살기가 팍팍한 곳에서 이 이상의 친절을 기대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머리가 멍청한 새끼라도 말은 알아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닌 모양이었다. 하나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 럼로우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
“뭘 잘했다고 눈을 치떠.”
“…….”
“귀가 먹어버린 개새끼도 너보단 말을 잘 알아듣겠다.”
“…….”
“어쭈?”
“…….”
럼로우가 소리를 버럭 지르면 어둠 속에 뭉쳐 앉은 놈은 구물구물 움직인다. 그러더니 한껏 웅크린 채 눈치를 본다. 아니 보는 척만 한다. 정말 저 새끼 마음속에 잔소리 한 토막이 들어앉았으면, 똑같은 상황을 서른 번도 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아니까 제발 말 좀 들어라.”
“…….”
“입이 붙은 건지. 말을 못하는 새낀지.”
“…….”
하긴 뇌를 갈아버렸는데 똑바로 말을 하면 그것대로 무서운 일일테다. 럼로우는 그냥 그렇게 넘기기로 했다. 이 미친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쓸데없는 호기심은 좋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돈이 짭짤하게 들어오는 용병 일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하이드라는 한번 잡은 먹잇감을 쉽게 놓지 않았다.
바쁘게 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도저히 발을 뺄 수 없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이쯤 되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럼로우의 본능은 어서 도망치라고 했지만, 마음대로 사라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받아먹을 대로 받아먹은 것은 물론이고, 기밀정보도 제법 알게 되었다. 이 상태에서 그만두고 싶어하는 건 죽여달라는 무언의 부탁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러고 있지.”
“…….”
“너 내 갈비뼈 부러뜨린 건 생각나?”
“…….”
에셋은 모르는 눈빛이었다. 한없이 커다랗고 불안한 눈동자를 한 채 못 볼 걸 본 것처럼 움직인다. 럼로우는 그런 녀석을 보니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오냐오냐 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럼로우가 한걸음 다가서면 에셋은 두걸음 물러난다. 더 갈 곳이 없을 정도로 벽에 밀착한 채 눈을 굴린다.
“이거 봐라.”
“…….”
“나 참.”
“…….”
“이거 보여? 네 놈이 그랬잖아.”
“…….”
안 그랬다는 표정으로 럼로우를 바라본다. 물론 그 눈빛을 알아듣는 사람은 럼로우 뿐이었다. 그 순간 귀에 꽃은 무전기에서 어서 에셋을 안으로 들여보내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예. 예.”
“집어넣을까요?”
“아서라. 또 몇 명이나 다치려고.”
“하지만…….”
“기다려봐.”
“네.”
부하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물러선다. 물론 당차게 말은 했지만, 저 녀석이 무섭긴 했다. 저번에도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을 그대로 벽에 처박은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녀석은 척추가 나갔다고 했던가. 아니면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던가. 그런 꼴을 여러 번 보다 보니 두려움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자, 에셋.”
“…….”
“집에 갈 시간이다.”
“…….”
럼로우는 오른쪽 문을 열라고 조용히 손짓한다. 말을 잘 듣는 부하 둘이 냉큼 문을 열고 뒤로 빠진다. 저기까지 집어넣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매일매일 난리가 났다. 하지만 럼로우는 별로 어렵지 않은 표정이었다. 천천히 걸어간다. 점점 다가오는 남자를 보던 에셋은 날쌘 맹수처럼 뒤로 물러난다. 위협하든 손을 뻗어도 그다지 무서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
에셋은 그런 남자를 무서워했다. 분명 저 남자가 몇 번이나 크게 다쳐서 실려 나가는 것을 본 기억이 있었다. 뇌를 아무리 지져도 아주 흐릿하게 남는 잔상은 에셋을 휘감고 자랐다. 그 잔상의 중심엔 럼로우가 있었다. 얼굴에 피가 터져도, 두 다리가 부러져도 며칠 뒤면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에셋은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해서 그런 남자가 마냥 무서웠다.
“…으.”
“쉬, 그만 칭얼거리고 집에 가야지.”
“…….”
“들어가자.”
