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이라 시간이 부족해 보고싶은 부분만 쓰느라 굉장히 불친절 하지만, 언제나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윈터솔져 기반 럼로우와 버키 이야기 입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용병의 삶에 미래란 단어는 그저 사치품에 불과했다.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현실이 아닌 미래를 내다본다는 소리는 그냥 목숨을 내놓고 다니겠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럼로우는 아주 가끔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물론 불사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지독한 지옥에서 뒹굴다 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 시간을 뺄 수 있었다.
“…….”
“쉬, 가만히 있어,”
“…….”
“또 누구 뼈를 부러뜨리려고.”
“…….”
“쯧.”
대놓고 혀를 차면 커다란 덩어리가 슬슬 움직인다. 꼭 공간을 빙빙 도는 동물원의 맹수 같았다. 하지만 그 본질은 맹수인지라 하이드라에 속한 사람 중 그 누구도 윈터솔져 앞에 오래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다. 물론 저 불쌍한 병기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이미 갈려질 대로 갈려진 뇌는 많은 생각을 담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윈터솔져를 관리하는 부서는 절로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곳에 가는 사람은 세상을 정리하는 것과 같은 무게의 고통을 받았다. 그곳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이 빼곡하게 깔린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팀의 가장 머리에 앉아있는 럼로우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
“자꾸 정신 사납게 굴 거면 지금 뇌 지지러 가버려.”
“…….”
“어쭈? 이 새끼 봐라.”
“…….”
“너 말 알아듣지?”
“…….”
“모르는 척하지 말고.”
사실 럼로우는 윈터솔져와 같은 임무를 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현재 에셋을 관리하는 입장이지만, 해야 할 일은 조금 달랐다. 캡틴 아메리카를 감시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팀을 잠복시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안 그래도 매일 저 멍청한 맹수를 잡고 쫓느라 힘든데, 눈앞엔 늘 캡틴 아메리카가 의심이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틀어지면 바로 목을 물어뜯길 것 같았다.
“…….”
“못 알아듣는 척하긴.”
“…….”
“그러면서 임무는 어떻게 하나 모르겠네.”
“…….”
전쟁에 동원될 땐 자비라곤 없는 기계처럼 보이는 녀석은 하이드라로 돌아오기만 하면 극도로 불안해하곤 했다. 물론 그런 날엔 늘 럼로우가 헐레벌떡 하이드라로 뛰어왔다. 쉴드에 처박던지 하이드라에 머물게 하던지. 입에 달고 사는 투덜거림은 떨어질 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핸들러가 와도 상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보는 둥 마는 둥 주변을 맴돈다. 그러더니 침대에 쭈그리고 앉은 채 말이 없다. 그런 상황이 슬슬 지겨워질 때쯤 럼로우는 늘 비슷한 말을 한다. 어차피 기억을 담을 수 없는 무기는 같은 말을 반복해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이제 곧 나가야 해.”
“…….”
“얌전히 좀 있어라. 왜 괜히 안 먹어도 될 욕을 먹고 매를 버냐.”
“…….”
“하여튼.”
럼로우는 시계를 힐끗 쳐다본다. 이쯤이면 임무가 하달될 텐데 오늘따라 늦어진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괜한 의심을 살 텐데, 수뇌부는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죽어도 럼로우 혼자 죽어버릴 일이니 하나하나 상황을 봐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뭘 갑자기 그렇게 친한 척을 해?”
“…….”
“우리…아니지 너랑 난 우리라고 칭하기까지 시간이 좀 모자라니. 안 그래?”
“…….”
“너랑 난 그냥 비즈니스 관계잖아.”
“…….”
“내가 이런 뇌 병신한테 어려운 말 해봤자 남는 게 없어.”
“…….”
“너 욕한 거 아니야. 아니면 또 한 번 집어던져 보던가.”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웃는다. 노련한 용병의 눈빛에 절로 수그러든 목은 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늘 이런 식이었다. 무서워하면서도 호기심을 숨기지 못한다. 아무리 봐도 덜 녹아서 그런 것 같은데, 애써 멀쩡한 척을 하려 한다.
“…응?”
귓가에서 무전기 소리가 들린다. 럼로우는 익숙하게 무전을 받는다. 낯선 소리가 들리자 멍청한 녀석은 또다시 펄쩍 뛰어오른다. 적당히 손을 휘두르니 구석에 홀린 듯 처박혀서 움직이지 않는다.
“예. 일찍도 연락 주시는군요.”
“…….”
“예?”
“…….”
“그게 무슨…….”
“…….”
“저 지금 쉴드로 돌아가지 않으면 캡틴이 의심할 겁니다.”
“…….”
“아, 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
“…….”
