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대로라면 가방 안에 만들어둔 인공 태양 외엔 다른 빛이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뉴트는 정식적으로 많이 지쳐있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어차피 동물들이 가방에서 나갈 수 있는 출입구는 모두 봉쇄되어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크레덴스만 바라보다 깜박 잠이 들었다. 가방은 닫지 못했고, 밤은 계속 흘러갔다.
흐린 구름 사이로 흐르는 햇빛이 창문에 턱 닿았다. 그러더니 반쯤 걷힌 커튼을 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행자가 그저 밤만 보내고 사라질 정도의 간소한 방에 아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방바닥을 타고 쭉 흘러간 햇살이 가방 속으로 뚝뚝 떨어졌다.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따뜻함에 뉴트의 발끝에 닿았다. 하지만 내내 긴장하다 겨우 잠이 들었던 남자는 몸을 조금 더 웅크릴 뿐이었다.
“…….”
“…….”
바닥에 누운 사람도 벽에 기댄 채 잠이 든 남자도 좀처럼 깨지 않았다. 하지만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뉴트의 눈이 움직였다. 그러더니 속눈썹 한가득 아침을 끌어안은 채 눈을 떴다. 피곤으로 푹 절인 올리브색 눈동자가 느릿하게 굴러갔다.
“…세상에.”
그제야 지금 상황을 알아챈 가방 주인이 펄쩍 뛰어오른다. 아무리 피곤하고, 동물들이 들어올 통로를 막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부주의하게 잠들다니. 저번에 도망친 녀석을 잡느라 고생한 기억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아. 짧게 한숨을 내쉰 뉴트는 괜히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안 그래도 불편하게 자서 몸이 비명을 지른다. 물론 이것보다 더 심한 곳에서 잠을 청했던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웅크리고 앉은 채로 잠이 든 것이 편하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정신이 없어서.”
“…….”
“내 정신 좀 봐.”
“…으.”
“크레덴스?”
“…….”
“일어났니?”
“…….”
뒤척뒤척 움직이는 이불을 보아하니 정신을 차린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죽은 척 숨도 쉬지 않은 녀석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뉴트는 침착하게 그 앞에 주저앉았다. 신비한 동물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앞에 몇 시간이고 버티고 앉은 채 교감을 시도했다. 경계심을 없애려면 이 방법이 제일 나았다. 그런 사람이기에 이런 기다림은 너무나 당연했다. 물론 그런 시선에 익숙하지 않은 쪽은 크레덴스였다.
“…….”
“크레덴스?”
“…….”
“일어났으면 같이 아침이라도 먹지 않을래?”
“…….”
“계속 굶으면 몸에 안 좋은 거 알잖아.”
“…….”
“계속 말 안 할 거고?”
“…….”
“어쩔 수 없지. 나도 계속 여기 있어야겠네.”
“…….”
“기분이 안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네 보호자는 나니까.”
“…….”
“혼자서 나갈 순 없잖아. 널 두고 말이지.”
“…….”
뉴트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이미 자문자답에 가까워진 대화였지만, 신비한 동물을 대할 때도 비슷했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혼자 끝없이 떠들어야 했다. 지금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물론 크레덴스는 인간이었지만, 하는 행동은 신비한 동물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이런 쪽이 다루기 편할지도 몰랐다.
뉴트는 동물의 행동에 대해선 조예가 깊었지만, 인간 사이에 생기는 일은 영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 사이에서 말을 할 때 자꾸 눈을 불안하게 움직이곤 했다. 그런 뉴트를 귀찮아하는 무리도 있고,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뉴트가 점점 동물에 빠져 지내게 된 원인이 이쪽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에선 그런 성향이 도움되었다.
“…크레덴스?”
“…….”
“내가 가까이 가도 괜찮을까?”
분명 깨어있는 것이 확실했다. 잠이 들었다면 규칙적으로 이불이 움직일 텐데, 지금은 눈에 띄게 부스럭거린다. 최대한 자는 척을 하고 있지만, 크레덴스는 그런 쪽으론 조금 모자란 아이였다. 몸을 웅크린 채 죽은 척 하는 아이에게 몇 번이나 말을 걸던 뉴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그덕. 사다리를 잡자 낯선 소리가 난다. 그러자 이불이 들썩인다. 뉴트는 사실 그것을 다 보고 있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내 손에 아무것도 없어.”
“…….”
“지금부터 내가 걸어서 네게 다가갈 거야.”
“…….”
“자…….”
뉴트의 발이 움직였다. 일부러 소리를 낸다. 조용히 다가간다면 크레덴스가 놀랄 것이 뻔했다. 천천히. 한걸음. 다시 한 걸음. 사실 좁고 좁은 이곳에서 길게 걸을 수도 없었다. 긴 다리로 몇 번 성큼 딛자마자 금세 크레덴스 앞이었다.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가 느껴지는지 아이는 좀 더 웅크릴 뿐이었다.
“굿모닝. 크레덴스.”
“…….”
“잘 잤어?”
“왜…….”
“왜?”
“왜…나,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죠.”
“잘해주다니.”
“그, 그러니까.”
“…….”
뉴트는 침착하게 크레덴스의 입술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라고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당, 당신은 내가…그…그건 줄 알면서.”
“그래. 다 알고 있지.”
“알면서…왜…….”
“그야. 네가 나를 찾아왔잖아.”
“…….”
“도와달라고 온 것 아니었어? 내가 착각한 건가?”
뉴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선 동물과 말할 때와 비슷한 애정이 흘러내렸다. 크레덴스는 그런 말을 듣자마자 어깨를 떨었다. 이불이 심하게 흔들렸다. 뭔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아직도 얼굴 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을 끌어내리지 않았다.