가까이 다가가서 발을 쾅 구르니 에셋이 열려있는 문으로 쑥 들어갔다. 그러더니 스멀스멀 고개를 빼고 주변 상황을 살핀다. 저런 것 마저 짐승과 똑 닮았다. 다시 한번 발로 세게 바닥을 친다. 쑥 들어간 녀석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직접 문을 닫은 후에 몇 겹이나 되는 잠금장치를 걸었다.
“아이고, 귀찮은 새끼.”
“저, 팀장님.”
“왜?”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본 럼로우를 보자마자 약간 후회가 된다. 하지만 궁금함을 이길 수 없었다. 럼로우가 이쪽으로 배정되기 전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생겼는지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편하게 에셋을 다룰 수 있었다.
“저 녀석이 왜 팀장님을 무서워하죠?”
“귀신인 줄 아나 보지.”
“…예?”
“꼴에 생각이란 걸 한다고, 내가 계속 나타나는 걸 그런 식으로 이해한 것 같은데. 왜? 자네들도 내가 귀신으로 보여?”
“아뇨…그럴 리가.”
하긴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눈앞에서 몇십 년 동안 얼었다가 녹길 반복하는 것도 있는데, 럼로우를 무서워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팀장으로서 럼로우는 엄하고 깐깐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무서움과 에셋이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하여튼 저런 새끼들은 비위 맞춰주기가 힘들어서.”
“…….”
“에셋은 이틀 뒤에 꺼낼 거니까 나 없을 때 사고 치지 마.”
“예.”
“그래. 가서 쉬어. 내일 아침 늦지 말고.”
럼로우는 약간 피곤한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어 부하들은 내쫓았다. 이 상황에선 없는 쪽이 더 편했다. 개인 시간을 가질 생각에 후다닥 꺼진 녀석들은 꽁지도 보이지 않았다. 뒷 목을 슬슬 주무르던 럼로우는 에셋이 갇혀있는 방 앞으로 걸어간다.
“…….”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
씩씩거리는 소리가 작은 구멍을 통해 흘러나온다. 헐떡거리는 소리를 듣자 하니 놀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뭐 여기서 다시 꺼내서 얼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고. 럼로우는 그대로 주저앉은 채 다리를 쭉 뻗었다. 피멍이 들고 뼈가 두 쪽으로 부러졌던 다리는 어느새 멀쩡해졌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다가 약한 현기증을 느끼긴 했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야.”
“…….”
“날 기억하긴 해?”
“…….”
“넌 늘 이렇게 날 무서워하면서 날 기다리잖아.”
“…….”
“그리고 나는 늘 널 잊어야 했고.”
“…….”
“물론 너도 늘 모든 일을 망각한 채 아무것도 모르는 무기로 돌아가지만 말이야.”
“…….”
“날 이렇게 만든 건 서른다섯 번 째야. 좀 기억해.”
“…….”
“다른 사람한테 이러면 벌써 시체 여러 번 치웠을 거야. 알았어?”
“…….”
“하여튼 비싼 새끼야.”
“…….”
꿈쩍도 하지 않는 입을 열 방법이 없었다. 그래. 멋대로 생각해라. 럼로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리 윈터솔져의 담당이라지만, 이렇게 삭막하고 추운 곳에서 함께 밤을 새우고 싶진 않았다. 불을 끈 럼로우가 문을 닫는다. 무거운 문이 닫히자마자 적막이 내려앉는다. 여전히 씩씩거리는 거친 숨을 내뱉는 윈터솔져는 어둠에 묻힌 채 구물 구물 움직였다.
*
럼로우가 처음부터 이렇게 윈터솔져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혈청 보유자를 늘리려고 했던 하이드라는 어린 용병을 중심으로 인체 실험을 강행했다. 윈터솔져의 피를 정제해서 어느 정도 혈청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게 되자 그것을 인체에 직접 주입하는 방법으로 끝없는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을 하는 동안 수많은 아이가 죽어갔다. 럼로우도 그중 하나였다.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과 힘줄마다 벌레가 가득 찬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연구원들은 그런 럼로우의 몸을 침대에 단단히 묶었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로 고열이 올랐다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길 반복했다.