“예. 이후 다시 명령 기다리겠습니다.”
후. 무전기를 끊자마자 욕이 절로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까라면 까야 할 입장이라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짜증이 솟구친다. 물론 그런 짜증의 원인은 저 녀석 때문이었다. 꼼짝없이 괴물과 며칠 밤을 보내게 생겨서인지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임무란다.”
“…….”
임무란 단어를 듣자마자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온다. 으르릉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팔다리는 물어뜯길 수 있지만, 훈련된 맹수는 목을 물진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다치면 낫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내가 왜 널 데리고 가야 하는진 모르겠지만…….”
“…….”
“캡틴 아메리카는 지금 출장을 갔더군.”
“…….”
“넌 얌전히 임무만 마치고 다시 여기로 돌아오면 되는 거야.”
“…….”
좀 얌전해진 것 같았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점차 줄어든다. 럼로우는 그런 녀석을 빤지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녹이 슨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군화가 저벅저벅 시멘트 바닥을 밟는다. 발에 차이는 작은 돌조각은 저 멍청한 맹수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쥐어 뜯어놓은 흔적이 분명했다.
“며칠 같이 있을 건데 인사나 할까?”
“…….”
“너랑 나 슬슬 우리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
얌전하다 싶으면 꼭 사고를 친다. 우두둑. 낯선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앞으로 내민 손을 붙잡고 그대로 꺾어버린 녀석은 눈을 치켜뜬 채 씩씩거리며 숨만 내쉬었다. 완전히 돌아가 버린 손목을 바라보던 럼로우는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그리 놀라지 않았다. 늘 있던 일인 것처럼 익숙한 얼굴이었다.
“야…….”
“…….”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자꾸 구석으로 도망가기만 했다. 아무래도 해동을 하다 뇌를 잘못 건드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불안정했다. 덜렁거리는 손목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제법 가라앉는다.
“내가 말했지.”
“…….”
“너 이러는 거 받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
“입이 붙은 건지.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건지.”
“…….”
“이거 어찌할 거야.”
덜렁거리는 손목을 내민다. 자기가 부러뜨려놓고 펄쩍 뛰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알 수 없었다. 럼로우는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혹시나 모를 자해 위험 때문인지 좁은 방 안엔 제대로 된 물품이 없었다. 밥을 먹일 필요도 없으니 수저 같은 것도 없었다. 의자는 럼로우가 온다고 같이 들여보냈으니 저 녀석은 네모난 시멘트 방에 늘 갇혀있을 뿐이었다.
“젠장.”
아프지도 않은지 꺾여버린 손목을 주물거린다. 분위기는 한없이 가라앉기만 하고, 도통 긴장이 풀어지지 않았다. 잘못한 걸을 알긴 하는지 에셋은 잔뜩 눈치를 본다.
“아직 너랑 내가 우리라고 말하기엔 조금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
“안 그래?”
“…….”
“언제까지 이럴 거야? 내가 병신이 되면 네놈 옆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
“여긴 망가지면 그대로 버린다고.”
“…….”
“하긴 내가 그러질 못해서 아직 이러고 있지.”
뼈가 꺾이는 것과 다른 마찰음이 들린다. 럼로우는 익숙하게 칼을 든다. 그리곤 피부를 쭉 찢어버린다. 그러면 잔뜩 고여 있던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회색빛 시멘트 바닥에 시커멓게 죽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몇 방울은 럼로우의 군화에 튀었고, 몇 방울은 에셋에게 옮겨붙었다.
“피 냄새나도 참아. 네가 그랬잖아.”
“…….”
“이 정도 다친 건 하루면 나아.”
“…….”
“따지고 보면 나도 너한테서 나온 자식인데 말이야.”
“…….”
아예 뒤돌아 앉아버린 녀석은 고개를 기울여서 벽에 기댄다. 그러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오래 갇혀있다 보면 미친다는 소리가 사실인 듯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픽 쓰러질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얌전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럼로우는 그런 녀석을 내내 바라보았다. 결국, 이런 저주와 같은 형질을 만들어준 녀석은 눈앞에 있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걸 딱히 부정하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 녀석이 자신에게 준 것은 평생 전쟁에서 뒹굴고 살라는 낙인과도 같았다. 자존심 없게 제 발로 죽어버리는 것은 못 할 짓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전쟁을 헤치면서 죽을 만큼 상처를 입어도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지독한 저주가 분명했다.
“나도 너처럼 오래 살 수 있을까?”
“…….”
“응? 어떻게 생각해?”
“…….”
에셋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만두자. 벙어리한테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그건…….”
“응?”
럼로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벽에 머리를 댄 채 움직임도 없는 녀석한테서 쇳소리가 섞인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화라고 하기보단 혼잣말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