“그…그런 맞지만, 당장…쫓, 쫓아낼 줄 알고.”
“나한테 도와달라고 온 사람을 어떻게 내버려 둬.”
“…….”
“크레덴스. 내가 도와줄게.”
“…….”
“우리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
“네가 날 믿어준 만큼 나도 널 도와주고 싶어.”
“…….”
“응?”
한마디에 뭔가 흔들린 것이 확실했다. 크레덴스가 주춤주춤 이불을 내린다. 잔뜩 불어터진 얼굴에 새집을 지은 머리까지. 자신의 꼴이 우스운지 다시 이불로 들어가려는 것을 뉴트가 막았다. 아. 이렇게 갑자기 다가갈 생각은 없었지만, 이번이 지나면 영영 크레덴스를 이불 속에서 끌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이 등잔만 하게 커진 녀석이 뉴트를 바라본다.
“일단 아침부터 먹을까?”
“…….”
“배 안 고파?”
“…….”
“난 고픈데.”
“…….”
“준비하고 나가자. 영국 음식이 입에 맞을진 모르겠지만.”
“…….”
“어서.”
“…….”
“우리가 먼저 먹고 돌아와야 저 안에 있는 녀석들도 챙겨줄 수 있으니까.”
“저…안?”
“동물이 아주 많아.”
“…….”
뉴트가 손을 내민다. 크레덴스를 주춤주춤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여전히 구부정한 어깨와 잔뜩 굽힌 목까지. 키는 뉴트와 비슷했지만 움츠리니 작아 보인다. 뉴트가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오르자 약간 망설이더니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사다리를 잡았다.
“…여긴.”
“가방에서 나오는 건 처음이지?”
“…….”
“원래는 편하게 침대에서 재우려 했는데, 내가 널 업고 사다리를 오를 수 없어.”
“…….”
“그럼 어디로 가볼…아차.”
“…….”
뉴트가 우둑 멈춰 서자 크레덴스는 멍하니 따라 걷다 등에 코를 박을 뻔했다. 뉴트의 시선이 향한 곳엔 부엉이 한 마리가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분명 울다가 잠이 든 것까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리고 크레덴스를 달래느라 앞선 것을 모두 까맣게 잊고 말았다. 물론 뉴트를 아는 사람이라면 늘 그랬으니 놀라지 않았을 정도로 한결같았다.
“…아, 어쩌지.”
“…….”
“저…크레덴스. 잠시만 기다려줄 수 있을까?”
“…….”
크레덴스의 까만 눈이 뉴트의 얼굴에 닿는다. 아침 먹으러 가자고 한 주제에 이렇게 말을 돌리자니 민망했다. 하지만 부엉이를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미안해. 내가 좀 정신이 없어서…….”
“부엉이?”
“어…그래. 너도 아는 사람의 부엉이야. 내가 답장을 해야 하는데 어제 깜박한 바람에.”
“내, 내가 알아요?”
“…알지.”
“…….”
크레덴스는 가만히 자신의 구두 끝을 바라본다. 그리곤 잔뜩 움츠린 모습으로 무엇인가 생각을 한다. 아마 자신이 아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뉴트는 조심스럽게 크레덴스를 끌어다 침대에 앉힌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려다 아차 싶은 표정으로 그만둔다.
“잠시만 기다려줘. 답장 금방 쓸게.”
“…….”
“이미 기다리고 있구나.”
“……,”
크레덴스가 엄지손톱을 와작와작 깨물었다. 깊은 생각을 하면 가끔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뚝. 뚝 손톱 부러지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렸다. 뉴트는 그런 아이를 뒤로 한 채 허겁지겁 책상에 앉아 편지지를 늘어놓았다. 천천히 답장을 쓸 생각이었는데, 일단 가볍게 안부만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긴 이야기는 자신의 부엉이를 부르면 될 것 같았다. 깃펜에 잉크를 찍어서 짧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친애하는 티나 골드 스틴
안녕하세요.
답장이 늦었습니다. 제가 지금 조금 바빠 긴 이야기를 편지 속에 담지 못한 것을 부디 용서해 주세요. 당신이 들으면 좋아할 것이 분명한 일이지만, 지금은 쉽게 입 밖으로 낼 수 없습니다. 곧 제 부엉이를 통해 좀 더 긴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오러 사무국에 복귀한 것을 다시 한번 축하해요. 마쿠자에도 더는 큰일이 없길 빕니다.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하니 모든 사람이 무사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게요.
긴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선 꼭 해명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해요.
정말 미안해요!
뉴트 스캐맨더
***
급하게 편지를 마무리한 뉴트가 허겁지겁 편지 봉투를 찾았다. 손끝에 묻은 잉크가 편지 봉투에 묻어났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충분한 휴식을 취한 부엉이는 편지를 보자 가볍게 날개를 퍼덕였다. 그런 동물을 보던 크레덴스가 몸을 조금 웅크렸다. 아직은 동물이 낯선 모양이었다.
“그럼 너의 주인에게 이 편지를 전해주렴.”
뉴트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꼭 버튼을 누른 것처럼 입을 벌린 부엉이가 편지를 받아 물었다. 뉴트가 창문을 활짝 열어주자 힘차게 날아올랐다. 뉴트는 해가 떠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부엉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곤 창문을 닫았다. 시끄럽던 소리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제 갈까?”
“…….”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
“일단 아침 먹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물론 뉴트는 그렇게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는 편이 아니었다. 대충 열량만 맞춰서 입에 집어넣는 쪽을 선호했지만, 눈앞에 보살펴야 할 것이 있다면 조금 달라졌다. 부드럽게 눈을 마주친 뉴트가 가볍게 고개를 기울이자 크레덴스가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