그리고 다행히 살아남은 녀석이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주변 침대는 모두 비어있었다. 수많은 목숨을 희생해도 그다지 눈에 띄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윈터솔져처럼 강하지도, 눈이 밝지도 않은 녀석은 쓸모가 없었다. 인제 그만 처리하라는 지시에 산채로 땅에 묻혔던 것 같았다.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좋을 대로 떠돌아다니던 럼로우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받은 실험과 단체에 대해 잊어버렸다. 먹고 살기가 더 급했기 때문에 그런 허울 좋은 과거를 더듬을 여유가 없었다.
“…….”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제법 심한 상처를 입어도 빠르게 아문다. 신기한 일이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용병 일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칼에 찔려도, 총알이 박혀도 약간 눈을 움찔거리는 남자를 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괴물이라며 혀를 찼다.
그렇게 굴러먹던 녀석은 다시 하이드라 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이 체질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리고 과거 기록을 찾아낸 사람은 럼로우를 총장실로 떠밀었다. 어떻게든 발각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 능력을 높이 산 총장이 럼로우에게 윈터솔져를 떠맡겼다.
좋은 일은 아니었다. 처음 만난 날 윈터솔져는 도대체 뭐에 화가 났는지 럼로우의 목을 잡고 벽에 던져 버렸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갈비뼈가 부러진다. 럼로우가 쓰러진 것을 본 윈터 솔져는 꼭 목이 매달린 맹수처럼 굴었다.
“아, 젠장.”
“…….”
“사람을 이렇게 내동댕이치다니 귀찮은 무기네. 다른 녀석이었으면 벌써 목뼈가 부러져서 죽었어.”
“…….”
“갈비뼈가 부러지고, 팔이 빠졌네. 이것도 청구하면 돈으로 줘? 응?”
“…….”
그때부터 에셋이 럼로우를 무서워했다. 눈앞에서 빠진 팔을 맞추더니 다음날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 다음번엔 두 다리가 완전히 부러졌는데 정확히 삼일 뒤 걸어서 들어왔다. 물론 럼로우는 아픔을 느끼지 않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뿐 불사는 아니었다. 목이 떨어지면 죽는다. 심장을 뽑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에셋은 자꾸 멀쩡하게 돌아오는 녀석을 보면 괜히 구석으로 숨는다.
오랫동안 이어진 이 기묘한 관계는 럼로우를 꽤 귀찮게 했다. 럼로우가 아무리 다쳐도 멀쩡한 것을 알아버린 에셋은 날로 사나워졌고 남자 없이는 제대로 다루기조차 힘들었다. 안 그래도 쉴드 잠입 임무를 받고 있어서 신경이 날타로운데 에셋까지 저 모양으로 구니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또 뭐야.”
럼로우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쉴드에서 하이드라 무전을 받는다. 상대는 스트라이커팀에 숨어있는 하이드라의 심복이었다.
“…….”
“뭐?”
“…….”
“알겠어. 오늘가서 처리하지.”
럼로우는 짧은 대답을 하고 무전을 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잘생긴 상사가 슬쩍 돌아본다.
“무슨 일이지?”
“예?”
“자네가 그런 식으로 무전을 받는 걸 처음 봐서 그러네.”
“별거 아닙니다. 스트라이커 팀이 돌아오다가 무단횡단을 하는 미친개를 칠 뻔해서 쫓으려다 팔뚝을 물어 뜯겼다고 하더군요.”
“…응?”
“그렇답니다.”
“농담인가.”
“농담일 수도 있죠.”
“자넨 참…아닐세.”
잘생긴 얼굴은 곧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린다. 럼로우는 속으로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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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윈솔에서 그 화상을 입고 무너지는 건물에서 살아나와서, 크로스본즈 할정도면 럼로우도 혈청을 맞았던 것이 틀림 없습니다(선동과 날조)
근데 혈청이 딴게 아니고 자힐만 가능하게 발현해서 힘으론 스팁한테도 지고 윈솔한테도 지고...
여러모로 박복한 럼로우가 보고 싶었네요.
시간이 되면 좀 더 길게 써보고 싶습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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